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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브레이크 컴퍼니 후기 - 문화 침략? 문화 전파?

좀좀이 2013. 12. 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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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한류...한류...


지난해 중앙아시아에 머무르며 참 많이 보았어요. 텔레비전에서는 대장금 더빙판이 나오고, 대장금 비닐봉지도 보았고, 주몽 재미있다는 사람들도 여럿 만났지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국 문화를 수출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역사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중학생일 때만 해도 길거리 좌판에서 몰래 일본 노래 테이프를 사서 듣고, 애니메이션은 몇몇 애들의 전유물 같은 존재. 지금은 원피스, 나루토 같은 건 오타쿠가 아니라도 다 보는 세상이지만, 제가 중학생때만 해도 진짜 몇몇만 에반게리온을 알던 그런 때였어요. 가뜩이나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건 더더욱 접하기 어려웠죠.


어쨌든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다른 나라로 문화를 수출한 건 그렇게 오래되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대장금은 군대 가기 전 해에 나왔고, 대장금 나오기 전에 이영애씨가 바로 전에 나왔던 사극 드라마인 '다모' 보다 더 성공하겠다고 발언했다가 다모 폐인들에게 엄청나게 욕을 먹었던 것은 기억나거든요.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나이가 참 먹은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을 보면, 아니, 그 전에 저보다 몇 살 아래인 사람만 보아도 참 다른 세계 아닌가 싶을 정도이기는 해요. 확실히 인터넷 전용선이라는 것이 세상을 크게 바꾸었고, 그로부터 또 한참 지난 후에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로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으니까요.


주인공들이 죄다 왼손잡이인 만화책을 보고 (아마 저와 비슷한 또래, 또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시라면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아실 거에요) 일본 노래 표절 뉴스를 접하고, 일본 노래 듣고 이런 신세계가 있나 충격받았던 경험을 기억하는 제게 직접 목격한 한류는 그야말로 충격. 물론 중앙아시아에서의 한류는 욘사마 한류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충격은 충격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꽤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을 하나 보았답니다.


바로 '아웃브레이크 컴퍼니 - 모에하는 침략자' 였답니다.





일본이 후지산 근처에서 이계로 가는 입구를 찾았고, 이계와의 교류를 위해 이것저것 해보았는데 오타쿠 문화가 가장 반응이 좋아서 히키코모리인 카노 신이치를 고용해 이계에 오타쿠 문화를 전파하게 시킨다는 내용이지요.


일단 내용은 매우 재미있었어요. 정말 모처럼 상당히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이었답니다. 원작은 라이트노벨이라고 하는데, 직접 일어 원서로 사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할 정도로요.


생각없이 보아도 확실히 재미는 있는 애니메이션이었어요. 하지만 생각해볼 것이 있는 애니였기 때문에 매우 재미있게 보았어요.


문화 침략과 문화 전파.


애니메이션 속에서 일본 정부는 일본 오타쿠 문화를 하나의 마약처럼 이용하려 해요. 그런 문화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 설정상에서는 유흥문화가 전무하다고 봐도 될 지경으로 나온답니다 - 이계 사람들에게 일본의 오타쿠 문화를 중독시킨 후, 마약 공급을 조절해 마약중독자를 통제하듯 오타쿠 문화 상품 공급을 조절해 이계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전략을 세웠어요. 그리고 주인공은 이를 알고 반대하구요.


일본 정부와 주인공의 목적이 어쨌든 간에, 둘 다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했어요.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일단 올라갔고, 일본에 대해 친숙하게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이런 모습을 보며 저도 예전 돌아다닐 때 생각이 많이 떠올랐답니다.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대장금, 주몽 같은 것은 알아서 편했던 점을 여러 번 겪었으니까요.


현실 세계에서 애니메이션 속 문화 침략이 일어나는 건 극히 어렵다고 생각해요. 애니메이션에서는 이게 가능한 것이 그쪽에는 컴퓨터도, 첨단 기술도 없으니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급해줄 수 밖에 없고, 그것을 중단하면 일방적으로 받던 쪽에서는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제 경험상 낙후된 국가일수록 저런 전략을 쓰기 더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런 전략을 쓰려면 일단 저작권이 엄격하게 보호되어야 하니까요.


보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만약 저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문화 상품 제공을 중단해 버렸다면? 약간의 혼란은 있었겠지만 오히려 이계에서는 자기들 방식으로 나름의 오타쿠 문화를 만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떻게든 모방하고 조악하더라도 만들어내는 게 인간 사회이니까요.


문화 침략과 문화 전파를 다룬 애니매이션은 처음이라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게 보았어요. 문화 침략에 대한 말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어요. 그리고 지금도 듣고 있지요. 요즘은 제가 어렸을 때보다는 많이 덜해진 것 같지만요. 지금은 우리나라도 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어요. 하지만 지금껏 문화 침략, 문화 전파, 문화 수출, 문화 수입에 대해 다룬 애니매이션은 본 적이 없었어요. 그냥 침략이면 무력으로 침략하는 것 뿐이었지, 문화를 이용해 잠식해간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다룬 것은 못 보았답니다.


굳이 '노는 문화'로 한정해서 보지 않고,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볼 수 도 있다는 점도 이 애니메이션을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해 주었구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이게 대체 우리나라 문화적인 거야, 외국인이 우리나라 문화를 대충 흉내내본 거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소소한 재미로는, 자리보전이 최고 목표이고 경직된 행태의 일본 공무원 세계를 비난하는 모습들이었어요. 절대 현실 세계로 가서는 안 되는 엘프가 도망쳤는데 ください 에서 だ 가 빠진 것에만 집중하는 공무원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답니다. 이 애니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지요. 이미 엘프는 현실 세계로 가 버렸는데, 설마 저 한 글자 빠졌으니 다시 써 오라고 할 건가? 하며 엄청 웃었어요. 이 외에도 여러 장면 등장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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