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시간을 뒤섞어 (2014)

시간을 뒤섞어 - 07 대만 화리엔

좀좀이 2014. 6. 10.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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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반. 버스에 올라탔어요.


"여러분 모두 어제 잘 주무셨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버스에 탑승하셨어요. 오늘은 여행 2일차, 화리엔 (화련, 花蓮) 가는 날. 전날 잠을 잘 시간은 많았지만, 그래도 정신이 완벽히 맑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딱 세 시간만 더 자면 머리가 맑아질 것 같았지만, 오늘은 일정이 일정인지라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했거든요. 일단 날씨는 맑았고, 모두 기분이 괜찮은 듯한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곧 저는 졸았어요.


그리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전날 보았던 야시장을 다시 떠올려 보고는 했어요. 오늘도 화리엔 일정 후 야시장 한 곳을 들리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어요. 물론 전날 그 '참사'의 반복이겠지만요. 그리고 전날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야시장 가는 길에 왜 타이완에서 야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는지도 떠올랐어요. 이것은 여행기를 쓰는 과정에서 또 까먹었던 이야기.


타이완에서 야시장과 외식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는 타이완의 공업화 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했어요. 타이완이 초기 공업 발전 단계에서 주부들에게 집에서 일하라고 일감을 나누어주는 경우가 많았대요. 그러다 기업들이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지자 제대로 공장과 회사를 만들게 되었고, 이때 자신들이 하청을 주어서 가내수공업 및 부업으로 일을 하던 주부들을 많이 고용했대요. 이 주부들은 이미 숙련된 노동자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 주부들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집안일 - 특히 저녁식사를 해결할 문제가 발생했고, 이 틈을 노려 야시장과 외식업이 크게 발달하게 되었대요. 대기업 중심인 우리나라와 달리, 타이완은 중소기업 중심이다보니 이런 현상이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성장했으며, 그 결과가 오늘날 대만의 야시장이라고 해요.


기차역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렸어요.


"어? 비오잖아!"


이 불길한 기운. 비가 좍좍 퍼붓고 있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기차표를 구입하러 가신 사이에 편의점에 들어가 보았어요.


"이거 꽤 유명한 거야."





저는 이것이 유명한 줄도 몰랐어요. 그런데 대만 여행을 한 사람들 사이에서 '화장품 밀크티'라고 불린다고 하더라구요. 맛이 꽤 좋아서 인기 있고 유명하다고 하는데 저는 당연히 이것이 유명한 줄 몰랐어요. 물론 사진 속의 것은 같은 제품 시리즈 중 라떼랍니다.


일단 병이 진짜 화장품 병처럼 생겨서 몇 개 구입해 보았어요.


"오오! 이거 진짜 맛있다!"


실론티에 우유탄 맛과는 뭔가 다른 맛이었어요. 확실히 맛있었어요.


'이거 나중에 몇 개 사서 귀국해야겠다.'


가이드 아주머니로부터 기차표를 받고 플랫폼으로 갔어요.







오늘 일정 망했구나...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요즘들어 비가 자주 내린다고 말씀하셨는데, 하필이면 왜 내가 여행을 다닐 때 이렇게 비가 내리는 거지? 더욱이 화리엔은 자연 풍경을 보러 가는 곳인데, 이렇게 비가 오면 사진이고 뭐고 다 힘들어질텐데...그 이전에 기차에 타봐야 유리창에 물방울이 잔뜩 뭍어 있어서 창밖 사진을 찍을 수가 없잖아? 그런데 희안한 것은 여행기를 쓸 생각이 이때만 해도 없었기 때문에 가는 길에 사진을 못 찍는다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이 없었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지금은 아주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렌즈에 물방울이 튀는 한이 있더라도 사진을 잔뜩 찍었을 거에요.


기차에 올라타 오른쪽 좌석에 앉았어요. 전날 버스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오른쪽 좌석.







창밖을 볼 때마다 무언가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너무나 익숙한 것 같으면서 익숙하지 않고,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장면들이 한 두 가지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정말로 어떤 것은 제 고향 옛 거리, 어떤 것은 서울, 어떤 것은 영화 속 일본의 모습과 많이 비슷해 보였어요. 도대체 뭐라고 딱 짚어서 말하기 어려운 친숙함. 뭔가 '이것은 이래서 친숙하게 느꼈어'라고 말하고는 싶은데, 말할 수는 없는 갑갑함.


창밖은 금새 빗방울로 뒤덮였고, 저는 다시 잠들었어요.


잠깐 눈을 붙인 후 눈을 떠보니 날이 개어 있었어요.


"바다다!"


왼쪽 좌석 바로 옆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푸르른 바다 바로 옆을 기차가 지나가고 있는 멋진 장면. 그리고 내 자리는?


산이다...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동부 지역은 평지가 적고 태풍이 직접 많이 때리는 곳이라 개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알려주셨어요. 그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화리엔 가는 기찻길. 예전 부산에서 강릉까지 버스타고 가던 길이 생각났어요. 포항을 넘어서 망상 휴게소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버스 바로 오른편은 푸른 바다, 버스 바로 왼편은 산이었어요. 그런 길이 꽤 이어졌었어요.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기찻길 양쪽으로 산과 바다가 붙어있는 것 같았으니 제대로 개발하기 매우 힘들었겠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어요. 안타까운 것은...


산이 너무 붙어 있잖아


산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사진 찍기 좋을텐데 산이 너무 가까웠어요. 그리고 유리창에는 빗물이 아직도 매달려 있어서 사진 찍어봐야 빗물 때문에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고 멍청하기 그지 없었던 행동.


화리엔에 도착해서 기차역을 나오는데,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기차역 통로에 전시된 사진들이 원주민 사진들이라고 하시면서 입 아래가 문신을 해서 검은 할머니 사진을 잘 보라고 하셨어요. 원래 원주민들은 이렇게 입 주변과 입 아래를 검게 문신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제 이 문화는 맥이 끊겨서 이렇게 검게 문신을 하신 분은 몇 분 남아있지 않다고 알려주셨어요.


점심을 먹고, 타이루거 국립공원으로 이동했어요. 타이루거 국립공원에 있는 타이완을 동서로 연결하는 도로는 장제스의 아들이 본토에서 후퇴한 국민당 병사들을 동원해 만든 도로라고 했어요. 일단 엄청난 난공사여서 외국 기술자들이 절대 여기에 도로를 닦을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장제스의 아들이자 타이완 2대 총통인 장징궈가 대만의 발전, 그리고 당시 큰 문제였던 국민당군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해 성공시켰다고 해요. 국공내전 후 타이완으로 넘어온 거대한 국민당군을 도저히 유지할 수 없어서 군대를 크게 줄여야 했는데, 군대를 줄이면 실직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는 문제가 있었대요. 그래서 장징궈가 군인들을 전역 및 예편시키고 이 공사에 투입하는 식으로 군대를 줄였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 군인들이 결혼은 하고 싶은데, 현지에 있던 중국인들은 당연히 자신의 딸과 결혼시키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원주민 여성을 실상 돈주고 사서 결혼한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고 했어요. 그리고 이로 인한 문제도 꽤 있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버스에서도 역시나 오른쪽 좌석에 앉았는데...


역시나 타이루거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 사진을 찍기 좋은 좌석은 왼쪽이었다...


혹시 단체 관광으로 타이완에 가시게 된다면 무조건 왼쪽 자리에 앉으세요. 그게 남는 거에요. 저는 여행 끝까지 주구장창 오른쪽 좌석을 고집했고,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한 것도 있어요. 화리엔 역시 들어갈 때는 왼쪽 좌석이 좋고, 오른쪽 좌석은 안 좋답니다. 오른쪽은 정말 절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가요. 볼 것들은 왼쪽 창문을 통해 봐야 하구요.





창밖으로 실처럼 가늘게 흐르는 폭포가 보였어요.


그리고 잠시 후.






"이거 산사태 난 거 아니에요?"


산사태 난 모습은 몇 번 본 적이 있었어요. 산사태 난 지역의 특징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끔찍하리라'. 아래로 떨어지며 옆을 쳐내기 때문에 산사태가 난 지역은 피해 범위가 아래로 갈 수록 넓어져요. 그래서 일부러 깎은 곳인지, 원래 물길이었는지, 산사태가 난 곳이었는지 모양을 보고 어느 정도는 맞출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산사태. 그런데 규모가 엄청났어요.






"맞아요. 이거 산사태 났던 곳이에요. 여기에서 산사태 나서 몇 개월간 이 도로가 통제되었었어요."

엄청난 산사태에 그저 놀라울 뿐이었어요.


"여기는 길이 좁아서 운전기사들끼리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운전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아랫쪽 기사분께서 다른 버스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운전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실제 길이 좁아서 서로 양보하고 비켜주며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화리엔의 비경들.







이곳 물이 회색인 이유는 암석 성분이 녹아서 그런 것이라고 알려주셨어요. 흙탕물이라 뿌연 것이 아니라 원래 여기 흐르는 물이 그런 것이라고 하셨어요.











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 휴게소는 원주민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원주민들만이 장사를 할 수 있다고 했어요. 여기에서 망고 빙수를 사먹은 후, 버스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참고로 화리엔은 탐방 코스가 여러 개 있는데, 등산을 하듯 트래킹을 할 수 있는 길도 있었어요.


"이제부터 꽃보다 할배에 나왔던 그 흔들다리를 갈 거에요."


그리고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예전에는 우리나라에 여행 정보가 많지 않아서 그냥 돌던 곳만 돌아도 되었다고 하셨어요. 그러다보니 그 당시에는 가이드가 일감을 따질 필요가 그다지 없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여행 정보가 많아지고 타이완 관광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다보니 고객들의 요구가 다양해졌고, 그 요구들을 충족시켜준다는 것은 타이완 현지에 있는 가이드 입장에서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더욱이 이것이 타이완의 관광 개발에 맞추어서 다양해지는 것이 아니라 몇몇 여행자들이 '이곳 좋더라' 하고 관광지를 발견하고 이것이 입소문을 타면 그것을 추가해달라고 요구해오는 것이다보니 일일이 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셨어요. 당장 화리엔의 흔들다리만 해도 이것이 꽃보다 할배에 나오면서 갑자기 요구가 많아져서 관광 일정에 추가가 된 것이라고 하시며, 이제는 가이드들이 아무 일감이나 받을 수는 없고, 자신이 잘 아는 일감만 골라서 받고 있다고 알려 주셨어요.


가이드 아주머니의 말씀이 정말 와닿았어요. 저 역시 고향을 떠난지 꽤 되었어요. 제가 고향을 떠난 후 매우 많은 곳이 관광지로 개발되었어요. 그래서 제 고향 관련 여행글인데도 제가 모르는 곳이 나올 때가 많아요. 주변에서 당연히 '그곳 출신이니 잘 알겠지' 하고 제게 이곳저곳 물어보시는 분들도 종종 계신데, 제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때 있었던 곳이라면 알지만, 그 이후에 생긴 곳들은 잘 몰라요.


흔들다리라 무서울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어요.






흔들다리를 내려다 보며 사진을 찍는데, 카메라가 떨어질 것 같아서 무섭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에이...시시하네."


그때 뒤에서 아이들이 다리 위에서 방방 뛰기 시작했어요.


"오오! 이거 좀 짜릿한데?"


애들이 뒤에서 방방 뛰자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위험할 정도로 흔들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리가 부실하게 생겼기 때문에 조금 짜릿짜릿했어요. 확실히 이런 곳에서 공포란 불신에서 오는 것.





사진 왼쪽 가운데에 보이는 하얀 선이 바로 흔들다리랍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길. 그제서야 작정하고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날은 이미 저물기 시작했고, 버스는 흔들리고 있었어요. 작정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어요.


결국 사진은 얼마 찍지 못하고,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동네를 둘러보았어요.









그리고 기차를 타기 전, 파인애플 석과를 사서 먹어보았어요. 진짜 달고 부드럽고 맛있었어요.


그런데 왜 파인애플 석과 사진도 안 찍고, 기차역 사진도 안 찍었을까? 지금도 많이 후회되요.


기차를 타고 돌아올 때, 이번에는 작정하고 왼쪽에 앉았어요. 하지만 비가 내리고 어두워서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결국 기차 내부만 멍하니 바라보다 졸다 깨어서 창밖을 보고 보이는 게 없다는 것에 실망하고 다시 졸기를 반복했어요. 기차를 타고 타이베이로 돌아오니 이미 늦은 시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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