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26 안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수카르노 공항

좀좀이 2015. 8. 25.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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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얼마나 잤는지 몰랐어요. 전날 기억이라고는 핸드폰 잃어버린 것과 이스티크랄 모스크에서 화가 났던 것, 그리고 숙소 돌아와 계속 잤다는 것 뿐. 그냥 전날 기억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자카르타 대성당, 코타, 마트에 대한 기억은 그저 장면만 생각날 뿐이었어요.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아무리 기억해보려 해도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그저 핸드폰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난 상태였다는 것 뿐. 자카르타 대성당을 볼 때에는 뇌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고, 코타를 돌아다닐 때에는 마음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지만 대신 뇌는 최소한의 작동만 하고 있던 상태.


어두운 방. 불을 켰어요.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할 시간. 전날 방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져서 잤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샤워를 했어요. 샤워를 하며 어제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깨달았어요. 그렇게 더웠는데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워 잠들어버렸으니까요. 차가운 물이 몸에 닿자 슬슬 정신이 돌아왔어요. 핸드폰은 잃어버렸지만, 다행히 한국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연락이 두절될 일은 막았어요. 일단 앞으로의 일을 걱정하며 여행을 다닐 필요는 없었어요.


샤워를 마치고 다시 옷을 주섬주섬 껴입었어요. 탁자 위에는 전날 구입한 물건들이 널부러져 있었어요. 밤에 마시려고 구입한 음료는 손도 대지 않았어요. 특별히 크게 짐을 꾸려야할 것이 없었어요. 전날 짐을 푸른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저 캐리어 안에 전날 구입한 것들을 모두 집어넣는 것으로 짐 싸는 것이 간단히 끝났어요. 짐 싸는 것이 끝나자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서 아침 식사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어요.


새벽 5시 50분. 모든 짐을 끌고 1층 로비로 내려갔어요. 식당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혹시 너무 이른 시각이라 아침 식사기 준비되지 않은 것 아닌가 싶었지만, 아침 식사는 준비되어 있었어요. 오늘 일정을 생각해보면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했어요. 머리로는 아는데 몸은 거부하고 있었어요. 핸드폰 분실의 충격에서 완벽히 벗어난 상태가 아니어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어요. 간단히 씨리얼을 말아먹고, 과일 몇 조각을 집어먹었어요.


"마일로 가루다!"


어렸을 때 가끔 마셔보았던 마일로 가루가 있었어요. 거리를 돌아다니며 마일로 파는 것을 많이 보았어요. 마일로를 볼 때마다 어렸을 적 마셔보았던 기억은 있는데, 그 맛이 어땠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돈 주고 사먹기에는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눈으로 보기만 했는데 마침 마일로 가루가 식당에 비치되어 있었어요. 마일로를 타서 마셔보았어요. 마일로의 맛은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어렴풋이 '코코아 비슷한 맛'이라는 말로만 기억났었는데, 딱 '코코아 비슷한 맛'이었어요.


"체크아웃 할께요."


제가 타고 갈 비행기는 자카르타발 태국 방콕 돈므앙 공항행 12시 5분 에어아시아 비행기였어요. 인도네시아 입국할 때 길이 지독하게 막혔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탑승시각 기준 4시간 전에 공항에 오라고 했지만 일찍 출발할 생각이었어요. 게다가 짐을 모두 짊어지고 끌고 감비르역까지 걸어가야 했구요. 오늘은 하루 종일 이동. 방콕에 예약한 숙소에 도착해 방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샤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쉬엄쉬엄 감비르역까지 걸어갈 계획이었어요.



"어디로 가요?"

"감비르역이요."

"기다리세요. 택시타고 가세요."

"아니요. 걸어갈께요."

"택시 무료에요. 타고 가세요."


숙소에서 나와 감비르역으로 걸어가려는데 택시 기사가 저를 잡았어요. 감비르역까지 무료 택시 셔틀 서비스가 있으니 그것을 타고 가라는 것이었어요.


'어? 족자카르타 갈 때는 왜 이것을 알려주지 않았지?'


왜 지난번 족자카르타 갈 때에는 이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좋았어요. 땀을 흘리지 않고 차를 타고 감비르역까지 갈 수 있었으니까요. 숙소에서 감비르역 가는 길 사이에 볼 것이라고는 므르데까 광장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므르데까 광장이 특별히 볼 게 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휴식 공원 같은 분위기인 곳이었어요. 반드시 마지막으로 므르데까 광장을 걸어보아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얼씨구나 하고 차에 올라탔어요.






숙소에서 감비르역까지 걸어가면 조금 많이 걸어야 했지만, 차로 가면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차로 감비르역으로 가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어요. 워낙 일방통행이 많다보니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거리인데 차로는 전혀 다른 길로 돌아서 가야 했어요. 차로 가며 거리에서 행진하는 학생들을 보았어요. 그러고보니 오늘은 일요일. 멀쩡한 날 아침에는 교복을 입고 놀고 있고, 일요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단체로 행진하는 학생들. 여기는 진짜 모르겠다.


감비르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가는 Damri 버스를 탔어요. 운좋게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출발하는 버스를 잡아탈 수 있었어요. 요금은 4만 루피아.


jakarta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밝게 빛나는 아름다운 색을 가진 모스크.


자카르타


학습그림사회 동남아시아편을 보며 상상하던 자카르타와는 전혀 다른 자카르타의 모습.


indonesia


인도네시아


담리 버스는 고가도로 위를 신나게 달렸어요.



어느덧 창밖으로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수카르노 공항에 도착했어요.


"방콕행은 여기에서 내리나요?"

"어느 비행기?"

"에어아시아요."

"기다려요."


자카르타 수카르노 공항은 제3터미널까지 있어요. 처음 공항에 도착하자 기사에게 여기에서 내리냐고 물어보자 기다리라고 했어요.


자카르타 공항 제3터미널


자카르타 공항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아서 도착했어요. 전에 자카르타 수카르노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는 길이 엄청나게 막혔어요. 그러나 오늘은 길이 하나도 막히지 않았어요. 교통신호 걸린 것 외에는 특별히 차가 멈추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이렇게 예상과 달리 일찍 도착한 이유는 일단 시각이 이른 아침이었어요. 게다가 전에 올 때 보니 시내에서 공항 가는 길은 애초에 별로 막히는 것 같지 않아 보였어요. 하지만 1터미널에서 3터미널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어요. 공항 입구에 도착했을 때 시각은 8시 11분이었는데, 제3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8시 30분이었어요.


버스 기사가 내리라고 해서 내리기는 했지만, 버스 기사와 의사소통이 전혀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항 직원에게 다가갔어요.


"여기에서 이 비행기 타나요?"


비행기표를 보여주자 직원은 여기에서 타는 게 맞다고 알려주었어요. 자카르타 공항에서 Air Asia 국제선은 3번 터미널이며, Damri 버스 제일 마지막 정류장이에요.


공항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공항 입구에서 보안검색을 받아야 했어요. 공항 보안검색은 그렇게 엄격하게 실시되지는 않았어요.



1층에서 수속을 마치고 2층으로 올라갔어요.



"어? 여기에 기념품 예쁜 것 많이 있잖아!"


공항 기념품점


traditional puppet in indonesia


인도네시아 전통 꼭두각시



공항 2층 기념품점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선물로 살만한 것이 많이 있었어요. 자카르타든 족자카르타든 거리에서 그렇게 예쁘고 사고 싶은 기념품들을 보지 못했어요.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도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무언가 질이 조금 떨어져 보였어요. 제가 찾는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구요. 공항 2층 기념품점에서는 제가 찾던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도 있었고, 그 외 다양한 기념품들이 판매되고 있었어요.



여기에서 이 인형을 구입했어요. 이 전통의상은 족자카르타 전통의상이에요. 가격은 남녀 세트로 21만 루피아. 인도네시아 전통 꼭두각시 인형의 경우, 작은 것은 8만 루피아였어요. 공항이라는 입지, 그리고 품질면, 포장에서 볼 때 매우 비싼 편까지는 아니었어요. 참고로 여기에서는 달러로 지불할 수 있었어요. 이때 거스름돈은 인도네시아 루피아로 줘요.



공항 2층 기념품점을 돌아다니다 카페에 들어가 보았어요.



컵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로 좋아하게 생긴 머그컵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창밖으로는 공항 건물이 보였어요. 아무리 보아도 정말로 독특한 외관이었어요. 딱 보자마자 '인도네시아스럽게 생긴' 건물 디자인이었어요.


공항 내부를 돌아다니는데 바닥에 무언가가 보였어요.


'동전인가?'



헐!


이거 잃어버린 사람 속 좀 타겠다.


바닥에 떨어진 자물쇠를 보며 낄낄 웃었어요. 참 별 것 아닌 자물쇠이지만, 이것을 잃어버린 사람은 머리가 좀 아팠을 거에요. 안전과 관련된 것은 작은 것이라도 잃어버리면 상당히 신경쓰이기 마련이니까요.


화장실에 갔다가 옆에 예배실이 있어서 허락을 받고 한 번 들어가보았어요.



입구에는 우두를 하는 장소가 있었어요.


자카르타 공항 기도실


여기도 이렇네!


공항 예배실 역시 기도를 드리는 방향인 키블라와 방 구조가 전혀 일치하지 않고 있었어요. 설계를 할 때 조금만 신경썼다면 되지 않았을까? 저렇게 예배 방향이 삐딱하면 예배 드릴 때 상당히 신경쓰이지 않을 건가? 나중에 실제 궁금해서 아랍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아랍인 친구도 저렇게 건물 구조와 키블라가 일치하지 않으면 신경이 쓰인다고 하더라구요. 무슬림을 배려하는 건축 설계를 할 때, 이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도 나름 점수를 따는 부분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공항 안에만 있으니 심심해서 다시 바깥으로 나왔어요.



나오자마자 훅 덥쳐오는 습기와 더위. 안에서 에어컨 바람 쐬다 나오니 습기와 더위가 2배로 올라간 것 같았어요.



인터넷을 혹시 사용할 수 있나 확인해보니 free wifi라고 되어 있었어요. 노트북을 꺼내 혹시 접속이 되나 실험해 보았어요. 일단 접속은 되는데 로그인을 해야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대체 로그인은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이건 풀어내지 못했어요.


다시 안으로 들어왔어요. 공항 밖으로 나가는 것도 자유로웠고, 안으로 들어갈 때 역시 간단한 보안검색만 받으면 되었어요.


2층에서 시간을 보내다 출국 심사를 받으러 갔어요. 출국 심사는 정말 별 것 없었어요. 그리고 입국할 때 그렇게 궁금했던 출입국 카드. 이 출입국 카드는 출국 심사를 받고 보안검색을 마칠 때까지 - 끝까지 보지 않았어요. 이건 대체 왜 쓰라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작성하라고 하니 작성하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전혀 없었어요. 특별히 확인 도장을 받은 것도 아니었구요. 존재 이유 자체가 의문이었어요.


출국 게이트로 가는 길에는 아주 작은 면세점이 하나 있었고, 한 잔에 5천 루피아인 커피 자판기, 음수대가 있었어요.



빈 보온병만 있다면 여기에서 물을 챙겨서 비행기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어요. 비행기 탑승 게이트 앞에서는 보안 검색을 하지 않으니까요.


창밖으로는 가루다 항공 비행기가 보였어요.


Garuda indonesia


'이제 진짜 떠나는구나.'



팥빵에서 팥만 살짝 핥아먹어본 기분.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핸드폰을 기차에서 꺼내지 않았을 거야. 그리고 인도네시아 여행 일정을 조금 더 길게 잡았을 거야. 내가 본 인도네시아는 정말 벼룩 뒷다리에 붙은 박테리아 수준. 자카르타도 다 보지 못했고, 그 유명한 발리도 못 가 보았어요. 세계사 시간때 배웠던 그 유명한 '반둥'도 못 가보았어요. 자바섬 외의 다른 섬에는 발조차 디뎌보지 못했어요. 무수히 많은 음식 중 자신있게 먹어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인도네시아 음식이라고는 나시 고렝 뿐. 맨날 나시 고렝만 좋다고 퍼먹다보니 정작 또 다른 유명한 음식인 른당은 먹어보지도 못했어요. 얼마나 좋은지 알아버렸기 때문에 더욱 아쉬웠어요.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초록색 셔츠를 입은 한 인도네시아인이 제게 무슨 선수를 닮았다고 말했어요. 그러나 무슨 선수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제가 못 알아듣자 동작을 보여주었어요. 동작을 보아하니 무슨 배드민턴이나 테니스 선수를 말하는 것 같았어요.



손짓발짓 해가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초록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메카로 단체 관광을 가는 사람들. 이슬람 5대 의무 중 하나인 성지순례 - 하지를 하러 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어요. 하지는 아무 때에나 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가는 시기가 정해져 있거든요. 정확히는 이슬람력 12월 (순례의 달) 7일부터 12일까지에요. 이때는 라마단이 코앞이었기 때문에 절대 하지를 하러 갈 수 없는 때였어요. 이 사람들은 진짜로 그냥 메카로 성지 단체 관광 가는 무리였어요. 이 사람들이 메카를 가는 경로는 먼저 쿠알라룸푸르를 간 후, 거기에서 환승을 해서 제다로 가고, 거기에서 또 환승을 해서 메카를 가는 엄청난 일정이었어요. 라마단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보낼 거냐고 물어보자 라마단은 인도네시아에서 보낼 것이라고 대답했어요. 게다가 이 사람들은 자카르타 사람들도 아니고, 전혀 다른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기로 온 것이라고 했어요. 메카까지 무려 비행기 환승만 4번 해서 가는 길. 이건 비행기라 해도 진짜 성지순례급이었어요. 예전 제 친구가 브라질 갈 때 저렴한 표로 가다보니 홍콩, 쿠알라룸푸르, 남아공에서 환승하고, 브라질 국내에서 다시 환승 한 번 했다고 했는데, 이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게 엄청난 일정이었어요.


12시 5분이 되자 드디어 air asia 방콕 돈므앙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탑승을 시작했어요. 버스로 이동해 비행기 앞으로 이동했어요.



이제 인도네시아 일정도 진짜 마지막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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