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26 - 운탄고도1330 8길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구간 경주 김씨 열녀각

좀좀이 2023. 2. 14. 23:17
728x90

망설임 없이 마차리 마을 진입로를 선택했어요. 긴장감 넘치는 길도 좋았지만 너무 자극적인 것만 먹으면 속 다 버려요. 대형 차량이 질주하는 강원남부로는 너무 자극적인 길이라 잠시 순한 맛 길도 걸으며 정신적 휴식을 취하기로 했어요. 육체적 휴식을 취할 만한 곳도 있다면 더욱 좋을 거였어요. 육체적 휴식을 취할 만한 곳이 보이면 바로 앉아서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어요.

 

"날 따스하네?"

 

태백시 찜질방에서 출발할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온이 많이 상승했어요. 태백시야 원래 추운 동네니까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어요. 기온이 아침에 도계에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따스해졌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버스터미널에서 버스 내렸을 때만 해도 살짝 쌀쌀한 기운이 있었는데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쌀쌀한 기운이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습하고 따뜻했어요. 기온 자체도 따뜻해졌고, 여기에 열심히 많이 걸어서 몸도 열이 올라왔어요.

 

날은 따스했지만 손은 약간 시렸어요. 손은 계속 주머니 밖에 꺼내고 있었고, 비를 그대로 다 맞았어요. 빗물 때문에 손만 조금 차가웠고, 외투 소매로 덮힌 팔은 쌀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웠어요. 비가 내려서 기온이 크게 오르지 않고 오히려 추울 거 같은데 비라도 내려서 기온이 덜 올라 그나마 땀 삐질삐질 안 흘리고 걷고 있었어요. 산골짜기 마을을 걷는 길이라 추울 거 같았지만 예상 외였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마을 안으로 들어갔어요. 주위를 둘러봤어요. 여기는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었어요. 논밭이 펼쳐져 있고 민가도 있었어요. 논밭 너머로 산이 버티고 있었어요.

 

강원도 영동선 철도

 

논밭과 산 사이에는 영동선 철도가 있었어요. 영동선 철도가 논밭에서 산으로 바로 갈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었어요.

 

기찻길로 산에서 내려오는 음기를 막는다?

 

기찻길은 지대를 높여서 건설해놨기 때문에 산에서 내려오는 음기를 막는 둑처럼 보였어요. 풍수지리에서 산은 음기가 강하다고 해요. 실제로 산에서는 차가운 산바람이 아래로 내려와서 산 아랫쪽은 서늘해요. 산이 음기가 강하다는 말이 아예 근거없는 소리는 아니에요. 그리고 산은 음기가 강해서 귀신도 산에서 잘 살고 나쁜 기운도 잘 흘러내려온다고 해요. 기찻길을 땅을 돋구어서 논밭보다 높게 둑처럼 만들어 그 위에 설치했어요. 그래서 기찻길이 산에서 내려오는 음기를 막기 위한 둑처럼 생겼어요.

 

음기까지는 모르겠음.

하지만 멧돼지, 고라니 내려오는 건 잘 막게 생김.

 

여기도 강원도이고 산에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있으니 멧돼지, 고라니가 살기 좋은 산일 거에요. 멧돼지, 고라니는 농작물 피해를 크게 입히는 동물들이에요. 아주 어렸을 적에 읽은 동화 중 멧돼지가 마을을 습격해서 옥수수를 먹는 장면을 본 아이가 어른들께 일러서 멧돼지를 쫓아내었다는 동화가 있었어요.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음기와 나쁜 기운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기찻길이 산과 논밭 사이에 저렇게 있으니 기찻길이 농사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 고라니 내려오는 건 충분히 잘 막아주게 생겼어요.

 

강원도 도보 여행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마을 안에는 싱싱한 푸르름이 가득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보 여행 사진

 

강원도 도보 여행 사진

 

논은 추수가 끝나 있었어요.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어요.

 

강원도 벼농사

 

'육지에서야 벼농사 흔하니까.'

 

강원도 첩첩산중 마을에 논이 있다고 해서 놀랄 것은 없었어요. 제주도에서 논을 본다면 정말 신기한 장면이라고 뚫어져라 바라보며 풍경을 두뇌에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했을 거에요. 여기는 제주도가 아니었어요. 제주도에서 까마득히 먼 강원도 삼척시였어요. 대한민국 본토는 아무리 산골짜기 마을이라고 해도 논이 있어요. 여기에서 논이 있다고 해서 신기한 풍경은 아니었어요. 산과 도로 사이에 있는 땅이 아주 드넓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농사지으며 살 만한 면적은 되었어요. 우리나라 본토에서 이 정도 평지에 논이 있는 것은 당연했어요.

 

'가을이긴 한가 보다.'

 

추수가 끝난 들판을 보자 지금 계절이 가을이라는 사실이 와닿았어요.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1330 8길 신기면 마차리 구간 풍경 사진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커다란 정자나무가 있었어요.

 

'저기가 대충 여기 중심지쯤 되겠다.'

 

시골 마을에서 정자나무가 있는 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정자나무가 지리적으로 꼭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지는 않아요. 마을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버스 정류장 바로 옆이나 뒷편에 정자나무가 있는 경우도 있어요. 정자나무가 있는 곳은 마을 사람들이 잘 모이는 곳이라 인문지리적으로 대체로 마을의 중심지에요. 운탄고도1330 8길도 왠지 저 나무 옆으로 지나가도록 길이 설정되어 있을 것 같았어요. 정자나무만큼 좋은 이정표도 없으니까요.

 

강원도 시골 마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사람은 없고 사람 흔적만 있습니다.

벌써부터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사람이 하나도 없네?"

 

강원도 신기면 마차리 마을 안을 걸어가는데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였어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은 맞았어요. 사람들이 사니까 논밭이 잘 관리되고 있었어요. 사는 것은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서 살고 출근하듯 아침에 이쪽 논밭으로 와서 농사짓고 저녁에 퇴근하듯 다 떠나는 동네는 아니었어요.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은 매우 쉽게 발견할 수 있었어요. 사람들이 다 떠나서 버려진 동네가 아니라 여전히 주민들 잘 살고 있는 동네였어요.

 

여기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는 분명한데 사람은 한 명도 안 보였어요. 사람 소리도 안 들렸고, TV나 라디오 소리도 안 들렸어요. 바로 이날 새벽에 여기 있던 사람들이 모두 증발해버린 것처럼 사람 살고 있는 흔적은 너무나 생생한데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비가 와서 모두 집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로 동네 전체에 인기척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심지어 개 짖는 소리조차 없었어요.

 

'아까 고사리부터 사람 못 봤지?'

 

마지막으로 인간을 본 것은 소달초등학교에서였어요. 소달초등학교에서 길 물어본 것이 인간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어요. 소달초등학교 지나서부터는 길에 있는 사람을 한 명도 못 봤어요. 도로를 달리는 버스와 대형 덤프트럭이 무인 자동차는 아니니 그 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야 사람이죠.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 내부에 탑승한 사람들 외에는 사람을 여태 못 보고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정자나무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정자나무 앞까지 왔어요.

 

강원도 밭작물

 

강원도 산골 농촌 풍경 사진

 

정자나무 아래에는 정자가 있었어요.

 

'저기에서 잠깐 앉아서 쉴까?'

 

정자로 다가갔어요. 정자는 빗물에 젖어 있었어요. 앉아서 쉴 수 없었어요.

 

쉴 만한 장소가 나올 때까지 일단 계속 걷기로 했어요. 발이 아프고 다리도 피로가 쌓이는 수준을 넘어서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방법이 없었어요. 계속 걷다 보면 버스 정류장 하나는 나올 거였어요.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있어야 했어요.

 

강원도 경운기

 

"여기 풍경이 희안하네?"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데 풍경이 매우 희안했어요. 분명히 아주 희안한 점이 존재했어요.

 

석탄의 길 1부 26 - 운탄고도1330 8길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구간 경주 김씨 열녀각

 

이거 가을 풍경 맞아?

날짜 정보 없이 봄에 다녀왔다고 해도 사람들 다 믿는 거 아냐?

 

지형 자체가 이상하지는 않았어요. 지형적인 면에서는 그렇게 특이하다고 할 만한 사항이 없었어요. 그러나 너무 희안한 점이 존재하는 풍경이었어요. 이건 아무리 봐도 가을 풍경이 아니었어요.

 

왜 10월에 3월 풍경을 보고 있지?

 

아무리 봐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10월 가을 농촌 풍경이 아니라 3월 봄 농촌 풍경이었어요. 여행기 쓸 때 여행기 쓰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2022년 10월 6일이라고 적어놓지 않고 2023년 3월쯤 지금 보고 있는 풍경 사진들을 올리면 사람들이 사진 보고 봄철의 강원도 풍경 사진 잘 보고 간다고 댓글 남기게 생겼어요. 죽음의 빛이 낀 누렇고 어두운 녹색이 아니라 이제 생명의 빛이 움트기 시작한 싱싱한 초록색이었어요.

 

날씨도 부슬비가 계속 내리고 있었어요. 하늘에서 내리고 있는 부슬비는 가을비가 아니라 봄비에 가까웠어요. 기온도 매우 포근해서 갈 수록 쌀쌀한 가을 바람이 아니라 갈 수록 포근해지는 봄 바람이었어요.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계절의 향기는 마른 풀 냄새가 섞인 가을 냄새가 아니라 싱싱하게 자라기 시작한 풋풋한 풀 냄새가 섞인 봄 냄새였어요. 눈을 뜨고 보나 눈을 감고 보나 영락없는 봄이었어요.

 

강원도 추수

 

논에는 벼가 싹이 터서 자라고 있었어요.

 

'계절 착각하고 기온만 보고 싹트는 것들도 있으니까.'

 

2022년 10월 6일은 가을이었지만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는 봄 같았어요. 논에서는 벼가 싹을 틔워서 자라고 있었어요. 아무리 봄 같은 날씨였지만 논에서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어요. 추수하다 보면 논바닥에 떨어지는 벼도 있어요. 이런 볍씨가 비 내리고 날 포근하면 계절 착각하고 싹을 틔울 수 있어요. 식물이야 달력 보고 오늘은 꽃 피우고 내일은 겨울잠 자겠다고 하지 않으니까요. 한겨울에도 날이 갑자기 따스해지면 정신 못 차리고 1월에 개나리 피는 일도 있으니 그렇게 놀랄 만한 풍경까지는 아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경주 김씨 열녀각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마을회관 앞에는 경주 김씨 열녀각이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경주 김씨 열녀각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경주 김씨 열녀각 앞에 설치된 안내판에 적혀 있는 안내문은 다음과 같았어요.

 

본관은 경주 김치선의 딸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전용택과 결혼했으나, 겨우 1년이 지나 남편이 죽자 서러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른 후 물한모금, 간장 한방울을 마시지 않고 밤낮으로 무덤을 파헤치다, 지쳐서 죽으니, 집안에서는 죽은 남편과 합장시켰다.

지아비를 섬기기에 지극했던 한 여인의 애절한 죽음이 마을 주민들에게 감동을 주어 무진년(1928)에 김씨부인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열녀각을 세웠다.

 

Mme. Kim came from a family whose Imeage originated in Gyeongju. She was a daughter of Kim Chi-seon and known for her filial piety from her childhood. She married Jeon Yong-taek, but her husband died just one year after wedding. She was so grief stricken that she kept digging at her husband's grave day and night, even without a single sip of water, and finally died. Her body was buried together with her husband's. The tragic death of the faithful woman impressed her neighbors and the yeolnyeogak, or pavilion of chastity, was built in honor of Mme.Kim in 1928.

 

한국어로 된 설명문에는 '물 한 모금, 간장 한 방울 마시지 않고'라고 되어 있었지만, 영어로 된 설명문에는 'even without a single sip of water'라고만 되어 있었어요. 역시 음식 이름 번역은 어려워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경주 김씨 열녀각 설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열녀각이 1928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었어요. 조선시대에 건립되었다면 조선시대야 그런 시대였으니 그러려니했을 거에요. 그런데 1928년이라면 일본강점기였어요. 일본이 조선을 통치할 때 근대화 명목으로 조선의 전통 풍습, 미신에 탄압을 꽤 가했어요. 일본이라고 자유로운 이혼과 재혼을 권장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에 열녀각이 세워졌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 구간 경주 김씨 열녀각을 지나 계속 앞으로 걸어갔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이거 뭐야!"

 

논을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어요.

 

강원도 가을 농사

 

강원도에는 벼농사 2모작 짓는 지역이 있다?

 

무슨 6시 내고향에 등장할 만한 멘트. 첩첩산중 강원도 산골마을에서는 10월인데 모내기가 한창입니다. 어르신들, 새참 드시고 하세요! 역시 농삿일에는 막걸리 한 사발이 빠질 수 없죠. 이런 동네인가.

 

강원도에는 계절이 홀로 거꾸로 흘러가는 지역이 있다?

 

아니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이야기? 2022년 10월 X일 삼척시. 한 남자가 도보 여행 하던 중 들판을 보고 기겁하게 되는데...아니, 여기 풍경이 왜 이래! 그 남자가 본 풍경은 놀랍게도 가을에 모내기를 하는 풍경이었다. 이런 동네인가.

 

아까 본 논에 벼가 싹터서 자라고 있는 것은 수확중에 떨어진 벼이삭에서 싹이 자라났다고 넘길 수 있었어요. 그러나 이건 아니었어요.

 

이게 다 수확 중 떨어진 벼이삭이 싹튼 거라구?

수확을 한 거야, 벼이삭 여문 거 다 잘라서 쏟아버린 거야?

 

이 정도면 수확 중 떨어진 벼이삭이 싹튼 거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했어요. 아주 모내기를 새로 한 수준이었어요. 수확 끝난 논바닥에서 벼가 파릇파릇하게 싹이 터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어요.

 

"무슨 제주도도 아니고 강원도에서 벼농사 2모작이야?"

 

제주도도 벼농사 2모작은 못 해요. 여기는 겨울에도 따스한 제주도 서귀포도 아니고 한겨울에 매우 추운 강원도 산골짜기였어요.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무슨 벼농사 2모작을 해요. 벼는 누가 일부러 심어놓은 것처럼 너무 질서정연하게 잘 심어져 있었어요. 여름철 벼가 자랐던 자리에 그대로 싹이 터서 벼의 새싹이 줄맞춰 자라나고 있었어요. 봄철 모내기 풍경이라고 해도 믿을 광경이었어요.

 

'여기 진짜 뭐 있나?'

 

날씨부터 시작해서 풍경까지 아무리 봐도 봄철이었어요. 2022년 10월 6일은 엄연한 가을. 가을 풍경이 펼쳐져야 하는데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봄날 풍경이었어요. 봄비 내리고 농사 시작하는 3월의 농촌 풍경 속에 제가 서 있었어요. 시간이 이 지역만 거꾸로 흘러가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아니면 시간이 이 지역만 혼자 6개월 앞서서 흘러가는 건가 머리를 긁적였어요.

 

논에서 벼 새싹이 모내기한 것처럼 줄맞춰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강원도 친구한테 전송했어요.

 

"너네 동네 왜 이래?"

"응? 뭐가?"

"사진 봐봐."

 

강원도 친구도 놀랐어요. 강원도 친구가 봐도 이건 추수중 흘린 볍씨가 싹틔워 자라나는수준을 넘었어요.

 

강원도 삼척 여행

 

봄 풍경이 펼쳐진 2022년 10월초 삼척의 풍경을 바라봤어요. 이게 어디를 봐서 가을 풍경이에요. 우즈베키스탄 있었을 때 봄이 오면 TV에서 나오던 'Bahor Keldi' 멘트 적힌 풍경 영상을 떠올리게 만드는 풍경이었어요. Bahor는 우즈베크어로 '봄', keldi 는 우즈베크어로 '그가 왔다'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봄철이 되면 우즈베키스탄 TV에서 봄철 들판 풍경 영상이 나오며 봄과 관련된 멘트가 나오곤 했어요. 3월 중순 즈음부터 시작해서 우즈베키스탄 춘분 축제인 나브루즈 당일인 3월 21일까지 Navruz 멘트가 들어간 영상이 나오고, 그 이후부터는 봄이 왔다고 Bahor 멘트가 들어간 영상이 나오곤 했어요. 딱 그때 나올 법한 풍경이었어요.

 

'아, 나는 봄의 시작 나브루즈를 우즈벡에서 제대로 못 봤지?'

 

10월에 봄이 찾아온 삼척 풍경을 바라보며 2012년에 우즈베키스탄 갔을 때 봄의 시작을 축하하는 우즈베크인 명절 나브루즈를 제대로 보지 못 한 것이 떠올랐어요. 2012년에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 나브루즈를 직접 경험했어요. 그런데 하필 2012년 3월 21일 즈음은 무지 추웠어요. 나브루즈 당일인 3월 21일 불과 며칠 전에 제가 머무르고 있던 타슈켄트는 눈이 쌓여 있었고, 눈이 녹지 않고 빙판인 곳도 여기저기 있었어요. 2012년 3월 21일에도 날씨는 매우 추웠어요. 사람들이 두툼한 코트를 입고 나브루즈를 축하했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 나브루즈를 보고 우리나라 24절기 중 입춘쯤 되는 줄 알았어요. 입춘에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적힌 종이를 문에 붙이고 봄맞이 준비를 하지만 실제 봄은 3월 꽃샘추위까지 끝나야 와요. 제가 우즈베키스탄 있었던 2012년 나브루즈는 추웠기 때문에 나브루즈도 봄이 이제 오기 시작할 거라고 축하하는 명절이라 여겼어요. 하지만 나중에 우즈베크인들이 2012년 나브루즈만 기온이 이상해서 그랬던 거고, 원래 나브루즈는 완연한 봄에 봄을 축하하는 축제라고 알려줬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2013년에 인터넷으로 우즈베키스탄 2013년 나브루즈를 보니 진짜 완연한 봄이 찾아와 있었고, 사람들이 외투를 벗고 모두 봄옷을 입고 있었어요. 하필 제가 갔던 2012년만 우즈베키스탄에 겨울의 나브루즈가 찾아왔고, 그 이후부터는 매해 한 번도 빠짐없이 완연한 봄이 찾아와 봄을 축하하는 나브루즈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봤던 정말 겪기도 어렵다는 눈 쌓인 나브루즈. 이번에 삼척에서 보는 풍경은 벼농사 시작된 가을의 삼척.

 

그렇소. 여기는 신기한 동네 신기면이오.

 

우즈베키스탄에 있었을 때는 2012년, 삼척시에 여행온 것은 2022년. 10년 후에 대자연의 변덕이 만들어낸 신기한 광경을 다시 목격했어요.어요.

 

여기는 '신기'한 동네 '맞아'.

그래서 신기면 마차리인가.

 

괜히 신기면이 아닌 모양이었어요. 얼마나 신기했으면 이 지역 지명이 신기면이겠어요. '신기하다'의 신기는 神奇이고,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의 신기는 新基에요. 신기하다의 '신기'와 신기면의 '신기'가 한자로는 다르지만 신기면 마차리 와서 이런 풍경을 보니 신기방기한 동네 신기면이었고, 신기한 동네 맞아 마차리였어요.

 

강원도 고추

 

빨간 고추가 지금 계절 가을이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싱그러운 초록빛 이파리에 진압당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아름다운 풍경 여행

 

운탄고도1330 강원도 신기면 마차리 코스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강원도 돌담

 

돌담이 나왔어요. 돌담은 묘하게 제주도 느낌이었어요.

 

연탄재

 

논 한 켠에는 연탄재가 쌓여 있었어요. 연탄재는 물을 머금어 더욱 붉은빛이었어요. 연탄재는 흙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어요.

 

강원도 마을길

 

강원도 민가

 

강원도 삼척 마을 풍경

 

빗방울이 계속 쏟아졌어요. 비에 젖은 얼굴을 손으로 닦아가며 걸었어요.

 

강원도

 

나무로 만든 단 위에 빨갛게 익은 고추가 마르고 있었어요. 벽에는 옥수수가 걸려 있었어요.

 

강원도 여행 사진

 

강원도 삼척시 여행 사진

 

2022년 10월 6일 오후 1시 5분, 마차리(앞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마차리(앞실) 버스 정류장

 

'잠깐 쉬자.'

 

드디어 비를 피해 앉아서 쉴 곳이 나왔어요. 마차리(앞실) 버스 정류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의자에 앉았어요. 신발을 벗었어요. 신발을 벗자 발에서 느껴지는 통증이 빠르게 가라앉았어요. 신발 속에 고여 있던 통증이 신발을 벗자 대기중으로 증발해갔어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끝이지?'

 

마차리역도 지나왔고, 마차리 마을회관도 지나왔어요. 남은 구간 지도를 봤어요. 다시 강원남부로로 들어가서 강원남부로를 따라 걷다가 대평리로 들어가야 했어요. 대평리 입구에서 강원남부로와 진짜 작별하고 마을 안에 있는 길을 따라 걸을 거였어요. 대평리 마을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이 신기역까지 이어졌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종점은 신기역이에요. 남은 구간은 별로 길지 않았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어요.

 

'차라리 빨리 신기역 가서 쉬자.'

 

발에 맞지 않는 볼이 좁은 신발을 신고 걸어왔기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팠어요. 여기에서 더 쉬다 가는 것이 맞았어요.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어정쩡하게 쉴 바에는 발이 아프기는 해도 신기역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신기역까지 빨리 가서 신기역에서 기차 올 때까지 푹 쉬는 것이 더 나아보였어요. 여기에서 어설프게 쉬어봐야 조금 걸으면 발이 또 바로 전까지 엄청 아팠던 것처럼 아플 거였어요. 신기역까지는 무조건 걸어서 가야 했어요. 동해시 가서 또 걸어서 돌아다녀야 했어요. 발 아픈 것이 조금씩 쉬는 수준으로 깔끔히 가라앉을 단계를 넘어섰으니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신기역 가서 푹 쉬는 게 더 좋았어요.

 

의자에서 일어났어요.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자연 환경 사진

 

또 다시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멀리 떨어져 있는 영동선 철길을 바라봤어요.

 

강원도 화물 열차

 

강원도 석탄 수송 열차

 

석탄 수송 열차였어요.

 

"저 기차도 묵호로 가겠지?"

 

석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파란색 화차를 줄줄이 매달고 달려가는 기차를 보며 저 기차는 동해시 묵호를 향해 달려갈 거라고 중얼거렸어요. 기차는 나부터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며 손을 흔들며 빠르게 북쪽으로 달려갔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