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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오자마자 샤워를 하고 여행 기록을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비록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여행 기록을 쓰고 싶었어요. 이 감정을 제대로 적어놓고 싶었거든요. 상상과 너무나도 달랐던 방콕의 첫 모습. 이 모습들을 뒤집을 무언가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너무나 강력하고 충격적인 모습들이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것들로는 생각이 바뀔 리 없었어요. 어쩌면 이 여행 기록을 쓰는 행동이 저 자신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에 한 행동일 수도 있어요. 여행 기록 작성하며 안 좋은 감정을 다 쏟아붓고 다음날부터 다시 새롭게 태국을 바라보고 싶었거든요.


우르르릉 쾅 쏴아아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무섭게 천둥이 치기 시작하더니 스콜이 쏟아져 내렸어요. 모든 것을 다 씻어내려가려는 것처럼 무섭게 퍼부었어요. 스콜을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한 번 겪어보기는 했지만 다시 겪으니 그저 신기하기만 했어요. 이렇게 무섭게 비가 퍼붓는데 침수가 안 된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 우리나라에서 내리는 소나기의 세 배는 퍼부어야 이 스콜에 맞먹을 것 같았어요. 방콕에 운하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스콜로 인한 침수를 막기 위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밖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고 빨리 들어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행 기록을 다 쓰고 나서 짐을 쌌어요. 1박2일로 아유타야를 다녀올 것이었기 때문에 백팩을 따로 하나 간단히 꾸렸어요. 추운 겨울이라면 특별히 꾸릴 것도 없었지만, 여름이다보니 보나마나 옷이 엉망이 될 것이 뻔했어요. 무언가 많이 싸들고 갈 필요는 없었지만, 일단 백팩은 메고 가야 했어요. 빨래거리는 싸서 들고와야 했으니까요. 짐을 다 꾸리고 바로 잠을 청했어요.


눈을 뜨니 드디어 2015년 6월 9일.


"아아악!"


일어나야 하는데 허리와 다리가 매우 아팠어요. 허리는 옆으로 메는 가방을 하루 종일 메고 다녀서 무리가 갔어요. 인도네시아에서 겪었던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나 싶었는데 하루 또 열심히 돌아다니니 다시 통증이 재발했어요. 다리는 종아리 안쪽이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어요. 정확히 정강이뼈 딱 뒷부분에서 통증이 느껴졌어요. 다리만 아프면 일어나서 열심히 종아리를 주물러서 풀텐데, 허리도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아침을 먹을 것인가, 조금 더 쉴 것인가.


내가 언제부터 아침을 열심히 챙겨먹었다구!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요. 대체 언제부터 아침을 열심히 챙겨먹었다고 주제넘게 아침을 챙겨먹을 생각을 하는 거야? 숙박비로 지불한 돈에 조식이 포함되어 있으니 돈이 조금 아깝기는 했지만 별 상관없었어요. 오히려 지금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먹는 것이 이상한 것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 아침을 제대로 챙겨먹은 날은 대학교 진학하며 서울로 올라온 이후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아침 8시가 되어서야 겨우 일어났어요.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보다 통증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팠어요. 그래도 이제는 진짜 일어나야 했어요. 왜냐하면 더 이상 밍기적거리면 기차를 탈 수가 없었거든요. 아유타야행 기차표는 구입을 따로 못했기 때문에 당장 기차역가서 기차표부터 구입해야 했어요. 아유타야행 기차표를 사지 못하면 아유타야 일정 자체가 엉망이 될 것이었어요.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했어요.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입고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어요.


야왈랏



숙소 복도에 있는 창에서 밖을 내려다보니 이쪽은 허름한 동네였어요. 이쪽에서 왼편이 바로 차이나타운이 있는 야왈랏이에요. 아래에서 길을 돌아다니며 보는 풍경과 숙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전혀 달랐어요. 거리를 돌아다니며 보는 풍경도 화려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허름해보일 거라는 생각까지는 크게 들지 않았거든요.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무슨 공단 한가운데에 있는 어느 곳 같았어요. 서울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은 남영역 근처.


짐을 맡기고 기차역으로 갔어요.


후아람퐁역


기차역에 도착하니 아침 9시. 전광판에는 아유타야행 기차가 떠 있었어요. 기차 출발 시각은 9시 25분.


Hua lamphong


"사왓디 크랍."

"사왓디 크랍."

"아유타야요."

"15바트."


두 손을 앞에 모아 합장하고 태국어로 인사하자 직원은 태국어로 인사를 받아주었어요. 하지만 저의 태국어는 딱 거기까지. 아유타야 기차표 1장 사겠다는 말은 그냥 영어로 말했어요. 다른 지역 여행할 때에는 버스, 기차표를 살 때는 현지어로 말했어요. 그러나 인도네시아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의 충격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태국어를 공부하기 위해 교재에 동봉되어 있던 CD의 mp3 파일을 핸드폰에 넣어 왔어요. 그런데 이것을 오직 핸드폰에만 넣어왔기 때문에 이제 이 mp3 파일들은 제게 없었어요. 다른 나라 말이라면 발음이 어떻든 억양이 어떻든 말해볼텐데, 태국어는 하필 성조 언어. 게다가 성조 규칙이 중국어, 베트남보다 훨씬 복잡해요. 자음은 중자음, 고자음, 저자음으로 구분되며, 이 자음들에 따라 성조가 달라져요. 특히 무형성조는 전적으로 이 자음 분류로 결정되요. 여기에 더욱 문제인 것이 태국어 성조는 중국어, 베트남어 성조와는 또 다르기 때문에 각 성조의 발음들을 익히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었어요. 이렇게 성조에 너무 얽매여있다보니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mp3 파일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스스로 발목을 잡는 짓을 하고 있었어요.


어쨌든 15바트를 내고 기차표를 구입했어요.


잠깐, 15바트?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분명 15바트를 내고 기차표를 구입했어요. 표에 15바트라고 가격이 찍혀 있었구요. 그런데 매우 이상했어요. 방콕 후아람퐁역발 아유타야행 기차표가 지하철, 지상철보다 훨씬 저렴했어요. 아무리 지하철, 지상철이 최고급 최첨단이라 하더라도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었어요. 거리 차이가 어마어마하니까요. 시암에서 후아람퐁역까지 걸어가려면 힘들겠지만 그렇다고 걸어가는 게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었어요. 그 거리를 지하철과 지상철을 이용해서 오면 42바트였어요. 이에 비해 아유타야는 후아람퐁역에서 절대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정작 후아람퐁역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기차표는 15바트. 이건 거의 3배였어요. 진짜 돈 있는 사람들만 지하철, 지상철을 타라는 건가? 그런데 그 후진 나무바닥 버스도 6.5바트였잖아! 우리 기준으로 보았을 때 무언가 상당히 이상한 요금 체계였어요.


기차에 올라탔어요.


태국 기차


멋진 기차다!


에어컨은 없었어요. 그런 건 애초에 없었어요.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선풍기가 전부였어요. 선풍기 상태를 보니 저게 제대로 돌아가기나 할 지 의문이었어요. 이건 전날 타고 갔던 6.5바트 버스의 업그레이드 버전. 바닥만요. 그 외에는 똑같았어요. 이 나라는 진짜 에어컨 없으면 가격이 푹 떨어지는구나.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바로 창문을 여는 것이었어요. 좌석은 그냥 아무 데나 앉으면 되었어요.


기차 안에서 괜찮은 좌석이 있나 살피며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한 할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셨어요. 그러다니 중국어를 마구 내뱉기 시작하셨어요. 중국어라는 것은 알겠는데,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태국의 화교 같았어요. 저를 중국인인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중국어로 이야기하며 자기 앞에 앉으라고 하는 듯 했어요. 그러나 저는 중국인도 아니고, 중국어도 몰랐어요. 아무리 영어로 중국인 아니라고 해도 소용없었어요. 계속 중국어를 쉴 새 없이 내뱉으며 자기 앞에 앉으라고 했어요. 도저히 이 할아버지와 대화 자체를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칸으로 갔어요.


다른 칸으로 가니 괜찮아보이는 자리가 몇 곳 남아있었어요. 자리를 잡자마자 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도 창문을 위로 올렸어요.


"밤에 스콜 내렸는데 왜 이렇게 덥지?"


밤에 스콜이 무섭게 퍼부었어요. 잠깐 쏴 오는 것도 아니고 꽤 오래 내렸어요. 그리고 지금은 아침 9시 반 채 되지 않은 시각. 하지가 다가오고 있어서 해가 아무리 일찍 뜬다지만, 전날 스콜로 식은 공기가 벌써 많이 뜨거워져 있었어요. 기차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선풍기 뿐.



'아유타야는 어떨까?'


태국 친구의 고향 아유타야. 친구가 보여준 사진들은 매우 아름다웠어요. 과연 그 사진들이 진짜일까, 아니면 과장된 것일까? 그리고 아유타야에서는 전날 방콕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내 상상 속 태국의 모습을 과연 아유타야에서 찾을 수 있을까? 기차에 타는 사람들을 보니 외국인은 거의 없고 현지인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왠지 아유타야에서 기분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았어요.


태국 선풍기


창밖 선풍기에서는 허연 김이 나오고 있었어요. 대체 얼마나 더우면 선풍기 바람이 김처럼 보이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선풍기 바람이 김처럼 보일 이유가 없었어요. 저건 냉각기가 아니라 선풍기였어요. 기차 천장에 매달려 있는 선풍기와 별로 다를 것도 없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왜 바람이 눈에 보이고 사진에도 찍히지? 저건 누가 선풍기에 물을 뿌려놓아서 그런 것 같았어요. 푹푹 찌는 기차 안에서 저 선풍기를 보니 당장 저 아래로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싶었어요.



기차는 정확히 9시 25분에 출발했어요.


"나 아유타야행 기차 탔어."


태국 친구에게 아유타야행 기차를 탔다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왜?"

"응? 왜???"

"기차를 왜 탔어? 아유타야는 밴을 타고 가는 것이 더 좋아."

"숙소가 후아람퐁역에서 가까워서 기차를 탔어."

"기차는 느리고 불편해. 밴이 빠르고 좋아."


친구에게 아유타야행 기차를 탔다고 메시지를 보내자 친구는 그것을 왜 탔냐고 뭐라고 했어요.


"너는 아유타야 갈 때 뭐 타고 가?"

"당연히 밴 타고 가지. 기차 나빠."


이미 출발한 기차. 게다가 아유타야행 미니버스를 어디에서 타야하는지도 몰랐어요. 친구는 제가 매우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말했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어요.



태국 일반 풍경



열대우림


이곳이 바로 남만, 맹획의 땅이란 말입니까!


저렇게 외치고 싶은 풍경이 나왔어요. 물론 방콕은 삼국지 속 남만이 아니에요. 삼국지에서 남만이라고 부를만한 곳은 아무리 남쪽으로 잡아도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 북부 및 라오스 북부에요. 태국 방콕과 라오스 비엔티엔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남만의 영역이 아예 아니지요. 남만보다도 훨씬 남쪽 - 즉 삼국지 기준으로 보면 그냥 인간이 살 수 없는 땅. 남만 보고 독샘과 독충이 우글거리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도 더 열악한 곳이었다는 말이에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말이 역사적 근거를 통한 말이라는 거에요. 현재 태국인과 라오스인들은 중국 남부에서 내려온 민족들이니까요.


"이 정도면 타고 다닐만 하구만. 그깟 에어컨이 뭐라구."


기차가 달리기 시작하니 창문으로 바람이 씽씽 들어왔어요. 아주 시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쐬니 크게 덥지는 않았어요. 더위를 잘 타는 사람이라면 덥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더운 정도는 아니었어요. 저는 에어컨 바람을 상당히 싫어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는 것이 훨씬 좋았어요. 여기에 빈약한 선풍기로 인해 창문을 여는 것이 정상이었어요. 창문을 열어놓으니 창밖 사진 찍기 더 좋았어요.




9시 45분을 조금 넘어서 방 수에 역에 도착했어요. 방 수에 Bang Sue 는 태국 지하철 종점이에요. 한쪽 종점이 후아람퐁 역이고, 그 맞은편 종점이 바로 방 수에 역이에요.


train in Thailand


"왜 안 가지? 여기는 지하철 종점이라 정차를 오래 하나?"


방 수에 도착한지 10분이 넘었는데 기차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기차 안 승객들 모두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기차가 역에서 조금 오래 정차하는 거야 흔한 일이니 그다지 놀라울 것은 없었어요. 10분간 기차가 역에서 정차하고 있는 것은 연착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 게다가 여기는 지하철 종점. 외관과 달리 이용객이 많은 진짜 큰 역이라서 정차를 오래하는 것일 수도 있었어요.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버스는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슬슬 좌석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어요.


"왜 안 가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저도 밖으로 나갔어요.


"싸왓디 크랍."

"싸왓디 크랍."


매표소로 가서 태국어로 정중히 인사를 하고 영어로 물어보았어요.


"기차가 왜 출발하지 않나요?"


제가 왜 기차가 출발하지 않냐고 물어보자 매표소 직원은 잠시 기다려보라고 하더니 안으로 들어가 누군가를 찾았어요. 잠시 후, 안에서 다른 직원이 나왔어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왜 기차가 출발하지 않나요?"


직원은 철로 문제라고 대답해주었어요. 정확히 어떤 문제냐고 물어보자 자기들끼리 태국어로 서로 이야기하며 머리를 감쌌어요. 직원들 모두 영어를 거의 못 했어요. 제가 처음 질문했을 때 직원이 안으로 들어가 다른 직원을 부른 것은 그 직원이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 나온 직원도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어요. 언제 출발하냐고 물어보자 10분 뒤에 출발한다고 말했어요.


기차로 다시 올라탔어요. 의자에 앉아 있는데 새로운 승객들이 조금씩 기차로 올라타고 있었어요. 어느새 기차는 만석이 되었고, 제 옆과 앞에는 태국인 할머니 두 분이 앉으셨어요.


'기차 진짜 언제 출발하는 거야?'


기차는 1mm 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대로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을 뿐이었어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었어요.


'태국어 글자나 외울까? 그래도 이제 문맹은 탈출해야 할텐데.'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이 시각에 태국어 글자를 외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유타야 가서 밤에 태국어 글자를 외울까 생각하고 책을 들고 오기는 했지만, 사실 밤에 여행 기록 정리한 후 태국어 공부까지 하는 것은 무리였어요.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경험을 했어요. 예전에는 수첩을 들고 다니며 틈틈이 여행 기록을 남기곤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여행 기록을 남기고 있었어요. 수첩이야 아주 잠깐 틈이 날 때 바로 기록해도 되지만, 노트북은 아무 곳에서나 아무 때에 꺼내서 기록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숙소로 돌아와 여행 기록을 정리하고 나면 너무 늦은 시간이 되어서 바로 잠을 청해야 했어요. 책을 펼쳐서 볼 시간이 없었어요.


태국어 책을 꺼내 다시 태국 문자 익히기에 돌입했어요. 중자음, 고자음까지는 전에 외웠던 것이라 책을 보니 다시 기억이 났어요. 문제는 저자음. 저자음은 갯수도 많고 같은 발음 다른 글자도 많아서 전에 외우다 다 외우지 못했었어요. 저자음을 하나씩 다시 외우기 시작했어요. 저자음을 외우고 있는데 드디어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기차가 다시 출발한 것은 10시 52분. 아유타야에 도착할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고, 맞은편에서 기차가 지나갔어요. 그제서야 제가 탄 기차는 방 수에 역에서 기차가 다시 출발했어요.


'이제 기차가 빨리 달려서 도착 시간을 맞추지 않을까?'


글자를 하나하나 외워가고 있는데 두 태국인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졌어요.


"사왓디 크랍."


태국어로 인사를 드리자 제게 태국어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태국어 못한다고 하자 영어를 할 줄 아시는 할머니께서 태국어 공부하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지금 글자를 외우고 있다고 하자 글자를 가르쳐주시기 시작했어요. 제게 종이가 있냐고 물어보셔서 연습장을 꺼내자 거기에 글자를 쓰고 읽으며 쓰게 시켰어요.



주변 사람들 모두 저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같은 칸에 탄 서양인들도 저를 쳐다보았어요. 서양인들 눈치가 왠지 자기들도 해보고 싶은 눈치였어요. 그러나 이런 주변 시선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사실 중자음, 고자음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했어요. 태국 현지 와서 현지인에게 글자 배우기. 실시간 원어민 과외였어요. 할머니께서 직접 써주신 글자를 보니 태국어 필기체는 라오어 문자와 꽤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태국어 문자 중 '더 차다' 같은 몇 개는 제외하고 알려주셨어요. 할머니께 글자를 중자음부터 다시 배우며 태국인들이 어떻게 글자를 익혀가는지도 같이 볼 수 있었어요. 난관은 장음과 단음. 예전 라오인에게 라오스어 성조를 배울 때, 장음과 단음, 그리고 b 발음을 계속 지적받았었어요. 이번에는 b 발음은 어찌 잘 넘어갔는데 문제는 장모음과 단모음. 한국어에서는 이것을 마땅히 구분하지 않다보니 한국인이 제일 고생하는 부분 중 하나에요. 장모음에 강세가 들어가거나, 장모음이 단모음보다 아주 확실히 서너 배 길다면 그럭저럭 흉내를 내는데, 그렇지 않으면 잘 되지 않았어요. '아'와 '아아'의 느낌으로 하면 대충 되기는 하는데 조금만 긴장을 풀면 바로 둘의 구분이 애매해졌어요. 할머니께서는 계속 장모음과 단모음의 발음을 지적하셨어요.


"어디에서 내려요?"

"아유타야요."


할머니들께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글자를 가르쳐주셔서 감히 창밖을 내다보고 창밖 풍경 사진을 찍을 엄두를 낼 수 없었어요. 지나가는 태국인들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어떤 태국인들은 할머니께 지금 제가 뭐 하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할머니들께서는 한국인이 태국어 공부한다고 하셨어요. 태국어로 말씀하셨는데, '까울리'와 '파싸타이'는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할머니의 대답을 들은 태국인들은 웃으며 지나갔어요.


기차가 아유타야에 가까워지자 할머니께서는 마음이 매우 급해지셨는지 더욱 열을 내며 태국어 글자를 가르쳐주셨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결국 나중에는 모든 글자를 한 번씩 읽어주시는 것으로 끝내셨어요. 기차에서 배운 것은 중자음. 고자음과 저자음은 시간이 없어서 배우지 못했어요. 기차가 아유타야에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제게 빨리 짐을 싸고 내릴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셨어요.


"코 쿤 크랍!"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기차에서 내렸어요.


Ayutthaya station


아유타야역에서 내리니 12시 40분이었어요. 기차는 연착한 후 전혀 속도를 내지 않고 달렸던 것이었어요.


"아유타야에서 1박 하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네."



기차가 연착했어도 여유로웠던 이유는 오직 하나였어요. 아유타야에서 1박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굳이 이날 아유타야 전부 보지 못해도 괜찮았어요. 못 본 것은 다음날 보면 되었으니까요.


작렬하는 태양. 역 바깥으로 나왔어요.



역에서 앞쪽으로 걸어가자 보트 선착장이 나왔어요.


아유타야 선착장


요금이 4바트라고 나와 있었는데 보트를 탈 때 돈을 받지 않았어요.



빠삭 강 Pa Sak river 위에 떠 있는 보트 위로 올라탔어요.



강은 금방 건너갔어요.



배에서 내려서 선착장을 빠져나오는데도 보트 요금을 받지 않았어요.


'왜 안 받지?'


돈을 내지 않고 타서 뭔가 횡재한 기분이었어요. 돈을 받는 사람도 없고, 달라는 사람도 없었어요.


선착장에서부터 숙소까지는 1.2km.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어요. 인도네시아 감비르역에서 므르데카 광장을 통과하지 못해 숙소까지 2km 넘게 걸어가던 것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가까운 거리. 그러나 그때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그때는 그래도 저녁 즈음, 이른 아침이었고, 지금은 점심때였어요. 태양은 하늘에서 이글거리고, 습도도 상당히 높았어요. 그렇다고 그늘이 많은 것도 아니었어요. 정말 뻥 뚫린 들판을 걸어가는 기분이었어요.


'아...대체 숙소는 언제 나오는 거야?'


땀을 비오듯 흘리며 걷고 있는데 유적이 하나 나왔어요.


왓 꼭 므앙


이 유적의 이름은 왓 꼭 므앙 Wat Khok Muang 이었어요.


Wat Khok Muang


유적은 딱 이것 밖에 없었어요. 앞이 '왓'인 것으로 보아 여기는 과거 절이었던 곳.


왓 랏차 부라나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1시 반이었어요. 온몸이 땀범벅이었고, 너무 푹푹 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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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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