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07 베트남 호치민 벤탄 시장

좀좀이 2015. 7. 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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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탑승한 후, 기내식을 먹고 바로 잤어요. 다음날 비행기가 아침 10시였거든요. 호치민 밤거리까지 구경하고 샤워하고 여행 기록 정리하면 자정은 될 듯 했어요. 아침 10시 비행기이니 3시간 전이면 아침 7시. 지도를 보니 공항이 시내에서 멀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늦는 것보다는 일찍 가는 게 나았기 때문에 아침 6시쯤 152번 버스를 타고 호치민 공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어요. 그러면 실제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약 5시간. 자정에 눈 감자마자 잠을 자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고보면 여행에서 정말 '나중에' 라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잘 수 있을 때 자야 하고,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고, 갈 수 있을 때 가고, 구입할 수 있을 때 구입해야지, '나중에'라고 했다가는 그 '나중'이 여행 끝날 때까지 안 올 수도 있어요.


"베트남이다!"



잠에서 깨어나니 베트남 호치민이었어요. 드디어 한국을 완벽히 떠났어요. 베트남 호치민에 도착하니 2시 20분. 입국 심사를 받고 공항 환전소에서 30불만 환전하고 입국장을 빠져나오니 2시 50분이었어요.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확실히 한국보다 더웠어요. 택시기사들이 택시 타라고 불렀지만 무시하고 152번 버스를 타러 갔어요. 152번 버스를 타고 벤탄 시장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데탐 거리가 나오는데, 이 데탐 거리에 예약한 숙소가 있었어요.



"얼마에요?"

"5천동."


하지만 캐리어가 있었기 때문에 캐리어가 차지하는 자리값까지 해서 1만동을 내야 했어요. 대신 저 혼자 두 자리를 구입한 셈이었기 때문에 두 자리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어요. 버스는 금방 좌석을 다 채우고 출발했어요. 버스가 출발할 때 카메라 시계를 현지 시각으로 맞추었어요.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라오스 모두 우리나라보다 2시간 느리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지금 한 번만 카메라 시간 설정을 고쳐놓으면 현지 시각을 기록해 놓을 수 있었어요. 매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구체적으로 시각을 기록하는 것은 여행 중 꽤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진을 이용해서 시간을 기록하는 편이에요. 사진을 찍은 후 나중에 알씨 등 사진 편집 프로그램에서 사진 정보에 기록된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지요.



하늘은 너무 눈부셨어요. 하지만 땅은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고 젖어 있는 곳도 있었어요.


'스콜이 내렸었나?'


동남아시아에 내린다는 스콜. 이번에는 여름 우기에 왔기 때문에 스콜을 겪을 수 있었어요. 땅바닥이 젖어 있고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보이는 것이 왠지 제가 도착하기 얼마 전까지 스콜이 내려서 그렇게 된 것처럼 보였어요. 사진에서 하늘이 하얀 것은 흐려서 하얀 것이 아니에요. 너무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강렬해서 하늘이 하얗게 나온 거에요.




'베트남' 하면 역시 오토바이.








공항에서 버스를 탄 지 30분쯤 지나자 벤탄 시장 정거장까지 왔어요.



여기에서 내려서 숙소가 있는 데탐 거리까지 걸어가야 했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공항 가는 버스 타는 곳을 찾았어요. 모든 것이 베트남어로 적혀 있어서 찾기 매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의외로 찾기 쉬웠어요. 일단 찾은 후, 사람들에게 버스가 공항으로 가냐고 물어보자 간다고 대답해주었어요. 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가려면 내일 새벽에 이곳으로 다시 와야 했어요.


"저게 벤탄 시장이구나!"



사진으로만 보았던 벤탄 시장 Chợ Bến Thành 이 나타났어요. 벤탄 시장까지 그래도 조금 걸어야할 줄 알았는데 버스 정거장을 등지고 길을 하나 건너자 바로 나왔어요. 벤탄 시장은 호치민의 상징 같은 곳이에요. 프랑스인들에 의해 1907년에 건설이 결정되었고, 1914년에 완성되었지만, 2차세계대전중 큰 피해를 입어 1950년에 수리했고, 1985년에 다시 보수를 했다고 해요.


지도를 보며 데탐 거리 가는 길을 찾아갔어요.


"아...뜨거워!"


햇볕은 매우 강렬했어요. 강렬한 햇볕은 땅 위의 물을 끓게 만들고 있었어요. 위로는 햇볕, 아래로는 습기가 몸을 덮치고 있었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웃옷 전부 땀에 푹 젖었어요. 옷을 쥐어짜면 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어요. 가다가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었어요. 그저 빨리 숙소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가게에서 물을 사서 마시고 싶은데 가게도 보이지 않았어요.


다행히 데탐 거리는 벤탄 시장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았어요.



"여기다!"


데탐 거리로 도착하자마자 숙소를 찾기 시작했어요.


"어? 숙소 어디 있어?"


차근차근 주변을 둘러보며 숙소를 찾아보았는데 숙소는 보이지 않고 데탐 거리 끝이 나와버렸어요.


'분명 주소가 데탐 거리였는데...'


숙소는 데탐 거리에 있었고, 데탐 거리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걸었어요. 대충 살피며 걸은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며 걸었는데 숙소는 보이지 않았어요. 순간 여기가 데탐 거리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여기가 데탐 거리가 맞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맞다고 대답해 주었어요. 이번에는 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갔어요. 처음 들어왔던 데탐 거리 입구까지 돌아왔는데 숙소는 보이지 않았어요.


"대체 숙소가 어디야!"


아무리 찾아도 예약한 숙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분명 이 거리 어딘가에 있는데 보여야할 숙소는 보이지 않았고, 목은 바짝바짝 타들어갔어요. 얼굴은 막 세수를 한 것처럼 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팔로 얼굴의 땀을 훔치려 했지만, 팔도 땀투성이. 다행히 숙소 주소에 번지가 나와 있어서 번지를 찾아가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어요.


"찾았다!"


숙소는 여행사 위에 있었어요. 알고 보니 여행사에서 숙소를 겸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일반 숙소를 생각하고 입구에 숙소명이 크게 적혀 있을 거라 보고 데탐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못 찾은 것이었어요.


숙소로 들어가서 결제를 했어요. 결제는 아까 공항에서 환전한 30불을 가지고 결제했어요. 호텔비는 원래 16불.


"여기 공항까지 택시 픽업 서비스 있어요?"

"예. 8달러에요."


순간 고민이 되었어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갈까? 버스를 타고 가면 확실히 저렴하기는 한데...그렇지만 이런 날씨라면 짐 끌고 거기까지 걸어가는 동안 옷이 또 땀으로 흠뻑 젖어버릴 거야. 빨래는 빨라야 모레가 되어서나 할 수 있는데...그냥 편하게 택시 타고 갈까? 어차피 30불 환전했고, P형이 준 96,000 동이 있으니까 택시비도 동으로 결제해도 오늘 굶지는 않을 건데... 어차피 여기에서 특별히 기념품 살 것도 없잖아? 베트남 기념품이라면 이미 지난 번 여행에서 다 샀구. 정 나중에 커피라도 구입하고 싶으면 그건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서 구입하면 되지 않을까?'


"택시 픽업 서비스도 신청할께요."


8달러도 베트남 동으로 지불했어요. 숙소에서는 여권을 맡기라고 했어요.


"내일 새벽에 체크아웃하는데 오늘 이따 여권 받아갈 수 없나요?"

"밤 10시에 돌려줄께요."


열쇠를 받고 현관에 신발을 벗어놓은 후 짐을 들고 방으로 올라갔어요.


'이게 계단이야, 토끼굴이야!'



계단 너비는 캐리어 너비만 했어요. 계단 폭은 매우 좁았어요. 베트콩 땅굴이 워낙 폭이 좁아서 미군들은 발견하고도 너무 좁아서 제대로 들어가지 못해 땅굴 내부를 공략할 수 없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계단을 올라가면서 그 말이 절대 거짓이 아닐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계단 너비가 너무 좁아서 매우 고약한 자세로 캐리어를 들고 올라가야 했어요. 어깨에 멘 노트북 가방도 작지는 않아서 더욱 걸리적거리고 힘들게 만들었어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을 켰어요. 움직인 것은 별로 없는데 벌써 기진맥진. 다행히 냉장고에 물이 있어서 물을 한 모금 마셨어요. 물을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어요. 침대에 주저앉아 가만히 있었어요.


'정말 택시 서비스 신청하기를 잘 했다.'


내일 노트북 가방을 매고 케리어 들고 이 계단을 내려간 후, 벤탄 시장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간다면 아마 온몸이 땀으로 쩔어버릴 거야. 그 상태로 비행기 타고 인도네시아를 간다면 정말 기분이 최악이겠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도착해서 그것으로 하루 일정 끝이 아니라 당장 내일 욕야카르타 가는 기차표도 구해야 해. 8달러 내고 편하게 가는 게 훨씬 이득이야.


이것은 단순히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었어요. 대자연과의 타협이었어요.


옷을 벗고 샤워를 해야 하는데 옷이 땀에 푹 젖어서 벗어지지가 않았어요. 잡아뜯어내듯 옷을 벗은 후 샤워를 했어요. 처음에는 뜨거운 물이 나왔어요.


"보일러 돌아가나?"


하지만 잠깐 뜨거운 물이 나온 후 미지근한 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어요. 물방울이 몸에 닿을 때마다 체력이 미세하게 다시 회복해 가는 것 같았어요.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저를 맞이해주고 있었어요.


"아! 살겠다!"


이대로 드러누우면 바로 잠들기 때문에 억지로 땀에 절은 축축한 옷을 다시 껴입고 밖으로 나왔어요. 밖으로 나오자마자 간 곳은 당연히 벤탄 시장이었어요.



"여기는 오토바이가 왜 이리 적지?"


호치민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많았어요. 하지만 하노이에서 오토바이 쓰나미를 겪은 제 눈에는 오토바이가 너무 적어보였어요. 게다가 하노이보다 오토바이를 순하게 몰고 있었어요. 여기도 길을 건너갈 때에는 천천히 자기 속도 유지하면서 걸어가가야 했어요. 이렇게 걸어가면 오토바이들이 알아서 피해서 가요. 이건 하노이에서 길을 건너는 것과 똑같은데 오토바이들이 하노이처럼 빠르게 달리지도 않고, 칼치기도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았어요. 하노이의 오토바이가 쓰나미라면 호치민의 오토바이는 그냥 조금 거센 파도. 이 정도는 솔직히 별로 무섭지 않았어요. 베트남 북부 사람들이 남부 사람보다 거칠다고 하는데 오토바이 운전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았어요.


벤탄 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어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다양한 아오자이. 여름에는 아오자이를 입은 학생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는데 저는 그 광경과는 정말 인연이 없어요. 지난 번에 베트남 왔을 때에는 겨울이라 아오자이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었고, 이번에는 딱 일요일에 걸렸어요. 아오자이를 입은 학생들은 제 머리 속 상상과 사진으로만 존재하는 풍경에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역시 베트남이야!"


저 다양한 색깔의 기념품들. 정말 지갑을 열고 싶게 만드는 베트남 기념품들이었어요. 만약 지금 베트남 여행이 당당히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지갑을 꺼냈을 거에요.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베트남은 그냥 거쳐가는 곳. 게다가 제가 가질 것은 이미 지난 번에 모두 구입했기 때문에 이번에 또 다른 것을 굳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베트남 동도 넉넉하지 않았구요. 30달러를 환전했을 때에는 마음이 든든했지만, 그 환전한 돈으로 숙박비 및 내일 택시 서비스까지 지불하는 바람에 베트남 동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어요. 저녁 먹고 음료수 사 마시고 간식 몇 개 먹으면 딱 맞을 정도였어요.





"과일이다!"




저것들 한국에서는 대체 얼마야!


보자마자 침이 넘어갔어요. 한국에서 자취생에게 과일이란? 그것은 고급스러운 사치품. 과일을 살까 고민하지만 항상 선택하는 것은 라면. 설령 큰 마음 먹고 과일을 사도 바로 다 먹어치우지 않으면 점점 맛이 가는 과일. 맛이 가는 과일을 볼 때, 과일이 맛이 가는 게 아니라 돈이 맛이 가는 것으로 보일 정도. 게다가 저것들은 한국에서 비싼 열대과일들. 여기서야 저렴하겠지만 한국 가면 함부로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었어요. 지금 여기서는 과일을 먹는 것이 남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베트남 동이 부족하다...


"오늘만 참자!"


내일 인도네시아 가서 환전하고나서 마음껏 먹어야지! 오늘 당장 열대 과일 못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딱 하루만 참으면 돼! 당장 환전했다가 베트남 동 무슨 수로 다 쓰려구! 지금 못 먹으면 1년 뒤에나 먹는 것도 아니고 바로 다음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냥 지나칠 수 있었어요.




벤탄 시장 구경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신년 축하 포스터가 걸려 있었어요.



포스터에 적혀 있는 '2015 Ất mùi'. 여기에서 at mui 는 '을미' 라는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 2015년이 을미년인데, 그 을미년이라는 의미이지요. 확실히 베트남은 전통문화적인 부분에서 우리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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