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첫 걸음 (2007)

첫 걸음 - 12 모로코 카사블랑카

좀좀이 2011. 12. 10.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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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전설은 전설일 뿐


01.30


모로코에 대한 여행자료는 모로코에서 2년간 거주하셨던 분이 계셨기 때문에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아도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갈 지는 이미 다 정해져 있었습니다. 단지 언제 어디를 갈 지에 대해서만 약간의 논의가 있었을 뿐이었죠. 모로코는 튀니지와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국가에요. 이 나라에서 유명한 도시라면 정치 수도인 라바트, 경제 수도인 카사블랑카, 남쪽의 마라케시, 1300년의 고도 페스, 그리고 보세구역이 있는 탕제(탕헤르) 였습니다. 이 도시들만 다 가보면 우리나라에서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를 다 다녀온 셈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국가가 너무 커서 이동시간이 매우 많이 걸린다는 사실. 그나마 철도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이동하기에는 좋지만 이동하기 좋은 것과 이동시간이 짧은 것은 어디까지나 별개의 문제.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은 매우 쉬워요. 버스로 가도 되고 기차로 가도 되고 비행기를 타고 가도 되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동시간이 매우 많이 걸린다는 것이죠. 하루 한 도시 방문을 해야 여행 일정 내에 저 다섯 도시를 다 볼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숙소를 라바트에서 잡은 이유는 바로 이 '하루 한 도시 방문'을 위한 것이었어요. 라바트는 정치수도이자 모든 철로의 중심지에요. 그러다보니 라바트에서 다른 도시로의 철도 이동이 매우 편리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어떻게 씻었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아침을 먹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카사블랑카로 이동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만약 역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숙소가 있었다면 정말 수면부족에 시달렸을 거에요. 그러나 역이 호텔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수면부족에 시달리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바트 아그달'역입니다. ONCF는 우리나라의 한국철도공사 같은 회사입니다. Office national de chemin de fer의 약자입니다. 튀니지는 SNCFT였죠. Societe national de chemin de fer tunisien의 약자입니다. 튀니지와는 철도공사 이름부터 달랐습니다. 모처럼 맑은 아침이었습니다.



역 내부입니다. 사람들이 줄은 잘 서요. 새치기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서양인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줄을 잘 서는 것일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로코의 이미지와 줄을 잘 선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양립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줄을 잘 선다는 것은 그만큼 심정적으로 급박하지 않다는 증거. 생존본능이 가장 우선이라면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 따위는 부릴 수 없죠. 원래 성질이 급한 것도 줄서기에 큰 영향을 주지만, 생존을 위한 거친 생활은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라는 생각을 낳고, 이 생각은 단연 음식과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급한 성질을 보이기 마련이며, 이는 줄서기라는 인내심과 타인에 대한 양보를 내포하고 있는 행위를 할 수 없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모로코 사람들은 줄 하나는 정말 잘 섰습니다. 튀니지도 마찬가지였구요. 줄서기를 할 줄 모르는 무리라고는 오직 중국인 뿐이었습니다.



기차를 타는 플랫폼입니다. 여기에서도 튀니지와의 엄청난 차이점! 일단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많이 보이지 않아요. 튀니지였으면 사람들이 전부 담배 꼬나물고 꽁초를 철로에 던지는 등 흡연자만을 위한 플랫폼의 모습을 보여주었을텐데 여기는 그렇게까지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많지 않더군요. 그리고 담배를 태워도 주로 재떨이 근처에서 태웠습니다. 흡연자의 입장에서는 튀니지보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장면이었죠. 그리고 철로를 무단횡단하지 못하게 쇠사슬로 맞은편 플랫폼의 한쪽을 막아놓았어요. 튀니지에는 저런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습니다. 튀니지에서 가장 큰 역인 튀니스 역에서조차 사람들은 철로를 무단횡단했는데, 여기는 절대 철로 무단횡단을 할 수 없게 해 놓았더군요. 이런 사람들의 행동만 본다면 우리나라의 2002년 기차 및 전철역과 비슷한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대학교 때문에 처음 서울로 상경했던 2002년만 해도 지상에 있는 역에서는 담배를 태울 수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철로 무단횡단은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학교 갈 때나 귀가할 때 신길역이나 영등포역에서 담배 한 대를 태우는 것이 매일 있는 하나의 습관이었죠. 튀니지에 있다가 모로코로 오니 약간의 족쇄가 채워진 느낌도 들고, 조금 한국과 가까워졌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반가운 현상은 아니었어요. 튀니지처럼 정말 자유방임에 가까운 행동을 하며 지낼 수는 없었으니까요.


기차는 모하메디야도 지나갔습니다. 내려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기차로 지나가면서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거리로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멀리 건물들의 꼭대기가 울퉁불퉁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접시 안테나 때문입니다. 한 두 개를 세운 거라면 멀리서 점 하나만 보이든지 아예 안 보일텐데 워낙 빽빽하게 많이 세워서 멀리서도 잘 보이더군요. 마치 건물 옥상을 울퉁불퉁하게 만든 것 같았습니다.



빈민촌 같이 보이는 판자집에도 접시 안테나는 달려 있었습니다. 한 두 개가 아니더군요. 판자집도 집집마다 하나씩 접시안테나가 달려 있었습니다. 이 해괴한 모습. 여기에서는 접시 안테나를 달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건가요? 아니면 너무 가격이 저렴해서 달지 않는 것이 바보 아닐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시간도 없이 주변 풍경을 조금 구경하나 싶더니만 카사블랑카에 도착했습니다.



택시 색깔이 빨간색이다!


라바트의 택시는 파란색이었는데 카사블랑카의 택시는 빨간색이었습니다. 다행히 날이 매우 맑아서 라바트보다 밝은 느낌이 들기는 했으나 역에서 나와 전체적으로 라바트와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보니 여기가 라바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업무가 있는 일행과 헤어져 저는 업무가 없는 다른 일행들과 라바트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일행 중 한 명이 모로코 여행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분만 믿고 따라갔습니다. 아무 것도 혼자서 돌아다니기엔 카사블랑카가 너무 큰 도시였습니다. 카사블랑카는 라바트보다 큽니다. 라바트가 수도가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교통이 좋기 때문입니다. 카사블랑카처럼 너무 바다에 치우친 것도 아니고 4시간 안에 모로코의 주요도시인 카사블랑카, 페스, 마라케시를 갈 수 있습니다. 경제의 중심지는 카사블랑카입니다.



이것이 모로코의 현실입니다. 그네들의 언어 현실이기도 하고, 그네들이 현제 처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확실히 모로코에 와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계속 아랍에서 벗어나 유럽에 붙으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튀니지와 비교하면 재미있어요. 튀니지 사람들이 보다 서양인처럼 구는 것은 맞아요. 모로코 사람보다 보다 적극적이고 불어가 더 잘 통해요. 불어가 더 잘 통한다는 것은 단지 쌩크와 씬의 차이가 아니에요. 그런 발음적인 면을 떠나 표준아랍어의 이해도가 모로코 사람들이 튀니지 사람들보다 훨씬 나아요. 그리고 튀니지 사람들은 어떻게든 불어를 쓰려고 하는데 모로코에서는 그런 모습이 훨씬 덜 했어요. 그렇게 개개인만 놓고 본다면 튀니지가 모로코보다 훨씬 유럽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조금 더 넓게 보면 반대가 되요. 가장 먼저 모로코 사람들은 교통신호를 철저히 지킵니다. 그리고 거리의 간판도 거의 전부 불어로 되어 있습니다. 모로코 사람들이 표준아랍어를 튀니지 사람들보다 잘 하는 이유는 아마 교육과 국가정책 때문이겠죠. 모로코는 다른 아랍국가들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아랍어 교육을 크게 강화하고, 그러니 국민들이 아랍어를 잘 하겠죠. 하지만 인간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모로코는 튀니지보다 훨씬 유럽에 다가가 있습니다. 지리적 요인으로 그럴 수밖에 없구요.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길목이자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길목이 바로 모로코에요. 모로코에게 밑보이면 상당히 피곤해지죠. 육로로 모로코를 거치지 않고 모로코 이남에 있는 아프리카 국가들로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까요. 알제리는 너무 위험하고, 리비아는 폐쇄적이죠. 그리고 사하라 사막을 관통해야 하구요.


이것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주차금지', 아랍어를 읽으면 'mamnu:' garage'입니다. 앞의 맘누우는 아랍어이지만 garage는 불어입니다. 그냥 가져다 쓰는 거지요. 가져와서 자기들 입에 맞게 r발음을 바꾸고 표기도 아랍글자로 합니다. 세계 어떤 언어에 외래어가 없겠냐만은 모로코 방언 자료들을 보면 참 화려합니다. 기초생활과 관련된 단어들까지 불어를 그대로 쓰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어도 아랍어도 아닌 모로코만의 garage. 이것이 바로 모로코의 모습입니다.



어디 가는지도 모르고 일행을 졸졸 따라가다가 수레를 매단 오토바이를 보았습니다. 우리나라와 반대로 앞에다가 수레를 매달아 놓더군요. 이미 모로코가 어떤 국가인지 잘 듣고 왔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뒤에 매달아 놓으면 사람들이 수레 속의 물건을 마구 들고가겠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국가입니다.


여행과는 관련이 없지만, 며칠 전 'le mille mois'라는 영화의 1/3 정도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에 모로코의 거지가 나오더군요. 주인공이 한 거지에게 적선을 하자 그 거지들이 다른 거지들을 떼로 불러옵니다. 거지떼에게 포위당한 주인공. 돈 다 털립니다.



카사블랑카 항 옆으로 한참 걷다가 드디어 어디를 가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핫산 2세 모스크'였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화려한 카사블랑카의 '핫산 2세 모스크'와 벽에 걸린 빨래.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요.



핫산 2세 모스크 외관입니다.



핫산 2세 모스크의 복도입니다.


핫산 2세 모스크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했습니다. 라바트에서는 돈을 안 내어도 되었는데 여기는 돈을 내라고 하더군요.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크게 할인이 된답니다. 저는 국제학생증 안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아랍세계에 가서 그런 것이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있더군요. 바로 이곳, 핫산 2세 모스크였습니다. 관람료 내고 구경한 유일한 곳일 거에요.


내부는 정말 화려했습니다. 입이 쩌억 벌어졌습니다. 밀라노 대성당? 차원이 다릅니다. 일단 규모면에서 밀라노 대성당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가이드를 따라서 돌아다니는데 1시간 걸렸습니다. 그 거대한 규모-높이와 면적 다 합쳐서 거대한 규모의 사원 내부를 온갖 화려한 장식으로 다 꾸며놓았습니다. 진짜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너무 어두워서 못 찍겠더군요. 화려함만 따진다면 여행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이것은 사원 지하에 있는 수영장입니다. 아직까지 한 명도 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한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이것이 바로 핫산 2세 모스크의 사원 건물 및 첨탑입니다. 아래 개미같은 것들이 사람입니다.


사원 구경을 마치고 맥도날드에 가서 가볍게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맥도날드가 상당히 좋은 식당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하는 것은 주문과 먹는 것 뿐! 문도 열어줘요. 쓰레기도 그냥 놓고 가면 알아서 치워줘요. 일종의 패밀리 레스토랑 같았습니다. 진짜 맥도날드 가는데 직원이 문을 열어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카사블랑카의 메디나에 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카사블랑카 메디나의 입구입니다.



이것이 모로코 전통 물장수입니다. 진짜로 물을 팝니다. 사먹지는 못했습니다. 설사의 공포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매일 아침마다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사먹는 물이라고 패트병에 들어있는 물을 사서 밥통에 물 몇 번 끓이니까 밥통에 석회질이 허옇게 달라붙었습니다. 진짜 그거 보고 경악해서 소리쳤습니다. 이미 외국을 많이 다녀오신 저와 방을 함께 쓴 일행분께서 제게 뭐 그런 걸로 놀라냐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이 여행 전체를 통틀어서 최악, 그리고 최고의 충격이었어요. 사먹는 물조차 어마어마한 석회질이 들어있었어요. 그 물 1년만 먹으면 위부터 장까지 하얀 석회질 막이 끼어서 사람이 죽어버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완전 공포였어요. 정말 물을 절대 먹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물 없이 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물장수의 물은 사 먹지 않았습니다. 외국 가서 불량식품도 사 먹어보아야 한다는 분들께 그 참상을 보여드리고 싶네요. 진짜 그거 보면 물이 쉽게 안 넘어가요. 사진으로 찍어왔어야 했는데 깜빡 했습니다. 잘 걸러낸 물이 그 정도인데 물장수의 물은 오죽할까요.



여기는 정말 개팔자가 상팔자였습니다.



빨래가 널린 만큼 접시 안테나가 주렁주렁.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거의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매일 강행군이었습니다. 후진국은 물가가 싸다고? 생각만큼 싸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갈 때만 해도 매일 택시타고 다니며 호화롭게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관광객의 입장이 되어서 모로코의 물가는 서울 물가와 비슷했어요. 더욱이 모로코 전체 여정에서 공금으로 지불하는 돈 이외에 개인적으로 환전해서 쓰는 돈을 50유로로 끊기 위해 딱 50유로만 환전하니 더욱 물가가 살인적이더군요. 남아있던 모든 돈을 모로코 화폐로 환전해서 모로코에 있는 동안 다 써버리자고 생각했다면 이야기가 또 달랐겠지요. 물론 같은 기간동안 그 돈이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액수였지만요. 게다가 날도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뜨거운 날씨였습니다. 그래서 일행분이 영화를 보자고 했습니다.


모로코에서 영화관람?



모로코 방언이 잔뜩 나오는 것 아닐까? 아니면 프랑스어? 정말 기대하고 들어갔습니다. 극장 내부는 우리보다 널찍하더군요. 역시 체구가 크니까 의자도 컸습니다. 물론 극장에 들어온 모로코 사람들을 보니 그 의자가 매우 좁게 느껴질 것 같았습니다. 신체의 크기와 의자의 크기를 비교하면 우리나라와 비슷할 것 같더군요.


영화가 시작했습니다.


'이자이약.'

'꾸와이스.'


이상하다?


저거 진짜 많이 들었던 말인데?


저거 내가 진짜 듣기 싫어하는 말인데?


어디서 들었더라?


모로코 영화관에 들어가서 본 영화는 이집트 영화였습니다. 이렇게 기분 상쾌할 수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이집트 방언이 아주 폭격을 쏟아붓는구나!


이집트 영화가 나오자 한 가지 즐거운 점이 있었습니다. 볼까와 말까의 고민에서 해방되어 '진짜 보기 싫다'로 결정된 것이었죠. 그래도 1시간 동안은 보았습니다. 나머지 20분 정도는 졸았고, 그 후 끝날 때까지는 잤습니다. 그런데 더욱 무서운 것은 아랍어를 하나도 모르는 일행 한 명이 함께 카사블랑카를 돌아다녔습니다. 모로코 여행을 하신 적이 있으신 분과 아랍어를 하나도 모르는 분, 그리고 저-이렇게 셋이 돌아다녔는데 아랍어를 하나도 모르시는 분께서 영화를 졸지 않고 끝까지 다 본 것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10분 보니까 이집트 방언의 폭격으로 짜증나고 아랍어라서 골치 아팠습니다. 이미 영화 시작 10분부터 잘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인내심이 부족한 것입니까? 반성해야겠습니다.



무함마드 깐수라는 유명한 간첩이 있었습니다. 그 간첩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깐수-정수일이라는 사람은 몇 차례의 국적세탁을 통해 아랍인으로 한국에 들어온 사람이었습니다. 때는 1996년. 제가 중학교 1학년때였습니다. 그때 국어 교과서가 바뀌어서 그해 중학교 1학년부터 선배들과는 다른 국어책을 처음 쓰게 되었습니다. 그 교과서에는 바로 '무함마드 깐수'가 쓴 글이 한 편 실려있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무함마드 깐수의 간첩행위가 적발되었습니다.


간첩이 쓴 글을 학생들이 배울 수는 없지요. 비록 그가 우리나라에서 매우 훌륭한 학자이기는 하지만 간첩이 쓴 글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다는 것이 국가의 방침. 그래서 위에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국어 선생님께서는 깐수가 쓴 글을 연필로 지우라고 했습니다. 연필로 앵그리든 (새까맣게 박박 불규칙한 줄을 그어서 내용이 안 보이도록 하든) 가위표를 치든 하여간 그 글을 없애라고 했습니다. 찢으라고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에 있는 내용은 배워야 했으니까요.


그 깐수가 모로코에 있었을 때, 카사블랑카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단지 영화 '카사블랑카'로 인해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도시 자체가 그때는 매우 아름다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카사블랑카에 있었던 2007년 1월 30일. 카사블랑카는 더 이상 아름다운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냥 후줄근한 도시였습니다. 전설은 전설일 뿐. 카사블랑카는 이제 전설일 뿐이었습니다. 모로코에서 가장 특색없는 도시를 꼽으라면 단연 1위로 카사블랑카를 뽑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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