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우즈베키스탄 읽기 - 이건 다 그놈 탓이야!

좀좀이 2013. 1. 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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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하나안'이라는 우즈베키스탄 고려인과 관련된 영화가 나왔을 때였어요.


"나 오늘 하나안 봤다."

"그래?"


한국에 있는 친구가 하나안을 보고는 제가 우즈베키스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이 떠올라서 말을 걸었다고 했어요.


"거기 마약 많냐?"

"글쎄다..."


여기도 마약 문제 때문에 민감하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이건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문제이거든요. 정부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좋은 점만 보여주려고 하지만 몇 개 안 되는 정부가 인정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어두운 부분이 바로 마약과 이슬람 극단주의 문제에요. 하지만 '당연히' 마약은 이 나라에서도 음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제가 직접 본 적은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게 있을만한 곳에는 가지를 않구요. 우리나라도 마약 중독자들이 좀 있는 건 전국민이 알지만 마약을 실제 본 사람이 별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거리에 술판 벌려놓은 사람들 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아도 거리에서 마약하면 바로 경찰이 잡아가겠죠. 잡아가서 곱게 물어보고 잘가~ 할 리도 없구요. 그런 건 한국이나 가능한 거구요.


어쨌든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할 정도라면 꽤 큰 문제. 뉴스 보면 정말 아주 가끔 - 여기 와서 한 번인가 마약 관련 뉴스를 보았어요. 항상 좋은 내용만 나오는 뉴스에서 타지키스탄에서 밀수되던 마약이 적발되었다고 나온 것 자체가 매우 놀라운 일.


"혹시 영화에서 부패 경찰 개인 문제로 이야기하지 않냐?"

"그런 감은 있더라."


이 나라에서 영화를 보면 한 번 생각해보면 당연하지만 생각 없이 보면 '이게 뭐야?'라고 말하게 하는 특징이 있어요. 바로 영화가 시원하게 긁어주는 맛은 없다는 것이에요.


영화 같은 것을 보면 문제들은 그냥 찔러보다 마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사실 문제들이라는 것이 완벽한 개인적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도 있지만, 사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문제들도 많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다루다보면 결국 사회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러면 이 나라에서 음...


하지만 이런 문제를 안 다루고는 재미있는 스토리를 짜기 너무 어렵다는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건 이래서 사회 문제를 건드리니 빼고, 저런 건 저래서 사회 문제를 건드리니 빼고...이러면 솔직히 할 말이 뭐가 남나요? 그래서 뻔한 스토리의 영화가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그리고 당연히 사람들은 이런 영화에 식상해하구요. 그런다고 여기 사람들이 외국 문물과 완벽히 차단된 사람들도 아니에요. 오히려 외국 문물은 엄청나게 많이 들어와 있어요. 해외로 일하러 나가는 우즈베크인이 얼마나 많은데 외국 문물이 안 들어오겠어요. 단지, 이게 외부에서 넘쳐나느냐, 내부에서만 조용히 존재하느냐의 문제이죠.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시원하게 문제를 딱 짚어서 비판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돈이 있어도 차를 살 수 없어."

"왜? 우즈베키스탄에는 자동차 공장 있잖아."

"공장이 아제르바이잔이랑 아르메니아 같은 나라에 다 수출해버려서 차가 없어."


여기에서 대화를 더 진행할 수가 없어요. 어쨌든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람들이 돈이 있어도 차를 사기 어려운 이유는 국가와 관계없이 망할 공장이 생산량 대부분을 수출해버려서. 물론 알 사람은 다 알죠. 하지만 표면적으로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나쁜 놈은 오직 그 공장 관계자란 거에요. 즉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것이죠.


이렇게 간접적으로 - 즉 사회 문제도 개인 문제로 치환해서 말해요. 이것은 이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죠. 이 화법을 모르면 변죽만 두드릴 수밖에 없어요. 솔직히 툭 터놓고 말해서 여기 현지인들과 현지에서 정치, 경제 및 사회 문제를 자유롭게 논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관광객은 죽어라고 현지인들과 이야기해보아야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가 없어요. 여기 체류하는 사람들은 이런 대화 방법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이거 나쁘지 않냐?'라고 물어보고, 상대방이 '응'이라고 하느냐, '아니'라고 하느냐를 보는 것이죠. 하지만 관광객한테는 이런 것을 솔직히 말해줄 리도 만무하고, 이런 문제를 알아낼 대화 주제를 찾아내는 건 더욱 어렵죠.


사실 대화 대부분이 이래요. 그냥 적당한 선에서 끊고 문제를 개인탓으로 돌려버려요.


그러다보니 대화를 하든, 영화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든, 전부 문제는 '그놈 탓이야!'로 바뀌어 있어요. 그냥 당한 놈이 운이 없던 것이고, 그 자식이 못된 것인 것이죠. 그래서 이런 것을 모르고 보면 참 감질만 나게 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요. 더 진심을 알려고 말을 더 이어가려고 해도 결국은 그놈만 나쁜 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안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찍었다고 하던데, 사회 비판을 했다면 당연히 촬영허가가 나지 않았을 거에요. 아직 영화를 보지는 못했으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했다면, 그리고 그 감독이 우즈베키스탄에 또 입국할 생각이 있다면 아마 제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주인공은 그냥 운이 지지리 없었던 것이고, 부패 경찰은 때려죽일 놈인 것이죠. 오직 그 부패 경찰 하나만 때려죽일 놈이라는 것이겠죠. 주인공이 부패 경찰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인생이 그리 망가졌을 리도 없었겠죠.


한국 가면 하나안을 구해서 보아야겠어요. 그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지 직접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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