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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도 자국어 보급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어요.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직까지도 실상은 지지부진한 상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한 문자개혁 잘못 했다가 혼돈의 상태라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거에요. 우즈벡어 보급은 둘째치고, 우즈벡어를 라틴으로 적을지 키릴로 적을지 확실히 결단을 내리고 강력히 밀어붙이지 않은 나머지 우즈벡어를 적는 문제조차 문제가 되어버린 상황.


한창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어를 몰아내고 우즈벡어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할 때, 그 노력의 일환으로 러시아어 차용어를 우즈벡어로 바꾸려는 작업도 진행했어요.


결과요? 당연히 대실패. 워낙 반발이 심해서 1년 정도 우즈벡어 신조어를 보급해보려고 노력하다가 포기. 그리고 현재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영어+하다' 조합을 심심찮게 쓰는 것처럼 여기도 러시아어 명사에 우즈벡어 동사 조어법을 적용시켜 새로운 동사를 만들어내고 있어요. 그냥 러시아어 단어를 가져와 쓰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구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즈벡어 신조어로 러시아어를 대체하려고 했던 노력은 매우 과거에 일어난 일이에요. 이건 지금 현지에서 우즈베크어를 배우는 제가 알 수가 없는 내용.


제가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 이것을 알게 된 이유는 바로 교과서를 통해서였어요. 교과서에는 가끔 나오거든요. 요즘은 이 정착에 실패한 우즈벡 신조어들이 수수께끼로 활용된다고 해요.


제가 이 시기에 나온 신조어들 가운데 알고 있는 것은 몇 개 없어요. teyyare 가 비행기, teyyaregoh 가 공항, muzlatgich 가 냉장고. 이 단어들은 그래도 이쪽 언어를 알면 유추가 가능한 단어들이에요. teyyare 는 아랍어에서 온 단어이고, muzlatgich는 muzlatmoq 이 '얼리다'는 뜻이니 쉽게 짐작할 수 있죠.


oynai jahon

ойнаи жаҳон


하지만 이것은...?


oyna 는 거울. jahon 은 세상. 게다가 이건 정말 고어 - 즉 타지크어 방식으로 써 놓았어요. 타지크어나 깊은 우즈벡어 지식이 없으면 아예 뭔 말인지 헤매게 생긴 말. 설령 타지크어 지식이나 깊은 우즈벡어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번역하면 해괴해요. 번역해보면 '세계의 거울'?


저 해괴한 단어의 뜻은 바로 '텔레비전'이랍니다.



교과서 읽는데 하필 저게 전래동화에 나와서 뭔가 했어요. 잠깐...


전래동화에 텔레비전이 나와서는 안 되잖아!


지금 파샤가 나오고 있는데 텔레비전이 왜 나와? 그나마도 철자도 틀렸어! 우즈벡어-우즈벡어 사전을 찾아보니 이건 제가 적어놓은 게 맞아요. 러시아어 телевидение 대신 oynai jahon 이 나온 것 자체는 신기했어요. 딱 여기 외에는 전부 저 러시아어로 적혀 있거든요. 그래도 muzlatgich 는 여기 저기 군데군데 나오지만, oynai jahon은 딱 여기에만 나오는 말. 그런데 왜 하필 전래동화에? 파샤도 궁전에서 배깔고 드러누워 TV 보고 딩가딩가 하고 있었던 거야? 제정러시아, 그리고 그 이후 볼셰비키 쳐들어올 때 파샤들은 뜨뜻한 방에서 배깔고 드러누워서 어떻게 걔네들이 쳐들어오나 실시간 중계 보고 있었던 거야?


제가 내린 결론은 이 작가가 이 이야기를 애들에게 들려주며, '모든 물건 가운데 정보를 주는 물건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애들이 질리도록, 아니, 작가가 히스테리 걸릴 정도로 '텔레비전이요!'라고 대답했던 것. 그래서 작가가 짜증이 제대로 나 있던 상태에서 이 교과서에 수록된 지문을 쓰던 중 무의식적으로 '모든 물건 가운데 정보를 주는 물건이 '텔레비전'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라고 적은 것. 이러면 꽤 그럴싸해요. 애들에게 물어보았을 때 원하는 답을 듣기란 참 어려운 일이니까요. 솔직히 코찔찔 꼬맹이들이 파샤가 TV를 보았는지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는지 알 리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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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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