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

주말 - 일산 호수공원까지 걷기

좀좀이 2013. 6. 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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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금요일. 중학교가 재량휴일을 해서 오전에 수업을 했어요. 오전에 후딱 끝내서 좋기는 한데 문제는...


잠이 안 깨더라...


확실히 오후에 하는 것보다 시간은 빨리 가서 좋았어요. 머리 속에 드는 생각이라고는 애들 여름방학하면 학원 오전에 할 텐데 그때 학원 어떻게 나오지? 하는 걱정 뿐.


어쨌든 3교시를 잘 넘겼어요.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들과 학원 대청소를 했어요. 말이 좋아 대청소이고 실제로는 그냥 쓸고 마포걸레로 닦기.


집에 돌아오자마자 친구한테 연락을 했어요.


"나 반차 잘렸어."


원래 오늘 친구가 반차를 쓰기로 했어요. 그래서 학원에서 같이 밥 먹자고 하셨는데 친구 만나서 점심 먹고 놀라고 그냥 집에 돌아왔던 것. 그런데 친구가 반차가 잘렸다고 했어요. 그래서 드러누워 한숨 자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마침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오늘 걸을까?"

"어디로?"


원래 약속은 친구가 의정부로 넘어오기로 되어 있었어요. 이 친구가 의정부로 넘어오면 학원 선생님들로부터 추천받은 부대찌개 맛있는 집 가서 부대찌게 먹고 느긋하게 중량천 타고 서울까지 걸어갈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친구가 반차가 잘리는 바람에 이 계획은 물건너갔어요.


친구는 남쪽이나 서쪽으로 걷자고 하는데 서쪽, 남쪽으로는 그다지 걷고 싶지 않았어요. 그쪽은 솔직히 그렇게 걷는 재미가 있는 곳은 아닌 그냥 사람 사는 곳, 또는 번화가. 멀리 간다면 안양, 분당 정도 될텐데 거기도 마찬가지.


"일단 종로에서 볼까?"

"종로 가서 뭐하게?"


친구가 종로에서 저녁을 먹고 걷자고 하는데, 종로에서 저녁을 먹을 바에야 의정부에서 밥 먹고 나갈 생각이었어요. 종로까지 가는데 걸리는 시간도 길 뿐더러, 지금 술 먹으러 나가는 것도 아니었어요. 밤새 걸으려면 일단 배터지게 먹어야 하는데 종로에서 배터지게 먹을 바에는 그냥 동네 김밥천국 가서 돈까스에 김밥 2줄 시켜서 그거 먹고 걷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고기부페 없냐?"

"고기부페?"


밤에 걸을 때 집에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면 최소한 버스 첫차가 돌아다닐 때까지는 돌아다녀야 해요. 이건 신념이 아니라 현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먹어놓는 게 중요했어요. 제일 좋은 곳은 뭐니뭐니해도 고기부페.


고기부페를 찾아보는데 신촌에 하나 있었어요.


"거기서 먹고 일산까지 걸어갈까?"

"일산?"


이건 왠지 미친 짓 같은데...


친구의 제안을 듣고 지도를 보는 순간 이건 조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기부페가 있는 곳은 홍대입구. 홍대입구에서 월드컵 경기장을 들려서 일산까지 걸어가는 코스인데 이건 거리 자체가 20km는 가뿐히 넘는 거리. 경험상 초행길은 한 시간에 3km 잡으면 대충 맞으니까 소요시간 7시간 조금 안 걸리는 코스.


일단 만나서 고기부페에서 고기를 배에 저장시키면서 어떻게 걸을지 논의를 했어요.


합정을 거쳐 월드컵 경기장까지는 그냥 걸어간 후에, 여기에서 크게 세 가지 길이 있었어요.


1. 강변 따라서 가기 - 이건 둘 다 시시하다고 거부.


2. 지하철 3호선 따라 가기 - 이건 거리가 무지막지한데다 퇴로가 없어서 기각.


3. 수색역 쪽으로 걸어서 쭉 직진 - 둘 다 동의.


원래 처음 계획은 2번이었어요. 하지만 이건 일단 거리가 너무 무지막지했어요. 그리고 이 무지막지한 거리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딱 보아도 아무 것도 없게 생긴 거리. 정말 만약에 그만두고 싶어졌을 때 마땅히 빠져나올 방법도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일단 안전하게 2번으로 가기로 했어요.




일단 시작은 별 거 없었어요. 그냥 무난한 시작.


그리고 미리 엔딩부터 말하자면





결국 일산 호수공원에 도착했어요.


서울에서 일산 덕양구까지 들어가는 길은 참 길고 길었어요. 분위기는 왠지 고향의 길을 걷는 느낌이었어요. 시청에서 신제주 들어오는 그 길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그 길이 예전에 그랬듯 이 길도 상당히 긴데 편의점이 중간에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도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었는데 그건 주유소 가서 말씀을 드리고 주유소 화장실을 사용했고, 목이 마른 것은 길 가다 발견한 아주 허름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셔서 해결했어요. 자판기 생긴 것이 너무 후즐근하고 낡아서 혹시 유통기한 지난 음료수 나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멀쩡한 것이었어요.


덕양구에 들어와서 공원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누워서 쉬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때에서야 알았어요.


호수공원은 일산 동구에서도 서쪽에 붙어있구나...


일단 앞으로 걸어야할 거리를 대충 지도를 보며 가늠해 보았어요. 덕양구와 일산동구 사이에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길이 있기는 한데 서울에서 덕양구 사이에 있는 그 길보다는 짧았어요. 조금 많이 걸어야 하기는 했지만 일산동구에 들어가면 걷기는 수월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론은 이론일 뿐.


덕양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술 먹고 돈 없어서 홍대에서 걸어가려면 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일산동구로 가는 과정은 그렇지 않았어요.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서울에서 덕양구가는 것보다 덕양구에서 일산동구를 가는 게 더 쉬워요. 하지만 서울에서 출발해 덕양구를 가로질러서 건너고 다시 일산동구에 가는 것이었어요.


다리는 얼얼하고 표지판에 호수 공원은 나오는데 호수공원의 '호'도 보이지 않았어요. 친구가 가는 길에 자유로가 나오자 자유로 귀신 아냐고 물어보았어요.


"그건 뭔데?"

"그거 완전 유명해!"


친구 말로는 자유로에서 일정한 시각에 차를 타고 지나가면 나오는 귀신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귀신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뭔가 기분나쁜 느낌이 등 뒤에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귀신 본 적 있어?"

"아니."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귀신을 본 적은 전혀 없었어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뭔가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오싹한 기분조차 느껴보지를 못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에는 귀신 따위는 전혀 무섭지 않았어요.


나 외국인이거든.


귀신하고도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무섭든 말든 하죠. 나는 외국인. 러시아어는 모르고, 우즈벡어야 알긴 하지만 모르는 척 하면 돼. 설마 귀신이 한국어 과외 받고 와서 나한테 한국어로 이야기하겠어? 진짜 그러면 근성의 귀신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귀신이 무섭지도 않았고, 특별히 그 등뼈를 싸늘하게 하는 느낌을 받은 적도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는 외국에서 귀신을 보았다고 했어요.


"야, 귀신이 무슨 말로 하더냐?"

"자기네 나라 말로 하던데?"


아...역시 귀신도 사람 놀래키려고 외국어를 공부하는 지극정성 따위는 없구나...


그렇게 떠들다 일산동구에 들어왔고, 호수공원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호수공원을 돌면서 알게 되었어요. 이게 그냥 조그만 곳이 아니라 꽤 큰 곳이며, 입구가 몇 곳 없어서 한 번 들어가면 꽤 많이 걸어야한다는 것을요.


집에 돌아와서 친한 동생이 말한 '중량천 타고 가다 청계천으로 들어가 종각 가기' 코스를 살펴보았어요.


"이건 더 심하잖아!"


언젠가 도전은 해 보아야겠는데 그게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정말 큰 거리를 밤새 걷고 주말 내내 깊게 잘 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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