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24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하고사리역 - 기차 사진 인스타그램 감성 풍경 사진 삼척 여행 아름다운 기차역 폐역 추천 출사지

좀좀이 2023. 2. 11. 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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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묻은 빗물을 손으로 닦아내었어요. 빗방울이 갈 수록 굵어지고 있었어요.

 

우산 안 쓸 거야?

우산 안 쓰고 배기겠어?

 

하늘이 제게 계속 어서 빨리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서 쓰라고 재촉했어요.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고 있었어요. 이거 조금이라도 늦게 우산 꺼내었다가는 비가 본격적으로 퍼붓기 시작해서 옷이고 가방이고 다 쫄딱 젖게 생겼어요. 무슨 영화 속 시한폭탄 타이머 5초 남았다 4초 남았다 하는 것처럼 갈수록 굵어지는 빗방울이 어서 포기하고 우산을 쓰고 다니라고 하고 있었어요.

 

"내가 우산 쓰나 봐라."

 

우산을 꺼내서 쓰는 건 문제가 아니었어요. 가방 속에 우산이 있기 때문에 우산만 꺼내서 펼치면 그것으로 끝. 하지만 우산을 꺼내서 펼치는 순간 불편함은 남은 구간 내내 지속될 거였어요. 젖은 우산을 접어서 바로 가방에 넣을 수는 없었어요. 그랬다가는 젖은 우산의 물기가 가방 안에 퍼져서 가방 속에 넣은 옷이 젖으니까요. 가다가 비가 그친다면 우산을 안 쓰고 다녀도 되겠지만 우산을 계속 손으로 들고 다녀야 했어요.

 

비 쏟아지기 전까지 2초, 1초, 0.5초, 0.5초의 반초, 0.5초의 반의 반초...

 

하늘은 계속 사람 약올리고 있었어요. 확 쏟아질 거 같기는 한데 또 버티면 상황이 개선될 거 같기도 했어요. 애매했어요. 5초 준다고 하면 절대 5초에 칼 같이 끊지 않고 1초 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반초, 반의 반초, 반의 반의 반초 이렇게 줄줄줄 늘어지는 한국의 카운트다운 문화를 지금 하늘이 그러고 있었어요. 내린다, 내린다, 내린다, 어어어 내린다, 어어어어 진짜 내린다? 이러고 있었어요.

 

'아니야, 아직 버틸 만 해.'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 버텼어요. 아직까지는 우산 안 써도 되었어요. 가랑비에 옷이고 머리고 전부 젖어가고 있었지만요. 스마트폰 액정 위로 자꾸 빗물이 떨어져서 스마트폰 조작하기 어려워지고 있었지만 괜찮았어요. 빗물 때문에 불편한 것보다 우산 때문에 불편한 게 훨씬 더 불편해요. 아직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었어요. 이 정도 쫄리는 맛도 없으면 그게 무슨 여행이에요. 내가 지금 방구석 랜선 여행중인 게 아니잖아요. 내 육체로 직접 환경에 부딪히며 살아있는 진짜 여행하러 왔잖아요.

 

스마트폰을 계속 옷에 문질러서 액정 위에 떨어진 빗물을 닦아가며 앞으로 나아갔어요.

 

"뭐야?"

 

석탄의 길 1부 24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하고사리역 - 기차 사진 인스타그램 감성 풍경 사진 삼척 여행 아름다운 기차역 폐역 추천 출사지

 

엄청난 비경이 등장했어요.

 

동양화와 서양화의 매력을 합쳐놓은 듯한 매력을 뽐내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하고사리역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라 두 눈이 휘둥그레해졌어요. 이게 진짜 풍경인지 소설 속 아름다운 삽화인지 분간이 안 가는 풍경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이런 풍경이 있었어?"

 

고사리역에서 급경사 길을 걸어오며 쌍쌍바 쌍쌍바거렸는데 그럴 가치가 있었어요. 바로 이 풍경을 보러 오는 길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그 정도 고생했다면 오히려 아주 싸게 잘 먹힌 거였어요. 우리나라에서 멋진 풍광 보려면 험한 산 같은 곳으로 고생하며 한참 가야 볼 수 있는데 고사리역과 하고사리역 사이에 있는 고갯길은 급경사라 힘들기는 해도 짧았거든요.

 

바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계속 감탄했어요. 이런 풍경을 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러운데 사진까지도 제가 보고 있는 그대로 너무 잘 나왔어요. 유채 물감으로 찐득하고 두텁게 그린 것 같은 추수가 끝난 갈색 밭과 그 너머 노란 밭. 밭 너머에 운치 있는 커다란 버드나무와 그 너머 하얀벽에 하늘색 지붕 조그만 하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뒤에는 멋진 절벽이 드러난 산이 있었어요. 여기에 비 살살 쏟아지고 있는 흐린날이라 하늘은 또 하얀색.

 

이거 완전 한국의 미잖아!

 

눈 앞에 펼쳐진 풍경과 사진 모두 여백까지 아주 퍼펙트했어요. 비 내리는 시허연 하늘이 참 원망스러웠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어요. 하늘이 구름 때문에 하얘서 한국의 미가 완성된 풍경이었어요. 새파란 하늘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감동스럽지 않았을 거에요. 온세상이 축축하게 젖어서 대지는 서양의 진한 유화 빛이었고, 구름에 감싸인 산과 하얀 하늘은 담백한 동양화 빛이었어요.

 

동양화와 서양화의 만남.

이곳이 바로 하고사리역인가!

 

이 정도면 인스타그램 감성 풍경 사진 맛집이라고 추천해도 되었어요. 아름다운 기차역 폐역이라고 널리 홍보해도 되었어요. 한국의 미를 듬뿍 느낄 수 있는 멋진 여행지라고 소개해도 되었어요.

 

이 비는 진짜 빛을 맛보기 위한 조미료.

음식도 풍경도 조미료 팍팍 써야 꿀맛!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하고사리역과 그 주변 풍경은 그 자체로도 너무 멋진 곳인데 비까지 내리고 있었어요. 비가 너무 많이 내리지 않고 적당히 추적추적 내렸어요. 비를 머금은 풍경은 진한 빛을 뿜어내었어요. 비구름이 하늘과 하고사리역 뒤에 있는 산을 뿌연 하얀빛으로 덮었어요. 맑은 날 왔다면 원경과 근경 차이가 그렇게 나지 않는 풍경일 건데 비가 살살 쏟아지는 이 순간에 본 하고사리역은 비구름 때문에 원근감도 극대화되었어요.

 

"누가 보면 합성에 후보정 엄청 한 줄 알겠다!"

 

풍경 보며 전율이 느껴지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어요. 지금 내리고 있는 비는 저주받은 비가 아니라 축복받은 비였어요. 제게 최대한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려고 열심히 풍경에 쏟아붓는 맛있는 조미료였어요.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은 풍경의 미원, 사카린이었어요. 조미료 듬뿍 들어가 최고의 맛이 된 풍경 맛에 감동받았어요. 하고사리역 풍경은 몽환적이기까지 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

난 영원히 널 이 기억에서 만나!

 

이걸 노리고 아이유의 Eight를 무한 반복으로 듣는 중이 아니었어요. 원래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한 번 꽂힌 노래 있으면 며칠이고 몇 주고 무한반복으로 그 노래만 주구장창 들어요. 운탄고도 8길 여행 오기 전 며칠 전에 노래를 쭉 듣다가 아이유의 Eight 을 듣고 완전히 꽂혀버렸어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무한반복으로 계속 들어오던 중이었고, 이날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노래까지 바로 이 순간에 너무 잘 어울렸어요. 우울한 결말 따위는 이 여행에 없어요. 나는 영원히 하고사리역을 이 기억 속에서 만날 거에요. 눈 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멋진데 노래까지 딱 맞췄어요.

 

나의 운이 여기에서 다 터지는 건가?

 

너무나 완벽했어요. 이런 것을 노리고 온 것도 아니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걷자고 왔을 뿐, 하고사리역 풍경에 기대 하나도 안 했어요. 그저 도계역부터 영동선 철길과 오십천 따라 쭉 걸어서 신기역 가면 된다는 것 정도만 알고 왔어요. 운탄고도1330 8길 걷는 여행 컨셉에 아이유 Eight 를 들으면 딱이겠다고 노리고 이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아이유의 Eight 라는 노래가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어요. 어쩌다 보니 이 여행 오기 며칠 전에 이 노래를 알게 되었고, 딱 꽂혀서 무한 반복으로 듣고 있던 중이었어요. 이게 완벽히 다 맞아떨어졌어요.

 

이렇게 모든 게 다 맞아떨어지는 게 쉽지 않아요. 이건 만들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요. 만약 이날 비가 아예 안 내렸거나 비가 조금이라도 더 퍼부었다면 완전히 망한 상황이 되었을 거에요. 또한, 아이유 Eight 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면 이날 이 노래를 듣고 있지 않았을 거에요. 아이유의 Eight 노래는 2020년에 발매된 노래이기 때문에 만약 진작에 알았다면 설령 그때 딱 꽂혔다 하더라도 한 몇 주 주구장창 듣다가 그 이후 안 들었을 거고, 이 순간에 다른 노래를 듣고 있었을 거에요. 그러니까 모든 게 다 운좋게 정확히 맞아떨어졌어요.

 

'진짜 즉석복권이라도 긁어야하는 날인가?'

 

지금까지 여행 다니면서 운이 이렇게 제대로 따라준 날은 없었어요. 지난 여행들을 떠올려보면 온통 고생에 악운과 싸우며 다닌 여행이었어요. 물론 그래야하는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잘 다니곤 했으니 그런 것도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길마다 대박이 터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아무리 여행에 좋은 운이 따라준다고 해봐야 운좋게 버스 잘 잡아타는 수준이었어요. 이렇게 뭘 해도 대박이 터지는 초대박 강운이 따라주는 날은 제 인생에서 여행 뿐만 아니라 일상까지 다 합쳐도 없었을 거에요.

 

강원도 삼척시 고사리는 부슬비가 내려서 평소보다 더욱 진하고 찐득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하고사리역 앞으로 갔어요.

 

국가등록문화재 제336호 삼척 구 하고사리역사

 

하고사리역 앞에는 국가등록문화재 제336호 삼척 구 하고사리역사 설명문이 적혀 있는 안내판이 있었어요. 설명문에는 하고사리역이 1966년에 건설된 역으로, 마을 사람들이 스스로 지은 기차역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또한 남양주의 팔당역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간이역 역사라고 나와 있었어요.

 

원래 고사리역은 진짜 바로 이 동네 - 강원도 삼척시 도게읍 고사리에 위치해 있었어요. 역명 이름이 아무 이유 없이 고사리역이 아니라 진짜 고사리역에 있어서 고사리역이었어요. 그러나 늑구리에서 탄광이 개발되자 고사리역이 '고사리역'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늑구리로 이설되었어요. 고사리역이 고사리에서 늑구리로 이동하자 이 마을은 고립되기 시작했고, 이에 마을 사람들이 손수 목재와 황토를 이용해서 하고사리역을 건설했다고 해요.

 

"그래, 여기는 진짜 주민들이 나서서 지을 만 했겠다."

 

고사리역에서 하고사리역으로 넘어오는 길을 걷고난 후에 이 설명을 보자 그 당시 주민들의 심정에 공감되었어요. 고사리역에서 늑구리 은행나무 갈림길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이기는 했지만 과거에는 그것조차 없었을 거에요. 강원남부로 차도는 당연히 존재하지도 않았구요. 강원남부로 차도는 1990년대 들어서야 생겼다고 하고 그때서야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러니 고사리에 있던 고사리역이 늑구리로 이동해버리자 이 동네는 완전히 고립되어버렸을 거였어요. 가파르고 뱀에 땅벌 나오게 생긴 급경사 산길을 넘어 고사리역 가는 것이 유일한 출로였으니까요. 마차리역은 여기에서 매우 멀기 때문에 그나마 갈 만한 역이라면 고사리역인데 고사리역도 그리 쉽게 갈 길이 아니었어요. 그러니 직접 기차역을 건설했죠.

 

'그때 주민들 기분은 어땠을까?'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에는 탄광이 없었어요. 고갯길 너머 옆동네 늑구리에는 탄광이 있었어요. 늑구리에 탄광이 여러 곳 개광하며 늑구리는 번창하는 동네로 커져 가고, 여기에 이 동네에 있던 기차역도 '고사리역'이라는 이름 가지고 늑구리로 가버렸어요. 기분이 절대 좋지 않았을 거에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사리역이 있는 동네는 늑구리고, 하고사리역이 있는 동네가 고사리에요. 애초에 늑구리에도 고사리와 마찬가지로 기차역이 있었다면 그 역 이름은 '늑구리역'이 되었겠지만 늑구리에는 기차역이 없었고 고사리에만 기차역이 있었다가 고사리에 있던 기차역이 '고사리역'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늑구리로 옮겨가버리는 바람에 고사리 주민분들이 세운 기차역이 하고사리역이에요.

 

삼척 구 하고사리역사

 

하고사리역사 입구로 다가갔어요.

 

하고사리역사 내부는 아무 것도 없었다. 폐역이지만 내부는 매우 깔끔했다

 

문은 잠겨 있었어요.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봤어요. 내부는 휑했지만 깔끔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영동선 기찻길

 

하고사리역 앞에는 영동선 철로가 있었어요. 하고사리역은 폐역이에요. 그렇지만 하고사리역 바로 앞에 있는 철로는 지금도 많은 기차가 다니는 철로에요. 태백, 도계에서 생산된 석탄이 이 철도를 타고 동해시까지 이동하고 있어요.

 

강원도 하고사리역 철로변에는 누가 담쟁이덩쿨과 꽃을 심어놓았다

 

삼척

 

하고사리역을 뒤로 하고 다시 제가 걸어가야할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아름다운 풍경 삼척시 고사리 하고사리역

 

다시 한 번 하고사리역을 바라봤어요. 여전히 너무 아름다웠어요. 앞으로 남은 여정이 완전히 망하더라도, 정말 볼 것이 없더라도 이 한 장면 건졌으면 이 여행 전체가 성공한 여행이었어요. 이 여행에서 더 바랄 게 없었어요. 앞으로 남은 여정에서 어떤 일이 발생해도 이거 하나 건졌기 때문에 이번 여행은 크게 성공한 여행이었어요. 여행 가서 풍경 보며 감동과 감격이 밀려오는 기분을 대체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몰랐어요. 이 흥분을 느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여행은 지금껏 다녀본 여행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최고의 여행이었어요.

 

강원도 기와

 

푸른빛 페인트를 칠해놓은 시멘트 기와에는 시간이 묻어 있었어요.

 

강원도 시골 여행

 

나무도 초록빛 시간을 입고 있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안구 정화의 땅 고사리

안구 힐링의 땅 고사리

 

왜 이렇게 홍보를 안 합니까?

 

강원도와 삼척, 코레일이 이런 풍경을 왜 홍보하지 않는지 신기했어요. 그동안 왜 우리나라에서 유명 출사지로 안 알려졌는지 의문이었어요. 이 정도면 사진촬영이 취미인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사진 찍고 가도 될 풍경이었어요.

 

'앞으로 많이 알려질 건가?'

 

아직 운탄고도1330 8길이 정식 개통되지 않았어요. 운탄고도1330은 2023년 개통 예정이라고 하고 있었어요. 만약 사람들이 운탄고도1330 8길을 걷기 시작하면 여기가 꽤 많이 알려질 거였어요. 아직은 숨어 있는 비경이었지만, 운탄고도1330 8길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그때부터 여기는 안 알려진 비경이 아니라 알려진 비경이 될 거에요. 이 정도 풍경이라면 충분히 유명해질 자격이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 8길 여행

 

운탄고도 8길

 

강원도 자연 환경

 

"여기 삼척 맞아?"

 

계속 절경이 펼쳐졌어요.

 

강원도 삼척 여행 사진

 

삼척은 바다가 유명한 동네 아니었어?

 

삼척에 대한 고정관념이 붕괴됩니다.

 

하고사리역을 지나 마차리역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 계속 비경이 쏟아져나왔어요. 이건 무슨 황금이 땅 엘도라도도 아니고 비경이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굉장한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몇 곳이나 될 지 모르겠어요. 이 정도 급을 찾으려면 강원도에서 뒤져야 해요. 우리나라에서 산이 아름다운 지역은 누가 뭐래도 강원도니까요. 남쪽에 지리산이 있다고 해도 지리산은 푸근한 동네 아주머니 같은 산이고 초절정 섹시 육체파 미인 같은 산은 다 강원도에 있어요.

 

설악산 비선대와 천당폭포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워요. 여기는 제가 우리나라 여행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어요. 그러나 이 길도 설악산 비선대와 천당폭포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히 아름다웠어요. 설악산 비선대까지 가는 길은 쉽지만 천당폭포까지 가는 길은 위험하지는 않지만 등산길이에요. 반면 여기는 평지를 따라 쭉 걸으며 경치를 감상하는 길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은 계속 바닷가 동네로 알고 있었어요. 삼척 여행을 가보고 싶어서 삼척 관광지를 찾아본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그때마다 해안가 관광지만 쭉 나왔어요. 그러나 여기도 삼척이었어요. 삼척 해안가는 아직 안 가봤지만 지금 바로 여기 삼척 내륙 산간지역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길이었어요. 삼척이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제 경험상 삼척은 이제 오십천 따라 걷는 길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어가고 있었어요.

 

한국 여행 사진

 

강원도 농촌

 

별 거 아닌 농촌 풍경마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비경이었어요. 왜 사람들이 다 삼척으로 바다만 보러 가는지 이해가 안 되었어요. 삼척시가 왜 이런 좋은 곳을 홍보하지 않는지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내가 지금 힘든 산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었어요. 아주 평탄한 길을 걷고 있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지팡이 걷고 무릎 도가니 나갈 걱정 없이 걸어도 되는 너무나 쉬운 길이었어요. 그런데 보고 있는 풍경이 이랬어요. 좋은 풍경 보려면 무릎 도가니 걱정해야 하는 대한민국 관광지 현실을 떠올려보면 여기는 아주 기이한 곳이었어요. 이렇게 편하게 걸으며 이런 풍경을 감상해도 되는지 의아하게 만들었어요.

 

한국 명품 도보여행 코스 운탄고도1330 8길

 

절벽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인공적으로 만든 폭포 같았어요.

 

오십천 너머 철로에서 기차 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외투 주머니에서 바로 카메라로 사용하려고 들고 온 갤럭시노트10+ 스마트폰을 꺼냈어요. 카메라 어플을 켜고 철로를 지켜봤어요.

 

한국 철도 풍경 사진 출사지 강원도 삼척 하고사리역

 

강원도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강원도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가 오십천 너머 철로를 지나갔어요. 그때 마침 귀에서 아이유 Eight 노래 가사가 이 부분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 기억에서 만나

Forever young

 

속으로 'Forever young' 부분에서 '코레일'을 불렀어요.

 

"뭐야? 너무 딱 맞잖아!"

 

웃음이 빵 터졌어요. Forever young 대신 '코레일'을 집어넣었는데 원래 가사가 Forever young 대신 코레일이었던 것처럼 아주 딱 맞아떨어졌어요.

 

"이거 코레일로 바꿔 부르면 완전 코레일 관광 홍보 노래 아냐?"

 

기차가 지나간 철로를 보며 엄청 깔깔 웃었어요. '그 기억에서 만나 Forever young'이 아니라 '그 기억에서 만나 Korail'이라고 해도 하나도 안 이상했어요. 노래 가사와 안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어요. Forever young 을 Korail로 바꾸자 가사 내용이 기억을 찾아 기차 타고 떠나는 여행이 되었어요. 스토리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어요. 아이유 Eight 뮤직비디오를 보면 비행기 타고 창밖을 보는 장면이 나와요. 가사에서 Forever young을 Korail로 바꾸고 MV에서 비행기 대신 기차로만 바꾸면 이거 완전 코레일 홍보 노래였어요.

 

당연히 그럴 일은 안 일어납니다.

 

제가 불과 이 여행 떠나기 며칠 전에야 아이유의 Eight 노래를 알게 되었다고 해서 이 노래 자체가 안 유명한 노래인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로 무지무지 엄청나게 유명하고 인기 많은 노래에요. 코레일 홍보 노래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몸값 비싼 노래에요.

 

갤럭시노트10+ 스마트폰으로 촬영된 기차 사진을 봤어요. 사진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기차가 보다 크게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이것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어요. 아주 그냥 코레일 홍보 사진처럼 나왔어요.

 

강원도 삼척시 오십천 여행

 

오십천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어요. 하고사리역에 이어 기차 사진까지 대박 2연타였어요.

 

'이건 코레일이 운탄고도1330에 홍보비 줘야하는 거 아냐?'

 

운탄고도1330은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 도보여행 코스에요. 운탄고도1330 전체 코스를 보면 기차역, 태백선, 영동선 철도와 관련이 꽤 있어요. 운탄고도1330 시작점은 강원도 영월군이에요. 여기 가려면 영월역으로 가야 해요. 정확히 영월역부터는 아니지만 영월군에서 삼척시까지 쭉 걸어가는 코스에요. 이 길은 철도와 만나기도 하고 작별하기도 하면서 걸어요. 예미역, 도계역, 신기역처럼 기차역이 운탄고도1330 코스 시작점이자 종점인 곳도 있고, 운탄고도 8길처럼 대놓고 철도 따라 걸어야 하는 코스도 있어요.

 

운탄고도1330 8길을 보면 이건 완전히 코레일 관광 홍보 코스였어요. 도계역,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차리역, 신기역을 영동선 철도 따라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운탄고도 8길은 석탄 수송의 길을 걷는 건데 석탄 수송을 기차로 하고 있으니 영동선 철도 따라 걷는 길이기도 했어요. 여기에 지형적인 문제로 인해 오십천, 강원남부로와 더불어 철로를 따라 걷는 길이었구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기차를 보게 될 지 몰랐지만 지금까지 온 길만 해도 계속 철도를 따라 왔고, 기차역은 도계역, 고사리역, 하고사리역을 봤어요. 오면서 기차 사진도 찍었어요.

 

이쯤 되면 기차 타고 가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실컷 만끽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여행 코스였어요. 어차피 도계 가려면 기차 타고 가야 해요. 그러니 이건 진짜 코레일에서 운탄고도1330에 기차 여행 활성화를 위한 홍보를 수행하고 있다고 홍보비 줘도 이견이 없을 길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여행

 

비는 더 강해지지 않았어요. 우산 안 꺼내기를 잘 했어요. 이 정도면 그냥 맞고 걸어도 될 수준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발이리

 

2022년 10월 6일 오전 11시 38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발이리에 도착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발이리는 신기역 방향으로 도계읍의 마지막 동네였어요. 발이리 다음 동네는 마차리였어요. 마차리는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에 소속된 지역이에요. 운탄고도 8길 도계읍 코스 마지막 구간에 들어왔어요.

 

"기차는 15시 12분 것 타야겠다."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12시 1분 무궁화호 열차 타기는 늦었어요. 12시 1분 신기역발 동해역행 열차는 이미 아침에 흥전항 갈 때 반쯤 포기했어요. 괜찮았어요. 오히려 더 좋았어요. 15시 12분 전까지 신기역까지 걸어서 못 갈 리 없었어요. 15시 12분 차를 타고 간다면 오히려 신기역 도착해서 시간이 꽤 남을 거였어요. 더 여유롭게 걸으며 풍경 느긋하게 감상하고 사진 더 많이 찍어도 되었어요. 오히려 기차역에서 지루하게 멍하니 시간 보내지 않으려면 일부로라도 더 느긋하게 이 소중한 순간을 즐겨야 했어요.

 

또 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철도를 보며 갤럭시노트10+ 스마트폰을 꺼내들었어요.

 

동해산타열차

 

동해산타열차!

이렇게 진귀한 열차까지!

이건 뭐 땡기기만 하면 잭팟 수준이야!

 

동해산타열차는 코레일에서 운영중인 관광열차에요. 동해산타열차는 하루에 딱 1대 있어요. 강원도 강릉역에서 출발한 동해산타열차는 경상북도 분천역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요. 그러니까 동해산타열차는 동해산타열차가 다니는 철로에서 하루에 단 두 번 - 상행 한 번, 하행 한 번만 볼 수 있어요. 무궁화호 열차보다 보기 훨씬 어려운 기차에요. 무궁화호는 노선도 여러 개 있고 다니는 기차도 여러 대 있지만 동해산타열차는 하루에 오직 딱 1대에 강릉에서 분천 갔다가 강릉 돌아오는 게 끝이라서요.

 

그렇게 진귀한 동해산타열차를 직접 봤어요. 사진도 찍었어요. 아름다운 삼척 산간지역을 질주하는 동해산타열차 사진이었어요. 사진도 매우 잘 나왔어요.

 

"이거 코레일 홍보 사진 아냐?"

 

이쯤 되면 대박이 쏟아져나오는 행운 가득한 길 수준이 아니라 그냥 미친 코스였어요. 운영자가 제정신이 아니라 정신이 헷가닥 나가서 잭팟, 1등 당첨을 마구 뿌려대는 수준이었어요. 자꾸 대박 당첨되니까 신나고 좋기는 한데 이거 운영자 뒷감당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될 수준이었어요. 그러니까 너무 훌륭한 상황이 자꾸 터지니까 이제 받으면서 받는 게 불안해지는 수준까지 와버렸어요.

 

동해산타열차 사진을 보며 이거 완전 코레일 홍보 사진 아니냐고 낄낄거리다 불현듯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어요.

 

잠깐, 이게 코레일 홍보 사진?

내가 나를 바라본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너는 너 얼굴 아무 것도 없이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음?

유체이탈임? 2인칭 시점임?

 

그렇소.

이 사진 아래에 Let's Korail 문구를 박을 게 아니라 Let's Bustago, Let's T-money 문구를 박아야 하오!

 

맞잖아요. 기차 타고 가는 동안 기차 외부에서 기차 모습을 어떻게 봐요. 그게 되면 유체 이탈이죠. 무슨 영혼 태워 보내기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기차 타고 있는 동안 내가 타고 있는 기차를 나 자신이 외부에서 어떻게 바라봐요. 지금 이 사진은 제가 기차를 안 타고 있기 때문에 찍은 사진이었어요. 만약 제가 저 동해산타열차에 타고 있었다면 기차 내부에서 제가 서 있는 곳 풍경을 사진으로 찍었을 거에요.

 

그러니까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서는 기차를 탈 게 아니라 버스를 타고 이쪽으로 와야 했어요. 시외버스 예매는 버스타고, 시외버스 예매는 티머니. 이 사진은 과학적으로 생각하며 들여다보면 코레일 홍보 사진이 아니라 버스타고 홍보 사진, 티머니 홍보 사진으로 사용해야 맞았어요.

 

'그러면 코레일한테 완전 굴욕 사진 되는 거 아냐?'

 

또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어요.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본다면 이 사진 하단에 멘트를 넣어서 홍보 사진으로 쓸 곳을 떠올려봤을 때 시외버스 예매 버스타고, 티머니가 맞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이 사진 하단에 Let's Bustago 또는 Let's T-money 멘트를 박아넣으면 코레일한테 완전 굴욕 사진이 될 거 같았어요. 더 나아가 코레일이 철도 사진 공모전을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기차가 담긴 사진이 입상작으로 올라오곤 하는데 이 논리가 널리 퍼진다면 그 사진들 모두 다 졸지에 이 지역에서 기차역을 죽인 버스 홍보 사진이 될 거였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삼척시 코스

 

38번 국도는 마차1터널로 이어졌고, 그 아래에는 오십천이 흐르고 있었어요. 오십천 옆에 밭이 있었고, 밭 너머 제가 서 있는 쪽으로는 영동선 철도가 자리잡고 있었어요. 저와 운탄고도1330 8길을 함께 하는 일일친구인 38번 국도, 오십천, 영동선 철도가 한 번에 다 보였어요.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1330 8길 신기면 구간 입구

 

2022년 10월 6일 오전 11시 47분, '신기면'이라고 적혀 있는 표지판이 나왔어요. 도계읍과 작별할 시간이었어요. 이제부터 걸을 길은 운탄고도1330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구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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