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몰타 갔다온 사람 대부분이 아마 영어 연수하러 갔다 온 사람일 거에요. 몰타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어를 많이 사용한답니다.
하지만 몰타에서 국어는 영어와 더불어 몰타어에요. 몰타 고유의 언어이지요. 그리고 이 몰타어의 난이도는 꽤 높답니다.
몰타어는 아랍어에서 갈라져나온 언어에요. 하지만 아랍-이슬람과의 교류는 별로 없었고, 아주 오래전부터 가톨릭 문화권이었답니다. 특히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몰타어는 문법은 아랍어 방언이고, 어휘는 아랍어 방언 및 이탈리아어, 영어가 섞여 있어요. 아랍어 방언 세계에서는 그야말로 숨겨진 진짜 보스인 셈이지요.
저 역시 몰타어는 아주 잠깐 호기심에 보았었어요. 글로 적어놓은 것은 그래도 약간은 이해할 수 있는데 들으면 그냥 못 알아들어요. 위에서 말했듯이 문법도 어휘도 표준 아랍어가 아니라 아랍어 방언인데, 발음이 꽤 많이 변했어요. 특히 묵음 및 성문폐쇄음이 되어버린 발음들, 모음 소실로 인해 듣고 의미를 유추해내는 건 불가능해요.
몰타어는 EU 언어정책의 비효율성의 사례로도 종종 언급되어요. EU 가입국가의 국어는 모두 EU의 공식 언어인데 몰타 인구 자체가 50만 정도이고, 이 중에서 몰타어를 모국어로 유창하게 잘 하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많지 않거든요. 몰타에 있는 동안 영어를 잘 모르고 몰타어로만 이야기하는 사람들과도 만나보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적었고 대부분 그냥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고 자기들끼리도 영어로 대화하곤 했어요. 몰타어 역시 빠르게 소멸되어가고 있는 언어 중 하나랍니다.
어쨌든 몰타어도 몰타의 국어이기 때문에 몰타어 교과서도 있답니다. 이번에는 몰타의 초등학교 1학년 몰타어 교과서를 살펴보도록 할게요.
이름이 Stilel 이에요. '별' 이라는 뜻이죠. 몰타 국어 교과서를 찾으려고 인터넷을 한참 헤매다 초등학교 교과과정표를 찾아서 몰타에 있는 서점에 주문했지요. 생긴 건 5천원 짜리인데 가격은 5유로가 넘는답니다.
맨 위에는 Għat-Tagħlim tal-Malti 라고 적혀 있어요. '앗-탈림 탈-말티'. 여기서 '앗'은 아랍어 정관사 '알'이 아니라 아랍어 전치사 '안'이랍니다. (아랍어 문법에서는 불변사라고 하지요) 해석하면 '몰타어 교육에 관한' 이에요.
그리고 우측 하단을 보면 Edizzjoni Ġdida 라고 적혀 있어요. '에딧쬬니 ㅈ디다'. 여기서 딱 나타나지요. edizzjoni 는 edition 인데 영어에서 넘어온 게 아니라 이탈리아어에서 넘어온 거에요. 이탈리아어로는 edizione 이거든요. 그리고 뒤에 오는 ġdida 는 아랍어 '자디다', 즉 '새로운'이라는 뜻이에요. '신판'이라는 말이죠. 참고로 몰타어 알파벳에서 g, z 는 글자 위에 점이 있고 없고로 발음이 달라져요.
몰타 알파벳이에요. għ, h 는 묵음이랍니다. 그래서 써놓으면 대충 때려맞출 수 있는 것들도 종종 있지만 들으면 알 수 없는 것이지요. q 역시 마찬가지로 q는 성문폐쇄음이랍니다. 아랍어 방언에서 이집트 방언이 q 발음이 성문폐쇄음으로 가요.
초등학교 1학년용 몰타어 교과서는 일단 글자 익히기부터 시작한답니다. 1학년이 글자를 익히는 것이 맞기는 한데, 영어도 똑같은 라틴 알파벳을 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렇게 1년 동안 글자를 집중적으로 배워야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몰타의 영어 교과서는 구경도 못 해 보았지만, 아마 거기에서도 알파벳부터 가르쳐줄테니까요.
1학년 교과서는 철저하게 알파벳 공부와 단어 익히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답니다.
물론 몰타도 몰타어 교과서가 이것 하나 뿐만은 아니에요. 이것과 더불어 읽기 교과서도 있답니다. 하지만 읽기 교과서 역시 거의 이 수준이에요.
몰타에 있으면서 보고 느낀 게 있어서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몰타에서 몰타어로 된 서적을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물론 발레타에 있는 큰 서점 가면 몰타어로 된 책을 볼 수 있기는 한데, 그 종류가 정말 적어요. 몰타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보면 몰타에서 몰타어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