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두 귀를 의심했어요.
2023년 6월 19일 아침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설악해맞이공원으로 갔어요. 새벽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첫 차를 타고 속초를 오기는 했지만 속초 여행 준비는 거의 하지 않고 왔어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속초 여행 간 김에 양양전통시장 5일장을 갈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급히 와버렸어요. 속초에서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한 건 없었어요. 그저 양양전통시장 5일장 구경하고, 속초와 양양에서 제가 모을 수 있는 여행 스탬프 수집하는 것 정도만 알아보고 왔어요.
모르면 물어보면 돼
속초 여행을 하나도 준비하지 않고 왔지만 국내여행이라 모르면 물어보면 되었어요. 속초는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관광안내센터가 있을 거였어요. 속초시 관광안내센터 가서 속초에서 어디를 가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고, 주요 먹거리는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거였어요. 속초는 설악산만 안 가면 걷고 버스 타면서 여행하기 좋은 도시에요. 그래서 별 걱정이 없었어요.
설악해맞이공원에는 관광안내센터가 있었어요. 관광안내센터로 들어갔어요. 직원분께 인사드리고 속초 관광 정보를 여쭈어봤어요. 직원분께서 친절하게 여러 가지 알려주셨어요. 속초에서 유명한 먹거리와 어디 가서 먹는 것이 좋은지도 여쭈어봤어요. 직원분께서 오징어순대, 닭강정, 냉면 같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아는 음식들을 알려주시면서 단호박 식혜도 알려주셨어요.
속초 대표 음식들은 속초가 워낙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매우 많이 들어봤어요. 오징어 순대, 회냉면 같은 음식은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이전부터 유명했어요. 이 음식들은 실향민 관련 프로그램에서 곧잘 나오는 음식이었기 때문에 여행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도 몇 번은 들어본 음식이었어요. 속초 닭강정은 속초에 있는 만석닭강정이 엄청나게 유명해지면서 동해안 일대 대표 음식을 닭강정으로 바꿔버렸어요. 그래서 오징어 순대, 회냉면, 닭강정 같은 것을 들었을 때는 별 느낌 없었어요.
하지만 '단호박 식혜'라는 말을 듣고 놀랐어요. 속초에서 단호박 식혜가 유명하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속초는 워낙 유명한 관광지에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어지간한 건 한 번은 들어봤어요. 단호박 식혜 하나 빼구요. 제가 모르는 속초의 유명한 먹거리가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어째서 속초의 대표 음식 중 하낙 단호박 식혜인지 궁금했어요.
직원분께 왜 속초의 대표음식이 단호박 식혜인지 여쭈어봤어요. 직원분께서는 단호박 식혜가 속초에만 있는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더 자세한 설명은 없었어요.
'속초 대표 먹거리 단호박 식혜? 이유가 뭐지?'
직원분께서 속초에서 추천하는 음식으로 단호박 식혜도 알려주셨기 때문에 단호박 식혜가 보이면 마셔보기로 했어요. 혼자 왔기 때문에 속초의 유명한 여러 음식을 다 먹어볼 수는 없었어요. 2인분 이상으로 파는 음식들도 있을 거고, 혼자 먹기에는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운 음식들도 있을 거였어요. 그러나 단호박 식혜 정도라면 혼자서 마실 수 있을 거 같았어요. 물론 죄다 1.5L 패트병에 넣어서 판매한다면 무리겠지만, 그래도 관광지인데 그렇게만 판매하고 있을 거 같지는 않았어요.
단호박 식혜가 왜 속초 대표 먹거리 중 하나인지 바로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지만 이제야 속초 여행 일정을 시작했어요. 당장 양양부터 가야 했고, 양양에서 다시 속초로 올라와서 속초를 또 돌아다녀야 했어요. 그래서 여행 중에 틈 나면 그때마다 어찌 하여 단호박 식혜가 속초 대표 먹거리 중 하나인지 찾아보기로 하고 먼저 여행 일정을 진행했어요.
양양 일정을 마치고 속초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어요. 버스 안에서 속초 단호박 식혜를 검색해봤어요.
'정보가 별로 없네?'
속초 단호박 식혜 정보는 별로 없었어요. 단호박 식혜가 속초 대표 먹거리가 된 이유도 못 찾았고, 단호박 식혜가 속초 전통 음식인지도 못 찾았어요. 가자미 식해는 있었어요. 그런데 가자미 식해는 고체 음식이고, 단호박 식혜는 액체 음식이에요. 가자미 식혜는 밥반찬이고 단호박 식혜는 음료에요. 가자미 식해가 속초 음식인 것은 알고 있어요. 이것 또한 실향민 음식이에요. 하지만 단호박 식혜와 가자미 식해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리 없었어요.
버스 안에서 속초 단호박 식혜 정보를 찾아봤지만 어째서 속초 대표 먹거리 중 하나가 단호박 식혜인지는 결국 못 찾았어요. 구글, 네이버 둘 다 검색해봤지만 속초 단호박 식혜가 맛있다는 글만 있고 단호박 식혜와 속초의 관계를 알려주는 글은 없었어요. 버스가 영랑호까지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렸어요. 다시 걸어서 돌아다니며 여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인터넷에는 속초 단호박 식혜의 유래 정보가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검색을 마쳤어요.
영랑호에서 청초호로 걸어서 내려갔어요.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어요. 저녁 시간이 되자 속초관광수산시장 구경을 하기로 했어요.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갔어요.
"와, 오늘도 사람 많네?"
2023년 6월 19일은 월요일이었어요. 월요일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별로 없을 거라 예상했어요. 그러나 속초관광수산시장에는 관광객이 많았어요. 속초관광수산시장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했어요. 단호박 식혜를 판매하는 가게가 여러 곳 있었어요.
속초관광수산시장을 구경하면서 관광객이 많이 몰려 있는 중앙 거리 옆 골목들도 들여보며 걸었어요. 골목에 식혜를 쌓아놓고 판매하고 있는 가게가 있었어요. 왠지 저기가 진짜로 맛있는 집 같았어요. 골목길로 들어가서 식혜가 쌓여 있는 가게로 갔어요. 가게 이름은 깜순이네 식혜였어요. 간판에는 옛날 식혜와 단호박 식혜를 판매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어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할머니께 인사드렸어요. 단호박 식혜를 봤어요. 샛노란 음료가 들어 있는 통이 단호박 식혜였어요.
식혜 가격부터 봤어요. 단호박 식혜 큰 통 가격은 9천원, 작은 통 가격은 3천원이었어요. 일반 식혜 가격은 큰 통 8천원, 작은 통 3천원이었어요.
'여기가 진짜인 거 같은데?'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며 본 단호박 식혜 중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 색깔이 가장 진했어요.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 색깔은 진한 오렌지색에 가까웠어요. 푹 삶은 단호박색이었어요.
"단호박 식혜 작은 거 하나 주세요."
단호박 식혜 작은 것은 500mL였어요. 할머니께서는 매우 꽝꽝 잘 얼은 식혜를 한 통 주셨어요.
"아뇨, 저 바로 마실 거라서 다 녹은 걸로 주세요."
바로 마실 거였기 때문에 다 녹은 걸로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잘 녹은 단호박 식혜를 찾아서 주셨어요. 깜순이네 식혜는 계좌이체도 되었어요. 할머니께 토스뱅크로 계좌이체로 3천원을 보내드리고 시장에서 빠져나왔어요.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얼핏 보면 진한 오렌지 주스처럼 생겼어요. 다른 가게에서 파는 단호박 식혜보다 훨씬 진했어요. 통을 조심스럽게 기울였어요.
단호박 식혜 통을 기울이자 곤죽이 되어 짓이겨진 단호박 조각이 듬뿍 들어 있는 것이 보였어요. 단호박 식혜를 마셨어요. 한 모금 마시자마자 소리쳤어요.
"여기 진짜다!"
바로 깜순이네 식혜로 돌아갔어요.
"할머니, 여기 진짜 맛있네요! 한 통 더 사러 왔어요."
할머니께서는 꽝꽝 얼은 단호박 식혜를 꺼내주셨어요.
"아뇨, 그거 말고 다 녹은 거요."
"왜? 잘 얼은 걸로 가져가."
"아니요, 돌아다니면서 마실 거라서요."
"더워서 금방 녹아. 시원하게 마시려면 얼은 걸로 가져가야지."
"바로 벌컥벌컥 마시려구요. 여기 진짜 맛있는데요?"
"그럼! 이거 다 내가 직접 만든 건데."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대답하셨어요. 제가 제일 많이 녹은 걸로 달라고 하자 할머니께서는 이미 한 통 마시고 있고 바로 마실 거 아니니까 그래도 조금 얼어 있는 걸로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살짝 얼어 있는 단호박 식혜를 고르셨어요. 할머니께서 검은 비닐봉지에 단호박 식혜를 넣으셨어요.
"할머니, 식혜만 주세요. 봉지는 필요없어요."
"응?"
할머니께 식혜를 받아서 가방 옆에 끼워넣었어요. 할머니께서는 매우 편하겠다고 하시며 웃으셨어요.
계좌이체로 계산을 한 후, 할머니께 여쭈어봤어요.
"할머니, 단호박 식혜가 속초 음식인가요?"
"음...응. 여기 밖에 없으니까."
할머니께서는 단호박 식혜가 속초에만 있으니까 속초 것일 거라고 하셨어요.
"할머니, 여기 사진 찍어도 될까요?"
"나 나오는데?"
"아..."
"괜찮아, 찍어."
할머니께서 자기도 같이 찍으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깜순이네 식혜 정면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속초관광수산시장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정말 맛있었어요. 한 모금 마시자마자 바로 되돌아가서 한 통 더 구입하게 만든 굉장한 맛이었어요.
홍시맛 식혜!
속초중앙시장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단호박 같은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한 모금 마시자마자 매우 신기했어요. 단호박 식혜가 아니라 홍시 식혜라고 해도 믿을 맛이었어요. 단호박 맛이 아니라 홍시 맛이 나는 식혜였어요. 홍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열광하면서 마실 맛이었어요. 단호박 식혜라고 해서 단호박 특유의 풋풋한 거 같은 향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느낌은 없고 홍시향과 홍시맛이 났어요.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단호박이 꽤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단호박 식헤는 걸쭉했어요. 걸쭉하다고 하기는 했지만 아주 진한 액체 수준이었어요. 푹 익어서 흐물흐물해진 홍시를 빨아먹는 느낌이었어요. 음료로 마시는 액체 중에서 걸쭉한 편이었어요. 음료 마시는 느낌도 물을 마시는 느낌보다는 과일을 아주 곱게 갈아서 만든 쥬스를 마시는 느낌이었어요. 홍시를 믹서기에 넣고 아주 잘 갈면 비슷한 느낌의 액체가 탄생할 거 같았어요.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처음부터 끝까지 홍시맛과 매우 비슷했어요. 그래도 단호박 식혜였기 때문에 마시다 보면 매우 작은 단호박 조각이 있었어요. 홍시맛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맛 속에서 단호박 향이 아주 살짝 느껴지기도 했구요.
속초관광수산시장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맛으로 먹어도 좋고, 속을 달래기 위해 마셔도 좋을 음료였어요.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단맛이 기분좋게 만들어줬어요. 홍시가 나올 철이 아닌데 홍시 먹는 느낌도 들었어요. 밤에 야식 먹기 부담스러울 때 한 컵 홀짝이면 최고일 거 같았어요. 속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조금씩 홀짝여도 좋은 맛이었구요.
단호박 식혜인데 홍시맛이 난다는 게 매우 신기했어요. 다음날도 깜순이네 식혜 가서 식혜를 한 통 또 사서 마시며 속초를 돌아다녔어요. 어째서 단호박 식혜가 속초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는 속초 가면 꼭 한 번 마셔봐야할 맛이었어요. 너무 맛있었고 정말로 만족했어요. 홍시 좋아한다면 깜순이네 식혜의 단호박 식혜 마시고 아주 좋아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