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나의 두 번째 디카 - Kodak 이지쉐어 P880

좀좀이 2013. 4. 8.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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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각을 간절히 원했지만, 그렇다고 DSLR로 갈 생각은 없었어요. 일단 DSLR은 전혀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 렌즈 갈아끼우는 것이 귀찮았거든요. 잠깐 필름 카메라 쓰고 싶은 생각에 집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니콘 EM을 들고 오고, 28미리 단렌즈도 하나 샀는데, 사진 찍을 때마다 렌즈 갈아끼우려니 도저히 귀찮고 번거로워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은 얼마 쓰지도 않았고, 그나마도 28미리 렌즈 하나만 끼워서 찍곤 했어요.


게다가 렌즈값이 DSLR 가격보다 더 비싸다는 것도 디카를 공부해가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고, 특히 광각은 그 렌즈들 중에서도 비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일단 렌즈 갈아끼우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데다 렌즈 가격은 제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어요.


일단 w1이 멍점으로 지독한 홍역을 치루었기 때문에 카메라를 바꿀까 생각은 했지만 마땅히 끌리는 것은 없었어요. 당시 끌리는 카메라가 하나 있기는 했어요. 정확한 모델명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후지필름에서 나온 카메라였어요. 사진이 정말 화사하게 나온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던 컴팩트 디카였어요. 저도 그것을 중고로 살까 고민했지만 오직 결과물만 놓고 사기에는 확실히 망설여졌어요. 그 이유는 광각에 대한 갈증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죠. 좀 줄어들 것 같았던 광각에 대한 집착은 잠깐 니콘 EM에 28미리 단렌즈 달고 사진을 찍어보고, 여행을 다녀온 후 더욱 커졌어요.


그러던 중, 인터넷 카페에서 채팅을 하며 노닥거리던 대학교 4학년 초 어느 날. 사진과 전혀 무관한 카페였는데 우연히 사진 이야기가 나왔어요.


"어떤 카메라 쓰세요?"

"코닥 P880이요."

"화각은 어느 정도 되요?"

"그거 24-140이요."


24미리?!!!!!


이건 그 당시 렌즈를 갈지 못하는 카메라에서는 가히 파격적인 광각이었어요. 지금도 24mm를 지원하는 컴팩트 디카 및 하이엔드 디카는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었는데, 이때는 두 개인가 세 개 있었어요. 그리고 당연히 가격은 제가 엄두를 내지 못할 가격이었어요.


"색감은 어때요?"

"아기자기하다고 해야 하나? 색이 참 귀여워요."


이건 대체 무슨 말이야?


채도가 높아서 색이 귀엽다고 말하는데 당최 무슨 말인지 와닿지 않았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지만 뭐가 다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도 그럴만한 것이


제발 카메라 리뷰라고 글 쓸 거면 뽀샵질 좀 하지 마!


사진 후보정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에요.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것. 그런데 디카를 고르기 위해 리뷰를 볼 때 - 특히 렌즈를 갈 수 없는 카메라를 고를 때에는 기본적인 색감도 중요해요. 특히 디카는 필름에 해당하는 CCD를 마음대로 갈아끼울 수가 없다보니 그냥 찍었을 때 어떤 느낌의 사진이 나오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게다가 좋은 디카야 세부 설정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그런 세부 설정을 잘 제공하지 않는 디카라면 더더욱 디카의 기본적인 색감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어요. 붉은 빛이 화사한 사진을 원했는데 전에 언급한 푸른 빛이 도는 결과물을 내놓는 w1 샀다면 당연히 좋은 소리 나올 리가 없죠.


간단히 말해서 카메라 리뷰 글을 보는 이유는 멋진 작품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카메라의 기본적인 성능과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인데, 기능 파악을 위해 보여줄 사진에 대고 후보정해서 멋지게 작품을 만들어 올려버리면 그건 기본적 성능과 특징을 보여주는 리뷰라 할 수 없죠.


그런데 카메라 리뷰라는 글 보면 매우 많은 글이 사진을 포토샵으로 많이 수정한 후 올려요. 그래서 이 카메라가 대체 무슨 색감을 가지고 있는지 당최 파악을 할 수가 없었어요.


P880에 꽂힌 이유는 24미리 외에도 하나 더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그 즈음 무슨 행사인가 해서 P880 신품이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풀려서 중고값도 폭락해 버린 것.




이번에도 역시나 중고로 구입했어요.


"이거 꽤 큰데?"


컴팩트 디카만 주무르며 놀던 제게는 이 카메라가 꽤 크고 묵직하게 느껴졌어요. 직거래에서 돌아오는 길에 심심해서 셔터를 한 장 눌러보았어요.




"응? 뭐지?"


사진의 색이 뭔가 매우 어색한 느낌이었어요.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왜 이런 색이 나왔는지, 아니, 이런 색도 나올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w1과 p880으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었어요. 박스에 담긴 마른 생선을 집중적으로 보아주세요.


먼저 w1으로 찍은 사진




그리고 P880으로 찍은 사진




w1은 생선에 푸른 빛이 돌지만, p880은 노란 빛이 돌았어요.


"사진 예쁘게 나오는구나!"


자동으로 놓고 찍어도 만족스러운 색채를 보여주었어요.


사실 이 당시 코닥은 결과물은 좋은데 나머지는 전부 꽝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어요. P880도 사용해본 결과 이 코닥 디카에 대한 일반적 평에서 벗어난 카메라는 아니었어요. 기계적으로 나쁜 점을 들자면 켜지는 시간이 늦고, 초점 잡는 것도 느린 정도를 뛰어넘어 멍청하고, LCD 액정도 영 못 미더웠어요. 게다가 설정으로 끄면 되기는 하지만 그놈의 덜그덕 덜그덕 초점 잡느라 돌아가는 모터 소리까지...이 카메라를 많이 아끼고 사랑했던 이유는 오직 두 가지 - 24미리를 지원하고 굳이 후보정하지 않아도 색이 참 고왔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카메라 들고 나가기 싫어...


처음에는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밖에 나가려 했어요. 그런데 이게 주머니나 일반 보조가방에 쏙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목에 매달고 다니거나 카메라 가방에 넣어서 다녀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구입 후 몇 분 걸리지 않았어요.


매일 카메라 가방을 들고 나가?


'오늘은 사진을 찍으러 나가야겠다!'라고 나가는 날보다는 그냥 평소에 들고 다니다가 찍고 싶은 거 있음 찍고 그랬어요. 그런데 책가방 메고 거기에 카메라 가방 또 들고 매일 왔다갔다 하기는 싫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사진과 카메라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이 카메라로 사진을 나름 많이 찍었는데, 그 이유는 이 카메라를 들고 7박 35일 동유럽 여행을 다녔기 때문이었어요.


여행 다니며 찍은 사진 외에는 그렇게 많이 찍지 않아서 이 카메라로 찍은 사진 중 괜찮게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은 많지 않아요. w1에 비해서 정말 그 수가 확 줄어버렸죠.






이 카메라도 결국 수리를 한 번 받았어요. 그 이유는 전원이 안 켜졌거든요. 수리를 받은 후 계속 쓰려 했지만 이때는 이미 다른 디카가 두 개나 있었어요. 게다가 얘는 왜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전원이 켜질 때마다 설정이 휙 날아가 버리는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구요. 제 생각에는 내부에 있는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버린 거 아닌가 싶어요. 저 역시 이쪽은 잘 모르기 때문에 확실히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카메라 내부에 별도의 배터리가 또 있고,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카메라에 집어넣는 배터리로 충전된다고 읽은 적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이 P880은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고 어쨌든 설정이 계속 날아가는 증상이 있어서 예전 쓰던 디카가 아예 고장나서 하나 사야하나 망설이던 여자친구에게 적당히 사용하라고 주었어요. 그래서 이 디카는 제 손이 이제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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