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로시장에서 나와서 골목길을 걸었어요. 여기 또한 매우 궁금한 지역이었어요.
'여기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동네일까?'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향로봉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향로봉길은 묵호역으로 이어지는 영동선 철도와 묵호항역에서 묵호항으로 이어지는 묵호항선 철도 사이에 있는 길이에요. 향로봉길은 매우 좁은 골목길이었어요. 이 좁은 골목길 양옆으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어요. 향로봉길을 중심으로 양옆에 가옥이 늘어서 있는 이곳에 대한 지명은 딱히 없었어요. 새시장 마을과 향로시장이 있는 곳이 향로마을이라고 하니까 여기도 크게 보면 향로마을의 일부일 거였어요.
향로마을 지명 유래는 향로시장 쪽에 산이 하나 있어요. 이 산 이름이 향노봉이에요. 향노봉이 있는 동네라고 동네 이름이 향로마을이 되었다고 쉽게 유추할 수 있었어요. 향로봉길 양옆에 가옥들이 늘어서서 형성된 지역도 향로마을이라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름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다른 이름은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는 묵호항선 철길마을이라고 하는 게 좋겠지?'
길을 걸으며 나중에 여기를 여행기에 쓸 때 지명을 묵호항선 철길마을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향로마을이라고 하면 새시장길, 향로시장에 묵호역 사거리 근처로 나가는 향로봉길 주변 민가까지 다 향로마을이었어요. 지역을 세분화하고 싶은데 딱히 지명을 못 찾아서 무난하게 묵호항선 철길마을이라고 하면 괜찮아 보였어요.
2022년 10월 6일 오후 6시, 또 다른 굴다리 앞에 도착했어요. 향로시장을 가기 위해 굴다리를 통과해서 바닷가 방향으로 가서 향로시장을 간 후, 향로시장을 통과해 걸어가자 바닷가 방향으로 가는 굴다리가 또 나왔어요.
이 굴다리 너머에는 또 다른 사연이 기다리고 있을 거였어요. 그러나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아내지 못할 확률이 거의 100%였어요. 모든 것이 지금은 사연을 발굴해낼 조건이 아니었어요. 날씨는 비가 내리고 있어서 사람들이 밖에서 머무는 것을 유쾌하게 여기지 않을 상황이었어요. 시간도 저녁 6시였어요. 사람들이 저녁밥 먹으러 들어갈 때였어요. 이런 동네 돌아다니며 사연을 수집하고 발굴해내기 위해서는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눠야 해요. 이 날씨와 이 시각에 밖에서 시간 보내며 대화를 그리워할 어르신이 있을 리 없었어요.
'이거 사진만 보여주고 여기가 '동해성'이라고 하면 믿는 사람 있겠지?'
해외여행 가면 볼 수 있는 성벽처럼 생겼어요. 토끼굴은 성벽을 지나다니는 성문처럼 생겼어요.
보아라, 이것이 정보 통제의 힘이다.
실제 보면 성 같은 느낌은 별로 없었어요. 그렇지만 사진은 성벽처럼 나왔어요. 사진을 찍고 있는 저의 뒷편, 그리고 사진에 나오지 않은 양쪽 옆 풍경까지 다 보고 있다면 여기를 성벽같다고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에요. 하지만 사진에 나와 있는 정보는 딱 사진에 찍힌 풍경 뿐이었어요. 옆에 '동해 성벽'이라고 적어놓으면 사진만 보면 옛날부터 있던 성벽 위에 시멘트 발라놨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거에요.
이 굴다리를 통과하면 동해시의 신기한 동네가 또 기다리고 있었어요.
토끼굴을 통과했어요.
강원도 동해시 향로봉길 묵호항선 철길마을에 들어왔어요.
토끼굴을 통과해 제가 나온 토끼굴을 바라봤어요.
"여기는 시작부터 희안하게 생겼네?'
묵호항역과 묵호역을 연결하는 철도가 부설되어 있는 콘크리트 철로 지반은 거대한 성벽처럼 되어 있었어요. 이 콘크리트 철로 지반과 일반 가옥이 예각을 이루어 붙어 있었어요.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점은 이 마을이 묵호항역에서 묵호역으로 가는 철도가 부설되기 전부터 형성된 마을이었어요. 아주 예전에는 묵호항선을 따라서 향로시장까지 마을이 연결되어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묵호역이 신설되고 묵호역과 묵호항역을 연결하는 철도가 부설되면서 향로시장쪽과 묵호항선 철길마을이 단절된 모습이 되었을 거에요.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향로봉길에 위치한 묵호항선 철길마을은 지번이 분할되는 곳도 빈번하고, 건축허가나 사용허가일자가 없는 건물도 상당히 많다고 해요. 심지어 건축물 정보를 검색해보면 1984년에 사용허가가 난 해리슈퍼만 존재한다는 말도 있어요.
주변을 둘러보며 거리를 걸었어요.
묵호역 구역사가 여객취급 중단하고 화물만 취급하는 묵호항역으로 바뀌면서 이 일대가 쇠락한 게 맞을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어요. 과연 정말로 묵호역 구역사가 여객취급 중단하고 화물만 취급하는 묵호항역으로 바뀌면서 이 일대가 쇠락한 게 맞냐는 거였어요.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철도 역사를 보면 묵호항역 역세권 및 향로마을, 향로봉길 묵호항선 철길마을은 묵호역 구역사가 여객취급 중단하고 화물만 취급하는 묵호항역으로 바뀌며 쇠락했다고 판단하기 딱 좋아요. 역전 번화가가 형성되었는데 역전 번화가가 형성된 원인인 기차역이 여객업무를 중단하니까 역전 번화가가 자연스럽게 망해버렸다고 추측할 수 있어요. 이런 현상이야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어디든 다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니까요.
나무위키 묵호항역 설명에도 묵호항역이 묵호항역이 여객 업무를 중단하고 화물역으로 전환하면서 묵호항역 역세권이 몰락했다고 누가 집필해놨어요.
일반적으로 그렇기는 해.
하지만 세상에는 언제나 예외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즉,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묵호항역이 화물만 취급하는 역으로 바뀐 것은 1961년 일이에요. 제가 이 동네를 돌아다닌 때는 2022년이었어요. 60년 전 일이었어요. 무려 60년 전 일이었어요! 그러니까 강산이 한두 번 바뀌는 게 아니라 여섯 번 바뀌었다는 소리야!
60년이 지났으면 한국의 빠른 성장을 고려하면 진짜 흔적도 안 남아요. 그 지역을 밀고 엎고 재개발을 해도 몇 번을 더 했을 시간이에요. 하지만 묵호항역 앞에는 역세권 흔적이 꽤 많이 남아 있었어요. 60년 전 일로 망한 동네라고 보기에는 흔적이 너무 많이 잘 살아있었어요. 게다가 묵호항역에서 묵호역까지는 직선거리가 1km 채 안 되고, 도로가 아예 없거나 고사리역과 하고사리역 사이처럼 힘든 고갯길을 넘어가야 하는 길도 아니었어요.
단순히 묵호항역이 화물역으로 바뀌며 이 일대 전체가 쇠락했다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것이 너무 많았어요.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었어요.
먼저 강원도 동해시 묵호 지역 재래시장 역사를 보면 묵호항이 개항하면서 1943년에 묵호 중앙시장 - 오늘날 동쪽바다중앙시장이 형성되었어요. 1960년대에는 향로시장이 조성되었고, 1970년대에는 묵호시장이 형성되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지역에 사람들이 매우 많이 몰려오고 황금의 시기를 보낸 것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로 추정되요. 묵호 지역은 1970년대에 한창 성장하고 잘 나가는 지역이었어요.
2003년 6월 19일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이날 동해시 북부권 공동화 비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발한동 중앙시장은 670개 점포 중 절반 이상인 362개, 동해 프라자상가는 73개 중 63개가 문을 닫았고, 동호동 농산물시장은 50개 점포 중 32개, 묵호시장은 67개 중 17개, 향로시장은 50개 중 42개, 부곡동은 30개 중 9개 점포가 문을 닫아서 동해시 북부권 940개 점포 중 56%에 달하는 525개가 폐점했다고 나와 있었어요. 그러니까 2003년만 해도 향로시장은 멀쩡히 시장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어요.
향로시장에서 묵호항역까지 거리는 고작 400m 정도에요. 안 멀어요. 역세권이라고 해도 되는 수준이에요. 역 바로 코앞인 역전 상권이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요. 400m 정도라면 커다란 지형지물적 장애물만 없다면 400m 떨어진 곳에 사람만 많다면 상권이 어느 정도 유지되요. 주요 업종이 바뀌는 등의 변화는 있겠지만요. 더욱이 향로시장 말고 시장 하나 더 조성하려고 새시장 만들려다가 실패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로 사람 많이 거주하고 붐비는 곳이었다면 묵호항역 역전 상권이 묵호항역이 여객 취급 중단했다고 바로 망하지는 않았을 거에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묵호항역이 화물역으로 바뀐 건 1961년이에요. 묵호항역 역전 번화가 흔적과 향로마을부터 여기 묵호항선 철길마을은 1960년대에 쇠락한 지역이라고 보기 너무 어려웠어요. 1960년대에 쇠락한 동네라면 지금 흔적도 없어야 정상이에요. 더욱이 묵호 지역은 1970년대까지는 계속 발전하고 번화한 지역이었구요.
그러므로 이 일대가 몰락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을 거였어요.
해리슈퍼가 나왔어요.
'슈퍼 안에 들어가볼까?'
잠시 고민했어요. 슈퍼 안에 불은 켜져 있었지만 사람이 안 보였어요. 게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었어요. 이 시각에 슈퍼 들어가봐야 음료수나 하나 사오고 나와야 했어요. 음료수 사서 마시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 갈 길 가기로 했어요.
향로마을은 과거와 지금 모습이 꽤 많이 다른 지역이에요. 과거에는 하천도 흘렀다고 하지만 복개하고 도로가 생겼어요. 그 길이 바로 향로복개로에요. 향로봉에는 아랫쪽에는 민가가 빼곡했고 위쪽에는 덕장이 빼곡했다고 해요. 지금은 민가도 많이 철거되었고 덕장은 하나도 안 남아 있어요.
위성사진으로 향로봉을 보면 민가와 덕장 흔적을 볼 수 있어요. 또한 이는 묵호항역 앞도 마찬가지에요. 묵호항역 맞은편을 위성사진으로 보면 집터를 확인할 수 있어요.
'나중에 비밀을 밝혀낼 수 있겠지?'
이날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비밀을 밝혀낼 수 있을 거였어요. 나중에 여기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 비밀을 발굴해낼 거에요. 다짐했어요.
철도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붉게 녹슨 철로 된 것이 있었어요.
계속 묵호역 방향으로 걸어갔어요. 길이 하나 뿐이라 길을 찾아야할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 이거 뭐야?"
여기가 강원도 동해시 해파랑길 33코스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었어요.
"여기 무슨 걷기 코스야?"
많이 놀랐어요. 정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매우 낙후된 동네였어요. 그런데 이 길이 해파랑길 33코스라고 표시된 안내판이 있었어요. 여기가 해파랑길 33코스라면 해파랑길은 제가 왔던 길을 따라서 향로시장을 지나 묵호항역으로 이어질 거였어요.
'도보 여행 코스를 이렇게 하나도 손대지 않고 놔두고 있다고?'
잘못 붙어 있는 거라고 여기고 다시 길을 걸었어요.
비는 계속 쏟아지고 있었어요. 거리에는 저 혼자였어요.
바닷가쪽으로 묵호항 사일로가 보였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6일 18시 9분이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해파랑길 33코스 해물금길 묵호 발한동 묵호항선 철길마을에는 폐가도 있고 폐가를 허물어서 생긴 공터도 있었어요. 이 공터는 잡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었어요. 자연으로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여행 다니며 집을 허문 공터를 보면 밭으로 이용되는 곳도 있고, 잡풀만 무성하게 자라는 곳도 있어요. 밭으로 이용되고 있는 곳은 보고 바로 과거에 집터였다고 알아볼 수 있지만, 잡풀이 우거진 곳은 흔적 찾기 어려워요.
또 해파랑길 안내표지판이 나왔어요. 제가 걸어온 길은 하평해변 가는 길이었어요.
"해파랑길은 대체 뭐지?"
제가 걸어온 향로봉길이 해파랑길 33코스였어요. 거의 방치되다시피한 곳이었는데 도보 여행 코스였어요.
'해파랑길은 엄청 안 알려진 거 아냐?'
제주도 올레길이 성공한 이후 전국적으로 도보 여행 코스를 만들고 있어요. 만드는 수준이 아니라 난립 수준이에요. 데크를 만들고 거리를 예쁘게 꾸며서 관광지로 만드는 곳도 있지만 대충 리본이나 표지판, 페인트로 그린 표시만 해놓고 걷기 여행길이라고 설정해놓은 곳도 있어요. 향로봉길을 걸어오면서 여기가 도보 여행 코스라고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오히려 너무 쇠락한 동네라서 걸을 때 조심스러웠어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도보여행길이라면 진작에 길에 카페, 상점 같은 것이 많이 생겼을 거고, 동네가 저렇게 쇠락하다 못해 무너져가지도 않았을 거였어요.
제대로 관리되고 관광지로 널리 홍보 잘 되고 있는 걷기 여행길도 있지만 대충 설정만 해놓고 방치중인 걷기 여행길도 꽤 많아요. 솔직히 각 지자체에서 만든 도보 여행길이 너무 난립해 있고 난잡하게 되어 있어서 이런 도보 여행 코스가 존재했지도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아요. 여기도 그런 거겠거니 하면서 표지판 사진을 찍고 큰 도로로 나갔어요.
묵호항에서 묵호역으로 가는 길에 있는 굴다리에 설치된 전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어요. 빗물이 흥건한 도로는 굴다리 조명빛을 반사하며 알록달록한 빛의 길이 되어 있었어요.
제가 나온 향로봉길을 돌아봤어요.
'여기는 다음에 꼭 다시 온다.'
언젠가 나중에 다시 와서 귀한 보물인 숨어 있는 사연을 꼭 찾아서 획득하겠다고 다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