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덕군 여행을 순조롭게 잘 진행하고 있었어요. 첫날에 울진군 후포항에서 영덕군 영해면으로 내려와서 영해면 중심가를 쭉 둘러봤어요. 저녁에는 영덕군 향토음식인 뿌구리탕을 먹었어요. 둘째날은 새벽에 영해버스터미널로 가서 축산항 가는 버스를 탔어요. 축산항에 도착해서 축산항 일출을 감상하고 축산항 일대를 돌아다니며 구경했어요. 축산항 구경을 마치고 나서 302번 버스를 타고 버스로 그 유명한 영덕 블루로드 B코스를 쭉 구경하며 아름다운 아침 영덕 바다를 아주 편하게 감상했어요. 이후 영덕 읍내에 도착해서 영덕시장과 영덕시장 임시시장을 구경한 후 대박식당 가서 영덕군 향토음식인 가자미 찌개를 먹었어요.
너무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여행이 잘 풀리고 있었어요. 계획대로 다 되지는 않았지만, 계획대로 안 된 부분은 잘 풀렸고, 계획에 없는데 추가로 운이 따라줘서 계획보다 더 잘 된 것들도 있었어요. 축산항 일출은 사실 전혀 계획에 없었어요. 새벽 첫 차를 타고 축산항으로 간 이유는 축산항에 있는 축산우체국에 관광우편날짜도장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영덕 버스 302번이 반드시 타봐야 하는 버스인데, 영덕 버스 302번을 타려면 영해면에서 축산항으로 가야만 했어요. 어차피 축산항 가야 하니까 일찍 가서 축산항 조금 구경하기로 해서 축산항에 첫 차 타고 왔는데 축산항 일출을 봤어요.
이제 다음 일정은 강구항이었어요. 이날 일정의 클라이막스였어요. 이날 일정은 강구항을 가서 구경하는 게 제일 우선이었고, 강구항을 가는 과정에 축산항, 영덕 읍내를 거쳐가며 잠깐씩 구경하는 것이었어요. 영해터미널에서 강구항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바로 갈 수 있기는 했지만, 그거보다는 오전에 축산항과 영덕 읍내를 구경하고 오후에 강구항을 구경하는 것이 더 알차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었거든요.
점심을 먹고 영덕역으로 갔어요. 영덕역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수집한 후, 기차를 타고 강구역으로 갔어요. 강구역에서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를 수집하고 나서 강구역에서 강구항으로 걸어갔어요.
'저녁 뭐 먹지?'
점심은 가자미 찌개를 먹었어요. 매우 잘 먹었어요. 딱히 배고프지 않았어요. 강구항 왔으니 강구항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는 해야 했어요. 아무리 뿌구리탕이 맛있다고 해도 이틀 연속 뿌구리탕 먹는 건 여행 온 상황이라 조금 아니었어요. 여행 왔으면 최대한 다양하게 먹어봐야하니까요.
만약 강구항에서 저녁을 먹지 않고 영해면으로 돌아간다면 저녁 식사는 무조건 뿌구리탕이었어요. 영해면에서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 그나마 영해터미널 길 건너 맞은편에 있는 행복식당이었어요. 영해면에서 저녁으로 행복식당 뿌구리탕 먹고 싶지 않다면 강구항에서 영해면으로 매우 일찍 돌아가야 했구요.
'강구에서 뭐 먹지?'
강구항은 대게
대게는 울진에서 먹었다.
비장의 카드로 아껴뒀던 홍게라면은 후포항에서 먹었어요. 후포항에서 이미 먹은 홍게라면을 강구항 와서 또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후포에서 홍게라면을 먹으면서 식사 계획이 조금 이상해졌어요. 원래 계획은 울진에서 해산물 먹고, 영덕에서 대게 먹고, 포항에서 과메기 먹을 계획이었어요. 그런데 울진에서 해산물 들어간 음식인 비빔짬뽕을 먹었고, 여기에 홍게라면을 먹었어요. 이러자 영덕의 대게 중심지 강구항 와서 먹을 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뭐 있긴 하겠지?'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항은 매우 유명한 관광지에요. 대게 먹으러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이에요. 전국에서 대게로 가장 유명하구요. 영덕 대게의 중심지이지만, 대게만 팔지는 않을 거였어요. 대게 말고 다른 것도 있을 거에요.
'돌아다니다 보면 먹을 거 보이겠지.'
강구시장을 둘러보고 강구항으로 왔어요. 강구항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치열한 경쟁의 순기능이었어요. 가게들마다 서로 경쟁적으로 눈에 잘 띄도록 커다란 대게 조형물을 장식해놓았어요. 여기저기 보이는 커다란 대게 조형물 때문에 대게 식당 밀집 거리, 대게잡이 항구가 아니라 아주 대게 테마파크 같은 외관이 되었어요.
강구항을 구경하며 걸었어요. 강구항 어시장을 지나갔어요. 강구항 어시장을 지나가자 수산물 파는 가게들이 나왔어요.
"과메기네?"
과메기를 팔고 있는 가게가 있었어요. 동광슈퍼였어요. 동광슈퍼 옆에는 플라스틱 의자가 있었어요.
'과메기 사서 저기 의자에 앉아서 먹고 갈까?'
과메기를 식당에서 먹으려고 하면 비싸요. 비싼 건 둘째치고 저는 술도 안 먹고 혼자 여행중이었어요. 그래서 과메기는 먹기 어려운 음식이었어요. 포항이 과메기가 유명하지만, 포항에서 과메기를 사서 먹을 기회가 있을지 몰랐어요. 과메기야 당연히 있겠지만, 그것을 혼자 술 없이 먹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어요. 더욱이 포항에서는 찜질방에서 잠을 잘 거였구요.
과메기를 구입해서 숙소로 들고 가서 먹는 방법도 있었지만,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니기 싫었어요. 이왕이면 바로 여기에서 먹어치우고 끝내고 싶었어요.
"과메기 얼마에요?"
"15000원이에요."
과메기 가격을 물어봤어요. 15000원이었어요. 가격은 괜찮아 보였어요.
"혹시 저기 의자에 앉아서 먹고 가도 되나요?"
"예?"
가게 아주머니께서 당황하셨어요. 근처에 공원 있으니까 공원 가서 먹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저는 가게 바로 옆 의자에 앉아서 먹고 가고 싶었어요. 다 먹고 쓰레기는 가게 아주머니께 드리고 자리 일어나면 깔끔하니까요. 플라스틱 의자는 동광슈퍼 것이었고, 과메기 한 상자 먹고 일어나는 거야 얼마 안 걸릴 거였어요.
가게 아주머니께 혼자 여행왔는데 가게 의자에 앉아서 먹고 가도 되냐고 다시 물어봤어요. 가게 아주머니는 그래도 되기는 하는데 미역, 풋마늘, 야채 같은 거랑 같이 먹어야하는데 의자에 앉아서 먹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어요. 과메기는 보통 미역, 풋마늘, 야채 등으로 싸서 먹으니까요.
"아뇨, 과메기만 먹으려구요."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과메기는 확실히 맛있게 생겼어요. 게다가 과메기만 먹고 싶었어요. 혼자 여행 다닐 때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 기회는 왔을 때 무조건 잡아야 해요.
"그러면 초장은요? 초장은 있어야지."
"초장은 그냥 과메기 위에 뿌려주세요."
가게 아주머니께서 아주 이상한 사람 보는 눈빛으로 저를 바라봤어요. 그래도 과메기를 구입해서 가게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먹고 가겠다고 하니 안 팔 이유는 또 없었어요.
동광슈퍼에서 판매중인 과메기는 손질이 되어 있는 과메기였어요. 과메기 값 15000원과 초장 값 1000원 - 이렇게 16000원을 계좌이체로 지불했어요.
바로 먹고 갈 거였기 때문에 가게 아주머니께 먹기 좋게 잘라달라고 부탁드렸어요. 혼자 먹을 거니까 3등분으로 잘라달라고 했어요. 가게 아주머니께서 과메기를 3등분으로 잘라주셨어요. 그 다음 제가 구입한 초장을 위에 뿌려달라고 했어요. 가게 아주머니께서 과메기 위에 초장을 뿌려주셨어요. 남은 초장은 과메기 상자 안에 넣어주셨어요.
동광슈퍼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과메기를 먹기 시작했어요.
모두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
가게 아주머니부터 이 동네 주민분들,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저를 호기심 가득찬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보통 과메기는 과메기만 먹지 않고 싸서 먹는데 저는 과메기만 먹고 있었어요. 그것도 가게 바로 옆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요.
"우와, 맛있어!"
이것이 바로 햇과메기 파워인가!
누가 과메기 비리다고 했어?
동광슈퍼에서 구입한 과메기는 환상적으로 맛있었어요. 첫 입부터 엄청 맛있었어요. 과메기는 매우 고소했어요. 잘 구운 꽁치구이 같은 고소한 맛이 확 퍼졌어요. 식감은 쫀득하고 쫄깃했어요. 전체적으로 조금 쥐포 같은 느낌이었는데 쥐포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나게 고급진 맛이었어요. 입에 짝짝 달라붙고 계속 먹으라고 재촉하는 맛이었어요. 제가 기대했던 맛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더욱 충격적으로 맛있었던 이유는 하나도 안 비렸어요. 아예 안 비렸어요. 꽁치구이보다 더 안 비렸어요. 신기했어요. 진한 꽁치 고소한 맛이 가득했고, 비린맛은 하나도 없었어요.
거침없는 뜨거운 애정 표현의 맛!
영덕 강구항에서 먹은 과메기 맛은 유혹이니 간보기니 그런 거 없었어요. 서로 거침없이 뜨겁게 애정 표현을 하는 맛이었어요. 서로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는 그런 맛이었어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먹는 방식으로 먹었다면 로맨스 영화 데이트 장면 같은 맛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오직 과메기에 초장만 먹었기 때문에 수위가 상당히 높았어요. 18금 딱지는 안 붙더라도 15세 관람가 이상부터 허용될 진한 애정 행위 같은 맛이었어요.
"영덕 과메기가 이렇게 맛있었어?"
먹으면서 놀랐어요. 제 기대치에서 까마득히 벗어난 매우 맛있는 맛이었어요. 저도 생선 음식이니까 어느 정도는 비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비린맛 하나도 없고 꽁치의 좋은 맛만 엄청나게 증폭되어 있었어요. 게다가 식감이 매우 좋았어요. 씹는 맛도 좋고 먹는 맛도 좋았어요.
과메기는 지금까지 포항 음식으로 알고 있었어요. 영덕에 도착해서 강구항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과메기는 전혀 기대 안 했어요. 영덕 과메기가 이렇게 맛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영덕이 포항 옆 동네니까 이 동네도 과메기 먹기야 하겠지만, 딱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완전히 의외였어요. 머리 속에서 앞으로 과메기는 포항 구룡포가 아니라 영덕 강구항으로 바뀌어버렸어요.
"와, 어떻게 저렇게 먹어?"
저를 구경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말씀하셨어요.
"아니다. 과메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렇게도 먹는다."
아주머니의 남편분으로 추정되는 남자분이 아주머니께 과메기 좋아하는 사람중에는 저처럼 과메기만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어요.
"안 비려요?"
"예, 하나도 안 비려요!"
사람들이 제게 안 비리냐고 물어봤어요. 진짜 하나도 안 비리다고 대답했어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하나도 안 비렸어요. 비렸으면 저도 몇 점 먹다가 15000원으로 과메기 경험했다고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겠죠. 너무 맛있어서 의자에 앉아서 계속 집어먹고 있었어요.
초장 안 찍은 과메기 vs 초장 안 찍은 과메기
둘 다 맛있었어요. 과메기 맛이 강해서 초장 찍은 과메기를 먹은 후 초장 안 찍은 과메기를 먹어도 맛있었어요. 그런데 양이 많았어요. 많이 먹으려면 초장이 필요하기는 했어요. 양이 많고 맛이 강해서 초장 안 찍고 정말 생으로 과메기만 먹으면 조금 물리는 맛이었어요. 초장을 찍어먹기도 하고 초장을 안 찍어먹기도 하면서 매우 맛있게 과메기를 즐겼어요.
가게 아주머니께서도 제가 계속 과메기를 맛있게 먹는 것을 보더니 기분이 좋아지신 거 같았어요. 가게 옆에서 과메기를 먹고 있는 저를 보고 사람들이 동광슈퍼 과메기를 구경하러 왔어요. 그리고 진짜 구입해서 간 사람들도 몇 명 있었어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의정부요. 혼자 여행왔어요. 숙소가 영해에 있어서 이따 영해 돌아가야 해요."
"멋지네요."
"여기 과메기 하나도 안 비리네요?"
"예, 우리 과메기 맛있어요. 그런데 과메기 진짜 좋아하시나 봐요."
"너무 맛있어요. 하나도 안 비려요. 여기 왔으니 과메기 먹고 가긴 해야 하는데 혼자 온데다 술 안 마셔서 애매했거든요. 여기 의자 있는 거 보고 바로 물어봤죠."
가게 아주머니께서 웃으셨어요. 과메기를 전부 다 먹었어요. 마지막 한 조각까지 매우 맛있게 잘 먹었어요.
과메기를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강구항 해안가를 따라서 북쪽으로 올라갔어요.
바닷가에서 과메기를 만들고 있었어요. 허락을 받고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했어요.
이제부터 강구항은 과메기 항구다!
제게 강구항은 이제부터 과메기 항구에요. 포항 과메기 같은 거 모르겠어요. 제게 과메기는 강구항이에요. 영덕 과메기 만세에요. 싱싱한 햇과메기에 완전히 홀려버렸어요.
강구항 일대 구경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아, 아까 동광슈퍼 사진 안 찍었지!"
과메기 사진만 찍고 동광슈퍼 사진 찍는 것은 깜빡했어요. 그래서 동광슈퍼 사진을 찍고 가기로 했어요.
동광슈퍼에는 꽁치 과메기도 있고 청어 과메기도 있었어요. 그리고 그 외 건어물도 있었어요. 위의 사진에서 사진 제일 왼쪽 구석 보라색 플라스틱 의자가 제가 앉아서 과메기 먹었던 의자에요.
동광슈퍼에서는 과메기에 곁들여 먹는 야채쌈과 초장도 같이 판매하고 있었어요. 저야 바로 먹고 가겠다고 야채쌈은 구입 안 하고 초장만 구입했지만요.
'올 겨울 내내 계속 회자되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어요. 지나가던 모두가 동광슈퍼 옆 보라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오직 과메기만 먹고 있는 저를 보고 깜짝 놀랐으니까요. 가게 아주머니도 매우 당황했고 엄청 놀란 거 같았어요. 게다가 몇 점 먹다가 못 먹고 일어날 거라는 여기 사람들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마지막 한 점까지 깔끔히 다 먹었어요. 그것도 마지막 한 점까지 너무 맛있게요. 그러니 어쩌면 정말로 올 겨울 내내 제 이야기가 회자될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이 와서 야채도 없이 과메기를 초장만 푹푹 찍어서 엄청 맛있게 먹고 갔다구요. 게다가 혼자 한 상자 다 깔끔히 먹고 갔다구요.
괜찮아. 너무 맛있게 먹었으니까.
과메기 맛도 절대 잊을 수 없고 과메기를 먹던 그 순간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어요. 영덕 과메기 맛있는 걸 처음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