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매우 알차게 돌아다니며 여행했어요. 아침에 속초 도착하자 양양으로 넘어가서 양양전통시장 5일장을 구경하고 장칼국수를 먹었어요. 그 다음 양양을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속초 시내버스 9번 타고 영랑호 장사항까지 갔어요. 장사항에서 다시 남쪽으로 걸어내려오면서 속초를 쭉 구경했어요. 날이 무지 덥기는 했지만 매우 재미있는 일정이었어요.
"역시 내 기억이 맞아."
속초는 작은 도시에요. 그래서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기 매우 좋은 도시에요. 예전에 속초에 처음 왔을 때 반한 이유가 속초가 아름다운 것도 있었지만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니기 매우 좋은 도시라는 점이었어요. 대중교통과 도보만으로도 매우 알차고 재미있게 여행할 수 있는 도시였어요. 그리고 이러한 특징이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개통된 후 속초가 갑자기 전국민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관광지로 인기가 대폭발하는 데에 상당히 큰 영향을 끼쳤을 거에요.
매우 오래 전에 왔던 속초는 그 당시에도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돌아다니기 좋은 도시였지만, 이번에 와서 보니 도보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행하기에 더욱 좋은 도시가 된 거 같았어요. 속초 시내버스 9번 하나면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었어요. 유일하게 못 가는 곳이라면 설악산 정도였어요. 속초에 있는 설악산 국립공원 동쪽 입구는 설악산 소공원이에요. 설악항부터 설악산 소공원까지는 거리가 꽤 멀어요. 설악산은 9번 버스로 가지 못하지만 나머지 지역은 거의 전부 해안가에 몰려 있다 보니 9번 버스를 이용하면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어요.
"진작에 올 걸."
왜 지금까지 속초 여행을 계속 미뤄왔는지 몰랐어요. 이렇게 혼자 놀기에도 좋은 도시라면 속초가 궁금해졌을 때 바로 왔어도 되었어요. 속초를 재미있게 여행하며 걷다 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되었어요. 청초호까지 왔어요.
"속초 왔으니까 저녁은 냉면 먹을까?"
저녁으로 속초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함흥냉면을 먹고 싶었어요.
속초 냉면은 예전에 먹어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속초로 처음 여행을 왔을 때였어요. 그때 친구와 같이 여행왔었어요. 그때도 친구와 저녁으로 속초 음식이라 할 수 있는 함흥냉면을 먹었어요. 동네 주민분께 속초 맛집을 여쭈어보자 냉면집을 알려주셨고, 동네 주민분 말을 믿고 속초의 함흥냉면을 먹으러 갔어요.
친구와 함흥냉면 식당으로 가서 함흥냉면을 주문했어요. 냉면이 나왔어요. 육수가 담긴 주전자도 나왔어요. 사장님께서는 먹다가 육수를 부어서 먹으라고 하셨어요. 친구와 비빔냉면으로 먹다고 냉면에 육수를 부었어요. 친구는 신나게 육수를 부었다가 완전히 망했어요.
아직도 그때 그 친구의 표정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친구는 속초 와서 설악산에서부터 뭔가 좀 불만이 있었어요. 저는 딱히 못 느꼈지만, 친구는 무언가 자꾸 신경 긁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했었어요.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함흥냉면이었어요.
"그때 그 식당 갈까, 다른 식당 갈까?"
친구와 같이 갔었던 함흥냉면 식당은 지금도 영업중이었어요. 그 식당 근처에는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함흥냉면 맛집인 함흥냉면옥이 있었어요. 아주 오래 전에 갔었던 추억이 있는 식당을 갈지,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냉면집을 갈지 고민되었어요.
"이번에는 새로운 곳 가자."
속초는 의정부에서도 쉽게 올 수 있는 곳이에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올 수 있어요. 그러니 여기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였어요. 아마 언젠가 또 올 거였어요. 옛날에 친구와 갔던 함흥냉면 식당은 나중에 속초 오면 그때 가보면 되었어요. 지금은 저만의 추억, 저만의 경험을 만들 수 있는 한 번도 안 가본 속초에서 가장 유명한 함흥냉면 식당인 함흥냉면옥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2023년 6월 19일 오후 5시 38분, 함흥냉면옥은 설악로데오거리에서 가까웠어요. 함흥냉면옥으로 갔어요. 문을 열고 영업중이었어요.
함흥냉면옥 안으로 들어갔어요.
"지금 식사 되나요?"
"예."
"함흥냉면 하나 주세요."
함흥냉면을 주문했어요. 함흥냉면 가격은 11,000원이었어요.
1층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메뉴를 봤어요. 명태회를 별도로 판매한다고 나와 있었어요. 여기에서 명태회는 정확히는 명태회무침일 거였어요.
아직 본격적인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함흥냉면옥 내부는 매우 한산했어요. 1층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저 혼자였어요.
'조금 이따부터 손님들 오겠지?'
오후 5시 40분이었기 때문에 벌써부터 손님이 몰릴 시간은 아니었어요. 아마 조금 더 지나서 저녁 6시가 되어서야 저녁 손님들이 하나 둘 올 거였어요. 함흥냉면옥은 무려 중소벤처기업부 인증 백년가게 중 하나인 식당이었어요. 속초시에서 배포하는 관광지도에도 나오는 맛집이었어요. 제가 갔을 때 사람이 없었던 이유는 이날은 평일이라 사람들이 미어터지는 날이 아니었고, 시간도 아직 저녁 먹을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먼저 육수가 나왔어요.
"온육수는 한 번 맛보세요."
육수는 온육수와 냉육수가 나왔어요. 사장님께서는 냉육수는 냉면 나오면 냉면에 부어서 먹으라고 하셨고, 온육수는 먼저 한 컵 마셔보라고 하셨어요.
컵에 온육수를 따라서 한 모금 마셨어요.
"뜨거워."
온육수는 꽤 뜨거웠어요. 후후 불어가며 아주 천천히 마셨어요. 온육수 맛은 고기국물맛이었어요. 밥만 말으면 고깃국이고, 소면을 집어넣으면 고기국수가 될 맛이었어요.
온육수를 마시며 식당 벽면을 바라봤어요.
식당 벽면에는 함흥냉면옥 초대 창업주 이섭봉 옹 사진이 걸려 있었어요.
함흥냉면이 속초 음식이 된 이유는 한국전쟁과 관련있어요. 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로 내려온 함경도 지역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지역이 속초시에요. 휴전 후 피난민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고향에서 먹던 감자 녹말이 섞인 반죽으로 만든 국수를 만들어먹고 팔았다고 해요. 이 중 가자미회 얹은 비빔국수가 함흥냉면이 되었다고 해요. 감자 녹말이 섞인 반죽으로 만든 국수에 명태회와 매콤한 양념을 올려서 비벼먹는 국수를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한 식당은 서울 오장동 오장동흥남집이에요.
원래 함흥냉면은 가자미회를 올렸지만 1980년대 들어서 가자미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함흥냉면에 가자미회 대신 명태회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리고 함흥냉면은 비빔냉면이나 회냉면이라고 많이 불려요.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이 나왔어요. 면발 색은 매우 진했어요. 상당히 질긴 면발이라 이로 끊어먹기에는 매우 어려운 면발이었어요. 면발 위에는 명태회가 올라가 있었고, 명태회 위에는 배, 오이, 삶은 계란이 올라가 있었어요.
"입맛에 맞게 냉육수 부어서 드세요."
"예."
함흥냉면에 냉육수를 부어서 먹으라고 알려주셨어요.
'이건 강원도 특징인가?'
함흥냉면은 흔히 비빔냉면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 속초 와서 먹었을 때나 이번에 먹었을 때나 엄밀히 말하면 비빔냉면과 물냉면의 구분이 없었어요. 정확히는 취향에 따라 냉육수를 부어서 먹는 국수였어요. 만약 국물 흥건한 물냉면으로 먹고 싶다면 냉육수를 잔뜩 부으면 되었고, 비빔냉면으로 먹고 싶다면 냉육수를 아주 조금만 붓거나 아예 안 붓고 비벼먹어도 되었어요.
이렇게 물국수와 비빔국수의 구분이 없는 특징은 속초 함흥냉면 뿐만 아니라 춘천 막국수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에요. 춘천 막국수도 기본은 비빔막국수로 나오지만, 육수가 같이 나와서 자기 입맛에 맞게 육수를 부어서 먹어요. 속초 함흥냉면과 마찬가지로 육수 많이 부으면 물막국수고, 육수를 조금만 붓거나 거의 안 부으면 비빔막국수에요.
나는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상당히 중요하고 반드시 알아야할 점을 저는 알고 있었어요.
단 한 번의 기회.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중간에 먹다가 육수를 부어서 물냉면, 물막국수로 만들면 맛을 완전히 망쳐요. 비빔냉면, 비빔막국수로 먹다가 육수 부어서 물냉면, 물막국수로 먹으면 둘 다 먹을 수 있으니 이득일 거 같지만, 실제 그렇게 했다가는 육수 콸콸 붓는 순간 엄청 맛없어져요. 강한 비빔면 맛에 적응된 후에 보다 밍밍한 맛인 국물면으로 바꿔서 먹으면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고 너무 싱겁고 밍밍하게 느껴져서 뼈저리게 후회해요. 육수가 추가될 수록 맛이 연해지기 때문에 처음에 육수를 붓는 것으로 맛 조절이 끝나요.
옛날에 속초 여행 와서 친구와 함흥냉면 먹었을 때 친구가 저질렀던 실수이기도 하고, 저도 춘천에서 막국수 먹을 때 이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런 건 어떻게 먹어야하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어요.
먼저 면을 비볐어요. 면발은 잘 안 비벼졌어요. 면발을 잘 비비기 위해 면발에 육수를 조금씩 살살 부어줬어요. 육수를 조금 붓고 면발을 비비다가 면발이 잘 안 비벼지면 다시 육수를 조금 부어줬어요. 면발은 방금 삶은 면발이었지만 있는 힘껏 꽉 쥐어서 물기를 짜내고 뭉쳐서 사리를 만들어놨어요. 그래서 육수를 조금씩 부어가며 비벼야 잘 비벼졌어요.
대충 비빈 후 아주 조금 맛을 봤어요. 맛이 대충 맞는 거 같았어요. 그래서 육수를 그만 부었어요. 육수를 면에 찔끔찔끔 부어가며 면발을 비볐다면 면을 양념에 다 비볐을 때 대충 맛이 맞을 거에요. 여기에서 너무 자극적이거나 짜다면 육수를 아주 살짝 더 붓고, 맛이 맞았다면 멈춰야 해요.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을 먹기 시작했어요.
달콤 고소 매콤
함흥냉면은 달콤했어요. 양념 자체는 그렇게까지 달지 않았어요. 그러나 명태회무침의 양념이 단맛이 꽤 있는 편이었어요. 명태회무침 양념이 함흥냉면에 섞이면서 단맛이 꽤 있는 맛이 되었어요.
함흥냉면옥의 함흥냉면 맛 중심에는 명태회무침 있었어요.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명태회무침 양념의 단맛이 전체적인 맛에 영향을 꽤 끼치고 있었고, 여기에 명태회무침의 고소한 맛이 전체적인 맛 속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었어요.
명태회무침의 맛이 엄청나게 자극적이지 않은데도 명태회무침 맛이 함흥냉면옥 함흥냉면의 중심에 있는 이유는 맛이 전반적으로 순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게 자극적인 맛은 아니었어요. 함흥냉면옥 함흥냉면의 양념 맛은 수도권 음식 기준으로 보면 육수를 안 넣어도 되는 맛이었어요. 수도권 비빔냉면 양념맛에 비하면 한없이 순박하고 소박한 맛이었어요. 수도권에서 비빔냉면이라고 하면 상당히 자극적인 맛인데, 이쪽 음식은 맛을 수도권에 비해 훨씬 순하고 부드럽게 잡아요. 여기에 육수까지 부었으니 맛이 더욱 순해졌고, 명태회무침 맛이 상대적으로 더욱 부각되며 펄떡펄떡 뛰어다녔어요. 그리고 이래서 육수를 색깔만 보고 콸콸 부었다가는 완전히 낭패를 보구요.
함흥냉면옥 함흥냉면은 아주 살짝 매콤했어요. 맵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짠맛도 약한 편이었어요. 이 지역 사람들 입맛 기준에서는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수도권 음식 기준으로 보면 순하고 너무 심심하지 않도록 가볍게 매운맛이 첨가된 정도였어요.
"역시 강원도 음식이 맛있어."
너무 자극적이지 않고 재료 각각의 맛이 살아 있었어요. 달콤하고 고소하고 가볍게 매콤했어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돈을 더 내고 명태회를 추가할 수도 있었어요. 냉장고에 가려진 메뉴판 부분에 명태회와 곱배기 가격이 적혀 있었어요. 만약 알았다면 명태회를 추가해서 먹었을 거였어요. 명태회를 추가하지 않고 먹어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달콤고소하고 가볍게 매콤한 맛이었지만 명태회를 추가했다면 제 입맛에 더욱 맛있었을 거였어요.
함흥냉면옥에서 함흥냉면을 매우 맛있게 잘 먹고 나왔어요. 다음에 속초를 또 가게 된다면 또 가서 먹고 싶은 맛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