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 여행 이틀째였어요. 원래 계획은 2박 3일로 속초를 여행하는 것이었지만 일기예보를 보니 셋째날에는 비가 퍼붓는다고 나오고 있었어요. 비 퍼붓는 속초를 돌아다니며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비 내리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안 좋아해요. 더욱이 만약 2박3일 일정으로 여행을 진행한다면 마지막 날은 평일에 수요일이었어요. 더욱 심심할 거였어요. 그래서 일정을 1박 2일로 바꾸었어요.
일정을 1박 2일로 바꾸니 일정이 널널해진다?
진짜로 그럤습니다.
강원도 속초 여행은 그렇게 많은 준비를 하지 않고 왔어요. 애초에 이때 속초로 여행을 떠난 이유가 속초 여행을 하고 싶기도 했지만, 마침 양양전통시장 5일장날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있는 마지막 양양 5일장이라서 양양 5일장 구경하고 그 다음에 남은 일정은 속초 여행하는 것이 계획이었어요. 속초야 워낙 유명한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와서 정보를 구해도 될 거고, 만약 와서 구한 정보가 부실하다면 카페 들어가서 인터넷으로 바로 검색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알아본 것 별로 없어도 부담없이 떠났어요.
하늘은 매우 찌뿌둥했어요. 언제라도 비가 내리기 시작해도 하나도 안 이상할 하늘이었어요. 바람도 매우 강하게 불었어요. 아침에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바람 세게 부는 게 오늘 비 오려고 하는 모양이라고 했어요. 제 경험에 비추어봐도 분명히 비가 많이 내릴 거였어요. 바람이 딱 비 몰고 오는 바람이었어요. 속초 남쪽 하늘은 무거운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어요.
"어디 갈 만한 곳이 없네."
일정을 1박2일로 줄이자 오히려 갈 만한 곳이 없어져버렸어요. 일정이 매우 널널해졌어요. 보통 일정을 줄이면 일정이 더 힘들고 빡빡하게 변하기 마련이에요. 그렇지만 이때는 일정을 줄이니까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남아버렸어요.
속초 와서 첫째날에 양양읍으로 버스 타고 갔다가 돌아올 때 영랑호까지 올라갔어요. 영랑호에서 해안가를 따라서 쭉 내려왔어요. 그래서 속초시 북부는 얼추 다 구경했어요. 청초호 남쪽 속초아이와 속초해수욕장이 있는 곳은 양양 갈 때 버스 타고 가면서 지나가며 봤어요. 그쪽은 다시 가볼 만 했지만, 아침에 그쪽으로 걸어가다가 청초호수공원까지 갔다가 다시 속초중앙시장 쪽으로 돌아왔어요. 또 청초호수공원쪽으로 한참 가기는 그랬어요.
하필이면 속초 시내에서 1번 버스를 타면 북쪽 고성군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이날 알게 되었어요. 2박3일 일정이었다면 하루는 적당히 속초 시내에서 놀고 다음날 1번 버스 타고 고성군까지 올라갔을 거에요. 아니면 당장 이날 고성군까지 올라갔다가 해안선 따라 걸어내려오며 다시 속초로 돌아올 수도 있었구요. 어차피 찜질방 요금은 12시간 이용 기준이기 때문에 속초 시내에 너무 늦게 도착해도 나쁠 거 없었거든요. 그러나 아무리 봐도 날씨가 전혀 안 따라줄 거 같았어요. 그래서 고성군까지 가는 것도 포기해야 했어요.
청초호 남쪽을 가는 것도 포기하고 고성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도 포기하니 남는 거라고는 속초중앙시장 근처에서 맴도는 것만 남았어요. 이러니 일정이 엄청 널널해졌어요. 속초중앙시장에서 속초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가도 되요. 길을 찾고 말고 할 것도 없구요. 바닷가 따라서 걷다가 수복탑 나오면 왼쪽으로 꺾어서 조금만 걸어올라가면 속초시외버스터미널이니까요.
속초 중앙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점심 식사 할 만한 식당이 없는지 찾아봤어요. 점심 식사를 하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돌아다니다가 버스 타고 돌아가면 대충 시간이 맞을 거였어요.
"마지막으로 뭐 먹지?"
속초에서 마지막으로 먹을 것으로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봤어요. 역시 알아본 것이 없어서 떠오르는 것도 없었어요. 만약 누군가와 같이 왔다면 오징어 순대를 먹으면 되었겠지만, 저는 혼자 왔어요. 어디 가야 오징어 순대를 먹을 수 있는지도 몰랐어요.
속초중앙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식당 한 곳을 발견했어요.
"문어 국밥?"
식당 이름은 속초문어국밥이었어요. 문어 국밥을 판매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어요.
"문어 국밥 먹어볼까?"
문어 국밥이 궁금해졌어요. 문어국밥은 전에 동해시에서 한 번 먹어본 적이 있었어요. 여기 문어 국밥은 어떤 맛이고 어떤 특징이 있을지 한 번 먹어보고 싶었어요.
"자리 없는 거 같은데?"
1층 테이블에는 좌석이 꽉 차 있었어요. 자리가 없었어요.
'저거 먹고 돌아가면 딱 좋을 거 같은데...'
멀찍이서 식당을 바라봤어요. 다른 곳 갈지 고민했어요. 그러나 다른 곳 돌아다녀봐도 저기만한 곳이 없을 거 같았어요.
'일단 가보자. 자리 없으면 조금 기다리면 되겠지.'
속초문어국밥으로 갔어요.
"자리 있나요?"
"예, 2층에 자리 있어요."
직원분이 2층에 자리가 있으니 2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하셨어요. 1층은 좌석이 없었지만 2층도 식당이었고, 2층에는 좌석이 있었어요. 2층으로 올라갔어요.
"뭐야? 2층에는 자리 많네."
피식 웃었어요. 아까 식당 밖에서 들어갈지 망설이며 속초문어국밥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저처럼 속초문어국밥에 들어가려다가 1층 자리가 꽉 차 있는 거 보고 다른 식당을 찾아 떠난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어요.
'하긴, 점심 때가 지났는데.'
오후 1시 20분 쯤에 갔기 때문에 점심 시간은 지난 때였어요. 점심 시간이 지났고 평일에 관광객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식당이 만석일 거 같지는 않았어요. 1층은 만석이었지만 2층까지 만석일 시간은 아니었어요.
"여기는 2층에 좌석 상황 안내판이라도 문 앞에 붙여놔야겠다."
나중에 보니 2층에 좌석이 있다고 적힌 스티커가 식당 입구에 붙어 있었어요. 그러나 의자에 가려서 잘 안 보였어요. 속초문어국밥은 1층과 2층이 있기 때문에 1층에 사람이 많고 좌석이 다 찼어도 가서 좌석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 식당이었어요.
문어국밥을 주문하고 나서 식당 2층 내부를 둘러봤어요.
식당 2층 한쪽 벽에는 문어국밥 먹는 방법이 나와 있었어요.
조금 기다리자 제가 주문한 문어국밥이 나왔어요.
"문어는 너무 익히면 질겨지니까 뜨거운 국물에 살짝 담가서 드세요."
"예."
직원분께서 문어국밥을 먹는 방법을 설명해주셨어요. 식당 벽에 붙어 있는 문어국밥 먹는 방법과 같았어요. 문어는 뜨거운 물에 너무 익히면 질겨져서 맛없으니까 살짝 담갔다 먹으라고 하셨어요. 와사비 좋아하면 간장에 와사비를 조금 넣고 문어를 간장에 찍어먹으라고 알려주셨어요. 샤브샤브 먹는 기분으로 문어를 먹으면 될 거 같았어요.
그리고 취향에 따라 청양고추나 다대기를 국물에 넣어서 먹으라고 알려주셨어요.
속초문어국밥의 문어국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먼저 알려준 대로 국밥 위에 올라가 있는 문어를 뜨거운 국물에 살짝 담가서 가볍게 익힌 후 간장을 찍어 먹었어요. 문어는 부드럽고 맛있었어요. 문어는 간장을 안 찍고 먹어도 매우 맛있었어요. 문어 자체에 짭짤한 맛이 배어 있어서 굳이 간장을 안 찍고 먹어도 간이 맞았어요.
문어를 건져먹다가 국물을 맛봤어요.
이게 맛 없으면 그게 이상하겠다.
문어국밥 국물 간은 매우 약하게 되어 있었어요. 국물은 시원하고 깊은 맛을 자랑하고 있었어요. 쇠고기 맛과 문어 맛이 섞여 있었어요. 국물 맛이 섬세하면서 들꽃이 가득 핀 들꽃처럼 수수한 거 같으면서도 화려했어요.
청양고추를 다 넣었어요. 국물 맛이 더욱 맛있어졌어요. 청양고추를 넣자 가볍게 매콤한 맛이 더해졌어요. 간이 약한 부분을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추가된 가볍게 얼큰한 맛이 보충해주고 있었어요.
문어를 다 건져먹고 국밥을 뒤섞었어요. 안에는 쇠고기와 우거지가 들어가 있었어요. 쇠고기도 매우 고소하고 맛있었어요. 우거지와 같이 먹는 쇠고기 맛은 정말 별미였어요. 문어를 다 건져먹고 쇠고기와 우거지를 같이 먹으니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요리였어요.
"이거 완전 보양식이네!"
더운 여름에 몸보신하기 위해 삼계탕 대신 먹어도 좋을 맛이었어요. 맛이 자극적이지는 않은데 든든하고 힘이 나는 맛이었어요. 갑자기 힘이 불끈 솟는 느낌이 아니라 누가 가볍게 어깨를 주물러주는 느낌으로 시원하고 힘이 났어요.
정말 깔끔하게 다 먹었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가격이 15000원이라서 저렴한 국밥은 아니지만 문어와 쇠고기가 들어갔고, 문어, 쇠고기 모두 국산이라면 납득가는 가격이었어요. 그리고 맛이 15000원 가치가 있는 맛이었어요. 일부러 찾아와서 먹어도 후회하지 않을 맛이었어요.
단, 국물 맛은 간이 약한 편이었어요. 청양고추를 넣으면 매운맛으로 약한 간이 보완된다고 하지만 수도권 음식 기준으로 보면 간이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을 거였어요. 국물맛 자체가 맛의 균형이 매우 잘 맞고 섬세해서 다대기를 넣어서 먹으면 맛의 조화가 깨질 거 같았어요. 만약 뭔가 맛이 조금 심심하다고 느낀다면 소금만 조금 더 넣어서 간을 조금 더 강하게 만들면 입에 딱 맞을 거에요. 아쉬운 점이라면 테이블에 소금은 비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소금만 비치되어 있다면 누구나 다 먹고 너무 맛있다고 좋아할 맛이었어요. 저는 소금 안 넣고 먹어도 너무 맛있어서 좋아했지만, 강한 짠맛에 길들여진 사람이라면 국물 한 숟갈 맛본 후 소금 달라고 해서 소금 살짝 쳐서 먹으면 입에 매우 잘 맞을 거에요.
속초에서 한 끼 식사할 맛있는 국밥집을 찾는다면 속초문어국밥이 있어요. 속초문어국밥의 문어국밥맛은 바다맛과 육지맛이 섞인 매우 맛있는 국밥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