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15일, 제 유튜브 영상에 누가 댓글을 달았어요. 제가 올린 영상에서 귀신이 보인다는 댓글이었어요.
"이건 또 뭔 헛소리야?"
내가 망우리 공동묘지를 간 것도 아니고 멀쩡한 동네 갔구만, 뭔 귀신이야?
촬영하는 동안 오싹한 느낌 하나도 못 받았는데.
댓글을 보고 어이없어서 피식 웃었어요. 귀신이 보인다는 영상은 귀신이 나오게 생긴 동네가 아니었어요. 허름한 동네이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동네였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가 그 동네를 촬영하는 동안 귀신 같은 건 전혀 보지도 못했고, 오싹한 느낌도 못 느꼈어요. 제주도에서 살 때, 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아무 이유 없이 소름이 쫙 올라오는 일이 있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고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등골이 쭈뼛해지고 소름이 쫙 돋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제 영상에서 귀신이 보인다는 댓글을 지울지 고민하다가 그냥 놔두었어요. 혹시 모르잖아요. 사람들이 그 댓글 보고 정말 귀신이 보이는지 제 영상 뚫어져라 쳐다볼지요. 하지만 저는 그 당시 귀신 같은 건 전혀 못 보고 못 느꼈어요.
"서울에 있는 배스킨라빈스 가야겠네."
배스킨라빈스에서 시즌메뉴 신메뉴 아이스크인 팥있는 말차당 아이스크림이 출시되었어요. 그런데 이 아이스크림이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에는 들어오지 않았고, 서울에는 들어왔어요. 그래서 당장 먹으려면 서울을 가야 했어요. 하필 저녁 즈음에 갈게 되었고, 저녁은 아직 안 먹은 상태였어요.
'서울 가서 배스킨라빈스 먹고 골목길 밤 풍경 영상이나 촬영하고 올까?'
일단 서울 가서 배스킨라빈스 팥있는 말차당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의정부로 돌아와서 저녁 먹는 건 사실상 글렀어요. 물론 먹을 수는 있지만, 그렇게 먹고 싶은 메뉴가 아니었어요. 그러면 차라리 서울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밤에 서울을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나았어요.
'서울 어디 가지?'
서울에서 어디를 갈지 고민했어요. 멀리 가기 귀찮았어요. 솔직히 심야시간에 돌아다니며 영상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었어요. 서울 가는 것 자체가 지금 서울 가서 막 돌아다니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배스킨라빈스 신메뉴 아이스크림인 팥있는 말차당 아이스크림 때문에 가는 거였어요.
'서울 가서 생각하자.'
서울에 있는 배스킨라빈스로 갔어요. 팥있는 말차당 아이스크림을 먹고 서울을 조금 걷다가 지하철을 타러 갔어요. 이제 방향을 정해야 했어요.
'도봉구 가볼까?'
도봉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영상을 촬영한 적이 없다.
의정부 바로 남쪽에 있는 서울의 구는 2개 있어요. 하나는 노원구이고, 다른 하나는 도봉구에요. 노원구 가서 영상을 촬영한 적은 몇 번 있었어요. 하지만 도봉구 가서 영상을 촬영한 적은 거의 없었어요. 그 이전에 도봉구는 그저 지나가는 곳에 불과했어요. 도봉구 자체를 목적지로 간 적이 몇 번 안 되었어요.
'도봉구에서 갈 만한 곳 어디 있지? 제일 가기 귀찮은 곳부터 가는 게 좋은데...'
카카오맵으로 도봉구를 봤어요. 도봉구에서 가기 귀찮은 곳은 북한산 인접한 곳이었어요. 방학2동 중에서도 북한산 자락에 있는 곳이 제일 가기 귀찮은 곳이었어요.
'방학2동에서 북한산 자락에 있는 곳 골목길 좀 찍다가 카페 가야지.'
도봉구에는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동네가 있어요. 바로 쌍문동이에요. 쌍문동은 오징어 게임에 언급되는 동네에요. 하지만 쌍문동이 아니라 방학2동을 가기로 했어요. 저는 밥 먹을 때 먹기 싫은 반찬부터 먹거든요. 방학2동은 방학역에서 조금 많이 걸어들어가야 했어요. 신도봉시장 너머 더 들어가야 하는 동네였어요. 이런 곳은 여름이나 겨울에 가려고 하면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곳이에요. 여름에는 걷는 것 자체가 너무 덥고, 겨울에는 산자락 근처에 있는 동네라 추워요. 겨울에 도봉구는 확실히 추워요. 게다가 눈도 많이 내리구요.
전철을 타고 방학역으로 갔어요. 방학역에서 나와서 지도를 보며 방학2동으로 갔어요. 방학2동에서도 제일 안쪽에 있는 곳인 안방학동으로 갔어요. 안방학동에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서울의 밤 풍경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이 동네는 특이하네?'
안방학동은 풍경 자체는 특별한 점이 딱히 안 보이는 곳이었어요. 사람 사는 동네를 넘어서 사람들 자는 동네였어요. 밤인데 그 흔해빠진 쓰레기 봉지조차 거의 안 보였어요. 깔끔하고 조용한 동네였어요. 하지만 희안하게 20대가 많이 나와 있었어요. 거의 대학가 원룸촌 수준으로 20대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있었어요. 여기에 주민들도 집에서 나오는 주민, 집으로 들어가는 주민이 왔다갔다하고 있었어요. 동네 생긴 것은 너무 조용하게 생겼는데 밖에서 나와 있는 사람은 또 다른 동네들에 비해 꽤 많은 동네였어요.
안방학동을 촬영하며 걷는 중이었어요. 지도를 보며 걷는데 길 끝이 산자락 산책로로 이어지며 끝난다고 나와 있었어요.
"별 거 없겠지."
별 생각없이 지도를 보며 길을 따라갔어요. 길 거의 마지막 지점까지 다 왔어요.
위 사진에서 오른편 밝은 곳이 지도에서 길이 끝난다고 나와 있는 지점이었어요.
산 쪽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누가 산책하고 내려오나?'
동네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꽤 보였기 때문에 산 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도 딱히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았어요. 누가 잠깐 산책하거나 머리 식히러 길 따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거라 여겼어요.
수도권 하천 산책로 가보면 절대 사람들이 없을 거 같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나와서 걷고 운동하고 있어요. 진짜 무슨 새벽 2시, 3시에도 사람이 있어요. 여기도 산책로이니 일반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산책할 사람이 아예 없을 시각이었지만, 있어도 놀랄 일까지는 아니었어요. 새벽 2시는 안 되었거든요. 새벽 2시, 3시에도 산책로에 나와서 운동하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새벽 2시 안 된 시각이면 훨씬 정상적이잖아요.
"저거 뭐지?"
아, 잠깐만...저거 뭐야?
저건 사람이 아닌데?
'멧돼지잖아!'
산책로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려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멧돼지였어요.
'서울에서 멧돼지를 보다니!'
황당하고 어이없었어요. 서울에 멧돼지가 출몰했다는 뉴스가 간간이 나오기는 하지만, 제가 서울에서 멧돼지 출몰을 목격할 줄은 몰랐어요.
각자 서로 갈 길 갑시다.
멧돼지가 저를 보기는 봤어요. 멧돼지와 만나면 우산을 펼치고 몸을 숨기라는 말이 떠올랐지만, 당연히 우산 같은 게 손에 있을 리 없었어요. 한 가지 확실히 아는 건 절대 갑자기 뛰거나 소리쳐서 멧돼지를 놀라게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멧돼지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멧돼지가 저를 공격한다면 그건 멧돼지가 제 행동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물론 그 '위협'이 어디까지나 멧돼지의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에 인간 기준으로 파악 못 한 원인일 수도 있지만요.
게다가 이때 저는 먹을 것을 아무 것도 안 가지고 있었어요. 멧돼지를 자극하지만 않으면 멧돼지는 저를 공격할 이유를 못 찾을 거였어요.
눈은 마주쳤어요. 하지만 쓸 데 없이 멧돼지와 눈싸움 벌이지 않았어요. 마치 멧돼지를 못 본 것처럼 뒤돌아섰어요. 조심스럽게 천천히 걸으며 몸을 숨길 곳을 찾았어요. 다행히 트럭 한 대가 있었어요. 천만다행으로 멧돼지도 저를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것 같았어요. 그러니 각자 서로 갈 길 가자고 했어요.
트럭까지 와서 몸을 숨기려다 다시 밖으로 살짝 나왔어요. 이 정도면 트럭 때문에 제가 잘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멧돼지는 다시 산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어요.
정말 위험했어요. 천만다행으로 멧돼지를 보기만 하고 서로 갈 길 가자며 헤어졌어요.
제가 매우 으슥하고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간 게 아니었어요. 주택가에서 매우 가까운 곳이었어요. 주택가 지척이라 별 생각 없이 길 따라 가던 거였어요. 그래도 주택가 근처에서 멧돼지를 발견했으니 망정이지,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이 끝나는 지점인 멧돼지가 있던 자리에서 멧돼지를 만났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해요. 그랬다면 아침 뉴스에 등장했을 수도 있어요.
위 영상이 당시 멧돼지를 촬영한 영상이에요. 영상 촬영중이었기 때문에 멧돼지가 촬영되었어요. 원래 촬영하던 영상에서 멧돼지 출몰 부분만 잘라내서 다시 편집했어요.
'귀신? 귀신 따위 보다 수천 배 무서운 멧돼지 봤다!'
귀신이 무섭다고 해도 멧돼지에 비하면 진짜 귀신 따위, 귀신 나부랭이죠.
멧돼지 출몰 뉴스 보며 멧돼지가 서울에도 나온다고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는데 내가 서울에서 멧돼지 만날 줄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