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시간을 뒤섞어 (2014)

시간을 뒤섞어 - 06 대만 TV 방송 구경

좀좀이 2014. 5. 24.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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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한국에서 일찍 출발하셔서 많이 힘드시죠?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하니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라오허제 야시장에서 호텔로 오는 길에 아마 모두가 잠을 잤을 거에요.


방에 들어와서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아...망했네...'


침대에 눕는 순간 드는 생각은 오직 이것뿐. 첫 가족여행에다 첫 패키지여행에 여행 첫날이라 매우 신나있기는 했지만, 야시장에서의 충격은 너무나 컸어요. 일단 첫날 일정은 제 예상과 꽤 다르게 돌아갔어요. 흔히 말하는 가이드가 관광객들 다 끌고 휙 보고 이동하고 휙 보고 이동하고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어요.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처음에 같이 돌면서 설명해주신 후, 자유시간을 꽤 많이 주는 식의 여행이었어요. 예전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으로 갔던 전국 일주를 생각하라고 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달랐어요.


이것은 여행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덜렁 온 저의 잘못이었어요. 생각해보니 여기는 타이완. 치안이 매우 좋은 나라.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발달한 나라. 피곤해서 침대에 드러눕기는 했지만,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 것도 그냥 할만한 나라. 준비를 잘 해 왔다면 꽤 즐겁고 평소 여행하던 것보다 더 잘 여행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여기는 타이완. 이미 늦어버렸어요.


다음날이야 화련을 갈 테니 아마 큰 상관은 없겠지만, 그 다음에는 서문정 거리가 기다리고 있었어요. 주펀이야 어떤 곳인지 모르니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잘 모르지만, 서문정 거리에서는 분명 오늘과 마찬가지로 자유시간이 꽤 주어질테고, 그 다음 자오시로 가서 쉴 텐데, 자오시도 밤에 시내를 돌아다닐만 하다고 했어요. 더욱이 자오시에서 숙소 들어가는 시각은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각이었어요. 즉, 타이베이에서의 이틀밤이야 어차피 호텔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으니 밤에 돌아다니고 말고 할 시간이 충분치 않지만, 자오시에서는 주변을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었어요. 난생 처음 들어본 '자오시'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여행 출발 전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온천 도시이고, 시내는 그럭저럭 돌아다닐만 한 것 같아보였어요. 그런데 오늘 야시장에서 깨달았지만, 아무 준비 안 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주어질 자유시간을 통째로 망쳐먹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은 누구를 탓할 것은 아니었어요. 그저 전적으로 제 잘못. 기껏 외워두었던 '이것 한 개 주세요'조차 기억나지 않았어요. 그 정도로 정말 '대만 간다, 와! 신난다!' 이 생각만 하고 있었지, 여행 자체에 대해서는 '패키지 여행이니 알아서 다 되겠지' 하고 신경을 끄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이것은 자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문제의 결정적 원인이었어요. 물론 적당히 손짓 발짓 해가며 다녀도 되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왕이면 최대 편익을 얻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


"어우...형이 완전 뻥쳤네."


일본어가 잘 통하기는 개뿔. 물론 그 상인이 못 알아들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일어가 널리 통할 거 같아보이지는 않았어요. 우리나라에서 일어 통하는 정도보다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여기는 일어로 돌아다니는 것은 솔직히 무리.


어쨌든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했고, 분명히 부모님께서 저를 억지로라도 깨워서 아침 식사도 하게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잠을 청했어요. 다행히 하도 졸려서 금방 잠들었어요.


역시나 아버지께서 저를 깨우셨어요. 아버지께서는 텔레비전을 켜셨어요.





'중국어 수업인가?'





화면을 보고는 이것은 자유중국의 아침 수험생을 위한 교육방송 같은 것인가 생각했어요. 모자가 보자마자 타이완 원주민의 전통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그냥 패션을 위해 쓴 것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일단 이 자유중국 방송에서 한 번에 확 들어온 것은 자막. 자막이 또박또박 정자체로 나와서 어느 정도까지는 읽고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당연히 듣고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





"응? 이것은 무슨 말이지?"


이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언어였어요. 대만 중국어는 저렇게 말하는 건가? 대만에는 표준 중국어 외에 하카어를 쓴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물론 이 당시에는 정확히 그것이 '객가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고, 대만에도 '사투리 같은 말이 있다'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이것이 객가어인가? 그런데 타이완을 좋아하는 친한 동생 말이 얼핏 떠올랐어요. 그 동생 말에 의하면 객가어도 성조가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 말은 들어보니 억양이야 당연히 있지만 성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나.


저도 따라서 발음했어요. 앜. 아버지를 보니 아버지께서도 '이것은 무엇인가' 하는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계셨어요.





노사.


한자를 그대로 번역하면 늙은 선생. 하지만 중국어에서 노사는 그냥 선생님. 이것은 알고 가서 아는 게 아니라, 화면 속 그림과 한자를 비교해보니 저 캐릭터가 할머니로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냥 '선생님을 노사라고 하나 보다'라고 때려맞춘 것이었어요.


"마스나나바!"


뭐라뭐라 말하더니 'masnanava 老師'라는 자막과 함께 '마스나나바'라는 소리가 나왔어요.


"마스나나바!"


저도 따라했어요. 발음 자체는 특별하다고 할 것 까지는 없었는데, 억양이 너무 인상적었어요. 사진 속 캐릭터들이 상당히 귀엽다는 것에 눈길이 갔어요. 뭔가 중국어를 알고 보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중국어를 아예 모르니 당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아래 자막이 또박또박 정자체로 나오고 있기는 했지만, 한자를 건드리지 않은지 하도 오래되어서 몇 글자 읽으면 지나가버리고, 무슨 글자였는지 생각하면 지나가버리고 해서 내용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한참을 본 후에야 이것이 대만 원주민들의 말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자막을 읽거나 중국어를 순간 깨우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그냥 방송 내내 나오는 분위기와 화면들을 계속보니 이것이 하카어가 아니라 타이완에 있는 어느 소수민족의 말이라는 것을 그냥 깨우치게 되었어요. 더욱이 친한 동생이 타이완 사진 같은 것을 보여줄 때 저런 옷을 보여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요. 객가어 교재, 민남어 교재를 구했다고 제게 자랑할 때에도 저런 복장 그림은 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이런 저런 것들로 미루어보았을 때 저것은 원주민 언어.


여행기를 쓰며 이 방송을 찾아보니 홈페이지도 있었어요. http://web.pts.org.tw/php/mealc/main.php?XMAENO=1263&XMBENO=2209 대만 소수민족들마다 옷이 다르기 때문에 옷을 보고 제가 본 것이 어떤 것인지 찾을 수 있었어요. 제가 본 것은 포농족의 말이었어요. 포농어편 동영상은 찾지 못했지만 왠지 2과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어요.


2014년 2월 22일의 아침은 '마스나나바'와 함께 시작했어요. 이건 진짜 하도 인상적인 발음이어서 절대 까먹을 수가 없어요. '마스나'까지 쭉 올라가고, 뒤의 '나'에서 확 올라간 후 '바'에서 푹 떨어지는 소리. 앜 마스나나바. 저도 어쨌든 학원 강사이니 '앜 마스나나바'.


예. 타이완 현지 와서 말 하나 배웠어요. '앜 마스나나바'. 문제는 이것은 써먹을 데가 없다는 것.


아버지와 함께 '앜 마스나나바'를 공부하고 식당에 내려가서 밥을 먹었어요. 아침은 부페식이었는데, 구운 베이컨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먹어보았지만, 결국은 아침부터 고기가 너무 땡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아침을 배터지게 먹고 호텔 주변을 돌아다녀보았어요. 호텔 길 건너 바로 옆에는 남양대교가 있었고, 길을 건너지 않고 쭉 걸어보니 편의점과 코스트코가 있었어요. 그리고나서 사거리가 있었어요. 무언가 인상적이거나 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았아요. 그래서 다시 호텔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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