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2부 25 - 운탄고도1330 9길 오사마을 죽서루 삼척시립박물관 삼표시멘트 삼척공장 구간

좀좀이 2023. 4. 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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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아이즈!"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던 그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더 이상 피할 수가 없다.

 

 

아파트가 등장했어요. 자연과 시골 속에서 걷던 운탄고도1330 길은 끝났어요. 삼척 시내로 들어왔어요.

 

 

지도를 보며 길을 건넜어요. 길을 건넌 후 오십천을 따라 걸었어요.

 

 

 

건지동에는 벚나무 길이 조성되어 있었어요.

 

 

 

'봄에 오면 예쁘긴 하겠다.'

 

벚꽃 피었을 때 벚나무 길을 걸으면 많이 예쁠 거에요.

 

 

 

삼척시립박물관까지 왔어요.

 

 

커다란 줄다리기 끈이 있었어요.

 

 

커다란 줄다리기 끈 앞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어요.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어요.

 

삼척 기줄다리기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호

 

삼척기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던 농경의식의 하나로, 재앙을 막고 풍년과 풍어를 기원하며 주민 단결과 화합을 도모하는 대동제로써 줄의 모양이 바다의 게 형상으로 게는 삼척말로 기라 하므로 기줄다리기라 불렀다.

 

정월초하루부터 대보름까지 아이들의 속닥기줄, 청년들의 중기줄, 어른들의 대기줄로 절정을 이루는 확대지향적 줄다리기라는 특징을 갖는다.

 

2015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2016.2.21

삼척시장 김양호

 

사진을 대충 찍고 지나갔어요.

 

 

삼척이 자랑하는 관광지 죽서루가 나왔어요.

 

저게 지금 내 눈에 들어오겠소?

지금까지 본 풍경이랑 비교가 되오?

 

죽서루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어요. 죽서루 비하가 아니에요. 같은 삼척시인 도계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며 본 자연풍경은 굉장한 비경이었어요. 그런 비경을 보다 이런 걸 보니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어요. 죽서루보다 전에 왔을 때 봤던 하고사리역이 훨씬 더 아름다웠어요. 죽서루부터 보고 삼척 내륙으로 걸어들어갔다면 갈 수록 즐거웠겠지만 저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삼척 내륙지역에서 죽서루로 걸어왔어요.

 

 

횡단보도 가운데로 갔어요.

 

"나 다시 돌아갈래!"

두 팔을 활짝 펴고 서쪽 산을 보며 외쳤다.

 

응, 내 마음 속으로만 외쳤어.

 

횡단보도 한가운데에서 왜 쓸 데 없이 두 팔 활짝 펴고 나 다시 돌아가겠다고 소리쳐요. 사고나려구요. 차가 없을 때 횡단보도 가운데로 가서 길 가운데에서 사진만 잽싸게 찍고 바로 다시 건너왔어요. 건너온 후 뒤를 돌아보며 마음 속으로만 횡단보도 중앙으로 돌아가서 나 다시 돌아가겠다고 외쳤어요. 진심이었어요. 나 다시 신기역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운탄고도1330 안내표식 리본이 아니라 코리아둘레길 해파랑길 안내표식 리본이 매달려 있었어요.

 

 

"하아...진짜..."

 

오십천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어요.

 

 

뭐 이런 기분 잡치는 엔딩이 다 있나...

 

아주 예전 이야기야.

학교 다닐 때 쉬는 시간이 되면 모눈공책으로 친구들과 오목을 두곤 했어.

친구들 중 한 놈은 오목을 두다 질 거 같으면 자기가 내가 둬야할 곳까지 주고 졌다고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지.

그래, 내가 이겼어.

그런데 그거 알아?

내 손으로 끝낸 게 아니라 친구가 내 것까지 그리며 친구 손으로 오목을 끝내버릴 때 그 기분.

기분 정말 더러워.

이겨도 더러워.

이겼으니 화는 못 내겠지만 이거 당할 때마다 기분 참 잡쳤어.

이기든 지든 내 손으로 끝내야 그게 승부니까.

지금 이 길, 그때 그 오목 마지막 당하던 기분이야.

 

 

대체 이 길 엔딩은 왜 이런 모양일까?

 

우리 집안도 왕년에는 매우 잘 나갔답니다.

몰락한 왕가의 아름다운 공주가 들려주는 슬픈 이야기.

 

나 지금 눈 비비고 있어.

내가 지금 뭔 책을 읽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어.

 

이거 엔딩이 왜 이래?

갑자기 쿵짝쿵짝 밴드가 나와.

여기저기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갑자기 성대한 파티, 번쩍번쩍 축제 분위기

우리도 이제 앞으로 잘 살 거에요.

밝고 힘찬 미래로 함께 나가요!

우리는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멋진 왕족이랍니다!

 

소설 엔딩 왜 이래?

잔잔한 여운과 함께 덮으려고 했던 책장.

엔딩이 이상해졌다.

 

응?

무슨 소설이 이 따위야?

작가 어디 있어?

작가 약 처먹었어?

대체 엔딩에서 갑자기 이거 뭐냐고?

 

그래, 끝까지 읽지 말았어야 했어.

마지막 부분 읽지 말고 남은 책장을 찢어서 버려버려야 했어.

남은 부분 읽지 말고 찢어서 확 불태워버려야 했어.

서사가 깨지고 혼란스러워진다.

이 당황스러운 엔딩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삼척 장미공원 표지석까지 왔어요.

 

 

근처 쓰레기통에는 연탄재가 있었어요. 여기도 나름 석탄과 관련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삼척 장미공원으로 들어왔어요. 장미가 피어 있었어요.

 

 

"운탄고도 걷느라 수고했다고 여기로 오게 만든 걸까?"

 

응, 아니야, 응, 아니아니야!

엔딩까지 가려면 한참 남았어!

 

진짜 돌아버리겠네!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어요.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운탄고도 9길 끝으로 갈 수록 이상해지는 엔딩에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

 

'입맛도 없다.'

 

식당이 몇 곳 있었어요. 다 지나쳤어요. 이 황당한 엔딩 때문에 입맛마저 뚝 떨어졌어요.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도 없었어요. 왜냐하면 운탄고도 9길 마지막 소망의 탑까지 아직 길이 꽤 많이 남아 있었어요. 운탄고도 9길 완주를 이 구간이 마음에 안 든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어요. 제가 예약한 숙소는 운탄고도 9길 마지막 지점인 소망의 탑에서 또 더 걸어가서 삼척해수욕장까지 가야 있었어요. 그러니 좋든 싫든 운탄고도 9길을 완주해야만 했어요.

 

 

오십천 너머에는 거대한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이 보였어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해군 함정의 전략적 연료 및 제강용 환원제로 사용하기 위해 무연탄이 필요했어요.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강원도 남부 삼척 지역 탄광 개발에 돌입했어요. 그러나 일본 군부는 조선총독부가 삼척 탄전을 개발하는 것은 역부족이라 판단해서 일본의 재벌을 동원해서 삼척개발주식회사를 설립했어요.

 

일본은 삼척 탄광에서 생산되는 석탄을 연료로 하여 삼척화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삼척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이용한 석회질소 비료공장인 북삼화학, 양양철광에서 생산된 철광석으로 철을 생산하는 제철공장, 그리고 삼척 지역의 풍부한 석회석을 바탕으로 하는 시멘트공장을 가동하고자 했어요.

 

삼척 탄전이 개발되면서 삼척 탄광에서 생산된 석탄은 '삼척탄'이라는 이름으로 절반 이상이 묵호항으로 운송되었고, 묵호항으로 운송된 무연탄은 일본으로 반출되었어요. 나머지 석탄은 북삼화학공업단지와 인근 지역 업체의 공업원료 및 동력원으로 사용되었어요. 1936년 삼척 탄광 개발 이후 1939년에는 삼척개발주식회사 북삼화학공장이 준공었고, 1942년에는 삼척읍 사직리에 오노다시멘트주식회사 삼척공장이 완공되었으며, 1943년 삼화제철소가 설립되었어요.

 

1940년에 현재 영동선인 철암선 철암-묵호간 철도가 건설되었어요. 철암-묵호간 철도가 건설되자 현재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인 오노다시멘트 삼척공장과 철암선을 연결하려는 인입선 목적으로 삼척선이 건설되었어요. 또한 삼척항 부근에 삼척화력발전소가 있었기 때문에 삼척화력발전소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한 인입선인 삼척화력선도 건설되었어요. 삼척선은 1944년 2월 11일 현재 동해역인 북평역부터 삼척간 철도가 개통되어 열차 운행이 시작되었어요.

 

삼표시멘트 삼표공장은 강원도 남부 석탄산업과 관련 있는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에요. 삼척탄전에서 생산된 석탄이 도경리역을 지나 동해역으로 운반된 후 동해역에서 다시 삼척선 타고 삼척항 일대 공업지대로 운반되었거든요.

 

그러니 운탄고도 길을 제대로 따라가기 위해서라면 마평교에서 도경리역을 지나 동해역으로 간 후, 거기에서 묵호역과 묵호항 찍고 해파랑길 따라서 동해항과 추암, 삼척해변역을 따라 삼척항까지 내려오는 길로 걸어가야 해요. 이러면 거대한 서사에서 벗어나지 않고 운탄고도가 삼척 시내로 끝나요. 하지만 운탄고도에 동해시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스는 마평교에서 바로 삼척항으로 이어졌고, 엔딩 부분도 매우 이상해졌어요.

 

 

 

 

어지러웠어요. 꽃다발을 줄 거면 다 끝내고 주든가, 아직 갈 길 꽤 남았는데 왜 벌써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차라리 운탄고도1330 9길 종점이 정라항이라면 그나마 이해되었겠지만, 운탄고도1330 9길은 정라항 너머 또 열심히 걸어가야 나오는 소망의 탑이었어요. 엔딩인 줄 알았더니 이것도 엔딩 아니고 또 다른 전혀 안 이어지는 이야기가 엔딩이라고 자리잡고 있는 꼴로만 보였어요.

 

 

누군가는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을 보며 풍경 망쳐놨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제 눈에는 너무나 아름다워보였어요. 웅장한 삼표시멘트 삼척공장은 여기도 운탄고도의 서사와 관련있는 지역이니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줬어요. 그래도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삼척장미공원에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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