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서울

옛날로 가는 아침 - 01 남대문

좀좀이 2013. 5. 2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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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이렇게 좋은데 뭐 하고 있는 거지?


유독 덥게 느껴진 오후. 기껏 공부하러 학원에 일찍 나왔는데 글자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저 뿐만이 아니었어요. 학원 교무실에 있는 모든 선생님들이 공부하기 싫어하고 있었어요. 애들이 없어서 다행이야. 애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아마 속으로 비웃었겠지. 자습 지도 할 때에는 그렇게 공부하고 집중하라고 외쳐대는 선생님들이 정작 자기들 자습할 때에는 하기 싫어서 몸을 비틀고 멍때리고 핸드폰 만지작 거리는 모습이라니.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언제나 항상 애들 앞에서 모범을 보일 수만은 없는 법. 끌려 나온 것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학원에서 자습하자고 나왔지만 정말 별 수 없는 날이었어요.


"아...공부하기 싫어..."


늘어지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늘어지기 시작했어요. 오늘 자습은 망했구나. 책도 아예 덮어버렸어요.


"한숨 자고 일어나서 해야겠다."


학원에 굳이 자습하러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낮잠을 자지 않기 위해서. 집에 있으면 자꾸 낮잠을 자게 되어서 낮잠을 안 자려고 학원에 일찍 나가 자습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그러나 도저히 견딜 수 없었어요. 졸리기도 하고, 공부하기도 싫고, 왜 여기 앉아있는지조차 모를 그런 오후. 가장 큰 이유고 뭐고 일단 공부가 전혀 안 되니 한숨 자기로 했어요.


책상에 엎드렸는데 잠이 깨었어요. 고개를 들면 멍해지는 것이 졸음이 몰려오는 것 같았어요. 엎드리면 머리가 맑아지고, 일어나면 머리가 흐려지고...그냥 되는 게 없다는 말이 더 정확했어요. 다른 선생님들과 잡담을 하면서 애들 올 때까지 시간이나 때울까 생각했지만 말할 거리가 없었어요. 억지로 말할 거리를 만들어보려 했지만 학원 끝날 때 집에 돌아가서 어영부영하다가 잠들고, 눈뜨면 적당히 할 거 하다가 씻고 학원 가서 자습하고 수업 있으면 수업하는 일상이다보니 특별한 이야기거리가 있을 래야 있을 수도 없었어요. 차라리 밖에 나가서 조금 놀다 올까? 그러나 놀다 올 곳도 없다는 것이 문제.


차라리 끌려나왔다면 뭐 그러려니 했을 거에요. 강제로 하는 것이니 멍때리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것 하나도 없겠지. 하지만 지금 저는 자발적으로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일찍 나온 것. 나는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의문을 품어보아야 나오는 답은 정해져 있었어요. 만사 다 귀찮고 그저 멍하니 앉아 시간이나 죽이고 있었으니까요. 의미부여조차 전혀 할 수 없는 상황. 그냥 긴 말이 필요없었어요. 이따 애들 수업 시간에 맞추어 학원에 왔어도 되었는데 괜히 자습하겠다고 학원에 일찍 온 내가 바보.


"밖에서 의자에 앉아서 커피 한 잔 하면 딱일텐데..."


햇살은 너무 좋았어요. '그래도 오늘은 내가 애들 수업을 해야 하는 날이니까 멀리 갈 수는 없었을 거야.' 라고 위로를 해 보려고 했지만 오늘은 아침 8시 반 기상. 서울 정도라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정말 어떻게 생각해도 변명이 되지 않는구나. 정말 괜히 학원에 공부하러 나왔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어요. 마음만 먹는다면 어디든 잠깐 바람 쐬러 다녀올 수야 있겠지만 나가기는 귀찮았어요.


'어서 수업 시간이나 되었으면 좋겠네.'


그냥 빨리 애들 오고 수업이나 했으면 하는 생각 뿐. 이렇게 온몸을 비틀며 무료함과 싸우는 동안 시각은 3시가 채 되지 않았어요. 평소에 나와서 자습할 때에는 총알 같이 지나갔어요.


시간이 아주 작정하고 평행을 맞추려 드는 건가?


지금까지 항상 빠르게 지나갔으니 오늘 작정하고 시간도 평행을 맞추려 기어가는 건가? 아니면 시간도 오늘만큼은 만사 귀찮고 의욕도 없어서 억지로 느적느적 기어가는 건가? 사실 정말 중요했던 것은 이거였어요. 왜 하필 오늘 시간이 이렇게 안 가지?


달력을 보니 다음날부터는 연휴의 시작. 여행은 못 간다지만, 마땅히 할 것도 없다지만...아, 몰라!


이 목요일도 금요일도 토요일도 아닌 기분. 멍하니 앉아서 교무실 벽에 걸린 지도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여행을 떠나고 싶은데...그때 떠오른 친구가 하나 있었으니...


- 밤새 걷고싶다 ㅋ;;


친구로부터 바로 답장이 날아왔어요.


- 걸을까 ㅋㅋㅋ


그 다음은 뻔한 이야기의 전개. 평소와 마찬가지로 수업 하고, 학원 끝나자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던져놓고 옷을 갈아입은 후 전철을 탔어요.




얼마만에 보는 한밤중의 남대문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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