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겨울 강행군 (2010)

겨울 강행군 - 18 헝가리 부다페스트

좀좀이 2012. 2. 4.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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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어요. 기차에서 나오자마자 너무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밖에는 빗방울이 기분 나쁘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환전을 하고 프라하행 기차표를 구입한 후 대중교통 1일권을 구입했어요.

일단 왕궁의 언덕을 가기로 했어요. 전철과 버스를 타고 왕궁의 언덕으로 갔어요.


불쌍한 친구...


뭐 할 말이 없었어요...


어제는 안경이 없어서 아무 것도 못 보더니 오늘은 악천후로 아무 것도 못 보는구나!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보수 공사에 안개까지 겹치는 완벽한 환장의 조합!



이건 그나마 코앞에서 찍은 거라 이 정도였어요.



이건 그래도 좀 분간이 되는 것.



조금만 멀리 떨어져도 안개 때문에 볼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조르나이 제품으로 장식되어 화려한 지붕을 자랑하는 마차슈 교회. 그런데 뭐가 화려하다는 거야! 보이는 게 없는데...물론 저는 화려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에 와서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친구는 이 날이 부다페스트를 처음 온 날이었어요.



아...답이 없다...


분명 안개 때문에 뭐 보이는 것도 없고 전체적으로 음침한 분위기였는데 이상하게 셔터 스피드는 무지 빠르게 잘 나왔어요.

'오늘은 특이한 날인가, 아니면 내 눈에 문제가 생긴 건가?'

제 눈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기엔 셔터 스피드가 너무 말도 안 되게 빨랐어요. 이런 날에 셔터 스피드가 1/1500s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올 수가 없었어요. 이런 날씨라면 태양을 찍어도 1/1500s는 안 나와요. 이건 절대 말도 안 되는 셔터 스피드였어요. 그래서 카메라 설정을 살펴 보았어요.

"뭐야! 어젯밤에 감도 설정해 놓은 것을 그대로 찍고 있었잖아!"

밤에 나름 사진을 찍어보겠다고 감도를 ISO 1600으로 설정했어요. 그런데 정작 사진은 하나도 못 건졌어요. 감도를 원래 쓰던 감도인 80으로 바꾸어놓아야 했는데 그걸 안개 때문에 계속 잊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거 괜찮은데?"

멍청하게 감도를 ISO 1600으로 설정해 찍은 사진이 오히려 더욱 사실적으로 나왔어요. 소가 뒷걸음질치다 실수로 쥐를 잡은 격이었어요. 하여간 정말 운좋게 결과물이 매우 만족스럽고 사실적으로 나왔어요. 위의 사진들은 절대 감도 설정 실수로 인해 빚어진 사실의 왜곡이 아니에요. 실제로는 저것보다 더 안 보였어요.


부다페스트 여행이 망한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어요. 부다페스트는 정말 큼직큼직한 도시라 시계가 매우 중요해요. 프라하가 더 좋은지 부다페스트가 더 좋은지에 대한 논쟁은 중부 유럽 여행에서 종종 등장하는 논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부다페스트는 남성적인 도시이고, 프라하는 여성적인 도시라고 비유해요. 부다페스트는 확실히 크고 웅장해요. 그래서 시계가 확보되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어요. 크고 웅장한 경치를 감상하는 것이 부다페스트 여행의 알짜배기 핵심. 어부의 요새에서 세체니 다리 (사슬교)와 국회의사당을 내려다보고,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감상하며, 세체니 다리를 건너 왕궁의 언덕을 감상하는 것 없는 부다페스트 여행은 부다페스트 여행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안개 때문에 눈에 뵈는 게 없었어요.


왕궁의 언덕에서 국회의사당을 보기?


풉!



안개가 많이 걷힌 것이 이 지경이에요. 이건 실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잘 나온 거에요. 이건 무슨 '안개 속으로'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무슨 공포 영화 '심연 속으로' 찍어도 되게 생겼어요. 저 다리 끝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믿겠어요. 아니, 차원을 넘어가는 입구라고 해도 믿겠어요.


"야...크크크크크크크크"

뭐라고 친구에게 말하려고 했지만 허탈한 웃음만 나왔어요. 제 잘못은 분명 아니었지만 왠지 미안했어요. 점심때가 되면 혹시 걷힐까 했는데 걷힌 게 이 지경이니 뭐...할 말이 없었어요.


자유다리 근처에 있는 부다페스트의 명물 중앙시장 Vásárcsarnok에 갔어요. 출출해서 구야쉬를 사 먹었어요. 건더기는 거의 없고 붉은 국물만 잔뜩 주었어요.


"와...시원하다!"

한국에서 먹던 국물맛이었어요.

"이거 한 그릇 또 먹자."

그래서 또 먹었어요.


구야쉬를 다 먹고 어기적 어기적 걷다 보니 저녁이 되었어요.

"여기 왔는데 토카이 와인 한 병 사 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토카이 와인을 파는 가게에 갔어요. 비싼 것도 있었지만 싼 것도 있었어요.

"야, 이거 가격표 이상한데?"

친구가 손가락으로 토카이 와인 병을 가리켰어요. 같은 저렴한 제품이었는데 하나는 가격표가 하나만 붙어 있었고, 다른 것은 원래 가격표 위에 오른 가격이 적힌 가격표가 붙어 있었어요.

"앗싸, 이거 내가 사야지!"

제가 먼저 잽싸게 병을 집어 들었어요.

"이런 얍삽한 녀석!"

친구는 병을 고르기 시작했어요. 가격표가 새로 붙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었어요.

"이걸로 사자."

"그래."

점원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계산해 주었어요.

"우와, 우리 횡재했다!"

가격이 오른 토카이 와인을 예전 가격으로 사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저녁은 또 구야쉬. 구야쉬를 마시고 돌아다니는데 추웠어요. 거리에는 이상한 포도주 냄새가 났어요. 포도주라고 하기에는 계피 냄새가 너무 강했어요. 뭔가 하고 냄새를 따라갔더니 펄펄 끓인 포도주를 거리 곳곳에서 팔고 있었어요.

"한 잔 사 마실까?"
한 잔 사서 마셨어요. 계피와 오렌지를 넣고 따뜻하게 끓인 포도주를 한 컵 마시니 확실히 몸이 따뜻해졌어요.


"그래도 여기 왔는데 국회의사당이나 보고 가자."

부다페스트의 명물 국회의사당. 안개가 껴서 보지 못했어요. 아무리 부다페스트 관광을 안개 때문에 망쳤고 당연히 국회의사당이 제대로 보일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안 보고 가면 아쉬우니 보러 가자고 했어요.



이거 무슨 공포 영화물이냐? 귀신이 서식하는 장소라고 해도 믿겠다!



참으로 괴기스러운 분위기.



정말 유령의 거리였어요.

"야, 아까 거기로 돌아가자."

춥고 음산한 분위기. 친구는 아까 그 번화가로 돌아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번화가로 돌아갔어요. 번화가로 돌아왔는데 배가 살짝 고팠어요. 하루 종일 구야쉬만 먹었어요. 하루 종일 계속 국만 먹은 셈이었어요. 마침 시장이 보였어요. 노점 음식을 파는 가게도 보였어요. 친구와 저는 시장 안에서 적당히 알아서 각자 돌아다니다 전철역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저는 양배추와 소세지를 특이한 양념에 볶은 음식을 하나 사 먹었어요.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산 게 아까워서 그냥 다 먹었어요. 시장을 돌아다니는데 특별히 구입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전부 너무 크거나 비쌌어요.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금방 피곤해졌어요. 그래서 역 입구에 서서 친구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친구는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왔어요. 음식을 주문했는데 늦게 나와서 늦었다고 했어요. 친구와 다시 켈레티 역으로 갔어요. 프라하까지는 국경 심사도 없어요. 오늘 밤은 정말 푹 자도 되요. 그리고 내일이면 드디어 민박에서 잘 거에요. 생각만 해도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어요.


친구가 역에서 남은 포린트로 물을 사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어요. 잠시후. 친구가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씩씩대며 돌아왔어요.

"아까 나한테 200포린트 지폐로 거슬러 줬는데 이 돈 안 쓰는 돈이래!"

"응?"

부다페스트 와서 한 가지 놀란 것은 200 포린트 동전이 생겼다는 것이었어요. 세체니 다리가 그려진 예쁜 동전이 새로 생겼길래 좋아서 몇 개 기념으로 챙겨 두었어요. 친구가 보여준 200 포린트 지폐는 지난번 부다페스트에 왔을 때만 해도 멀쩡히 잘 쓰던 지폐였어요. 부다페스트에 마지막으로 온 게 4월 중순. 그때까지 멀쩡히 잘 쓰던 지폐였는데 이제 못 쓴다구? 믿기지가 않아서 상인에게 물어 보았어요.

"그 돈 이제 안 써요."

불과 7개월 좀 넘는 시간 사이에 돈이 바뀌었구나...!!!!!


"왜 나한테만 계속 재수없는 일이 생기는 거야!"

친구가 화를 내었어요. 뭐라고 할 말이 없었어요. 세르비아에서의 일이라면 뭐 별 수 없었지만 이것은...

"쓰지도 못하는 돈, 찢어버려야겠다."

화가 난 친구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200 포린트 지폐를 찢으려고 했어요.

"야, 그거 나나 주라. 기념으로 가지게."

"그래? 너 가져라. 이 따위 쓰레기."

친구로부터 200 포린트 지폐를 받아 지갑에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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