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가 동해 용궁으로 끌려갔다가 간신히 탈출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르며 펑펑 우는 모양이었어요. 하늘에서 비가 자비 없이 계속 쏟아졌어요. 이건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어요. 아주 작정하고 퍼부어대는 비였어요. 일기예보도 2022년 10월 6일 이날부터 다음날인 7일까지 동해시에 비가 매우 많이 내릴 거라고 나와 있었어요. 비만 내리는 것이 아니라 풍랑주의보까지 내려져 있었어요.
아무리 비가 내려봐라
내가 갈 길을 안 가나.
동해시까지 왔는데 일정을 포기하고 바로 숙소로 들어갈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묵호에 집채만한 파도가 덮친다고 해도 무조건 제가 계획한 일정은 싹 다 돌아볼 거였어요. 양보, 타협 이 따위 것은 없었어요. 2022년 10월 6일 계획된 일정만큼은 다 완주할 거였어요. 이 정도 폭우에 굴복한다면 내 인생 최악의 굴욕이었어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어떤 길을 다니며 여행해왔는데 고작 이 따위 기상악화로 포기해요. 오기가 생겼어요. 대자연에 대한 투쟁심이 불타올랐어요.
동해시 버스 정류장으로 갔어요. 동해역에서 첫 번째 목적지인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발한동 새시장길 새시장 마을 시장용 연립주택이라는 곳으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동해시 버스 정류장에서 21-1 버스를 타고 농수산물시장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어요.
참고로 우리나라 여행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이 있어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도 어플은 구글 지도,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이 있어요. 우리나라 여행을 쾌적하게 다니기 위해서는 이 세 어플을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하는 것이 좋아요. 각자 확실한 강점이 있거든요.
카카오맵은 이동 경로 검색에서 뛰어나요. 한때 Daum이 진짜 지도 서비스 하나로 간신히 연명했었어요. 그만큼 지도 서비스에 사활을 걸었어요. 그래서 카카오맵은 이동 경로 검색에 특화되어 있어요. 이동 경로 검색은 네이버지도보다 뛰어나요. 특히 낙후 지역으로 가면 이 차이가 확 벌어져요. 카카오맵 로드뷰를 보면 실제 갈 수 있는 길인지 파악할 수 있어요. 대중 교통 정보도 카카오맵이 더 나은 편이구요.
네이버지도는 식당, 카페, 가게 등을 찾을 때 매우 뛰어나요. 실제 영업하는지 여부부터 정확한 영업 시간까지 제일 잘 맞는 편이에요. 네이버지도는 가게의 영업여부 및 영업시간 DB 관리에 신경을 꽤 쓰고 있어요.
구글 지도는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으로 검색이 안 되는 지역을 검색할 수 있어요. 대표적으로 국가안보 시설은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으로 제대로 검색이 안 되요. 아예 통째로 누락된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구글 지도는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다 나와요. 진짜 별 게 다 나와요. 만약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으로 못 찾겠다면 구글 지도로 검색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국내 여행할 때 이동 경로 같은 큰 부분 검색은 카카오맵으로 하고, 식당 및 카페 방문 같은 목적지에서의 활동 관련 세세한 검색은 네이버지도로 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네이버지도, 카카오맵으로 검색이 안 되는 곳이라면 구글 지도로 검색하면 되요.
"버스 여기에서 타는 거 맞아?"
"지도에서는 여기가 맞대."
"저기 길 건너편 정류장에서 타야하는 거 아니야?"
버스 정류장에는 딱 봐도 외지인으로 추정되는 부부가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는지에 대해 말을 주고 받고 있었어요. 남편분은 동해역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하고 있었고, 아내분은 길 건너 맞은편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 것 아니야고 하고 있었어요.
"묵호쪽으로 가야 하니 여기가 맞아."
"반대쪽인 거 같은데..."
부부는 계속 호텔을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어요. 저는 그냥 앞을 쳐다봤어요. 바닷가 동네 동해시 송정동이라 비도 곱게 안 내렸어요. 빗방울이 하늘에서 수직으로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람 때문에 사선을 그리며 떨어졌어요. 사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 중 버스 정류장 안으로 떨어지는 놈도 있었어요. 버스 정류장 천장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지기도 했어요.
"저기요, 버스 여기에서 타는 거 맞죠?"
"예? 어디 가시는데요?"
"ㅇㅇ호텔이요."
부부가 제게 동해시 어딘가에 있는 호텔로 가려면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냐고 물어봤어요. 남편분께서 제게 구글맵에서 검색한 것을 보여줬어요.
'이게 어디지?'
저도 동해시 사람이 아니라 대답을 할 수 없었어요.
"카카오맵으로 보세요. 국내 여행 경로 검색은 카카오맵이 훨씬 더 좋아요."
남편분께 카카오맵으로 찾아보라고 대답했어요. 남편분께서는 카카오맵을 검색해서 들어가 카카오맵에 목적지인 동해시 어딘가에 있는 숙소를 검색하려고 하셨어요.
"그게 아니라 카카오맵 어플로 보세요."
남편분 스마트폰에는 카카오맵 어플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어요. 남편분께서는 카카오맵 어플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기 시작했어요. 곧 버스가 올 건데 빨리 찾아야 했어요. 그제서야 제가 카카오맵 어플로 대신 찾아드리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는 게 떠올랐어요. 비 퍼붓는 거 보고 잠시 머리가 멍한 상태였었어요. 빗물 범벅이 된 스마트폰은 터치가 엉망으로 인식되어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던 것도 있었구요.
"시간 없으니까 제가 대신 찾아드릴께요."
스마트폰 액정은 비 때문에 물기가 잔뜩 묻어 있었어요. 스마트폰 액정을 바지에 문질러서 물기를 닦았어요. 그래도 터치가 엉망이었어요. 바지도 젖어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 액정 물기가 제대로 닦이지 않았고, 손도 빗물에 젖어 있었어요. 화면을 다시 끄고 외투 지퍼를 내린 후 셔츠에 스마트폰 액정을 벅벅 문질러서 물기를 닦아내었어요. 물기가 완벽히 닦이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바로 전보다는 스마트폰 액정 위 물기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물에 젖은 손을 바지에 문질러서 손의 물기도 대충 닦은 후 카카오맵 어플에 들어가서 이동 경로를 검색했어요. 터치가 잘 먹히지 않고 이상하게 먹힐 때도 있었지만 인내심을 갖고 잘못 인식된 글자를 지워가며 입력하면 입력할 수 있었어요.
부부가 가려고 하는 호텔로 가는 경로를 찾았어요. 아내분 말대로 길 건너편 정류장으로 가도 버스가 있기는 했어요. 이렇게 비가 무섭게 퍼붓고 있는데 안전한 버스 정류장에서 나가서 폭우 속을 걸어가는 건 정말 아니었어요. 검색 결과를 쭉 봤어요.
"여기에서 저랑 같은 버스 타시면 되요. 21-1번이요."
아내분 말대로 길 건너서 버스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최적 경로는 저와 같이 21-1번 버스를 타고 가는 거였어요. 부부는 가려고 하는 호텔로 가기 위해서 저와 같은 21-1번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서 내리면 되었어요. 21-1번 버스는 조금 기다리면 곧 올 거였어요.
카카오맵 어플에서 검색된 결과를 부부에게 보여줬어요. 그 사이에 또 스마트폰 액정에 작은 빗물이 튀었어요. 부부에게 21-1번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드린 후 스마트폰 액정을 껐어요. 스마트폰을 안 건드리고 싶었어요. 액정에 자꾸 물이 튀어서 터치가 이상하게 먹혔기 때문이었어요. 이 상황에서 스마트폰을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액정 위 빗물로 인한 터치 오인식 때문에 안 유쾌해질 거였어요. 아무리 대자연에 대해 투쟁하며 일정을 소화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해도 이 정도는 대자연에게 양보했어요. 10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어요.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21-1 버스가 왔어요. 그때서야 남편분께서 폰에 카카오맵 어플이 설치되었다고 말씀하셨어요. 부부와 같이 버스를 탔어요.
버스 안은 눅눅하고 꿉꿉했어요. 버스 의자에 앉아서 창밖을 봤어요.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유리창에 쉴 새 없이 굵은 빗방울이 부딪혀 터지고 사선을 그리며 아래로 굴러떨어졌어요. 창밖 풍경은 아주 흐릿하게 윤곽만 보였어요.
'새시장 마을의 비밀을 잘 찾아낼 수 있을 건가?'
긴장되었어요. 어떤 사연이 있는 곳일 거였어요. 그 사연이 무엇인지 과연 밝혀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어요.
위 지도에서 빨간색 동그라미 쳐놓은 곳이 바로 이제 갈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발한동 새시장길 새시장 마을 시장용 연립주택이었어요. 대충 봐도 매우 특이하게 생긴 곳이었어요. 새시장 마을은 매우 작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서 정사각형 형태의 벽을 이루고 있어요. 가운데에는 '시장용 연립주택'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시장이 있는 곳이 아닌데 시장용 연립주택이었어요.
이렇게 지도를 보며 사연이 있는 동네를 찾는 방법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어요. 이 중 한 가지는 지도상으로 지번이 아주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경우에요. 지번이 매우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곳은 매우 좁은 건물이 밀집해 있음을 의미해요. 좁은 건물이 엄청나게 밀집해 있는 곳은 특별한 이유로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서 살게 된 지역일 확률이 상당히 높아요. 반대로 특별한 사연이 있는 동네라 하더라도 집 면적이 넓은 편이고 집 간 거리도 충분히 떨어져 있는 편이라면 가봐야 별 거 없을 확률이 높아요.
두 번째 방법은 보다 더 단순한 방법이에요. 건물 배치 형태가 아주 희안하게 생긴 곳을 찾는 방법이에요. 무언가 특별한 이유와 사연이 있기 때문에 아주 희안한 모양으로 건물이 배치된 거에요. 단,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실제 지형도 꽤 많이 고려해야 해요. 땅 자체가 굴곡이 너무 심하면 지형 문제라는 자연적 제약 때문에 건물 배치가 어쩔 수 없이 매우 특이하고 이상하게 되거든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발한동 새시장길 새시장 마을은 첫 번째 방법으로 봤을 때와 두 번째 방법으로 봤을 때 모두 해당되는 곳이었어요. 이러면 99.9%가 아니라 100% 확률로 일반적이지 않은 이유로 형성된 마을이에요. 즉, 사연이 있는 마을이에요.
여행 떠나기 전에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발한동 새시장길 새시장 마을 자료를 찾아봤어요. 자료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동해시 발한동 낙후지역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기껏해야 발한동 향로마을이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에 선정되었다는 기사 정도 뿐이었어요. 동해시에서 거주하신 적 있는 교류하는 블로거분께 혹시 '새시장'이라는 곳 아냐고 여쭈어봤지만 모른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새시장 마을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는 직접 가서 찾아내야 했어요.
새시장 마을의 비밀을 발굴해내려면 동네 주민분들께 이 동네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왜 이런 형태로 형성되었는지 여쭈어봐야 했어요. 방법은 간단했어요.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되었어요. 그러나 이게 해보면 그렇게 쉽지 않아요. 특히 이렇게 비 퍼붓는 날에는 더욱 어려워요.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있어야 물어볼 텐데 이렇게 비 쏟아지는 날에 누가 밖에 나와서 놀고 있어요.
더욱이 이런 질문은 주로 어르신들께 여쭈어보는 것이 좋은데 이런 날에는 더더욱 안 나오세요. 저 혼자 마을의 사연이 궁금하다고 아무 집이나 다 문 두드리고 벨 눌러서 사람 나오라고 한 후 다짜고짜 '이 동네는 왜 이렇게 생겼나요?'라고 물어보면 좋은 말이 되돌아올 리 없어요.
동해시 발한동에서 제 호기심을 끄는 동네는 새시장 마을 뿐이 아니었어요. 초록색 직사각형으로 표시한 곳도 궁금했어요. 영동선 철도와 묵호항선 철도 사이에 마을이 있었어요. 지도를 보면 철도 두 개가 꽉 막아버려서 완전히 죽은 땅이었어요. 그런데 지도로 보면 죽은 땅처럼 보이는 영동선 철도와 묵호항선 철도 사이에 마을이 있고 '향로시장'이라는 시장까지 있었어요.
향로시장은 희안하게 카카오맵에서는 검색이 안 되고 네이버지도에서만 검색되는 시장이었어요. 향로시장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곳이라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요. 네이버가 한국 검색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규 상점 정보는 네이버지도가 카카오맵보다 더 빨리 반영되곤 해요. 그렇지만 지도 서비스 자체가 카카오맵이 더 빨랐어요. 그래서 오래된 지역 정보는 카카오맵이 네이버지도보다 더 정확하고 정보도 더 많은 편이에요. 향로시장이 무슨 2022년 여름에 뿅 하고 탄생한 시장이 아닐 건데 카카오맵에는 없고 네이버지도에는 있었어요. 이것도 매우 기이한 일이었어요.
빗물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는 창밖을 보며 과연 계획대로 잘 진행될지 곰곰히 생각하고 있었어요. 누군가 '감사해요'라고 말했어요. 왠지 저한테 말하는 거 같았어요. 앞을 바라봤어요. 아까 남편분께서 고속터미널 정류장에서 내리시면서 제게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신 거였어요.
버스가 농수산물시장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렸어요. 여전히 비가 엄청나게 퍼붓고 있었어요. 다시 우산을 펼쳤어요.
스마트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시대.
덕분에 비가 오면 짜증도 과거에 비해 2배 3배.
스마트폰 액정은 물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화면을 터치하면 엉뚱한 것이 터치되었어요. 이것만으로도 꽤 짜증나는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빗물이 액정으로 떨어지고 손에도 떨어지니 손에 있는 물기와 액정 위에 있는 물기가 만나 엉뚱한 어플을 터치했다고 켜지기도 했어요. 손에 묻은 물기와 스마트폰 액정에 묻은 물기를 잘 닦아내면 스마트폰 조작에 아무 문제 없었어요. 그러나 바로 이 손과 스마트폰 액정 물기 제거가 불가능했어요. 비가 쏟아지고 있었으니까요. 그것도 바람 때문에 수직이 아니라 삐딱하게요.
'카카오맵 보면서 찾아가야 하는데!'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새시장 마을은 처음 가보는 곳이었어요. 새시장 마을만이 아니라 이 일대 자체가 처음 와보는 장소였어요. 이쪽은 괜히 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동네가 아니었어요. 이는 찾아가는 길도 단순하지는 않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농수산물시장 정류장에서 묵호중학교로 가야 했어요. 묵호중학교를 지나서 더 가면 카페고이가 나올 거였어요. 카페고이가 나오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향로6길을 따라갈 거였어요. 그러면 새시장 마을 들어가는 입구가 나올 거였어요.
GPS를 켜서 카카오맵에 제 현재 위치가 나오도록 설정했어요. 딱 여기까지 할 수 있었어요. 원래는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사진을 찍어서 기록으로 남겨야 했어요.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고 정신없어서 새시장 마을 가면 그때 사진을 찍기로 했어요.
묵호중학교까지 왔어요. 여기까지는 별 일 없었어요. 이제 카페고이를 찾아야 했어요. 카페고이가 안 보였어요. 카카오맵에 나와 있는 제 위치는 카페고이까지 못 왔다고 나왔어요. 갤럭시노트5에 3G의 결합으로 카카오맵에 제 위치가 빠르게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어요. 비 때문에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있어서 한 손만으로 조작해야 했어요. 액정에 물기가 있어서 카카오맵 조작이 쉽지 않았어요. 지도 보며 계속 걸어갔어요. 나와야 하는 카페고이는 안 보이고 향노봉까지 왔어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원래 가려고 했던 향로6길이 아니라 향로복개로까지 와버렸지만 별 상관없었어요. 향로복개로도 원래는 가려고 했던 길이었어요. 향노봉의 항로복개로 방향에는 작은 달동네가 하나 있었어요. 지도상으로는 돌산길을 따라서 집이 있었어요. 크게 보면 향로마을의 일부일 거고, 작게 본다면 길 이름이 돌산길이니까 돌산 마을일 거에요. 원래 계획은 향로6길로 가서 새시장마을을 둘러보고 향로복개로로 나와서 돌산길 마을도 둘러보는 것이었어요. 아주 살짝 계획이 틀어졌지만 이 정도는 무시해도 되었어요. 무시해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계획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되는 수준이었어요.
향로복개로를 따라 바닷가 방향으로 걸었어요. 카카오맵을 보면 새시장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향로2길로 가야 했어요. 카카오맵에 의하면 향로2길은 제일슈퍼 옆에 있었어요. 제일슈퍼까지 갔어요.
"향로2길 어디 있지?"
제일슈퍼까지는 왔어요. 향로2길을 찾아야 했어요. 향로2길이 안 보였어요. 바닷가쪽으로 계속 걸어갔어요. 넓은 골목길이 나왔어요. 이건 확실히 아니었어요. 더 갔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굴다리로 이어지는 길과 굴다리 윗쪽 도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나왔어요. 다시 되돌아갔어요. 아까 지나온 넓은 골목길 도로명이 뭔지 봤어요. 향로1길이었어요. 향로2길을 지나갔어요. 다시 제일슈퍼를 향해 걸어가며 아주 꼼꼼히 옆쪽을 살폈어요. 좁은 골목길은 없었어요.
"향로2길은 대체 어디야?"
짜증이 확 났어요. 비 와서 다 젖은 상태에 스마트폰은 제대로 터치되지 않았어요. 우산을 왼쪽 어깨에 기대고 고개를 어깨에 대어서 목으로 우산을 잡았어요. 두 손을 이용해 카카오맵을 스카이뷰로 바꾼 후 확대해봤어요. 최대한 확대해서 살펴봤어요. 향로2길 따위는 위성지도로 봐도 안 보였어요. 지도로 바꾸면 향로2길이 있다고 나왔어요. 이건 완전 카카오맵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길이었어요.
"분명히 없는데?"
다시 제일슈퍼로 갔어요. 제일슈퍼 오른쪽에 향로2길이 있어야 했어요. 제일슈퍼 오른쪽에 좁은 골목길은 고사하고 좁고 긴 공터조차 안 보였어요.
'이건 제일슈퍼 들어가서 물어봐야겠다.'
제일슈퍼 안에는 할아버지께서 앉아 계셨어요.
"어르신, 말씀 좀 여쭈어볼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향로2길이 어디 있나요?"
"향로2길?"
할아버지께서는 그런 길은 처음 듣는다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할아버지께 지도를 최대한 확대해서 보여드렸어요. 할아버지는 지도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셨어요. 제일슈퍼 옆에 길이 있다고 나와 있었지만 제일슈퍼 옆에는 길이 없었어요.
"제가 제주도 사람인데 동해시 여행 계획 짜면서 지도 보다가 여기 시장 있다고 하고 특이하게 생겨서 와봤거든요. 그런데 새시장 들어가는 길이 향로2길이라고 나오는데 못 찾아서요."
"여기는 시장 없어. 저 아래로 내려가면 향로봉시장이 있었는데 거기는 이제 없어졌구."
"여기 시장 없어요? 여기 시장용 연립주택이라고 나와서요."
할아버지께서는 여기에 시장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제주도 사람'이라는 말에 할아버지 눈빛이 바뀌었어요. 저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셨어요.
'어이구, 이런 불쌍한 사람 같으니...제주도 그 먼 곳에서 하필 이럴 때 여기로 여행을 왔어.'
할아버지 눈빛에서 저를 바라보시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읽었어요.
"이쪽은 원래 시장 만들려고 하다 안 된 곳이야."
할아버지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오셨어요.
"시장이 안 되다니요?"
"여기는 시에서 시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시장이 안 되었구, 저기 향로봉 시장은 시장이 되어서 시장이 열렸었는데 지금은 안 열려."
할아버지께서는 굴다리로 가는 길과 굴다리 윗쪽 도로로 가는 길로 가는 갈림길을 가리키면서 새시장 마을이 원래는 시에서 시장을 만들려고 조성하다가 안 되어서 사람들 사는 동네가 되었다고 알려주셨어요.
"향로봉 시장은 여기에서 어떻게 가요?"
"여기로 쭉 가면 굴다리 나와. 굴다리 지나가면 향로봉 시장 있어. 향로봉 시장도 없어졌지만 가면 그래도 방앗간 같은 것은 남아 있어."
할아버지께서는 향로시장을 향로봉시장이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쭉 가서 위로 올라가지 말고 굴다리 통해서 계속 앞으로 가면 향로시장으로 갈 수있다고 알려주셨어요.
할아버지께 이 지역에 대해 궁금했던 것에 대해 여쭈어봤어요. 할아버지께서는 하나하나 잘 알려주셨어요.
먼저 제일슈퍼 앞길 이름이 향로복개로인 이유를 여쭈어봤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옛날에 향로복개로가 있던 자리 - 제일슈퍼와 향로봉 사이에 하천이 흘렀고, 하천을 복개하면서 지금처럼 하천 위에 길이 생겼다고 알려주셨어요. 하천을 복개해서 만든 도로이기 때문에 길 이름이 향로복개로였어요.
예전에 향로봉 및 이 일대 사람들은 건주 - 생선 말리기로 먹고 살았대요. 어부도 일부 있었다고 하셨어요. 돌단 위는 다 덕장이었대요. 돌산 뿐만이 아니라 게구석 마을, 산제골 마을, 논골 마을 등 묵호 도처가 다 덕장이었대요. 그러나 지금은 동해시에 산제골 마을과 논골 마을 꼭대기에 남아 있는 덕장이 전부라고 알려주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묵호항역을 '구역사'라고 부르셨어요. 공식 역명은 묵호항역이지만, 이 동네에서는 '구역사'라고 불렀어요. 아주 오래전에는 구역사 - 즉 오늘날 묵호항역 앞에도 번화가가 있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묵호항역 앞 번화가는 동해시에서 다 헐었다고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 새시장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셨어요. 새시장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일슈퍼를 바라봤을 때 왼쪽으로 가다 보면 조그만 골목길이 하나 나온다고 하셨어요. 그 골목길로 들어가면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고 하셨어요.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 인사를 하고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대로 걸어갔어요.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골목길로 들어가자 새시장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어요.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일반적인 마을과 다른 형태였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발한동 새시장길 새시장 마을 안으로 들어왔어요.
일반적인 마을이라면 이렇게 입구를 설치하지 않아요. 그러나 시장으로 만들려고 세운 곳이라면 납득이 되는 구조였어요. 시장 입구라고 보면 되니까요.
새시장 마을 입구 아래로 갔어요. 새시장 마을 입구는 위에 천장이 있어서 비가 안 떨어졌어요. 잠시 비를 피하며 입구를 둘러봤어요.
'시에서 시장을 만들어?'
제일슈퍼 할아버지께서 새시장 마을은 시에서 시장 조성하려고 하다가 시장이 안 된 곳이라고 하셨으니 맞을 거였어요. 시에서 시장을 만든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어요. 비를 피하며 시에서 시장을 조성하려 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곰곰히 생각했어요.
다시 사진을 찍으며 새시장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할머니께서 저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계셨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어요.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할머니께 이 동네 유래를 여쭈어봤어요. 할머니께서는 시에서 시장 조성한다고 해서 울진에서 권리금 내고 들어오셨대요. 그런데 시에서 시장은 안 만들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더니 결국 시장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안 지키고 일반 가정집으로 분양해버렸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권리금 내었으니 어쩔 수 없이 일반 가정집으로 분양받아서 그때부터 계속 여기에서 살고 계시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 그게 언젯적 일인지 여쭈어봤어요. 할머니께서는 시에서 향로봉 앞에 시장을 조성하려 했던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70년대 일이었을 거라고 하셨어요. 시에서는 원래 앞쪽 돌산 및 이 일대 사람들 대상으로 시장을 만들려고 했다고 알려주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새시장 마을은 시장으로 만들려고 하다 안 된 곳이라 땅이 평지이고 부지 면적이 되어서 현대건설에서 재개발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나 새시장 마을에서 오징어 덕장 하는 두 집이 반대해서 재개발이 계속 연기되다가 현대건설 부도로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고 말씀하셨어요.
'현대건설 부도?'
할머니께서 현대건설 부도로 재개발이 나가리가 되어버렸다고 하셨어요. 현대건설 부도라니 뭔가 이상했어요. 나중에 찾아보니 현대건설은 2000년에 2조 9천 8백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부도가 난 적 있었어요. 이로 미루어봤을 때 현대건설의 새시장 마을 재개발 추진은 2000년 이전의 일이었을 거에요.
할머니께서는 오징어 말리던 두 집은 지금 오징어 말리는 일을 안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지금 새시장 마을은 낙후되고 여기 저기 빈 집이라고 알려주셨어요.
"멀리서 왔는데 날이 궂어서 어째요."
"괜찮아요. 태백, 도계랑 여기처럼 사연 있는 곳 다녀서 어떻게 보면 어울리는 날씨네요."
할머니께서 하필 날이 참 매우 안 좋을 때 와서 어떻게 하냐고 안타까워하셨어요. 할머니께 사연 있는 동네들 다니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어울리는 날씨라고 말씀드리며 괜찮다고 했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새시장 마을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시에서 시장을 만들어?'
새시장 마을의 유래를 알게 되었지만 시에서 시장을 만들려 했다는 말이 영 와닿지 않았어요.
비는 끝없이 무섭게 퍼붓고 있었어요.
"아, 신제주 종합시장!"
시에서 시장을 조성하려 했다는 말이 영 안 와닿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며 걷던 중이었어요. 순간 신제주 종합시장이 떠올랐어요.
모든 재래시장이 자연 발생한 것은 아니다.
깜빡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어요. 보통 '재래시장'이라고 하면 막연히 사람들이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을 떠올려요. 이런 추측이 맞는 재래시장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재래시장도 있어요.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살게 되면 시장이 생겨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 많이 몰려 살게 된다는 게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든'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살게 된 원인은 자연스럽게 인구가 늘어난 경우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사람을 특정 지역으로 몰아넣듯 거주하도록 해서 인구가 증가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방법이 특정 지구 재개발 등을 통한 유도일 수도 있고, 강제 이주 같은 무력적 방식일 수도 있어요.
하여간 어떤 방법, 이유에서든 사람들이 많이 몰려 살게 되면 시장이 필요해져요. 시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해져요. 이때 인위적으로 시장을 만들 수도 있고, 그대로 놔둬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게 할 수도 있어요. 또는 도시를 정비하면서 혼잡스러운 지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장 부지를 마련하고 온갖 노점상과 상인들을 그쪽으로 보내서 시장을 형성시키는 방법도 있어요.
그러니 시에서 시장을 조성하려 했다는 게 이상할 것 없었어요. 오히려 모든 재래시장이 자연발생했을 거라 지레짐작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거에요. 어떤 이유에서든 이 일대 거주민들에게 시장이 필요할 거 같아서 도처에 노점상, 떠돌이 상인 등이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있던 지역을 정리하고 시장 하나 만들려고 했다고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했어요. 또는 이 지역을 복개하고 정비하는 과정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대로 놔두면 향후 노점상, 떠돌이 상인 등이 무질서하고 어지럽게 자리 잡고 장사할 게 뻔해서 미연에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시장을 조성하려고 했을 수도 있구요.
재래시장이라고 너무 어렵거나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사람 많이 사니까 거기에 대형 마트 하나 세워주려고 했다고 보면 되요. 딱 이거였어요.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새시장 마을의 유래를 오늘날 모습으로 비유하자면 대형 마트 세우려고 공사해서 건물 올리고 입점할 가게들 다 권리금까지 받았는데 마트 오픈한 게 아니라 차일피일 오픈일 미루다가 일반 주택으로 분양해버린 셈이었어요.
권리금 내고 가게 받으려 했던 사람 입장에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을 거였어요. 돈 벌려고 가게 열기 위해 권리금 내었는데 가게가 아니라 갑자기 일반주택으로 분양해버렸으니까요. 권리금 낸 상태라 이걸 분양 안 받으면 권리금 날리니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예정에도 없던 집을 분양받아야만 했을 거에요.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진짜 '너, 납치된 거야' 꼴이었을 거에요.
강원도 동해시 발한동 새시장 마을은 제 예상대로 역시 사연 있는 마을이었어요. 요즘에 이런 일 일어났으면 완전히 난리났을 거에요. 요즘에 이런 일이 발생했으면 무슨 사기 사건에 집단 소송 움직임 뉴스가 인터넷에 줄줄이 올라오고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 관련 게시물이 계속 올라왔을 거에요. 그것도 일반 기업이 그런 짓을 벌인 게 아니라 관청이 벌인 짓이었으니 더 크게 주목받았을 거에요.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모두 시에서 시장을 조성하려고 했다고 하셨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지역은 원래 명주군 소속이었어요. '시'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1980년대 초반 일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관에서 추진했던 일이라 '시'라고 했을 수도 있어요. 언제 하천을 복개해서 향로복개로가 만들어졌는지는 끝내 못 찾았어요. 1980년대 초반에 발생한 일일 확률이 가장 높기는 했지만, 할머니 말씀대로 진짜 1970년대에 발생한 일일 수도 있어요.
새시장 마을에는 공용 화장실이 있었어요.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 일을 보고 나왔어요. 화장실은 매우 깨끗했어요.
하늘은 새시장 마을 사연 듣고 슬펐는지 펑펑 울고 있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발한동 새시장길 새시장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향로복개로로 나왔어요.
'돌산마을은 제껴야겠다.'
원래 동해시 여행 계획은 새시장 마을을 본 후 맞은편 향로봉에 있는 돌산마을에 가는 거였어요. 그러나 발과 다리가 아픈 데다 날씨도 엉망이었어요. 게다가 실제 와서 보니 몇 집 없었어요. 앞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제일슈퍼 할아버지께서 돌산마을에 대해서도 다 이야기해주셨어요. 저기는 예전에 건주로 먹고 사는 동네였고, 저 마을 윗쪽은 다 덕장이었어요. 저 동네 가서 새롭게 발견할 것은 더 있지 않아보였어요.
제일슈퍼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길로 걸어갔어요.
아까 지나왔던 향로1길 입구를 다시 지나갔어요.
2022년 10월 6일 오후 5시 22분, 해안로 큰길과 영동선 철길 아래로 지나가는 굴다리 통로 앞에 왔어요.
굴다리에는 시간이 묻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