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22 - 강원도 삼척시 운탄고도1330 8길 도계역 ~ 늑구리 고사리역 구간

좀좀이 2023. 2. 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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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는 예쁜데 왜 도계역 앞 조형물은 곰팡이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도계역 앞 오십천을 건너는 다리 중앙에는 쇠로 만든 아치 조형물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고 그 위에는 알록달록한 유리가 매달려 있었어요. 이것은 매우 예뻤어요. 하지만 도계역 광장에 있는 조형물은 아무리 봐도 포자 달린 검은 곰팡이 모습이었어요. 정확히는 '유리로 만든 석탄 나무'에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탄광촌이자 석탄 채굴 중 나온 폐석을 활용해 유리를 만들고 있어요. 도계는 산과 나무가 많구요. 그래서 석탄, 유리, 나무를 합쳐서 그런 조형물을 만들어놨을 거에요.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는 '유리로 만든 석탄 나무'라고 해석하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검은 곰팡이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저거 밤 되면 불 들어와서 초록색으로 빛나는데 그러면 조금 나무 같아보여요. 그래도 뭐 초록곰팡이처럼 보이기는 하지만요. 반면 도계역 앞 오십천 건너는 다리 중앙에 있는 조형물은 예뻤어요.

 

도계역

 

"너무 앞서나가도 안 좋아."

 

뭐든지 너무 앞서나가도 안 좋아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이에요.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가 살아 있었을 적 그의 그림은 단 한 장 판매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에 계속 무명이었고 생활고에 시달렸어요. 동생 테오의 지원으로 연명했어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명작이기는 하나 너무 앞서가버렸어요.

 

도계역 앞 다리 중앙에 있는 장식은 무난한 장식이었어요. 하지만 저게 훨씬 더 좋았어요. 차라리 도계역 광장도 저렇게 꾸며놨으면 훨씬 더 아름다웠을 거에요. 아예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저런 식으로 꾸며놓으면 매우 화려할 거에요. 이왕 저렇게 꾸밀 거라면 아무 특색없는 도계 전두시장 입구도 저렇게 꾸며놨다면 훨씬 좋았을 거에요.

 

2022년 10월 6일 오전 8시 49분, 드디어 운탄고도 8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이제부터 진짜 운탄고도 8길의 시작이었어요. 바로 직전까지 걸은 길은 운탄고도 7길이었어요.

 

"편의점 열었네?"

 

도계역을 등지고 섰을 때 오른쪽 길로 조금 걸어가자 편의점이 하나 나왔어요. 편의점은 문이 열려 있었어요. 도계역 근처에 편의점이 문 열고 영업하는 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도계역 근처에 편의점이 있을 줄 몰랐어요. 보고 놀랐어요. 도계역에 편의점이 없는 줄 알고 태백에서 콜라까지 다 사왔어요. 물이야 집에 굴러다니는 삼다수 챙겨온 거니 그러려니 하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콜라는 도계 와서 샀을 거에요.

 

내가 도계 두 번째 오는 건데 왜 몰랐지?

그때는 너가 정신 없었으니 그랬겠지.

 

도계역 근처에 편의점이 있는 것을 왜 몰랐는지 잠시 생각해보며 걸었어요. 지난번에 도계에 왔을 때는 기차 타고 와서 기차 타고 떠났어요. 지난 번에 도계역에 도착했을 때는 깜깜한 밤이었어요. 청량리역에서 도계역 가는 막차 타고 왔어요. 그때는 숙소 예약도 안 하고 도계역에 도착했기 때문에 숙소 찾아다니는 것이 우선이었어요. 도계를 떠나기 위해 도계역을 갈 때는 그냥 이 길에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도계역 근처에 편의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지나쳤어요.

 

왼쪽 귀에 이어폰을 꽂았어요. 노래는 아이유의 Eight 를 무한반복으로 재생했어요. 저는 마음에 드는 노래를 발견하면 최소 몇 주 동안 무한반복으로 재생해서 들어요. 여행 오기 며칠 전에 아이유의 Eight 노래를 우연히 듣고 완전히 반해버렸어요. 곡조도 좋고 가사도 너무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어요.

 

왼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오른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지 않은 이유는 안전 문제 때문이었어요. 귀는 인간의 제2의 눈이에요. 인간은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영역을 소리를 듣고 판단해요. 밖에서 걸어다닐 때는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한쪽 귀에만 이어폰을 꽂고 다녀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양쪽 귀에 다 이어폰을 꽂는 일이 없어요. 운탄고도 8길은 아직 미완성된 길이라 차도를 따라 걸어야 했어요. 아직까지는 차도를 걸을 일이 없었지만 도계읍 전두리를 벗어나면 그때부터는 차도를 따라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그래서 오른쪽 귀는 이어폰을 끼지 않고 열어뒀어요.

 

운탄고도 8길은 제가 전에 도계 왔을 때 한 번 와서 걸었던 길이었어요. 아직은 지도를 보지 않고 걸어도 되었어요. 스마트폰은 최대한 안 쓰도록 해야 했어요. 보조배터리가 있기는 했지만 보조배터리도 아껴서 사용해야 했어요. 스마트폰으로 사용하고 있는 갤럭시노트5는 GPS를 켜서 지도 역할도 같이 해야 했고, 갤럭시노트10+는 카메라 역할을 수행해야 했어요. 보조배터리를 들고 오기는 했지만 스마트폰에 보조배터리 연결해서 들고다니려고 하면 매우 거추장스러워요. 더욱이 둘 다 스마트폰이라서 둘 다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골치아파질 거였어요. 운탄고도 8길만 걷고 일정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해시 일정이 또 남아 있었어요. 그때까지 버텨야 했어요.

 

강원도 민가

 

멀리 과거 광부사택을 개조해서 만든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가 보였어요. 처음 도계 왔을 때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는 매우 인상깊었어요. 저렇게 기본 형태를 그대로 살려두고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만든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굉장했어요.

 

저건 서울도 와서 배워야 한다.

아니, 전국에서 와서 배워야 한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는 다시 봐도 매우 멋졌어요. 가만히 놔두면 흉물로 전락하고 너무 낙후되고 노후되어서 도저히 그대로 거주할 수 없는 오래된 건물을 매우 잘 개조했어요. 무턱대고 놔두는 게 보존이 아니에요. 그건 방치이고 도시 건축 쓰레기 만드는 짓이에요. 서울의 많은 달동네 중 재개발해봐야 어차피 또 슬럼화 진행되어서 얼마 안 가 다시 달동네로 전락할 곳들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어서 진짜 보존가치가 있는 달동네도 있고, 인간이 거주하기에는 불편하나 자연환경이 너무 좋은 곳들이 있어요. 이런 곳을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처럼 형태를 유지하고 재개발해서 유명 관광지로 조성하는 게 진짜 보존하는 방법이에요.

 

아쉽게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계 유리 게스트하우스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예약해서 숙박할 수 없었어요. 도계에 있는 골프장인 블랙밸리CC 예약할 때 예약할 수 있다고 했어요. 후에 운탄고도1330 8길이 정식개통하고 방문자가 많아진다면 예약 방식이 바뀔지 모르겠지만 이때는 아니었어요. 만약 유리게스트하우스가 일반적인 예약방법으로 예약 가능했다면 가격이 조금 있더라도 저기에서 1박을 해봤을 거였어요.

 

강원대학교 기숙사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날 붙드는 그곳에

 

이거 도계잖아!

 

아이유의 Eight 노래 듣다가 갑자기 웃음이 빵 터졌어요. 멀리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기숙사가 보였어요. 전에 도계에 왔을 때 저쪽도 가봤어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를 붙드는 그곳이 바로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이었어요. 시간이 지나기는 했어요. 단지 많이 지나지 않았고 한달 조금 넘게 지났을 뿐이었어요. 그런데 도계에 다시 와버렸어요. 한 달 조금 넘어서 다시 온 도계였지만 도계가 좋았어요.

 

의정부 부대찌개처럼 나를 잡아끈다.

 

타지역 사람들은 별미라고 의정부 와서 의정부 부대찌개를 먹고 가요. 그렇지만 저는 의정부에 살고 있어요. 의정부 부대찌개는 제가 사는 곳 주변에 흔해요. 의정부 전역에 부대찌개 식당은 매우 흔해요. 의정부 부대찌개가 엄청 맛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한 번 먹고 시간이 흐르면 별 이유없이 문득 부대찌개 먹고 싶어져요. 게다가 부대찌개는 의정부에서 혼자 밥 먹을 때 제일 좋은 메뉴에요. 부대찌개 1인분만 판매하는 식당이 많고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혼자 배부르게 먹고 오기 좋거든요. 막 열광하며 맛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문득 떠오르며 먹게 만드는 부대찌개처럼 도계는 저를 유혹하며 더 놀다 가라고 유혹하고 있었어요.

 

"안 돼, 나 갈 길 바빠."

 

혼자 도계에서 계속 돌아다니며 놀아도 매우 재미있게 잘 놀 자신이 있었어요. 도계는 '탄광촌'이라는 확실한 색깔이 있으면서 동시에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에요. 도계읍 전역을 다 돌아다녀본 것도 아니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전설의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도 못 가봤어요. 도계캠퍼스 가는 길에 대한석탄공사 동덕항이 있다고 했어요. 도계에 무엇이 있는지 완벽히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제가 다녀본 도계는 흥전리, 전두리가 전부였어요. 흥전리, 전두리는 도계에서 읍내에요. 읍내를 벗어나 돌아다니면 또 멋지고 굉장한 발견물을 한 아름 가득히 획득할 게 분명했어요. 그렇지만 지금 여기 온 이유는 도계를 혼자 자유롭게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운탄고도 8길을 걷기 위해서였어요.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전에 친구와 왔을 때 걸었던 길이었어요.

 

강원도 철도

 

철길이 나왔어요.

 

'철로에 못 놓고 기다리면 진짜 기차가 못 밟고 지나가서 못이 납작해질까?'

 

어르신들께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아주 예전에는 철로에 못을 올려놓고 기차가 못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해요. 기차가 못을 밟고 지나가면 못이 납작해졌다고 해요. 그렇게 납작해진 못을 가지고 칼이라고 하며 놀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어요. 저는 그런 추억이 하나도 없어요. 제주도에 무슨 철도가 있어요. 기차는 있어요. 제주도 제주시 신제주에 있는 삼무공원 가면 오래된 증기기관차가 한 대 있어요. 제주도를 달리던 기차가 아니라 과거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께서 제주도 아이들은 기차를 보지 못하니 기차를 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셔서 미카형 증기기관차 304호와 비둘기호 객차 1량이 삼무공원에 전시되었어요.

 

아주 어렸을 적에 삼무공원에 있는 기차를 보며 저게 진짜 기차인지 모형인지 궁금했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진짜 한때 운행되던 기차였어요. 기차 객차에는 가끔 노숙자들이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었고, 친구들과 기차에 갔다가 그 장면을 보고 무서워서 도망쳤던 기억도 있어요.

 

제주도 기차는 박제된 기차

도계에서 보는 기차는 살아있는 기차

 

전날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철암탄광역사촌을 보며 철암탄광역사촌은 박제된 까치발 건물, 도계 전두시장은 살아있는 까치발 건물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웃었어요. 이번에는 제주도 삼무공원 기차는 박제된 기차, 도계에서 보는 기차는 살아있는 기차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웃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철도

 

철로에 달려오는 기차가 없었어요. 기찻길 위로 올라갔어요. 제주도 삼무공원 증기기관차도 레일 위에 올라가 있어요. 그 레일도 어떻게 보면 박제된 레일이었어요. 반면 여기 도계에 있는 레일은 살아 있는 레일이었어요.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운탄고도1330은 오십천을 따라가는 길이에요. 한편으로는 이 영동선 철도를 따라가는 길이기도 해요. 오십천을 따라 걸으며 끊임없이 영동선 철로와 만났다 헤어졌다 하면서 걸어요. 오늘 저의 동반자는 바로 이 철길이었어요. 철도와 밀당하면서 걸어갈 거였어요. 운탄고도 8길 내내 철도와 밀당하며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걷다가 마지막 동해시에서 철도와 포옹하는 여정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원동 철도 건널목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원동 철도 건널목이 나왔어요. 길을 어떻게 갈 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었어요.

 

'장미사택이랑 긴잎느티나무는 포기해야겠다.'

 

운탄고도1330 8길을 걷다가 도계중학교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면 광부사택인 장미사택, 유신사택, 명랑사택과 천연기념물 95호 도계리 긴잎느티나무를 보고 올 수 있었어요.

 

어차피 그것들은 이미 글로 썼기 때문입니다.

 

만약 동해삼척태백축산농협 도계지점이 있는 갈림길에서 잠깐 도계중학교 쪽으로 걸어가서 광부사택인 장미사택, 유신사택, 명랑사택과 천연기념물 95호 도계리 긴잎느티나무를 보고 온다면 이 여행을 다룬 여행기 내용은 더욱 알차게 되고 가치가 높아질 거였어요. 도계읍 읍내에 있는 중요 방문지를 거의 다 둘러보는 거였고,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과 운탄고도1330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을 거였어요.

 

그러나 장미사택, 유신사택, 명랑사택과 천연기념물 95호 도계리 긴잎느티나무 글은 지난 번 강원도 남부 여행을 다룬 여행기인 '잊혀진 어머니의 돌'에 나올 예정이었어요. '잊혀진 어머니의 돌'을 다 쓴 후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 이 여행에 대한 여행기를 쓸 거니까 언제 쓰게 될 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도 어차피 다른 여행기에서 다룰 건데 지금 또 가서 글을 또 쓸 필요가 있나 싶었어요.

 

자원 낭비하지 마시오.

시간도 체력도 자원입니다.

 

만약 한 번도 안 간 곳이었다면 당연히 기를 쓰고 갔을 거에요. 마치 조금 전에 대한석탄공사 흥전항을 찾아갔던 것처럼요. 그런데 저는 도계읍이 벌써 두 번째였고, 지난번에 왔을 때 장미사택, 유신사택, 명랑사택과 천연기념물 95호 도계리 긴잎느티나무를 봤어요. 굳이 또 갈 이유가 없었어요. 간다면 이미 머리 속에 구상중인 운탄고도1330 8길 코스 소개 글과 여행기에 쓰기 위해 가는 것 뿐이었어요. 설마 한 달 사이에 그곳에 무슨 일이 생겨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겠어요.

 

멀지는 않고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이기는 했지만 시간과 체력도 자원이었어요. 시간은 그래도 괜찮았어요. 신기역에서 오후 3시 12분 제1682호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동해역으로 넘어간다고 가정하면 이제 오전 9시 13분이니 신기역까지 6시간 안에 걸어가면 되었어요. 이 정도는 무리없이 갈 수 있을 거였어요. 하지만 체력이 문제였어요. 토스 만보기에 찍히고 있는 걸음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었어요. 지금이야 멀쩡하지만 뒤로 갈 수록 발이 아프고 발의 통증 때문에 걸음걸이가 이상해지며 다리까지 아파질 거였어요. 조금이라도 덜 걸어야 했어요. 불필요한 자원 낭비는 하지 말아야했어요. 안 가본 곳을 볼 거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넘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미 가봤고, 조만간 글도 쓸 거였어요. 그렇다면 이번에는 생략하는 것이 맞았어요.

 

길을 계속 걸어갔어요.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곳으로 들어왔어요.

 

강원도 여행

 

'친구한테 카톡이나 보내볼까?'

 

전에 도계에 같이 여행왔던 친구에게 카카오톡 메세지를 보내봤어요. 친구가 웬일로 메세지를 보고 바로 답장했어요.

 

"너 거기 장면 좀 보여줘봐."

"어떻게? 나 3G에 폰 용량 없어서 동영상 찍어서 못 보내. 배터리도 아껴야 하구."

"카카오톡에 페이스톡 있잖아."

"페이스톡?"

 

친구가 카카오톡 페이스톡으로 대화하자고 했어요. 처음에는 친구가 전화로 대화하자고 하는 줄 알았어요. 그때 떠올랐어요.

 

카카오톡 페이스톡은 영상 통화지?

카카오톡 페이스톡이 있으면 실시간으로 내가 보는 풍경을 지인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 페이스톡을 켰어요. 영상 통화가 켜지자 제 얼굴을 비추지 않고 주변 풍경을 보여줬어요. 친구가 엄청 웃었어요. 친구에게 제가 걸으며 보고 있는 도계 풍경을 카카오톡 페이스톡으로 보여주다가 페이스톡을 끊었어요.

 

카카오톡 페이스톡을 전국 많은 학생들과 성인들이 싫어합니다.

 

카카오톡은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에요. 자녀나 배우자가 지금 딴짓하고 있는지 궁금하면 페이스톡으로 대화하자고 해서 어디 뭐 하고 있는지 보여달라고 하면 되요. 이보다 더 확실한 현장 실황 중계 방법이 없어요. 전국의 매우 많은 사람들이 상황에 따라 참 싫어할 기능이었어요. 페이스톡을 이렇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여행 다닐 때 카카오톡 페이스톡 잠깐 이용해서 상대방에게 실제 보고 있는 풍경을 보여줄 수도 있고, 상대방이 지금 진짜 뭐하는지 궁금할 때 페이스톡하자고 해서 확인할 수도 있어요.

 

삼척시 여행

 

친구의 아이디어 때문에 엄청 웃었어요. 제 인생에 여행 기술이 하나 추가되었어요. '카카오톡 페이스톡을 통한 실황 공유' 능력이 생겼어요. 이건 앞으로 여행다닐 때 꽤 유용하게 써먹을 기능이었어요. 멋진 풍경을 사진찍어서 보내주는 방법도 있지만 사진보다 동영상으로 보여줘야하는 장면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바다에서 파도가 세게 치는 장면이요. 이런 동세가 중요한 장면을 공유할 때는 카카오톡 페이스톡을 사용하는 것도 매우 좋은 방법이에요.

 

"역시 3G 무제한이 최고야."

 

남들은 5G 쓴다고 하며 LTE도 느려죽겠다고 하지만 저는 지금도 3G 무제한을 사용하고 있어요. 3G 무제한을 사용하고 있어서 구박당할 때도 있어요. 남들과 같이 어디 가서 지도를 찾아봐야 할 때 3G는 확실히 느려요. 갤럭시노트5의 느린 기능까지 더해지면 매우 느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남들과 다닐 때 제발 좀 최소한 LTE로 바꾸라는 소리를 간간이 들어요. 하지만 저는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3G 무제한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3G 무제한이라 마음껏 카카오톡 페이스톡을 사용할 수 있어요. 물론 카카오톡 페이스톡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이론적으로는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요.

 

카카오톡 페이스톡 기능의 새로운 발견 때문에 깔깔 웃으면서 계속 길을 걸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어요. 흥전리를 지나 전두리도 지나갔어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도계리였어요. 길은 야트막한 오르막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벚꽃길

 

도계읍 벚꽃길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벚나무 이파리를 잘 바라보며 걸었어요.

 

벚나무 단풍

 

'올해도 벚나무 단풍 예쁠 건가?'

 

이 여행 바로 전 해였던 2021년 가을은 단풍이 유독 아름다웠어요. 2021년 가을 단풍의 절정은 은행나무도 단풍나무도 아니었어요. 은행나무, 단풍나무 단풍은 예년에 비해 색이 진하지 않다고 별로라고 하는 사람도 간혹 존재했어요. 은행나무, 단풍나무 단풍도 상당히 아름답기는 했어요. 그러나 독보적으로 기억에 두고 두고 남을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2021년 단풍이 앞으로 죽을 때까지 절대 못 잊을 장관이었던 이유는 바로 엉뚱한 벚나무 단풍이었어요.

 

2021년, 바람을 타고 날아간 많은 사람의 절규와 비명

벚나무도 같이 괴로워서였을까

그해 벚나무 단풍은 피로 물든 단풍이었다

 

2021년 벚나무 단풍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단풍 중 절대 잊을 수 없는 단풍이었어요. 2021년 벚나무 단풍은 색이 매우 새빨갛게 들었어요. 벚나무 단풍이 짙게 잘 들은 정도가 아니라 시뻘건 핏빛이었어요. 헌혈할 때 봉지에 고여가는 어둡고 피의 시뻘건 핏빛 단풍이었어요. 벚나무는 단풍이 예쁘게 잘 드는 일이 흔하지 않아요. 동시에 확 붉게 들지 않고 초록빛 이파리부터 빨간 단풍이 든 이파리, 단풍이 제대로 들지 못하고 갈색으로 말라버린 이파리가 뒤섞여 있어요. 2021년 벚나무 단풍은 여러 색이 혼재된 예년의 단풍이 아니라 모든 잎이 한 번에 시뻘겋게 물들었어요. 누가 벚나무에 매달린 모든 이파리에서 초록빛을 다 빼고 피를 부어버린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붉은색이었어요.

 

지금까지 매해 벚나무 단풍을 봤지만 2021년 벚나무 단풍처럼 온통 시뻘겋게 물든 벚나무 단풍은 못 봤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절규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으면 나뭇잎이 시뻘겋게 변해버렸을까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자영업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한국 주식 투자한 사람들은 연일 푹푹 하락하고 있어서 비명을 질렀어요. 코인에 투자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구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교육도 파행으로 진행되었고 경제적 빈부격차 뿐만 아니라 사회적 빈부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졌어요. 사람 살리려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건지 모두를 망하게 하려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지경에 다다랐고, 모든 사람이 다 정신이 살짝 돌아갔어요. 모두가 육체적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이 훼손되었고 속에 분노가 커져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모두가 미쳐가고 있던 시기에 벚나무 단풍은 핏빛으로 불타올랐어요. 바람을 타고 날아간 많은 사람의 절규와 비명이 벚나무조차 이파리에 피를 토하게 만들었어요.

 

언론에서는 2022년 단풍이 매우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고 전망하고 있었어요. 곧 단풍철이 찾아올 거였어요. 언론에서 보도되는 2022년 단풍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울 거라는 전망이 진짜 맞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2021년 벚나무 단풍이 너무 충격적이어서요.

 

단풍이 들기 시작한 벚나무를 보자 별 거 아닌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마교리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마교리에 들어왔어요.

 

"비 다시 내리네?"

 

아까 흥전리에서 흥전항으로 올라갈 때 구름이 걷히며 잠시 파란 하늘이 보였어요. 하늘은 구름이 무겁게 끼어 있었어요. 하늘은 구름이 무거워 힘들다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어요. 솜사탕을 이루는 설탕 실처럼 가는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전두리까지는 날씨가 괜찮았고 도계리도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마교리 들어오니까 실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감농사

 

감나무 밭에는 감이 많이 열려 있었어요.

 

"감이야 뭐."

 

강원도 남부에 와서 사과나무가 많은 장면을 종종 목격했어요. 사과 나무를 볼 때마다 여기가 대구도 아니고 추운 동네일 건데 사과를 재배한다고 신기해했어요. 감은 상관없었어요. 감나무는 산골이고 농촌이고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까요.

 

韓国旅行

 

Korea travel photo

 

도계읍 읍내라고 할 만한 곳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강원도 삼척시 명품 트래킹 코스 운탄고도 8길

 

도계역에서부터 운탄고도 8길을 걷고 있었지만 운탄고도 8길을 걷는다는 느낌이 없었어요. 그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놀러와서 읍내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기분이었어요. 도계읍 읍내라고 부를 곳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운탄고도 8길 걷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여행 사진

 

오십천 하천 바닥은 불그죽죽 누런색이었어요. 평범한 돌로 된 바닥이면 별로 안 예쁘니까 일부러 저런 눈에 확 띄는 불그죽죽 누런색 돌을 구해와서 바닥을 정비해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일부러 저런 색 돌을 구해와 박아놓은 게 아닐 거에요. 탄광 때문에 철분이 많이 녹은 지하수가 오십천으로 흘러들며 돌바닥에 철분이 끼어서 저런 색으로 바뀌었을 거에요.

 

강원도 삼척시 오십천

 

아직까지는 강원도 산골 농촌 풍경 보며 걷는 무난하고 쉬운 길이었어요. 마교리로 넘어올 때 야트막한 고개 하나 넘기는 했지만 한국에서 그 정도 오르막과 내리막 없는 동네를 찾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울 거에요. 길 찾을 것도 없고 길도 잘 되어 있어서 쭉쭉 걸어나갔어요.

 

강원도 옥수수

 

역시 옥수수가 있었어요. 강원도 와서 옥수수 못 볼 수가 없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뒤를 돌아봤어요. 도계읍 읍내와 늑구리 사이에는 산이 있어요. 저 산 너머가 도계읍 읍내였어요. 제가 조금 전에 있었던 도계읍 읍내는 산에 가려서 아예 안 보였어요.

 

강원도 도보 여행

 

오십천을 따라 걸었어요. 오십천 건너편에는 철도가 있었어요. 사진에 안 나온 강원남부로 건너 맞은편은 산이었어요. 이러니 운탄고도 8길이 강원남부로 피해서 나올 길이 없어요.

 

운탄고도 8길

 

강원도 운탄고도1330 여행기 석탄의 길

 

"벌써부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쏟아지면 나중에 어쩌려고?"

 

운탄고도 8길을 아직 얼마 걷지도 않았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고 남은 구간이 압도적으로 훨씬 많은데 벌써 두 눈을 깔끔히 청소해주고 안구 건강 회복시켜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어요.

 

'이게 끝은 아니겠지?'

 

살짝 불안해졌어요. 이렇게 좋은 풍경이 알고 보니 운탄고도 8길의 클라이막스였고, 앞으로 남은 구간은 전부 시시한 풍경만 이어진다면 정말 실망이 클 거였어요. 이쪽은 어떻게 생긴 길인지 하나도 몰랐어요. 전에 동해시를 기차로 갈 때는 KTX 타고 갔어요. KTX는 동해시 북쪽 묵호역을 거쳐 동해역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이쪽은 아예 지나치지 않았어요. 만약 무궁화호 열차 타고 청량리에서 동해역으로 갔다면 지금 걷는 길을 창밖 풍경으로 봤겠지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청량리역에서 태백역까지도 3시간이 넘는데 태백역에서 동해역까지도 한 시간 걸리거든요. 만약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동해역까지 간다면 기차만 4시간 30분 차야 해요.

 

앞으로 얼마나 더 아름다운 풍경이 쏟아질지 기대되었어요. 갈 수록 더 멋진 풍경이 쏟아져나오기를 바랬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자 두 다리에 힘이 더욱 강하게 들어갔어요. 파스고 스틱이고 다 필요없었어요. 이 멋진 풍경이 계속 다리를 마사지해주고 피로회복 자양강장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어요. 풍경 보며 걷는 것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평소에도 잘 걸어다니기는 하지만 이렇게 걷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어요. 걷는 것 자체가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몸은 걷고 있었지만 마음은 날아가고 있었어요.

 

韓国 徒歩旅行 写真

 

멀리 요란한 소리가 들렸어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기차?"

 

철로를 바라보며 멈추어섰어요.

 

한국 영동선 무궁화호 열차

 

韓国 汽車 写真

 

korean train picture

 

2022년 10월 6일 아침 9시 56분, 무궁화호 열차가 도계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요. 나중에 여행기 쓰면서 찾아보니 저 열차는 오전 9시 21분에 동해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1642호 열차였어요.

 

강원도 운탄고도 여행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59호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 가는 길 안내판이 나왔어요. 여기에서 잠시 강원남부로에서 벗어나서 삼척 늑구리 은행나무가 있는 샛길로 들어가야 했어요.

 

운탄고도1330 8길

 

"저 나무는 잘도 버티고 있네?"

 

참 끈질긴 생명력이었어요. 뿌리가 얼마나 깊게 박혀 있으면 저렇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서 자라고 있는지 몰랐어요.

 

이것이 바로 강원도의 힘 Power of Gangwondo!

 

강원도의 힘이었어요. 지금도 강원도로 버스 타고 갈 때 강원도 도경계에 '강원도의 힘'이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안내판이 고속도로에 걸려 있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 육지 올라온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버스 타고 타지역 갈 때 버스가 강원도로 들어갈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강원도의 힘'이라고 적힌 커다란 안내판이었어요. 그 안내판이 너무 인상적이라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나무가 힘이 엄청 강했어요. 큰 비가 내려서 오십천이 불어나고 급류가 나무 밑둥을 때린 적도 여러 번 있었을 건데 나무는 굳게 잘 버티고 있었어요. 오십천 자갈밭 바로 옆에 매달려 있어서 기묘한 운치를 만들고 있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영동선 간이역 폐역 고사리역

 

2022년 10월 6일 오전 10시 8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 영동선 간이역 폐역 고사리역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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