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15 모로코 페스

좀좀이 2011. 12. 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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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운은 다하고


이건 단순한 물갈이가 아니었어요. 진짜 이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진 과식. 일행분들이 저를 많이 챙겨주셨는데 오히려 그게 제게 독이 된 것이었어요. 원래 많이 먹는 편이 아닌데다 자취하면서 기름진 음식은 거의 안 먹으며 지냈는데 여행 와서 기름진 음식을 갑자기 매일 꾸준히 매끼 폭식하다보니 속에서 탈이 난 거에요. 기름을 들이마시면 주루룩 주루룩 하는 것과 같은 원리.


"바나나 먹으면 설사에 좋다는데..."

"아니요! 제가 알아서 할께요!"

일행분의 호의를 단호히 거절했어요. 물론 저를 걱정해서 말씀하신 것이었지만, 왠지 매일 바나나 한 송이 다 먹으라고 하실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단식을 선언했어요. 이제부터는 아무 것도 안 먹기로 했어요. 연이은 폭식으로 탈이 났는데 하루 종일 호텔 방 화장실에서 주르륵 주르륵만 해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속이 괜찮아질 때까지 제가 알아서 먹기로 했어요.


기차를 탔어요. 오늘 목적지는 페스 (Fes). 뜻은 '도끼'에요.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땅을 파는데 금도끼가 나와서 도시 이름이 페스가 되었대요. 원래 이름은 파으스 (فأس)인데 여기 방언에서는 '페스'라고 해요. 카사블랑카는 영화 이름 때문에 유명한 도시이지만, 페스는 모로코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행지에요. '모로코'하면 나오는 염색 작업장이 바로 페스의 대표적인 모습이에요. 페스에는 염색 작업장이 여러 곳 있어요. 페스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미로 같은 골목. 외침을 막기 위해 일부러 길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아서 가이드 없으면 무조건 길을 잃어버리는 동네로 유명해요. 사실 길 잃어버리는 재미로 보는 동네이기도 해요.



창밖에 공업시설이 보였어요.



창 밖 풍경. 전날 마라케시가 사막 같은 풍경이었다면 여기는 푸르른 초원지대가 끝없이 이어졌어요.



모로코의 농촌.



양떼.



넓은 밭.



듬성듬성 심어져 있는 올리브 나무.



동네 장터.



생각보다 큰 장이었어요. 저기서 뭘 파는지는...



날씨가 개는 듯 하더니



다시 나빠졌어요. 그래도 전날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모르는 일. 전날도 마라케시 다 가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날씨든 제 뱃속이든 긴장을 늦출 수 없었어요. 전날 저녁과 아침을 굶으니 그래도 속이 괜찮았어요.



저기 철기둥에 적혀 있는 것은



사망 위험.



나름 잘 꾸민 도시. 그런데 기차로 지나가며 본 도시라 무슨 도시인지는 모르겠어요. Ras-El-Ma 역을 지나자 나온 도시이니 아마 라스 엘 마 아닐까 싶어요. 참고로 Ras-El-Ma는 아랍어로 رأس الماء, 우리말로는 '물의 머리'.


드디어 페스에 도착했어요. 오늘도 기차는 연착.



페스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거대한 현재 국왕 사진이 보였어요. 페스역 앞에는 커다란 국왕 사진이 2개나 걸려 있었어요. 모로코를 잘 아시는 일행분께서 페스는 모로코에서 반정부 성향이 매우 강한 지역이라고 했어요. 페스는 지식인이 많이 배출된 도시인데, 페스 출신 지식인들은 반 프랑스, 반 외세 성향의 무함마드 5세 국왕을 지지했어요. 그러나 무함마드 5세 국왕 서거 이후 친 서방, 친 프랑스 성향의 핫산 2세가 정권을 잡자 당연히 페스 출신 지식인들과 충돌이 발생했고, 이때부터 페스는 정부의 관리와 감시가 매우 심한 지역이 되었대요. 카사블랑카, 마라케시, 라바트에서는 별로 보이지 않던 국왕의 사진이 페스에서는 지천에 깔려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래요.


불길한 징조. 페스 구시가지 (메디나)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모스크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나오기 시작했어요.

"아, 맞다! 오늘 금요일이었지!"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이 휴일이에요. 이는 매우 불길한 징조.


식당에서 일행들이 간단히 점심을 먹는데 저는 가만히 앉아서 물만 조금 마셨어요. 모두 걱정했지만 자신있게 '지금 제가 아픈 건 지나친 폭식 때문입니다. 그래서 굶어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안 먹었어요. 일단 배에 들어가는 것이 없으니 나올 것도 없었어요.



드디어 구시가지로 들어갔어요. 이 문의 반대쪽은 파란색이에요. 반대쪽 문도 찍었는데 사진을 하드디스크로 옮기는 과정에서 에러가 발생하며 사진이 깨졌어요.



헉! 저거 낙타 머리 아니야? 아무리 봐도 저것은 낙타 머리. 설마 여기서 낙타 고기도 판다는 건가? 정육점 앞에 저렇게 낙타 머리를 걸어놓았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기차가 연착해 버리는 바람에 페스 관광을 빨리 진행해야 했어요. 그래서 가이드를 자처하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페스를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불길한 징조는 정말로 불길했어요. 페스 구시가지는 매우 번잡하고 정신 없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길도 좁고 복잡한데 짐 실은 나귀가 지나가면 비켜주고 여기저기 가게에서 와서 구경하고 사가라고 하고 사람들도 북적대서 정신없는 곳인데 오늘은 금요일. 모두 쉬는 날. 시장 가게 거의 다 문을 닫아버렸어요. 관광 책자나 방송에 나오는 그 페스의 거리가 아니라 이것은 그냥 휑한 골목길.



모로코를 잘 아시는 분께서 기분이 많이 상하셨어요.

"기차가 연착 안 했으면 여기 제대로 봤어! 시장 금요일 오전까지는 한단 말이야. 길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길을 잃어 버려?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냥 돌아갈 수 있겠다."



좁은 골목길.


골목이 정말 많기는 했어요. 허리를 굽혀서 지나가야 하는 골목길도 여러 개. 소년이 우리를 어디론가 계속 데려가는데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어요. 소년이 데려간 곳은 바로



무두질 작업장. 썩는 냄새가 아주 진동해요.



또 다른 길.



여기는 페스 꼭대기에 있는 시장. 좋은 건 없어요. 거의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발견할만한 것들이 가득해요.



드디어 도착한 염색 작업장. 하지만 오늘은 금요일. 작업 없어요. 여기서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작업장 청소.


오늘은 쉬는 날...



빵집.



그리고 이것이 페스 구시가지의 중심이 되는 가장 중요하고 큰 모스크에요. 재미있는 것은 짐을 실은 나귀가 들어갈 수 없도록 절묘한 높이에 장대를 매달아 놓았다는 것이었어요. 사람이야 조금 숙이면 쉽게 지나갈 수 있지만 짐은 실은 나귀는 딱 짐에 걸려서 지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꽤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관광을 마치고 나왔어요. 사람이 없는 복잡한 미로를 걷다 나온 기분이었어요. 나귀 끌고 가고 염색 작업하고 무두질하는 것은 보지도 못했어요.



간단히 박하차 한 잔 씩 마시고 페스 관광을 정리했어요. 박하차는 저도 그냥 마셨어요. 이 정도는 마셔도 별 탈 없을 것 같았어요.


기차에서 내려 가게로 갔어요. 그 이유는 제가 먹을 저녁을 사기 위해서였어요. 제가 고른 것은 오렌지. 오렌지로 저녁을 대신할 생각이었어요. 오렌지야 섬유질도 많고 당도도 높으니 설사 중에도 먹어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가장 피해야하는 기름과는 아주 동떨어진 것이었구요.


집에 가는 길. 누군가 제 팔을 세게 잡아챘어요. 별 일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도망가다 방향을 틀기 위해 잡은 것이었거든요. 도망가던 모로코인은 쫓아오던 모로코인에게 잡혀 넘어졌어요. 쫓아온 모로코인은 넘어진 모로코인을 노려보며 병으로 내려치려고 했어요. 넘어진 모로코인은 손으로 병을 막으려고 하며 뭐라뭐라 이야기하다니 재빨리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고, 병으로 내려치려던 모로코인은 그 뒤를 다시 쫓아가기 시작했어요.


"저것 봐. 모로코 절대 안전하지 않다니까."


모로코를 잘 아시는 일행분께서 말씀해주신 모로코에서 일어나는 위험한 일들 중 몇 개는 직접 목격했어요. 저는 그분 말씀을 매우 잘 따랐고,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아! 주르륵 주르륵...그런데 그건 범죄와 관련된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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