"우와! 여긴 진짜 도시답다!"
시작부터 쏟아져나온 감탄사! 정말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였어요.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다 있나 싶었어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아름다움과 관련된 수식어를 다 사용해도 묘사할 수 없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유럽의 대도시에요. 거기에다 현재 비교대상은 티라나, 프리슈티나, 스코페, 소피아, 부쿠레슈티. 유럽 도시 인구 순위로는 베오그라드가 전 유럽에서 14위에요. 1위는 모스크바, 9위는 부쿠레슈티, 10위는 부다페스트, 15위가 오스트리아 빈이고 프라하는 23위에요. (유럽 도시 인구 순위 : http://www.citymayors.com/features/euro_cities1.html) 인구 규모는 부쿠레슈티가 더 크지만 역사적으로 중요성을 놓고 보면 부쿠레슈티는 베오그라드와 비교될 수 없어요.
이런 건물도 너무 아름다워 보였어요. 어쩌면 제가 상상하고 있던 유럽의 도시에 정말 근접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고 느꼈을 수도 있어요. 날씨도 매우 좋았어요. 비록 쌀쌀하기는 했지만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어요.
이렇게 베오그라드의 거리를 걷다 보니
이런 동상과 마주하게 되었어요. 번화가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한적한 분위기가 왠지 더 분위기 있는 것 처럼 느껴졌어요.
(이 동상 인물에 대한 설명 : http://en.wikipedia.org/wiki/Vojin_Popovi%C4%87)
드디어 도착한 베오그라드 번화가.
지금껏 왔던 다른 도시들에서 느낄 수 없는 세련된 모습이 보였어요.
"미녀 진짜 많네!"
번화가로 나오자마자 느낀 것은 미녀가 정말 많다는 것. 다른 지역에서 아주머니, 할머니들은 살집이 있었는데 여기는 아주머니, 할머니도 늘씬한 몸매. 이것이 베오그라드의 힘이란 말인가!
"어? 효도르다!"
"왜 효도르가 경찰복 입고 있지?"
10억분의 1의 사나이, 에밀리야넨코 표도르. 효도르가 세르비아 경찰관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무슨 촬영이라도 나왔나?"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세르비아 군복을 입은 다른 효도르도 보였어요.
효도르비치의 나라!
과거 유고슬라비아 - 세르비아가 왜 발칸 반도의 맹주였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진짜 경찰과 군인이 곳곳에 있었는데 10억분의 1의 사나이, 에밀리아넨코 표도르처럼 생긴 경찰과 군인들이 득시글했어요. 이건 뭐 이론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냥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여자는 미녀, 경찰과 군인은 배 뿔룩 나온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효도르가 득시글대니 당연히 발칸 반도의 맹주죠. 이건 뭐 육탄전에서는 이길 수가 없네요.
국립 박물관 앞 광장인 공화국 광장까지 왔어요. 공화국 광장은 Trg Republike에요. 세르비아어로 광장은 Trg. 세르비아어의 특징은 r이 모음 역할도 한다는 거에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 발음이었어요. r은 분명히 자음인데...Trg는 왠지 약자인 것 같지만 약자가 아니에요.
국립 박물관에는 'Народни Музеј'라고 적혀 있었어요. 슬라브어에서 'narod'라는 단어는 참 번역하기 애매한 것 같아요. '국민'이라는 뜻도 되고 '인민'이라는 뜻도 되요. 그때그때 잘 골라 써야 하는 단어에요. 세르비아 키릴 문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й 대신 ј를 쓴다는 점이었어요. 둘 다 발음은 y에요.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어렵거나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전날 너무 무리를 해서 다리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어요. 날도 화창해서 슬슬 땀이 나려고 했어요. 그래서 주변 카페에 가서 조금 쉬다 가기로 했어요.
카페에 들어갔더니 아이스크림도 같이 팔고 있었어요.
"우리 더운데 아이스크림이나 하나씩 먹을까요?"
"그래요."
아이스크림을 고르는데 후배는 '피노키오'라는 것을 골랐어요. 대체 뭐가 나올까 궁금해하며 피노키오를 주문했어요.
"헐...진짜 피노키오 모양이네!"
아이스크림 콘 꼭지를 끊어서 코를 만든 것이 포인트였어요. 딱 봐도 피노키오처럼 생겼어요.
"여기 아이스크림 맛있네요."
후배는 '피노키오'를 잡아먹으며 아이스크림이 참 맛있다고 했어요. 저도 제가 시킨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제 어디를 갈 지 가이드북을 펼쳐 베오그라드 지도를 살펴 보았어요.
"칼레메그단 요새 가야겠네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충분히 쉬면서 가이드북을 보다 나왔어요. 이제 갈 곳은 칼레메그단 요새. 여기에 가면 사바강과 다뉴브강이 만나는 지점을 볼 수 있다고 했어요.
이 동상 근처에 큰 서점이 있어요. 여기에서 포켓 세르비아어-영어 사전과 포켓 영어-세르비아어 사전을 구입했어요. 영어가 정말 안 통했기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대화를 위해서라도 이 사전들이 필요했어요.
(이 동상은 유명한 시인 페타르 2세의 동상이에요. 자세한 설명은 http://en.wikipedia.org/wiki/Petar_II_Petrovi%C4%87-Njego%C5%A1)
확실히 지금까지 지나온 동유럽 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화려한 건물.
칼레메그단 요새 입구.
칼레메그단 요새 안에는 군사 박물관이 있어요. 그러나 군사 박물관은 유료. 유료인 군사 박물관은 들어가지 않고 요새를 한 바퀴 돌기로 했어요.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생겼어요.
군사 박물관 근처에는 1차 세계대전 및 2차 세게대전에서 사용한 무기들을 야외 전시해 놓았어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연인들이 많이 보였어요. 베오그라드에서는 나름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것 같았어요.
성벽을 따라 계속 걸었어요.
"오빠, 무서워요!"
"뭐가요?"
"개가 쫓아와요!"
개가 우리 보고 좋다고 쫓아오고 있었어요. 생긴 게 험상궂게 생겼는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어요. 먹을 게 있으면 뭐라도 줄텐데 줄 건 없었어요. 우리가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계속 가자 개들이 따라오다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뛰어갔어요.
드디어 요새 안에 있는 칼레메그단 공원에 도착했어요. 역시나 데이트하는 커플들이 많이 보였어요.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아직 관광 성수기가 아니었으니까요. 칼레메그단 공원에서는 다뉴브 강과 사바 강이 만나는 지점이 잘 보였어요.
강변에도 유적이 있었어요. 그러나 굳이 강변까지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공원 주변의 성벽.
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동상.
동상이 높은데다 워낙 귀퉁이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앞면은 찍을 수가 없었어요.
여름에는 정말 사람들이 붐빌 것 같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초봄. 확실히 날이 놀기 좋을 정도로 따뜻하지 않아서 그런지 강변에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칼레메그단 요새 모형.
요새를 뒤로 하고 나왔어요. 요새 입구에는 각종 기념품과 수공예품을 파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후배가 엽서를 모으기 때문에 엽서를 사기 위해 가게를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어요. 이것 저것 구경하다 한 할머니께서 파시는 물건을 보며 살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한국인이세요?"
누군가 우리를 불렀어요.
"예."
"반가워요. 여기는 일 때문에 오셨어요?"
"아니요, 여행인데요."
그분께서는 할머니께 반갑다는 듯 세르비아어로 인사를 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셨어요.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주기 시작하셨어요. 후배가 동전을 모아서 거스름돈을 세르비아 동전으로 받고 싶다고 했어요. 그분께서 할머니께 '이 학생이 동전을 모아서 잔돈을 동전으로 받고 싶어 한다'고 세르비아어로 말씀하시자 할머니께서 거스름돈을 전부 동전으로 주신 후 예전 '신 유고 연방' 시절 동전까지 찾아서 챙겨 주셨어요.
그 한국분께서는 친구가 아파서 병문안 가는 길에 우리를 보았다고 했어요.
"지금 가는 곳 있어요?"
"아니요. 특별히 정해진 곳은 없어요."
"그러면 사바 교회 갔다 왔어요?"
"사바 교회요?"
한국분께서는 우리에게 사바 교회까지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트램에 타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트램에 탔어요. 그런데 아무도 돈을 내지 않았어요. 그 아저씨께서도 돈을 내지 않으셨고, 우리도 돈을 내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무임승차.
그 아저씨의 설명에 의하면 베오그라드는 유럽에서 손 꼽히는 대도시였어요. 그리고 세르비아는 발칸 반도의 맹주. 1999년 나토가 세르비아에 그렇게 폭격만 주구장창 해댄 이유는 나토 지상군이 세르비아로 진격할 경우 나토군도 어마어마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대요. 일단 세르비아군은 1990년대 지독한 내전을 겪은 백전노장들. 거기에 과거 유럽의 강군 유고슬라비아군 대부분이 세르비아군으로 이어졌고 국토에 산지가 많아서 나토군도 세르비아 주변에 지상군을 배치만 했지 감히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했어요.
"내전 때는 어땠어요?"
"내전 때가 오히려 살기 좋았어요."
그 유명한 유고 내전 당시가 오히려 지금보다 살기 좋았다고 하셨어요. 어차피 전쟁은 세르비아 영토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어요. 슬로베니아와의 2주일간 전투 이후 모든 전투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 발생했어요. 크로아티아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나 잃어버린 자국 영토 수복하기 바빴지 감히 세르비아 영토를 공격할 엄두는 낼 수 없었어요. 그나마도 나토가 강제로 문제를 해결해서 세르비아가 전쟁에서 진 것이었지, 나토가 개입 안 했다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세르비아에게 싸그리 점령당해 버렸을 거라고 하셨어요.
"그러면 여기 오기 전에 어디 다녀왔어요?"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루마니아, 불가리아요."
"마케도니아 비자 필요해요?"
"아니요. 알바니아도 입국세 없어졌고, 마케도니아도 비자 필요 없어요."
"이제 발칸 유럽 비자 다 없어졌구나!"
아저씨께서는 자신의 여권을 보여주셨어요. 아저씨의 여권에는 마케도니아 비자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무비자로 바뀌었다고 알려드리자 매우 반가워 하셨어요.
"다음에 어느 도시로 가려고 해요?"
"포드고리차요."
"포드고리차? 몬테네그로 수도?"
"예."
"거기 가지 마요. 거기 아무 것도 볼 거 없어요. 뭐 나름대로 볼 거 있을 수도 있겠지만...한국인들은 꼭 수도를 간단 말이에요. 무슨 의무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행 하는 거 보면 꼭 수도를 가요. 수도를 가야만 그 나라에 갔다고 생각해서 그런가...그런데 몬테네그로 사람들도 '우리 나라는 포드고리차 빼고 다 예뻐'라고 하면서 한국인들은 왜 꼭 바득바득 포드고리차로 간 후에 몬테네그로 볼 거 없다고 툴툴대냐고 그래요. 몬테네그로 갈 거면 포드고리차 가지 말고 코토르랑 부드바 가요. 거기가 진짜 아름다워요."
"예. 감사합니다."
아저씨께서 트램에서 내리셨어요. 우리도 같이 따라 내렸어요.
"여기서 내려서 쭈욱 가면 사바 교회 나와요. 그 교회가 세계에서 제일 큰 동방 정교 교회 중 하나인데 아직 미완성이에요. 겉만 일단 완성시켜 놓고 내부는 공사중인데 아직 한참 멀었어요. 자기네들도 100년 걸리지 않을까 하니까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그 교회가 오직 기부금만으로 짓고 있어요. 그래서 기부금이 좀 모이면 공사하고, 기부금 다 쓰면 공사 쉬고 그래서 아직도 미완성에 공사중이지만 한 번 볼만은 해요."
친절한 한국분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사바 교회로 가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