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석탄의 길 (2022)

석탄의 길 1부 08 - 강원도 태백시 통동 오로라파크 통리역

좀좀이 2023. 1. 14.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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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거야, 안 오는 거야?"

 

빗방울이 어쩌다 한 두 방울 떨어졌어요. 여전히 우산을 꺼내서 쓸 정도는 아니었어요. 아주 가끔 스마트폰 화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어요. 다행히 통리장은 구경을 잘 했지만, 이제 통리장 하나 봤어요. 앞으로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비는 계속 내릴 것 같고, 일정은 예상보다 늦어졌어요. 이대로 잔뜩 흐린 상태로 비가 안 내린다면 너무나 고마운 하늘이었고, 비가 쏟아진다면 야속한 하늘이었어요.

 

 

나는 지금 구름 속에 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비행기가 구름 속을 날아갈 때가 있어요. 비행기가 구름 속을 날아갈 때 창밖을 보면 모든 세상이 뿌옇게 보여요. 창밖에는 비가 내리는 것도 아닌데 계속 물방울이 맺히고 날아가요. 태백시 통동 상황은 딱 구름 속에 있는 상황이었어요.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이 진짜 비가 와서 떨어지는 것인지 구름에 있는 수증기 중 뚱뚱하게 커진 것이 중력으로 인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어요.

 

강원도 태백시 통동은 상당한 고지대에요. 황지연못 입구에 있는 비석을 보면 황지연못이 해발고도 680m라고 나와 있어요. 태백시 통동은 황지연못보다 해발 고도가 더 높은 곳이에요. 황지동에서 버스를 타고 통리로 올 때 버스는 산길을 쭉 올라왔어요. 통리는 해발 고도가 높은 곳이고 도처가 산이다 보니 무거운 비구름이 떠다니는 날에는 구름 속에 잠겨 있는 곳이라 해도 맞을 거였어요.

 

'통리역 보고 철암으로 가야겠다.'

 

통리5일장에서 통리역이 있는 오로라파크까지는 멀지 않았어요. 태백시 시내버스 4번은 통리역까지 올라가서 통리역에서 회차해서 다시 통리5일장을 지나 철암동으로 빠지는 노선이었어요. 통리역까지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걸어서 갈 만한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통리 동네 구경하면서 걸어가기로 했어요. 통리역 가서 통리역과 오로라파크를 대충 구경하고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철암역으로 가기로 결정했어요.

 

 

통리역으로 걸어올라가며 주변 풍경을 바라봤어요. 경동아파트 주변으로는 산골 마을 풍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이런 동네 골목길 돌아다니는 것도 매우 좋아해요. 여기 사는 주민분들께는 일상적인 풍경이겠지만 저는 여기를 처음 와 봤어요. 처음 보는 동네였어요. 특별한 것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처음 와본 곳이기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고 신기해 보였어요.

 

이곳을 지금 둘러보는 방법과 이따 둘러보는 방법이 있어.

어느 쪽이 더 나을까.

 

걸음을 멈추고 마을을 한동안 바라봤어요. 마을 안쪽 골목길로 들어가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 같았어요. 여기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일 거에요. 여기 사시는 분들께는 아니겠지만 여기를 처음 와봤고 탄광지역을 경험해본 거라고는 도계 가서 잠깐 둘러본 것이 전부인 제게는 여기의 일상 이야기 모두 다 너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일 거였어요. 제주도와 의정부에 탄광마을 같은 게 어디 있어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어요. 인기척은 거의 안 느껴졌어요. 이 시각에 나와서 마을 돌아다닐 거라면 아마 전부 조금 아래에 열리고 있는 통리장 가서 놀고 있을 거에요. 시골 재래시장 5일장이 원래 그런 곳이니까요. 장 보러 가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람들 많이 몰리는 큰 행사 같은 거라고 사람 구경하고 놀려고 가는 사람도 많아요.

 

'여행 계획상 무리는 없을 건데 어떻게 하지?'

 

저는 여행 갈 때 계획을 짜기는 하지만 상당히 널널하게 짜고 가요. 아예 안 짜고 가지는 않아요. 아무 계획 없이 가버리면 도착한 곳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허무하게 방황하고 허송세월만 보내다가 모든 것이 끝나버려요. 그래서 계획을 짜고 가기는 해요. 그러나 계획을 절대 빡빡하게 짜지 않아요. 계획대로 잘 되지 않는 일도 많고, 가서 더 있고 싶은 곳, 더 돌아다니고 싶은 곳이 생기는 경우도 많아서요. 일정 짤 때 몇 곳 갈 곳을 정해놓고 자유시간을 엄청 많이 주는 식으로 계획을 짜요.

 

이날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날 일정은 태백 시내버스 4번을 타고 태백시를 한 바퀴 돌며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어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했지만 이동은 버스가 알아서 해줄 거였어요. 제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걸어서 다니는 일정이라면 고민하고 계산할 것이 있어요. 하지만 버스 타고 이동하며 다니는 거라 그렇게 크게 고민할 것이 없었어요. 버스 배차 시간이 말도 안 되게 긴 것도 아니고 15~20분 사이에 1대 수준이었어요. 게다가 태백 시내버스 4번은 순환노선이었어요. 여행 방법 자체가 자유도가 상당히 높았어요. 태백 4번 버스 배차 시간은 길지 않아서 언제든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할 수 있고, 태백 4번 버스를 타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이날 일정 종점인 황지동으로 데려다줄 거였어요.

 

계속 고민되었어요. 통리역으로 올라가는 길에 동네 골목길 들어가서 동네 구경하는 방법도 괜찮았고, 반대로 통리역부터 간 다음에 통리역에서 내려오다가 동네 골목길 들어가서 동네 구경하는 방법도 괜찮았어요. 심지어 이 구간은 태백 시내버스 4번이 그대로 올라왔다가 그대로 내려가는 회차 지점이었어요. 제대로 읽어도 토마토, 뒤집어 읽어도 토마토 같은 길이었어요. 4번 버스 노선은 무조건 제가 가야 할 철암동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었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5일 13시 20분이었어요. 오후 6시부터는 어둑어둑해질 거라 계산한다면 해 떠 있는 동안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 남았어요. 앞으로 가야 할 곳은 철암동, 동점역, 구문소, 상장동 벽화마을 정도였어요. 여기에서 상장동 벽화마을은 그렇게 크게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구문소는 구문소 자체를 보고 싶어서 가는 곳이라기 보다는 동점역을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야하는 곳이 구문소였어요. 버스 내린 김에 대충 둘러나 보고 가자는 계획이었어요. 장성동은 뭐가 있고 무엇을 봐야하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구문소 구경하는 데에 얼마 걸릴 거 같지 않았고, 상장동 벽화마을은 계속 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곳이었어요. 버스가 상장동 벽화마을 근처까지 지나가니까 가기는 가겠지만, 대충 보고 가거나 생략해도 별 상관없는 곳이었어요. 이미 도계를 다녀왔고, 철암도 탄광마을이었던 곳이니 도계, 철암 다녀오면 굳이 상장동 벽화마을을 안 가도 될 거였어요. 그래서 상장동 벽화마을은 가기는 가겠지만 볅로 흥미가 생기는 곳은 아니었어요. 꼭 가야할 곳을 추리면 철암동과 동점역 정도 남았어요.

 

결정적으로 태백 시내버스 4번 막차 이전에만 일정을 마무리지으면 되었어요. 그런데 지금 이제 1시 30분 되어가고 있는데 태백 시내버스 4번 막차 끊길 때까지 상장동까지도 못 가겠어요.

 

통리5일장에서는 물닭갈비의 가호가 충동을 억제시켜주셨다.

 

이번에는 도계의 가호가 충동을 억제시켜주신다.

 

'봐서 가든가 말든가 해야지.'

 

만약 강원도 남부 탄광촌 일대를 처음 와봤다면 무조건 마을부터 들어가봤을 거였어요. 만약 햇볕이 쨍쨍 비치는 날이었으면 보다 더 많이 고민했을 거였어요. 그러나 일단 날씨가 자꾸 일정을 빨리 진행해나가라고 재촉해대었어요. 결정적으로 탄광촌 모습은 이미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에서 제대로 보고 왔어요. 꼭 통리를 보고 상장동 벽화마을을 아주 꼼꼼히 보고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았어요. 도계 가서 광부사택 마을 잘 돌아다니고 사진도 많이 찍고 머리 속에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통리역을 우선 순위에서 제일 위로 두었어요. 마을은 보면 좋고, 안 봐도 그렇게 크게 아쉬울 것 없었어요. 그러나 통리역은 여기까지 왔는데 반드시 보고 가야 하는 곳이었어요. 반드시 보고 가야 하는 통리역을 본 후에 봐서 마을 들어가서 골목길 돌아다닐지 바로 철암으로 넘어갈지 결정하기로 했어요. 그래도 어지간하면 통리역 본 후 마을 안으로 들어가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통리5일장으로 내려가서 태백 4번 버스를 타고 철암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어요.

 

 

철로에 통리 갱차 모형이 서 있었어요.

 

 

맞은편은 여전히 무거운 비구름에 뒤덮힌 마을과 뒷산 풍경이었어요.

 

"이거 멋진데!"

 

 

유리문을 포개놓은 틈 사이로 식물들이 끼어 있었어요. 포개진 유리문 사이에 끼어 있는 식물들은 식물표본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한편으로는 식물 액자를 만들어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이거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으면 진짜 대단하다."

 

매우 아름다웠어요. 일부러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만들었다면 아이디어가 너무 뛰어났어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보다 인상적인 조형물은 본 일이 없었어요. 자연을 그대로 담았다는 문구는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말이에요. 이것은 진짜로 자연을 그대로 담아서 만든 조형물이었어요.

 

'에이, 일부러 이렇게 만든 건 아니겠지.'

 

일부러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유리문을 포개어 벽에 기대놓고 맨 앞 유리문만 강아지풀을 덮어놓지 않았을 거에요. 그보다는 유리문을 한 장씩 포개어 벽에 기대어놓다가 마지막 한 장을 포개어 기대어놓을 때 강아지풀을 유리문으로 치우고 기대려면 힘드니까 강아지풀 앞에 그대로 유리문 놓고 포개어 기대게 놨을 거에요. 유리문에 생긴 얼룩이야 나중에 물걸레로 쓱쓱 닦아버리면 그만이니까요.

 

 

오로라파크 입구까지 왔어요.

 

 

 

오로라파크 입구인 통리역 역전을 봤어요. 옛날에는 번성한 곳이었겠지만 지금은 매우 쇠락한 곳이었어요. 건물이 완벽히 붙어서 벽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이 특징이었어요.

 

 

유리창이 깨진 방치된 건물인 줄 알았어요. 자세히 보니 검은색 코팅지가 주름지고 떠서 그렇게 보인 거였어요. 유리문에는 '공장 출입구에 주차하시면 통행에 방해되니 주차금지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어요.

 

"여기가 공장?"

 

종이에 적힌 내용을 보면 공장이었어요.

 

'공장이라고 반드시 크고 굴뚝 있고 자재 막 쌓여 있어야하는 건 아니니까.'

 

'공장'이라고 하면 매우 크고 굴뚝 있고 자재 엄청 쌓여 있는 투박한 건물을 떠올리기 마련이에요.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공장도 많아요. 제가 살고 있는 의정부도 공장이 여기저기 있지만 외부에서는 그게 공장인지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전형적인 공장 모습이 아니라 건물 한두 층 정도에 소규모로 운영하는 재봉 공장 같은 곳들이에요. 이런 작은 공장은 밖에서 보면 평범한 건물이에요. 공장이 여러 곳 있는 곳이라고 해서 반드시 쇠 냄새, 기름 냄새 엄청 나는 건 아니에요.

 

 

강원도 태백시 통동 오로라파크 입구 역할을 하고 있는 통리역으로 갔어요.

 

 

강원도 태백시 통동에 위치한 통리역은 1940년에 영동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어요. 이 당시 통리역은 상당히 중요한 기차역이었어요. 태백과 삼척에서 생산된 석탄을 운송하기 위한 철도에 위치한 기차역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태백에서 생산된 석탄을 동해시 묵호항으로 운반하기 위해서는 태백과 삼척시 도계읍 사이에 있는 높은 고개를 넘어가야 했어요.

 

태백시 통리와 삼척시 도계 사이에 있는 고개는 매우 험준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통리역과 심포리역 사이 구간이 강삭철도로 운행되었어요. 이후 여러 터널이 뚫리면서 통리역부터 도계역까지 영동선 구간은 강삭철도 대신 터널과 기차가 전진했다 후진했다 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스위치백 구간이 되었어요.

 

2012년 6월 27일에 동백산역에서 도계역을 연결하는 솔안터널이 개통되었어요. 솔안터널의 개통으로 인해 통리역, 심포리역, 나한정역은 폐역이 되었어요. 통리역은 폐역 이후 통리역 부지를 개발해서 2014년에 오로라파크가 통리역 부지에 들어섰어요. 현재 통리역은 추추파크의 레일바잍크 시발점이에요.

 

통리역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역 근처에 있는 추추파크의 레일바이크 시발점이고, 통리역 일대는 오로라파크에요. 오로라파크는 탄탄파크와 같이 운영되고 있어요. 통리역은 오로라파크 입구이기도 해요.

 

 

"아무도 없네?"

 

통리역 안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건물 안에 불이 켜져 있었어요. 테이블에는 스마트폰이 올려져 있었어요. 직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어요. 화장실이라고 갔나 봐요.

 

'온 김에 화장실 들렸다가 가야겠다.'

 

여행 다닐 때는 화장실 이용할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좋아요. 아예 갈 생각이 없는데 억지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요. 철암동 넘어갔을 때 화장실 이용하기 어려운데 화장실 가고 싶으면 힘들 거였어요.

 

화장실로 갔어요.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통리역 안에는 저 혼자였어요. 볼 일을 보고 다시 통리역 대합실로 왔어요.

 

 

통리역 대합실 승강장 입구가 있는 벽의 한쪽 구석에는 느린 우체통이 있었어요. 느린 우체통에 넣을 엽서를 비치해놓는 곳도 있었어요.

 

"직원 어디 갔지?"

 

느린 우체통에 넣는 엽서를 비치해놓는 곳은 있었지만 거기에 엽서가 한 장도 없었어요. 엽서가 있으면 한두 장 기념으로 가져가고 싶었어요. 직원에게 혹시 엽서 없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자리 비운 직원은 어디 갔는지 알 수 없었어요. 스마트폰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잠깐 근처로 나간 걸로 미루어볼 수 있었어요. 화장실은 방금 제가 다녀왔으니 화장실은 아니었어요. 통리역 앞도 아니었어요. 제가 통리역으로 들어왔으니까요.

 

통리역 승강장으로 나갔어요.

 

 

"날 안 좋다고 그냥 노나?"

 

충분히 가능한 가설이었어요. 날씨가 워낙 별로라서 개점휴업 상태일 수 있었어요. 돌아다니는 것은 가능했지만 어디 앉아 있을 수는 없는 날씨였어요. 레일바이크 좌석은 다 젖어 있을 거였어요. 이렇게 날 안 좋은 날 레일바이크 타러 여기 오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오른쪽에는 태백시 유일의 타워전망대인 눈꽃전망대가 보였어요. 눈꽃전망대는 지상 11층 규모로, 높이가 49.2m라고 해요.

 

지금 저기 갈 이유가 있겠니?

보이는 게 없는데!

 

구름 속에 있어서 보이는 게 없었어요. 눈꽃전망대가 통리역에서 멀리 있는 곳이 아닐 텐데 이 동네 전체가 구름에 파묻혀서 엄청나게 멀리 있는 곳처럼 보였어요. 과장된 원근법이 장난 아니었어요. 이런 날 눈꽃전망대 올라가서 무엇을 보겠어요. 저기 올라가서 멀지 않은 통리역 보면 지금 여기에서 눈꽃전망대 보이는 것보다도 더 안 보일 건데요. 통리장 같은 건 아예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어요.

 

 

다시 통리역 대합실 안으로 들어왔어요. 역시 직원이 없었어요.

 

"가야겠다."

 

직원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시간낭비였어요. 설령 직원이 돌아왔다고 해서 엽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어요. 만약 엽서가 있다면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해놨을 건데 안 보이는 것으로 보아 엽서가 다 떨어졌을 수도 있었어요. 이러면 정말 시간만 날리고 허탕치는 거였어요.

 

통리역에서 나왔어요. 마침 태백 시내버스 4번이 통리역 정류장 앞에 도착했어요. 빨리 판단해야 했어요. 이 버스를 놓치면 15분에서 20분간 여기에서 돌아다녀야 했어요. 막 정류장에 들어온 4번 버스를 타면 바로 철암동으로 넘어갈 거였어요.

 

'철암동으로 가자.'

 

버스에 올라탔어요. 원래는 통리역에서 다시 통리5일장으로 걸어내려가면서 통리 마을을 구경할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버스를 보자 마음이 바뀌었어요. 여기에서 어정쩡하게 시간을 보낼 바에는 철암동으로 빨리 넘어가는 게 더 나았어요. 언제든 비가 좍좍 퍼붓기 시작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씨였어요. 통리에서 마을 구경한다고 하다가 비가 퍼붓기 시작하면 철암동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일정이 싹 다 망할 거였어요.

 

버스는 다시 통리5일장으로 달려갔어요. 통리5일장을 지나서 좌회전을 했어요. 버스는 또 산 속 좁은 골짜기에 난 포장도로를 달렸어요.

 

 

"동백산역이네?"

 

태백역과 도계역 사이에 있는 동백산역이 나왔어요.

 

"저게 원래 태백에 있는 거였어?"

 

태백역에서 도계역까지는 27분 소요되요. 중간에 태백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는 동백산역에 정차한 후, 길고 긴 솔안터널로 들어가요. 솔안터널에서 나와서 조금 더 가면 도계역이 나와요. 도계역에서 동백산역까지 시간이 꽤 걸리고, 동백산역에서 태백역까지도 체감상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동백산역은 삼척시에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태백 4번 버스 타고 통리5일장에서 철암역으로 가는 길에 동백산역이 튀어나왔어요.

 

우리나라에 동백산역이 있다는 것은 지난 여름 강원도 남부 여행 갈 때 기차로 동백산역을 지나가면서였어요. 이때 '동백산역'이라는 역명을 보고 동백나무가 많은 곳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동백산역과 동백꽃은 아무 관련없어요. 동백산역 역명의 유래는 '백산(栢山)의 동쪽'이라는 의미에요. 한자로 동백산역은 東栢山驛이에요. 동백나무가 많은 산인 동백산역 冬栢山驛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동백 산'이 아니라 '동 백산'이에요.

 

동백산역은 1975년에 영동선 태백신호장으로 문을 열었어요. 이 당시 오늘날 태백역 이름은 황지역이었고, 동백산역의 원래 이름인 태백신호장 이름이 바로 태백역이었어요. 1984년에 황지읍이 태백시로 승격되자 황지역은 태백역으로 역명이 변경되었고, 원래 이름이 태백역이었던 태백신호장은 동백산신호장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어요. 이후 1988년에 동백산신호장이 보통역으로 승격되면서 오늘날 '동백산역'이 되었어요.

 

버스 안에서 제 앞쪽에 앉은 부부와 맞은편 옆자리에 앉아계신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어요.

 

"여기 단풍 들면 관광객 많이 오겠어요."

"그 사람들 한 번 오고 다시 안 와요."

 

제 좌석 앞에 앉아 있는 부부는 왠지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 같았어요. 이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관광객 많이 오겠다는 말을 할 이유가 없었어요. 여기에 단풍 들면 관광객 많이 오는지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을테니까요. 할아버지께서는 이쪽 지역분 같았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이쪽에 단풍철이 되면 사람들이 오기는 하지만 단풍만 보고 그대로 가버린다고 하셨어요. 태백에 단풍 보러 온 관광객들은 태백으로 한 번 오고 다시 오지 않으며, 그 이유는 태백에서 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그 사람들 또 오지 않을까요?"

"아냐, 그 사람들 태백에 놀 게 없어서 단풍만 보고 가."

 

할아버지 대답에 앞에 앉아 있던 부부는 '그래도 또 오는 사람들 있을 거에요'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어요. 할아버지께서 제 좌석 앞에 앉아 있는 부부에게 계속 말씀하셨어요.

 

"사람들이 많아야 서로의 돈이 돌아서 먹고 사는데 태백에는 사람이 없어. 있던 사람들도 다 빠져나가잖아. 다 나가서 여기 인구 다 해봐야 4만명도 안 돼. 그러니까 사람들이 먹을 게 없어서 서로 헐뜯어. 돈이 안 도니까 남의 것 빼앗으려고 하구."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와 부부의 말을 들었어요. 할아버지는 여기가 이제 삭막하고 서로 싸우는 지역이라고 이야기하고 계셨고, 부부는 그래도 여기도 좋은 점이 있고 좋은 동네라고 이야기하고 싶어하고 있었어요. 부부는 할아버지 말씀에 반박하며 좋은 점도 있고 사람들도 좋게 지내고 있다고 반박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태백에서 오래 사신 할아버지 말씀에 뭐라고 반박하지 못 하고 있었어요.

 

창밖 풍경은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이었어요. 버스에서 내려서 걷고 싶었어요. 만약 다음날 운탄고도 8길을 걸을 예정이 아니었다면 바로 내려서 걷기 시작했을 거에요. 다음날 일정이 하루 종일 걸어야하는 일정이라 최대한 덜 걸어야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지 않았어요. 여기가 어디인지 찾아봤어요. 백산역 쪽이었어요.

 

할아버지께서 버스에서 내리셨어요. 부부도 버스에서 내렸어요. 버스 안에는 기사님과 저 뿐이었어요. 아까 단풍 이야기 들은 것이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태백시에는 철암단풍군락지가 있었어요. 이쪽에서 철암단풍축제가 열린다고 나와 있었어요.

 

'어디에서 내리지?'

 

철암동주민센터 정류장, 삼방동 정류장, 철암시장 정류장, 철암역 정류장 중 한 곳에서 버스에서 내려야 했어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

 

버스를 타며 대충 길을 보고 동네를 가볍게 훑어본 후 철암역 정류장에서 내려서 동네를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버스가 철암역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2022년 10월 5일 오후 1시 52분, 버스에서 내렸어요. 버스 타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철암역 건물이 나왔어요. 철암역에 오기 전까지 철암역도 통리역처럼 매우 작은 건물일 줄 알았어요. 그러나 철암역 건물은 상당히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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