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19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흥전삭도마을 기찻길옆 벽화마을

좀좀이 2023. 1. 3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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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계로 돌아왔다.

 

'여기를 또 오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에 있는 도계버스터미널. 2022년 8월 30일에 왔었어요. 이날은 2022년 10월 6일. 30일하고 일주일만에 다시 왔어요. 2022년 8월 29일 밤에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도계역에서 내렸어요. 2022년 8월 30일 오후에 도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도계를 떠났어요. 도계는 신기하고 특이한 매력이 있는 지역이라 매우 마음에 들었어요. 나중에 한 번 또 가보고 싶었어요.

 

'나중에 한 번'이란 막연한 미래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표현.

'막연한 미래'란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의미.

그래서 '막연한 미래 표현'은 부정의 의미로도 종종 사용한다.

 

나중에 한 번 또 가보고 싶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또 올 줄은 몰랐어요. 도계역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올라타며 도계를 떠나는 순간에 막연히 한 번 더 오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정말 '막연한 미래'에 다시 한 번 와보고 싶었어요. 다시 가게 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구요. 정말 빨리 다시 온다고 해야 해가 바뀌고 4월이나 되어서야 다시 오지 않을까 막연히 추측하고 있었어요. 도계 돌아다닐 때 벚나무를 가로수로 심어놓은 길이 있었어요. 산과 벚꽃이 어우러지면 매우 아름다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때 한 번 다시 올까 생각했어요. 반드시 가겠다는 게 아니라 2023년 봄에 기회가 되면 가고 기회가 없으면 어쩔 수 없다는 정도였어요.

 

원래 막연한 미래 표현은 어느 언어든, 어느 문화에서든 부정의 의미로 종종 사용해요. 막연한 미래는 의미적으로 불확실성을 크게 내포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정할 때 완곡한 표현으로 잘 사용해요. 단도직입적으로 아니라고 하면 상대가 기분 상할 수 있기 때문에 돌려서 표현하려고 막연한 미래로 표현하곤 해요. '언젠가는', '상황이 되면' 등 안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의미를 내포해서 말해요. 그래서 미래 시제, 막연한 미래 표현은 번역할 때 제일 까다롭고 정말 조심해야 해요. 이게 진짜 해주겠다는 건지 아닌지 맥락과 상황 보며 판단해야 하거든요. 번역 및 통역에서 치명적 사고가 발생한 사례를 보면 미래 표현 해석 잘못한 경우가 꽤 있어요.

 

물론 도계역에서 기차를 타고 도계를 떠날 때 완전히 안 오겠지만 완곡한 표현으로 언젠가 다시 오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정말 빨라야 도계에 벚꽃이 필 때 다시 올 거고, 안 그러면 1년 후가 될 지 10년 후가 될 지 모를 일이었어요. 언젠가 한 번은 다시 오고 싶지만 그게 진짜 빨라야 반년 후고, 몇 년 뒤일 수도 있고, 기회 안 되면 영원히 다시 못 올 수도 있다는 의미였어요. 다시 오고 싶었기는 하지만 일 없이 무턱대고 다시 올 마음은 없었어요.

 

막연히 나중에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을 불과 37일만에 다시 올 줄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계절이 바뀌었어요. 처음 왔을 때는 늦여름이었고, 이때는 가을이었어요. 9월 내내 늦더위가 찾아와서 아직 풍경이 가을 풍경으로 바뀌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었어요. 10월 6일이니 계절은 가을이었어요.

 

도계버스터미널에서 내린 사람은 저 뿐이었어요. 여기는 버스가 정식으로 중간 경유하는 곳이라 버스가 잠시 정차해 있었어요. 문 닫힌 도계버스터미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태백에서 출발해 삼척, 동해를 경유해 강릉까지 버스를 탈 수 있었어요.

 

'역시 이럴 줄 알았어.'

 

도계버스터미널은 불이 꺼져 있었어요. 문도 잠겨 있었어요. 도계버스터미널 건물 안에는 화장실이 있어요. 이 근처에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면 도계버스터미널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어요. 그런데 도계버스터미널은 당연하게도 아직 문이 안 열려 있었어요. 이 시각에 여기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버스기사에게 직접 돈을 내고 타고 가야 했어요. 왠지 도계버스터미널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할 것 같아서 카페에서 이뇨작용을 촉진하는 커피를 안 마셨고, 태백버스터미널에서 가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화장실 들려서 소변을 보고 왔어요.

 

"도계는 따뜻하네?"

 

태백시 산너머 옆동네 도계는 태백시 황지동에 비해 훨씬 따뜻했어요. 풍경만 보면 도계가 태백보다 훨씬 춥게 생겼지만 체감상 도계가 태백보다 기온이 더 높았어요. 태백에서는 정말로 추웠는데 도계는 선선함과 쌀쌀함 사이 정도였어요.

 

'도계유리나라까지 걸어갔다가 8길 걸을까?'

 

운탄고도1330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운탄고도1330 8길 거리는 17.73km였어요. 운탄고도1330 홈페이지에서는 운탄고도 8길 소요시간이 5시간 38분이라고 나와 있었어요. 고도는 91m~247m였고, 지형은 고도가 완만하게 낮아지는 길이었어요. 도계역이 고도가 제일 높고 길을 진행할 수록 고도가 쭉 낮아지는 길이었어요.

 

아직 운탄고도 8길 걷기 시작을 안 했지만 해발고도가 쭉 낮아진다고 해도 별로 티도 안 날 거였어요. 이 길은 강원남부로 따라가는 길이었어요. 강원남부로 외에는 길이 날 구석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어요. 강원남부로 외에 길이 날 만한 곳은 죄다 산과 하천, 철도가 번갈아가면서 틀어막고 있었어요. 도계역에서부터 신기역까지 구간은 오십천 따라 난 강원남부로 따라 걷는 길이었고, 지형적으로는 큰 굴곡도 없는 길이었어요.

 

'17.73km면 빨리 걸으면 5시간 안에 주파하잖아.'

 

운탄고도1330 8길은 길이 험하거나 등락이 심한 길이 아니었어요. 평지에 가까운 아주 완만해서 경사가 느껴지지도 않을 밋밋한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길인데다 지도 보면서 길을 찾아 헤멜 일도 없는 길이었어요. 중간에 잠깐 빠질 구멍도 없었어요. 기껏해야 마차리, 대평리에서 마을 잠깐 들어가는 정도 뿐이었어요. 이러면 1시간에 4km 걸을 수 있어요. 처음 가는 길이지만 길 찾아 헤멜 일 없고, 길도 평지 길 걷는 거니까요. 만약 1시간에 4km 속도로 걷는다면 17.73km는 5시간 채 안 걸릴 거였어요. 물론 17.73km가 짧은 거리가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한 시간에 4km씩 걸어나가는 건 무리일 거고 대충 1시간에 3km씩 걷는다고 봐야할 거였어요. 그래도 6시간 안에 주파하는 거리였어요.

 

'지금 몇 시야?'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6일 아침 6시 14분이었어요. 시간이 아주 많았어요.

 

'도계유리나라까지 한 번 가봐야겠다.'

 

전에 도계 왔을 때는 날씨가 너무 안 좋았던 데다 같이 갔던 친구가 다른 곳 가자고 졸라서 도계버스터미널 남쪽은 못 갔어요. 아직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기차 시간까지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었어요. 신기역에서 동해역 가는 기차는 첫 차가 12시 01분이었고, 두 번째 차가 15시 12분이었어요. 12시 01분 차를 목표로 걷는다고 해도 시간이 남을 정도였어요. 시간이 매우 널널한데 도계 왔을 때 못 갔던 도계유리나라까지 갈 수 있으면 한 번 걸어보기로 했어요.

 

 

이 동네는 확실히 검어.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리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후보정으로 억지로 채도를 낮춘 사진이 아니에요. 이때 제가 보고 있던 실제 풍경과 아주 똑같이 나온 사진이에요. 도계도 비가 내렸고, 하늘은 매우 우중충했어요. 비가 다시 좍좍 퍼부어도 이상하지 않을 하늘이었어요. 하늘은 우중충하고 비가 내려서 풍경이 물을 잔뜩 먹었어요. 전에 왔을 때도 느꼈던 거였지만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실히 목격했어요.

 

도계는 비가 내리면 풍경에서 검은색이 올라온다.

 

탄광이 없는 다른 지역과 다른 확실한 도계만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비가 내리면 풍경에서 검은색이 올라와요. 보통 비가 내리면 먼지가 씻겨내려가고 물을 먹어서 색이 매우 진해져요. 색이 진해지는 것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어요. 첫 번째는 채도가 매우 높아져요. 두 번째는 검은색이 섞여서 색이 어두워져요. 탄광이 없는 다른 지역은 비가 내리면 풍경 색채가 채도가 높아지는데 도계는 비가 내리면 풍경 색채가 검은색이 진해졌어요.

 

누가 보면 일부러 흑백사진처럼 보이게 하려고 채도 확 낮춘 거 아니냐고 할 사진이었어요.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손대지 않았어요. 정말로 제가 보고 있는 풍경이 바로 이런 풍경이었어요.

 

 

날이 우중충하고 아직 완전히 밝아진 시간은 아니라서 오십천도 더욱 검게 보였어요. 전에 왔을 때 백주대낮에 돌아다니며 본 오십천은 이 정도로 시꺼멓게 보이지 않았어요. 이건 순전히 대자연 빛의 장난질이었어요.

 

오십천 양쪽 제방은 탄가루가 끼어서 검었어요. 그리고 물이 흘러나오는 배수구는 하얬어요. 지금은 환경에 많이 신경쓰기 때문에 탄가루 날리고 하천으로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가지 않고 있다고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는 당연히 아니었어요. 배수구 쪽에 페인트로 칠해놓은 것처럼 하얀 건 탄광에서 나온 침출수에 섞여 있는 성분 때문일 거였어요.

 

 

도계읍 읍내를 뒤로 하고 남쪽을 향해 걸어갔어요.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도계 유리나라가 나오고, 거기에서 계속 남쪽으로 쭉 가면 태백 통리로 넘어가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대한석탄공사 사옥 아파트가 보였어요. 저기는 대한석탄공사 직원들 사택이에요. 광부들이 거주하는 광부사택인지 광부 뿐만 아니라 대한석탄공사에 근무하는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옥 아파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이제 이 동네에서 '석공'이 무슨 말인지 안다.

 

지난 번 도계 처음 왔을 때였어요. 지역 주민들이 '석공'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여기에 탄광 말고 거대한 채석장 같은 곳도 있는 줄 알았어요. 석공을 돌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으로 이해했어요. 그렇지만 태백, 도계 등 탄광지역에서 말하는 석공은 대한석탄공사의 줄임말이었어요. 돌을 다루어 물건 만드는 사람 한자는 石工이고, 대한석탄공사는 한자로 大韓石炭公社이기 때문에 대한석탄공사 줄임말 석공 한자는 石公이라서 한자로는 달라요.

 

태백, 도계에서 이 지역 이야기 들을 때 '석공'이라는 말이 나오면 대한석탄공사를 의미해요. 태백에서는 장성에 석공이 있다고 하고, 삼척에서는 전두리에 석공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이때 석공은 대한석탄공사에요. 태백에서 장성에 있다는 석공은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이고, 삼척에서 도계에 있다는 석공은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를 의미해요. 이들 지역에 있는 탄광은 공기업으로는 대한석탄공사, 사기업으로는 경동이 있어요.

 

석공아파트를 보며 이제 나도 이 지역에 두 번 온 사람이라고 혼자 어깨를 으쓱했어요. 이 지역에서 석공 소리 듣고 돌 깨고 조각하는 사람 석공을 떠올리지 않고 대한석탄공사 줄임말이라고 알아들으니까요.

 

 

'우리나라도 엄청 넓어?'

 

많은 사람들에게 삼척은 바닷가 도시에요. 저도 전에 도계를 오기 전까지만 해도 삼척은 당연히 해안 도시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도계에 두 번째 온 지금, 제게 삼척은 해안도시이기도 하지만 탄광이 있는 산악도시이기도 했어요.

 

 

흥전삭도마을 표지판이 나왔어요.

 

"삭도마을이다!"

 

길 맞은편 축대에는 벽화가 있었어요.

 

 

축대에 그려진 벽화에는 여기가 기찻길옆 벽화마을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여기도 보고 가야겠다."

 

흥전삭도마을을 보고 가기로 했어요.

 

 

철도 건널목이 나왔어요.

 

 

건널목 이름은 흥전1건널목이었어요.

 

"이게 예전 스위치백 있던 시절 유적이구나!"

 

흥전1건널목 아래에는 '영동선, 나한정역~도계역'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흥전역과 나한정역은 우리나라 유일의 스위치백 철도 노선이 있던 구간이었어요. 2012년 6월 27일에 태백시 동백산역과 삼척시 도계역을 연결하는 솔안터널이 개통되면서 흥전역과 나한정역은 폐역되었고, 스위치백 구간도 폐선되었어요.

 

흥전1건널목 위로 올라갔어요.

 

 

철로는 녹이 슬어 있었어요. 기차가 안 다니는 철도였어요.

 

지도를 보면 흥전1건널목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광부사택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몰려 있는 마을이 하나 있어요. 거기가 기찻길옆 벽화마을이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에 위치한 기찻길옆 벽화마을은 원래 흥전삭도마을이었어요. 기찻길옆 벽화마을은 넓게 보면 흥전4리부터 흥전1리까지 이어지는 지역이에요. 삼척시에서 2019년에 추진한 흥전리 삭도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벽화 사업이 진행되어서 조성된 곳이에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기찻길옆 벽화마을 입구는 흥전4리이고, 메인은 흥전1리 마을회관이 있는 곳이에요. 기찻길옆 벽화마을 메인 지역에는 도계유리마을도 있어요. 도계유리마을에서는 다양한 유리공예 체험이 가능하다고 해요.

 

참고로 도계유리마을과 도계유리나라는 다른 곳이에요. 도계유리마을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야 도계유리나라가 나와요.

 

 

 

 

오십천 쪽으로 내려가서 조금 걸어가자 장수의 길 입구가 나왔어요.

 

 

장수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흥전삭도마을은 하늘에서 석탄 쏟아지는 마을이었다고 해요. 아주 오래 전에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흥전갱에서 캐낸 석탄은 공중삭도를 통해 도계역 뒷편에 있는 도계저탄장으로 수송되었다고 해요. 흥전갱 공중삭도는 1940년 4월에 설치되었다고 해요. 흥전갱 공중삭도는 일명 솔개차로 불렸고, 발음에 따라 소리개차로 불리기도 했다고 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광업소 가공삭도는 우리나라의 마지막 케이블카형 석탄수송 장비였고, 1991년 9월까지 흥전갱에서 도계역 저탄장까지 2314m 구간을 운행했다고 해요. 현재는 가공삭도 시설이 완전히 철거되었어요.

 

도계광업소 가공삭도는 산 속에 있는 흥전갱에서 내리막길로 쭉 내려오다가 흥전리 삭도마을에서 기역자로 확 꺾어서 도계저탄장으로 이동했다고 해요. 흥전삭도마을 근처에서 기역자로 확 꺾이는 구간에서 석탄이 가득 실린 삭도 바구니가 중심이 흔들리며 뒤집히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해요. 삭도 바구니가 뒤집히면 삭도 바구니에는 뚜껑이 없었기 때문에 안에 실린 석탄이 몽땅 쏟아졌다고 해요. 삭도 바구니가 뒤집히며 석탄이 쏟아지면 사람들은 바가지 쏟아진다고 큰 소리를 질러대었고, 세숫대야, 빗자루, 쓰레받기 등을 들고 우루루 달려가서 쏟아진 석탄을 퍼담았다고 해요. 이렇게 모은 석탄을 집으로 가져와서 나무 수타기를 이용해 19공탄 연탄을 직접 찍어내서 사용했다고 해요. 삭도 바구니가 뒤집혀서 쏟아진 석탄을 쓸어모아와서 연탄을 찍으면 꽤 많은 연탄이 나왔다고 해요.

 

흥전삭도마을 근처 가공삭도를 따라 석탄을 가득 실은 삭도 바구니가 종종 엎어지자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삭도 아래에 보호철망을 쳤다고 해요. 그래도 꾸준히 삭도 바구니는 뒤집혔고, 석탄이 쏟아져내렸다고 해요.

 

흥전삭도마을은 하늘에서 석탄이 쏟아지는 동네였으니 석탄 가루가 매우 많이 날리는 지역이었어요. 그래도 여기는 쏟아지는 석탄 주워서 공짜로 연탄 쓸 수 있었으니 덜 억울할 거에요. 도계역 저탄장 근처 까막동네는 과거에 저탄장 탄가루가 날려서 새까맸다고 하지만 여기는 순전히 탄가루만 날려서 정말로 순수하게 피해만 본 곳이거든요.

 

 

오십천 옆으로 난 산책로인 장수의 길을 따라 걸으며 풍경을 감상했어요.

 

'도계가 풍경 자체는 매우 아름답단 말이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우리나라에 마지막으로 남은 탄광촌이자 정말로 전형적인 탄광촌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에요. 여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와도 바로 탄광촌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도계역 바로 뒤에 위치해 있어요. 거대한 저탄장도 도계역 바로 뒤에 있구요. 탄광이 도계역 바로 뒤에 있는 것은 모를 수도 있지만, 저탄장은 대놓고 저탄장처럼 생겼기 때문에 보고 모를 수가 없어요. 여기에 과거 석탄 산업이 매우 흥해서 도계읍에 인구가 바글바글하던 시절에 지어진 까치발 건물 등도 그대로 매우 잘 남아 있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살아있는 탄광촌이자 살아있는 탄광촌 박물관 그 자체에요.

 

그러나 '탄광촌'이라는 인위적인 풍경을 배제하고 도계읍을 보면 자연 풍경이 상당히 아름다운 지역이에요. 첩첩산중에 오십천이 졸졸 흐르는 지형이니 안 아름다울 수가 없어요. 도계에 도착하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확 들어오는 게 탄광과 탄광촌 풍경이라서 탄광촌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있다고 놀라지만, 순서를 기초해서 보면 자연 풍경이 먼저 있고 탄광이 나중에 생겼으니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탄광촌이 들어섰다고 놀라는 것이 맞았어요.

 

 

 

'버려진 집이 많네.'

 

오십천 주변 흥전삭도마을 가옥 중에는 폐가도 여러 채 있었어요.

 

 

 

이른 아침에 산책하러 오십천 장수의 길 산책로로 나오신 어르신들이 몇 분 계셨어요. 가볍게 인사를 드리며 계속 구경하며 걸었어요.

 

 

 

흥전갱에서 공중삭도로 운반되던 석탄이 쏟아지던 동네.

흥전갱?

 

'잠깐만, 여기에서 흥전갱 걸어서 갈 수 있지 않을 건가?'

 

경치 구경하다가 흥전갱이 어쩌면 여기에서 멀지 않아서 걸어갔다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어요. 흥전갱이 어디 있는지 몰랐어요. 그러나 흥전갱에서 생산된 석탄을 공중삭도를 통해 도계역 저탄장까지 운반했다면 흥전삭도마을에서 그렇게 멀지는 않을 거였어요. 도계역에서 흥전갱까지 거리가 지나치게 멀지 않았기 때문에 케이블카로 석탄을 운반했을 거였어요.

 

'이따 어르신께 여쭤봐야겠다.'

 

흥전갱 위치는 카카오맵, 네이버 지도에서 찾을 수 없었어요. 인터넷으로도 검색되지 않았어요. 탄광 위치를 찾는 것과 갱을 찾는 것은 별개 문제에 가까워요. 당장 흥전갱은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라는 탄광의 갱 중 하나였어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는 도계갱, 동덕갱, 흥전갱, 나한갱, 점리갱을 운영했어요. 이 중 점리갱은 폐갱되었고, 흥전갱과 나한갱은 통합해서 중앙갱이 되었지만 중앙갱 전체가 폐갱되었어요. 탄광 위치를 찾는다면 도계역 바로 뒤에 있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나와요. 이거야 저도 위치를 알아요. 그러나 흥전갱은 따로 위치를 찾아야 했어요. 이런 건 인터넷 뒤진다고 답이 나오기 어려워요.

 

근성으로 인터넷을 찾고 뒤지면 흥전갱 위치를 찾을 수도 있을 수 있었어요. 인터넷 검색 결과 싹싹 다 뒤지고 로드뷰, 위성사진까지 싹 다 보며 위치를 추리해나가면 대충 근방까지는 맞출 수 있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렇게 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어요. 이런 것이 쉽게 풀리면 얼마 안 걸리지만 찾기 어려운 것들은 진짜 하루 종일 찾아도 못 찾아요. 특히 폐광, 폐갱 위치는 이렇게 근성으로 덤벼도 못 찾을 확률이 높아요.

 

쓸 데 없이 컴퓨터도 아니고 스마트폰으로 흥전갱 위치 찾아보겠다고 낑낑대지 않아도 되었어요. 흥전삭도마을에 와 있었으니까요. 여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흥전갱 위치를 알려줄 거였어요. 여기 동네 주민들이 흥전갱 위치를 모를 리 없었어요.

 

이 지역 주민들은 흥전갱 위치를 알 거였어요. 중요한 것은 제가 그분들 설명을 제대로 알아듣고 잘 찾아갈 수 있냐는 거였어요. 만약 흥전삭도마을에서 흥전갱이 멀리 떨어져 있다면 주민분들의 설명 들어도 어디인지 감이 안 올 거였어요. 그 이전에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못 알아들을 거였어요. 그러면 못 가는 거였어요. 그러나 흥전갱이 여기에서 멀지 않고 충분히 걸어서 갔다 올 만한 곳에 있을 거라는 감이 왔어요.

 

 

발길을 멈췄어요. 뒤를 돌아봤어요. 마침 할머니 한 분께서 산책하러 오셔서 제가 있는 쪽으로 오고 계셨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어요.

 

"할머니, 혹시 여기에서 흥전갱 먼가요?"

"흥전갱? 안 멀어."

"흥전갱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해요?"

"여기에서 하천 건너서 저쪽으로 쭉 올라가면 있어."

"감사합니다."

 

할머니께서는 흥전갱이 멀지 않다고 하셨어요. 가는 길도 꽤 단순했어요. 오십천을 건너서 산쪽으로 길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고 알려주셨어요.

 

 

"여기를 두 번 오는데 탄광 갱구 한 번은 봐야지!"

 

도계역 뒤에 있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를 보기는 했어요. 바로 입구 코앞까지는 못 가봤고 입구 근처까지만 가봤어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안에는 못 들어가봤기 때문에 탄광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못 봤어요. 왜 탄광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저는 제주도 출신이에요. 탄광은 고사하고 연탄공장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었어요. 탄광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은 보고 싶었어요.

 

도계역 뒷편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는 지금도 가동중인 곳이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었어요. 인터넷 지도를 보면 까막동네에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를 통과해서 도계전산정보고등학교로 가는 길이 있고 심지어 카카오맵 로드뷰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가동중이고 사람들 일하는 곳에 막 들어가는 건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흥전갱은 폐갱이니 근처까지는 가볼 만 했어요. 흔적조차 완벽히 없어졌다 해도 폐갱 입구까지 한 번은 가보고 싶었어요.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갔어요.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쳤어요. 할아버지께 인사드렸어요.

 

"할아버지, 혹시 여기에서 흥전갱 걸어서 갈 수 있나요?"

"흥전갱? 응. 여기에서 저기 다리 있지? 다리 건너서 산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와."

"감사합니다."

 

할아버지께서도 할머니와 똑같은 길을 알려주셨어요. 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고 하셨어요. 걸어서 10분 정도면 왕복 20분. 대충 30분쯤 잡으면 아주 널널하게 다녀올 수 있었어요.

 

 

2022년 10월 6일 아침 6시 50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장수의 길 산책로에서 빠져나왔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알려주신대로 갔어요. 이 다리를 통해 오십천을 건너서 그대로 쭉 산으로 올라가면 흥전갱이 나온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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