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16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중앙로 황지자유시장 야경

좀좀이 2023. 1. 2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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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묘하네.'

 

어둠 속에서 강원도 태백시 상장동 벽화마을을 다 둘러보고 굴다리사거리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갑자기 아주 오래 전에 외국 여행 다니던 때가 떠올랐어요. 발칸유럽을 여행할 때 알바니아에 갔던 기억이 하나 둘 기억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었어요. 알바니아는 산이 매우 많은 국가에요. 국토 대부분이 산지에요. 그러나 알바니아와 태백시는 산지 지형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어요. 별로 닮은 점이 없는데 알바니아 여행 갔을 때가 떠올라서 기분이 매우 묘해졌어요. 알바니아 티라나에 처음 도착해서 들어간 숙소가 맨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극단적인 부조화를 이루는 색채로 칠해놓은 방이라 돌아버릴 것 같았던 것도 떠올랐고, 나중에 지로카스트라를 갔을 때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마을을 돌아다녔을 때도 떠올랐어요.

 

'왜 그때가 떠오르지?'

 

단순히 태백에 산이 너무 많아서?

아니면 오늘 일정이 너무 재미있어서?

 

2009년에 갔던 알바니아 여행은 매우 재미있었어요. 그 당시 외국 여행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봐도 그저 신기하고 흥미로웠어요. 매우 궁금해했던 곳에 왔다는 기쁨도 상당히 컸어요. 알바니아 여행 정보 같은 건 인터넷에조차 없을 때였어요. 제가 알바니아 갔을 때는 영어를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디를 가나 모험 그 자체였어요. 매일 밤 야간 버스에서 다음날 살기 위해 외국어를 공부하고 낮에 새로운 곳들을 보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다니던 짜릿한 여행이었어요.

 

요즘은 그렇게 다니고 싶어도 못 다녀요. 구글 번역기의 번역 기능이 상당히 훌륭하고 웬만한 곳은 여행 정보가 다 있어요. 스마트폰 있으면 지도부터 여행 정보, 숙박업소 가격 비교와 예약까지 다 할 수 있어요. 스마트폰에서 해방된 여행을 다닐 수야 있겠지만, 본인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이에요. 목욕탕 1m 깊이 냉탕에서 혼자 눈 감고 허우적거리는 것과 다를 거 없으니까요.

 

강원도 태백시는 당연히 인터넷 찾아보면 여행 정보를 많이 구할 수 있는 여행지에요. 저도 태백시 여행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다면 태백시에서 하루 여행 즐길 방법으로 태백 시내버스 4번 타고 태백시 한 바퀴 뱅 돌면 된다는 것을 몰랐을 거에요. 그러니 예전 알바니아 여행 갔을 때와는 아예 다른 여행이었어요. 알바니아 갔을 때는 말도 안 통하고 정보도 없고 진짜 맨땅에 헤딩하듯 다녀야 했어요. 반면 태백시는 사전에 충분히 준비할 것 준비할 수 있었고, 굳이 아무 준비 없이 태백시 가서 맨땅에 헤딩하듯 다닌다 하더라도 한국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라 어떻게든 다 되는 곳이었어요.

 

아주 오래 전 알바니아 여행 갔을 때와 지금 태백 여행 다닐 때 사이에 공통점이라고는 정말 산악 지형이라는 것 뿐이었어요. 나머지는 접점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나 갑자기 알바니아 여행 다닐 때가 떠올랐어요. 수많은 산을 보며 '산악지형'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랬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어쩌면 지금까지 국내여행 다닌 것 중에서 손꼽히게 재미있었던 날이라 그런 거였을 수도 있어요.

 

굴다리사거리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정류장 뒤에는 마트가 있었어요.

 

'마트에서 음료수나 한 통 사서 마실까?'

 

아주 잠시 고민했어요. 그러나 조금 기다리면 태백 시내버스 4번이 곧 올 거였어요. 목이 엄청나게 말라서 당장 음료수를 사서 마시고 싶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마트가 보이니까 음료수 한 통 사서 마시면서 버스를 기다릴지 살짝 고민한 것에 불과했어요. 태백 시내버스 4번은 자주 오며 승객들을 쓸어가는 빗자루 노선이에요. 정말 목말라서 음료수를 마시고 싶은 것이 아니라 버스 기다리는 동안 무료해서 음료수나 하나 사서 마시려는 거라면 안 하는 것이 나았어요. 버스는 곧 올 거였기 때문이었어요.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았어요.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서 발이 살짝 아팠어요. 다음날 일정에 무리가 갈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따 찜질방 가서 냉찜질하고 한숨 푹 자면 가라앉을 정도였어요.

 

태백 시내버스 4번이 왔어요. 버스에 올라탔어요. 이날 마지막 태백 시내버스 4번 탑승이었어요. 태백 4번 버스는 빠르게 어둠 속을 달렸어요. 가면 갈 수록 깜깜한 어둠에서 불빛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번화가 풍경으로 바뀌어갔어요.

 

 

2022년 10월 5일 저녁 7시 30분, 태백시 번화가인 태백시 중앙로에 도착했어요. 태백영프라자 정류장에서 버스에서 내렸어요.

 

 

"사람들 엄청 없네?"

 

강원도 태백시가 인구 유출이 심한 지역이라 비록 '태백시'이지만 인구는 4만명 채 안 된다고 해요. 그래도 나름대로 태백시 번화가인 황지동 중앙로쪽이라 사람들이 조금 있을 줄 알았지만 사람들이 별로 없었어요.

 

길바닥은 빗물에 젖어 있었어요.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어요. 아까 점심 즈음까지 내렸던 빗물이 아직까지도 안 말라 있었어요. 점심 즈음에 물닭갈비 먹고 통리역 가기 위해 버스 탈 때 비가 멎었어요. 그 후 여기도 비가 내리지는 않았을 거에요. 물론 제가 돌아다니는 동안 비가 안 왔다고 황지동 번화가도 비가 그 이후 안 왔다고 확신할 수는 없었어요. 여기는 도처가 다 산이라서 동네마다 날씨가 조금씩 다를 수 있거든요.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24시간 찜질방인 성지사우나는 저녁 8시 이후에 입장해야 요금이 저렴했어요. 당장 찜질방으로 가면 몇 분 차이로 요금을 더 지불해야 했어요. 아니면 밖에서 가만히 서 있거나 쓸 데 없이 찜질방 주변을 배회해야 했어요. 성지사우나에 저녁 8시 넘어서 도착해야 하는데 이제 저녁 7시 30분이었어요. 30분 정도 시간을 때워야 했어요.

 

"저녁 먹어야하는데..."

 

점심에 물닭갈비 2인분을 혼자 먹었어요. 평소라면 저녁을 안 먹어도 되었어요. 점심에 2인분 먹었으니까 저녁은 굶어도 상관없기는 했고, 평소에도 이렇게 점심에 매우 많이 먹으면 저녁을 굶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어요. 당장 다음날 운탄고도 1330 8길을 아침 일찍부터 걸을 예정이었어요. 태백시 황지동 황지자유시장에 24시간 식당이 한 곳 있어서 거기에서 매우 이른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어요. 다음날 아침은 챙겨먹겠지만 점심은 거의 굶는다고 봐야 했어요. 신기역 주변에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신기역 도착해서 무궁화호 열차 타고 동해시로 넘어가면 점심시간 한참 지난 뒤일 거였어요. 동해시에서 밥을 먹는다면 점심 식사가 아니라 매우 이른 저녁 식사가 될 거였어요.

 

다음날 점심은 굶는 것이 거의 확실했고, 저녁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지 몰랐어요. 전에 동해시 여행 갔을 때 보니 식당은 주로 천곡동에 몰려 있었어요. 묵호 쪽은 혼자 밥 먹을 만한 식당이 별로 없었고, 그나마도 저녁 6시가 되면 다 닫아버렸어요. 이번에는 천곡동은 아예 안 갈 거였어요. 동해역에서 바로 버스 타고 발한동으로 넘어가서 그쪽부터 묵호항까지 궁금한 곳을 찾아다니는 일정이었어요. 그러니 운이 안 따라주거나 시간이 아예 안 맞다면 저녁까지도 굶을 수 있었어요.

 

다음날 점심은 굶는 게 확실했고 저녁은 어쩌면 못 챙겨먹거나 아주 부실하게 먹게 될 확률이 있었어요. 저녁을 제대로 못 먹게 될 확률이 별로 없는 수준이 아니라 무시 못할 수준이었어요. 저녁 먹는 것과 일정을 제때 마치는 것 중 하나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조건 일정을 제때 마치는 것이었어요. 그까짓 저녁 한 번 못 먹었다고 사람 굶어죽지는 않아요. 그러나 일정을 제대로 다 소화 못 하면 숙박을 하루 더 하든 나중에 다시 오든 해야 하니 그게 몇 만원이었어요.

 

"황지자유시장 가볼까?"

 

점심에 물닭갈비를 먹었기 때문에 저녁에 물닭갈비를 또 먹는 것은 진짜 아니었어요. 태백 물닭갈비가 맛있기는 했지만 두 번 연속 - 그것도 혼자 1인분도 아니고 2인분으로 두 번 연속 먹을 것은 아니었어요. 아무리 맛있어도 한 끼에 2인분 먹었으면 이번에는 충분했어요. 다음날 한 끼는 무조건 굶을 거고 최악의 경우 두 끼를 굶어야 하기 때문에 뭐라도 먹자는 거였지, 물닭갈비에 환장하고 홀려서 물닭갈비 없으면 못 살겠다는 것은 아니었어요.

 

'황지자유시장 안에 국밥집 몇 곳 있었었지?'

 

전에 강원도 태백시 왔었을 때 황지자유시장을 가봤어요. 황지자유시장 안에는 국밥 파는 식당들이 몇 곳 있었어요.

 

'국밥이나 먹을까?'

 

국밥은 여행 중에 웬만하면 안 먹으려고 해요. 혼자 살면서 밖에 나가서 사먹은 식사 중 국밥이 매우 많아서요. 진짜 너무 유명해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지역 명물 국밥이거나 아주 특별한 국밥 정도 아니면 여행 중 국밥은 안 먹어요. 충청남도 천안 가서 병천순대 들어간 순대국 먹는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여행 가서 아무 데서나 국밥 맛집 찾겠다는 짓은 안 해요.

 

어차피 평소에도 밖에서 식사할 때 종종 사먹는 메뉴 중 하나가 국밥이라 별로 국밥이 끌리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김밥천국 찾거나 편의점에서 도시락, 삼각김밥 먹으면 딱히 처량할 이유가 없지만 처량해질 거였어요.

 

국밥이 아닌 메뉴를 떠올려보면 딱히 먹을 만한 것도 없었어요. 먼저 강원도 태백시의 대표 음식은 물닭갈비와 한우에요. 물닭갈비는 점심에 먹었어요. 한우는 다음날 새벽에 갈 24시간 식당에서 먹을 예정이었어요. 새벽부터 혼자 쇠고기 구울 건 아니고, 육회비빔밥을 먹을 계획이었어요. 이러면 태백시의 대표 음식 둘 다 먹고 태백시를 떠날 거였어요. 다음날 아침에 육회비빔밥을 먹을 건데 굳이 당장 육회비빔밥을 잘 하는 곳을 찾아가야하나 싶었어요. 두 번째 이유는 혼자 밥 사먹을 때 제일 만만한 메뉴가 국밥이기 때문이었어요. 점심을 혼자 2인분 먹었는데 저녁까지 혼자 2인분 먹기는 조금 그랬어요. 1인분으로 파는 것 중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하는데 육회비빔밥은 다음날 새벽에 먹을 거였기 때문에 제외하면 실상 남는 만만한 선택지가 국밥이었어요.

 

 

황지자유시장으로 갔어요. 황지자유시장 안에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어요.

 

 

황지자유시장 안은 휑했어요. 거의 다 문을 닫았어요.

 

 

 

"뭐 아무 것도 없어?"

 

불이 켜져 있는 곳도 있었지만 시장 자체는 이미 파장했어요. 이미 철시한 시장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아, 맞다!

제대로 삼중타 터졌다!

 

첫 번째, 재래시장은 원래 오후 6시면 파장임.

두 번째, 날씨 안 좋음.

세 번째, 통리장 열린 날임.

 

저녁 7시 반이 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파장할 시간이었어요. 이건 태백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재래시장이 거의 다 그래요. 서울도 마찬가지에요. 저녁 6시면 재래시장은 파장이에요. 저녁 6시 넘어서 재래시장이 활성화되는 곳은 야시장이 열리는 곳 정도에요. 태백 황지자유시장도 저녁 6시가 넘으면 파장 분위기일 거고, 제가 간 저녁 7시 반에는 이미 파장했어요.

 

게다가 2022년 10월 5일은 태백시 날씨가 하루 종일 안 좋았어요. 못 돌아다닐 정도로 비가 퍼붓는 날은 아니었어요. 그러나 오전까지 비가 계속 내렸고, 오후에는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계속 흐렸어요. 사람들이 저녁에 나와서 돌아다니고 놀 만한 날씨가 아니었어요.

 

결정적으로 이날 통리장이 열렸어요. 통리장은 상당히 큰 5일장이에요. 큰 장이 열리는 날에는 상설시장이 진짜 파리 앵앵이에요. 사람들이 전부 큰 장이 서는 장날에는 5일장으로 가기 때문에 이때는 상설시장에 사람들이 거의 없고 상설시장도 일찍 파장해요.

 

2022년 10월 5일 저녁 7시 30분. 황지자유시장에 사람이 없고 상점들 모두 문을 닫은 것은 당연했어요. 시간 자체도 재래시장 파장할 시간 넘어서 온 데다 하루 종일 날씨가 안 좋았고, 통리장까지 열린 날이었어요. 이런 날에 상설재래시장에서 이 시각까지 문 열고 장사하는 가게가 있다면 그게 오히려 신기한 가게였어요.

 

 

수선집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안에는 색색의 실타래가 벽에 매달려 아름다운 자수 장식품이 되었어요.

 

 

 

예정에 없던 황지자유시장 야경 감상하는 중이야.

어서 빨리 저녁밥 먹고 싶어.

 

황지자유시장에 온 이유는 저녁밥 먹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나 지금 저녁밥을 먹으러 온 원래 목적은 사라져버렸어요. 졸지에 예정에 없었던 황지자유시장 야경을 감상하며 돌아다니게 되었어요. 지금 보고 있는 이 풍경은 이따 밤이 깊어도 그대로일 거였어요.

 

'노래 바꿔서 들어야하나?'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중앙로 황지자유시장을 돌아다니며 노래를 바꿔들어야할지 고민했어요.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낮에 돌아다닐 때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던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심야시간에 돌아다닐 때 듣는 음악은 따로 있었어요. 아직 저녁 8시 되려면 시간이 꽤 남았지만 이 시장을 돌아다니는 중에는 평소 심야시간에 돌아다닐 때 무한반복으로 재생해서 듣는 음악을 들으며 돌아다녀야만 할 거 같았어요. 한국 표준 시각으로는 2022년 10월 5일 저녁 7시 36분이었지만 풍경만 보면 2022년 10월 6일 새벽 4시 풍경이라고 해도 믿게 생겼어요.

 

 

제유소!

 

정말 오랜만에 보는 단어였어요. 제유소. 기름 짜주는 집. 어렸을 적에 보기는 했지만 자주 보지는 못 했던 단어에요. 그러니까 오래 전에 보기는 했으나 쉽게 접하는 단어는 아니었던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제유소'였어요. '제유소'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기름집'이라는 단어, '기름 짜드립니다'라는 표현을 훨씬 많이 봤어요. 지금도 재래시장 가보면 기름 짜주는 집이 있어요. 그러나 그런 '기름 짜주는 집'에서 '제유소'라는 단어를 사용한 경우는 잘 못 봤어요.

 

 

제유소 내부는 불이 켜져 있었어요. 사람은 없었어요.

 

 

강원도 태백시 황지자유시장 식당가에 왔어요. 여기는 국밥집이 몰려 있는 곳이에요. 한솔식당은 황지자유시장에서 모듬순대 및 국밥 맛집으로 유명한 집이에요. 전에 태백 왔을 때 여기에서 국밥을 먹어봤어요. 국밥 맛이 괜찮았어요.

 

당연히 한솔식당은 영업 종료였어요. 한솔식당이 이 시각에 영업중일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전에 왔었을 때도 6시 즈음에 영업을 마감했어요. 그날은 통리장날도 아니었고, 날씨도 좋을 때였어요. 황지자유시장에 사람들이 꽤 돌아다니고 있었는데도 6시 즈음 되자 문 닫을 준비를 시작했었어요. 그런데 이날은 하루 종일 날씨가 안 좋았고, 저녁 6시 훌쩍 넘어서 도착했고, 통리장까지 열린 날이었어요. 역시 예상대로였어요.

 

'그래도 한 곳은 장사하고 있는 곳 있지 않을 건가?'

 

조금 더 돌아다녔어요.

 

 

역시 다 문 닫았어요. 시장에서 벗어나서 실비식당 몰려 있는 곳 가면 아마 영업중인 식당이 여러 곳 있을 거였어요. 그러나 혼자 한우 구워먹을 것이 아니라 그쪽은 안 가기로 했어요.

 

다시 황지자유시장 안으로 들어왔어요.

 

 

 

식당에서는 다음날 장사 준비를 위해 돼지머리와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있었어요. 조용한 시장 거리에 도끼 같은 칼로 돼지 머리와 돼지 고기를 퍽퍽 내리치는 소리가 울려퍼졌어요.

 

 

강원도 태백시 황지자유시장은 1970년 4월 14일에 개설되었어요. 1971년에 처음 세워졌다고 소개하는 자료도 있는 것으로 보아 1970년 4월 14일에 이 자리에 황지자유시장을 세우기로 했고, 1971년부터 제대로 된 시장이 완성되었던 것 같아요. 황지자유시장은 태백 탄전지대 거주자들에게 생필품 공급기지 역할을 담당했어요. 황지자유시장에는 점포가 약 170여 개 있어요.

 

 

미용실에서 건조대에 걸어놓은 색색의 수건이 눈길을 끌었어요. 빨래건조대에 수건 널어놓은 것이라 별 거 아니었지만 진한 톤의 색색의 수건이 걸려 있어서 사진을 찍고 싶어졌어요.

 

 

황지자유시장에서 나왔어요. 황지자유시장 앞 찐빵과 만두 파는 가게도 문을 닫았어요. 아까 왔을 때부터 문이 닫혀 있었어요.

 

등가교환의 법칙이오?

 

무언가를 얻으려면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등가교환의 법칙. 욕심내어서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면 가장 비참하게 폭삭 망해버린다는 법칙 뒤에 숨어 있는 비밀. 만약 저녁밥을 제대로 먹고 싶었다면 구문소부터의 일정은 포기해야 했을 거에요. 동점역도 포기하고 구문소도 포기하고 상장동 벽화마을도 포기했다면 대신 저녁은 먹고 싶은 것으로 먹었을 거에요. 저는 동점역도 가고 구문소도 가고 상장동 벽화마을도 갔어요. 그 대가는 저녁 굶기였어요. 저녁을 포기해야 했어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저녁밥이 사라졌어요.

 

구경도 다 하고 저녁밥도 반드시 잘 먹겠다고 욕심을 부렸다면 전부 엉망이 되었을 거에요. 동점역은 아마 갔을 거고, 구문소는 대충 길 따라 걸으며 봤다고 퉁쳤을 거고, 상장동 벽화마을도 입구에서 대충 빨리 골목 한두 개 둘러보거나 아예 제껴버렸을 거에요. 그러고 황지동 돌아왔으면 이미 늦어서 어차피 밥 못 먹었을 거에요. 욕심부렸으면 일정도 불만족스럽게 끝냈을 거고 밥도 못 먹어서 차라리 돌아다니는 거나 잘 돌아다닐 걸 후회했을 거에요.

 

'황지연못은 뭐 있을 건가?'

 

황지연못 쪽에 일말의 기대를 해보기로 했어요.

 

 

황지연못 조명은 매우 아름다웠어요.

 

누가 연못에 황산구리 풀어놨어!

 

청록빛 조명을 받아 낮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뽐내는 황지연못을 보며 '신비롭다', '환상적이다'라는 표현이 떠올라야 하는데 밥 못 먹으니까 '황산구리 풀어놨다'라는 표현이 입 밖으로 작은 소리로 튀어나왔어요. 역시 밥을 못 먹으니 두뇌 회로가 이상하게 연결되고 쓸 데 없는 표현만 떠올랐어요.

 

푸른 조명 받고 있는 황지연못 보자마자 떠오른 '황산구리 풀어놨다'는 표현에 혼자 낄낄대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을 찍자마자 조명이 이번에는 보라색으로 바뀌었어요.

 

 

황지연못에 왜가리가 있었어요. 저 왜가리가 태백시에서 황지연못에 일부러 풀어놓은 관상용 잉어를 한 마리 두 마리 잡아먹고 있을 수 있어요. 밥 못 먹으니까 낭만파괴자 모드가 발동되었어요.

 

 

황지연못 주변 식당도 다 문을 닫았거나 문을 닫고 있었어요. 문을 닫는 행위가 '완료된 상태'냐 '진행중인 상태'냐의 차이에 불과했어요. 어차피 들어가서 밥 못 먹는 건 마찬가지였어요. 인간 언어로 표현할 때 차이는 있었지만 제가 밥 못 먹는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보면 똑같았어요.

 

"어우, 춥네."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어요. 밤이 되어 기온이 낮아지는 게 확 와닿았어요. 몸이 으슬으슬했어요. 어서 빨리 찜질방 가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싶었어요. 배고파서 저녁밥 먹고 싶은 것까지는 아니었어요. 다음날 점심과 저녁을 굶을 수도 있기 때문에 먹어놓자는 생각에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결론은 나왔어요. 더 다녀봐야 밥 먹을 곳 없었어요. 깔끔히 포기하고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어요.

 

성지사우나를 향해 걸어가는 중이었어요. 만두 가게가 한 곳 있었어요. 정가네 왕만두였어요. 만두와 찐빵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그래, 저거다!

 

훤한 하얀 조명.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솥. 하늘이 무너져도 저녁밥 먹을 길은 있어요. 만두 가게 안에는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없었어요. 만두 가게에서 구입한 만두와 찐빵은 사서 들고 가야 했어요. 주변에 앉을 만한 곳이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다 젖어 있어서 앉을 수도 없었어요. 괜찮았어요. 걸어가면서 먹으면 되었어요.

 

옥수수찐빵 6개에 5천원!

 

"할머니, 찐빵 얼마에요?"

"6개에 5천원."

"찐빵 하나 주세요."

 

할머니께 옥수수 찐빵을 주문했어요. 할머니께서는 찐빵 6개를 큰 찜기에 넣고 찌기 시작하셨어요. 제 찐빵이 다 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부부 한 쌍이 왔어요.

 

"할머니, 만두 하나 주세요."

 

부부는 만두를 주문했어요.

 

"할머니, 찐빵은 얼마에요?"

"찐빵은 다 떨어졌어."

 

만세!

온갖 세레머니를 다 하고 싶다!

 

막차 탔어요. 막차가 아니라 마지막 찐빵 잡았어요. 하마터면 찐빵 못 먹을 뻔 했어요. 강원도는 찐빵의 고장이에요. 게다가 무려 '옥수수 찐빵'이었어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정가네 왕만두 가게를 보고 왠지 여기서 반드시 찐빵을 사야할 거 같았어요. 여기에서 찐빵을 사는 게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마지막 구명정에 올라타는 행위라는 느낌이 왔어요. 제대로 적중했어요.

 

"태백은 무지 춥네요?"

 

찜기에서 제가 주문한 찐빵과 부부가 주문한 만두가 익기를 기다리는 할머니께 태백 무지 춥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저와 할머니, 부부 - 이렇게 넷이 잡담을 하기 시작했어요. 주제는 태백의 날씨였어요. 의정부보다 추운 건 물론이고 산 너머 옆 산동네 도계보다도 춥다고 말했어요. 부부도 다른 곳에서 오늘 태백으로 넘어왔는데 무지 춥다고 말했어요. 할머니께서는 태백은 정말 춥다고 말씀하셨어요. 겨울에는 말도 못 하게 춥고 눈도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다고 하셨어요.

 

태백은 봄여름가을겨울 다 춥다고 이야기하며 각자 주문한 찐빵과 만두가 다 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때 남자 두 명이 정가네 왕만두로 왔어요. 술냄새가 났어요. 둘이 한 잔 마시고 지나가다 정가네 왕만두 앞에 사람들이 서 있으니 갑자기 만두 먹고 싶어져서 왔어요. 남자 두 명은 서로 자기가 사주겠다고 하다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막고 할머니께 카드를 건네며 결제했어요.

 

누구나 너무 미치도록 찐빵과 만두가 먹고 싶어지는 2022년 10월 5일 태백시의 밤.

만두집 할머니가 마법을 부린다!

 

이 지역 기준으로 늦은 시각에 손님이 손님을 부르며 갑자기 장사가 잘 되는 상황. 서로서로 잡담하며 주문한 것이 다 잘 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매우 신나셨어요.

 

"오늘 완전 노났네!"

 

할머니께서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휑하고 컴컴한 밤거리에 퍼지는 구수한 냄새. 밝게 빛나고 있어. 다가가자 사람들이 줄 서 있어. 기온은 훅 떨어져서 온몸이 으슬으슬해. 추워진 밤공기에 떠오르는 것? 찐빵과 만두. 추울 때 제맛인 찐빵과 만두. 너를 유혹하고 있는 하얀 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찜기.

 

쌀쌀한 밤에 찐빵과 만두는 못 참지!

 

제가 주문한 찐빵 6개가 잘 쪄졌어요. 찐빵 6개를 받아서 성지사우나를 향해 걸어갔어요. 찐빵 한 개를 꺼내었어요. 한 입 물어뜯었어요.

 

"우와아악!"

 

너무 맛있었어요. 추워서 맛잇게 느껴진 게 아니었어요. 진짜로 엄청나게 맛있었어요. 씹는 맛이 대박이었어요. 쫄깃쫄깃했어요. 빵은 구수하고 팥은 달았어요. 과하지 않고 부드럽고 달콤했어요. 포근한 이불 덮고 스르르 잠드는 기쁨의 맛이었어요. 하나를 금방 다 먹었어요. 하나를 또 꺼내서 먹기 시작했어요. 계속 먹어졌어요. 마음 같아서는 마구 물어뜯으며 빨리빨리 먹고 싶었어요. 한 입이 다음 한 입을 물귀신처럼 잡아끌어당겼어요. 이성으로 억제해야 했어요. 급히 먹으면 목 메일 거고, 목 메이면 가방에서 다음날 마시려고 챙겨온 삼다수를 뜯어야 했어요. 옥수수 찐빵을 급하게 먹지 않으니 목이 메이거나 목이 마르지 않았어요. 맛도 좋고 목도 안 메이고 잘 넘어가는 훌륭한 찐빵이었어요.

 

태백이 찐빵의 고장이었나?

 

옥수수 찐빵을 먹기 전까지 태백시는 물닭갈비와 한우가 맛있는 동네로만 알고 있었어요. 옥수수 찐빵 먹고 완전히 바뀌었어요. 이제 제게 태백시는 물닭갈비, 한우와 더불어 옥수수 찐빵도 맛있는 동네가 되었어요.

 

이전에 태백 왔을 때 다른 가게에서 찐빵을 사먹었어요. 그때도 찐빵이 너무 맛있었어요. 그때는 더웠는데도 맛있었어요.

 

태백은 찐빵의 도시?

 

강원도 횡성군이 안흥면 안흥찐빵으로 유명해요. 안흥찐빵은 못 먹어봤어요. 그러나 태백시 찐빵도 무지 맛있었어요. 이 정도라면 태백 온 김에 반드시 한 번 사서 먹어볼 만한 맛이었어요.

 

찐빵을 먹으며 성지사우나로 걸어갔어요. 성지사우나 도착하기 전에 찐빵 6개를 다 먹었어요. 너무나 여행의 낭만과 감성이 넘치는 저녁 식사였어요. 찐빵 봉지를 잘 버린 후 태백시 24시간 찜질방인 성지사우나로 갔어요.

 

성지사우나 카운터에는 직원이 있었어요. 옆에는 무인 기계가 있었어요.

 

"여기 기계로 해야 하나요?"

"아뇨, 여기로 돈 내시면 되요."

 

직원에게 무인 기계로 결제해야 하냐고 물어보자 지금은 카운터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요.

 

"그러면 키 반납은 어떻게 해요? 제가 새벽에 나갈 거라서요."

"여기 카운터에 놓고 가시면 되요."

 

무인 기계로 결제하면 나갈 때 무인 기계에 키를 반납해야 하지만 카운터에서 직원에게 결제하면 나갈 때 카운터에 키를 올려놓고 나가면 된다고 했어요.

 

열쇠와 찜질방 옷을 받아서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어요. 짐과 옷을 사우나 옷장에 집어넣고 목욕탕으로 들어갔어요. 냉찜질과 온찜질을 반복하다 온탕에 몸을 푹 담갔어요. 목욕탕에 얼마만에 오는지 몰랐어요. 너무 좋았어요. 몇 년간 쌓여 있던 피로와 통증이 온탕물에 싹 다 녹아나오는 기분이었어요.

 

사우나를 잘 즐기고 찜질방으로 올라갔어요. 밤 9시였어요.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위해 콘센트를 찾아다녔어요. 잘 보이는 쪽에 있는 콘센트는 다른 사람들이 사용중이었어요.

 

"뭐 찾으세요?"

"아, 스마트폰 충전하려고 콘센트 찾고 있어요."

"콘센트 여기 있어요."

 

창가쪽 구석 안마의자가 있는 쪽에 콘센트가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충전기를 꽂고 스마트폰을 연결했어요. 바로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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