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잊혀진 어머니의 돌 (2022)

잊혀진 어머니의 돌 - 19 강원도 정선군 조동리 함백성당, 방제리 폐역 함백역

좀좀이 2022. 11. 26.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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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디 갈 거?"

"함백 가야 하는데 네비에 나와?"

"함백?"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예미리는 대충 다 둘러봤어요. 예미리 번화가는 못 가봤지만 딱히 가볼 필요는 없었어요. 그렇게 기대되는 곳은 아니었어요. 애초에 예미에 온 이유는 강원도 친구가 자기가 가본 곳 중 가장 시골이고 정말 아무 곳도 없는 곳이 예미였다고 해서 궁금해서 와봤어요. 무언가 굉장하고 멋진 것이 존재할 거라 기대해서 온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다는 걸 듣고 대체 얼마나 아무 것도 없으면 강원도 친구가 그런 말을 했을지 궁금해서 확인해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러니 여기에서 특별한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없었어요. 아무 것도 없다는 말에 왔을 뿐, 강원도 친구 말을 부정하려고 노력해보려고 온 건 아니었어요.

 

다음에 갈 곳은 '함백'이라는 곳이었어요. 사북 숙소에서 예미 및 예미 근방에 볼 만한 곳을 찾다가 이쪽 여행 후기를 몇 개 발견했어요. 예미에는 볼 것이 없었고, 볼 것은 '함백'이라는 곳에 가야 있었어요. '함백'이라는 곳 정보를 찾아보다가 매우 중요한 정보를 발견했어요.

 

함백은 정식 행정지명이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에는 탄광인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있었어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는 이 일대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탄광이었어요. 대한석탄공사는 한국 석탄산업에서 오늘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맞먹는 초일류 국영 대기업이었어요.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는 탄광들은 보수도 가장 좋고 처우도 가장 좋은 탄광이었기 때문에 뇌물과 빽 없이는 들어가기 매우 어려웠다고 해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는 1948년부터 상공부 직할로 개발하다가 1950년 대한석탄공사의 창립과 더불어 삼척탄전 소속의 함백광업소로 발족했어요.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에 함백광업소가 발족하자 이 지역은 갑자기 엄청나게 번성했어요. 인구 유입도 엄청나게 폭증했고, 도로와 철도도 부설되었으며, 학교, 건물 등도 매우 많이 건설되었어요. 조그맣고 강원도에 허다한 평범한 산골마을이었던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는 함백광업소와 함께 번창하는 탄광지역으로 완벽히 바뀌었어요.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가동되던 때에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는 완전히 함백광업소 마을이었어요. 그래서 조동리 주민들도 본인들이 '조동리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함백 사람'이라고 하게 되었어요. 또한 조동리 주민들이 모두 자기 동네를 '함백'이라고 하자 언제부턴가 관공서, 학교, 교회, 건물 등에도 '조동리', '조동'이라는 행정지역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광업소 이름인 '함백'을 즐겨 쓰게 되었어요. 함백초등학교, 함백중학교, 함백고등학교, 함백우체국, 함백치안센터, 함백의용소방대, 함백농공단지, 함백성당 등 '조동리'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함백'이 자리잡았어요.

 

'함백'은 정식 지명은 아니기 때문에 검색하려면 '조동리'로 검색해야 했어요. 함백이 정식 지명이 아니라 네비게이션에서 '함백'으로 검색하면 검색 결과가 제대로 나올지 알 수 없었어요.

 

"함백을 가야 하는데 그게 정식 지명이 아니라 검색 될 건가?"

"해보지, 뭐."

 

친구가 네비게이션에 '함백'을 입력했어요. 검색 결과가 좌르륵 떴어요.

 

"나오는데?"

"어? 나오네? 그러면 함백 성당으로 가자."

 

친구에게 먼저 함백성당으로 가자고 했어요. 친구가 네비게이션 길찾기 설정을 함백성당으로 하고 운전하기 시작했어요.

 

2022년 8월 31일 12시 14분, 강원도 정선읍 조동리 함백성당에 도착했어요. 차를 주차시킨 후 차에서 내렸어요.

 

 

강원도 정선읍 조동리 함백성당에서 가장 먼저 맞이해준 것은 성모마리아상이었어요.

 

 

함백성당은 천주교 원주교구 소속의 성당이에요.

 

 

"성당 들어가보자."

 

친구와 성당 안에 들어가보기로 했어요. 친구가 문을 밀어봤어요. 문이 안 열렸어요.

 

"여기도 잠긴 거 같아."

"입구 다른 쪽 아니야?"

 

친구는 문이 잠겼다면서 여기도 문이 잠겨서 미사 시간 외에는 못 들어가는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러나 이번에도 문이 굳게 잠겨 있을 거 같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다른 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을 것 같았어요. 함백성당에 있는 다른 문으로 갔어요.

 

 

예상대로 다른 쪽에 있는 문은 열려 있었어요.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가톨릭 신자인 친구는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드렸어요. 친구가 기도를 드리는 동안 저는 성당 내부를 구경했어요. 친구가 기도를 마치자 성당에서 나왔어요.

 

 

"이제 어디 가지?"

"여기에서 더 올라가보자."

 

자동차를 타고 여행하자 긴장감도 재미도 없었어요. 힘도 하나도 안 들었어요. 지루했어요. 길만 따라 갈 뿐이었어요. 친구와 차에 올라탔어요. 길을 따라서 더 윗쪽으로 가보기로 했어요.

 

친구가 차를 운전했어요.

 

"여기 풍경 괜찮다. 차 세워봐."

"여기는 못 세우겠다."

 

친구가 차를 못 세우겠다고 했어요. 또 달려갔어요. 차를 세우라고 한 곳에서 한참 지나갔어요. 또 괜찮은 풍경이 나왔어요.

 

"여기 좋다."

"어?"

 

친구는 악셀러레이터를 신나게 밟으며 빠르게 운전하고 있었어요. 차 세울만한 곳이 나왔지만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어요. 차를 타고 가면서 세우고 싶은 곳에 세워주겠다고 했지만 전부 다 새빨간 거짓말에 개소리였어요. 애초에 시골길은 차를 아무 데나 세우게 생기지 않은 길이 대부분이에요. 길이 매우 좁아서 노상주차를 했다가는 길 다 막아버릴 만큼 좁은 길 투성이에요. 게다가 차를 세울 곳을 보면서 가려면 아주 느리게 가야 하는데 친구는 아주 쌩쌩 달리고 있었어요.

 

친구도 제가 세워달라고 하는 곳, 차 세울 만한 곳 모두 고속으로 운전하며 마구 달리다가 놓치자 슬슬 본인도 이건 뭔가 아니라고 느끼기 시작했어요. 이대로 가면 끝도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거였어요. 차를 세울만한 곳이 몇 곳 있었지만 고속으로 주행하다 다 놓쳐버렸어요. 저는 이미 차 세우자고 몇 번을 말했어요. 이대로 가면 정말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거였어요. 친구가 말한 '자동차로 달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 나오면 세우고 돌아다니며 노는 여행'과는 한없이 멀어지고 있었어요.

 

"여기에 세우자."

 

친구도 이대로 가다가는 여행 아주 망할 걸 직감했는지 속도를 줄이더니 차를 세웠어요.

 

 

제가 차를 세우라고 한 곳에서 한참 지나왔어요. 자동차를 주차해놓은 후 앞쪽으로 더 걸어서 가다가 돌아와서 함백역으로 가기로 했어요.

 

 

도로 옆쪽에는 철도가 있었어요. 함백선 철도였어요.

 

 

"저기 흑염소 있다."

"어디?"

"저기에."

 

흑염소가 시커먼 석탄 섞인 흙이 쌓인 곳 위에서 놀고 있었어요. 탄가루 섞인 검은 흙에서 흑염소가 놀고 있으니 저 염소들이 원래 하얀 염소인데 탄가루 뒤집어써서 검어진 것인지 정말로 태어났을 때부터 흑염소였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어요. 도화지 가득 새까맣게 칠해놓은 검은 밤의 검은 소 그림이 아니라 검은 흙 위의 흑염소였어요.

 

 

길을 따라다니며 동네 구경을 했어요.

 

 

조금 걸어가자 방제1리 경로당, 마을회관이 나왔어요.

 

 

 

 

 

 

매우 조용한 산골 마을이었어요. 물 먹은 나무 냄새가 매우 진했어요.

 

 

 

 

 

 

계곡은 조금 전까지 비가 내려서 물이 매우 많이 불어나 있었어요. 급류가 콸콸 쏟아져 내려가고 있었어요. 물은 맑았어요.

 

 

 

 

 

"이런 데는 월세 얼마나 할까?"

"이런 곳? 얼마 안 하지 않을 건가?"

"이런 곳에서 집 빌려서 몇 달 요양할까?"

"글쎄다."

 

친구가 이런 시골에 있는 집은 월세가 얼마나 할 지 궁금해했어요. 물 맑고 공기도 맑은 곳이라 요양하면서 몇 달 여기에서 머무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했어요.

 

"차 없으면 엄청 불편할 걸?"

"차야 제주도에 있는 내 차 가지고 올라오면 되지."

"한 번 알아봐라."

"나중에 우리 진짜 이런 곳에 집 빌려서 같이 몇 달 살아볼까?"

 

친구는 나중에 이런 시골에서 집 한 채 빌려서 몇 달 같이 살아보는 것 어떠냐고 물어봤어요. 딱 몇 달만 사는 거라면 재미있을 거 같기는 하지만 이쪽은 아무리 봐도 너무 오지였어요. 자기 차 몰고 다니지 않으면 당장 함백까지 한참 걸리는 곳이었어요. 심심한 건 둘째치고 매일 밥 지어먹는 것부터 일일 거였어요. 이 정도 시골이면 정말로 거의 무조건 밥을 지어서 먹어야 할 건데, 저는 요리하는 걸 매우 귀찮아해요.

 

"여기에서 살면 정말 글만 쓰겠다."

 

아무리 봐도 딱히 할 게 없는 동네였어요. 이런 동네에서 몇 달 머무른다면 글은 정말 열심히 쓸 거에요. 예전에 고시 공부하러 절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사람들처럼 글 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면 밀린 여행기는 정말 열심히 집중해서 써서 다 끝낼 거에요.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하면서 밀린 여행기를 다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계속 걸어다니며 구경했어요.

 

 

 

 

이번에는 길가에 폐가가 있었어요.

 

 

폐가 너머로 멀리 언덕 꼭대기 근처에는 고랭지 배추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여기 들어가볼래?"

"폐가?"

 

친구가 갑자기 폐가에 들어가보자고 했어요. 폐가 같은 것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친구가 아닌데 갑자기 폐가에 들어가보자고 해서 매우 의외였어요. 확실히 버려진 집이었어요.

 

폐가인지 단순히 낡은 집인지 구분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유리창이에요. 단순히 낡은 집은 유리창이 멀쩡해요. 그러나 폐가는 유리창이 다 깨져 있어요. 괜히 '깨진 유리창 효과'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에요. 깨진 유리창을 방치한다는 것은 버렸다는 의미고, 이때부터 급격히 노후화가 시작되요. 깨진 유리창이 계속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버려졌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시설도 급격히 노후화되고 '버려진 것'이라는 의미가 더러운 것을 더욱 꼬이게 만들어요.

 

 

폐가 안을 들여다봤어요. 버려진 집이었어요. 안쪽에는 장작이 쌓여 있었어요. 장작을 쌓아놓고 그대로 떠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창고로 쓰고 있는 집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폐가 안을 들여다본 후 자동차를 주차한 곳으로 갔어요. 자동차를 타고 함백역으로 갔어요.

 

 

함백역은 1957년에 개업한 철도역이에요. 원래는 함백역이 있는 함백선이 태백선의 본선이었지만, 태백선을 동쪽으로 연장할 때 함백선을 그대로 연장하기에는 지형적인 문제로 연장이 어려워서 예미역에서 조동역으로 선로를 건설해서 태백선 본선으로 만들었고, 함백선은 태백선 지선으로 변경했어요.

 

함백역은 석탄 산업이 활황일 때에는 이용객이 많은 기차역이었어요. 그렇지만 1993년 8월 31일에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폐광하자 이 일대가 급격히 쇠퇴하며 승객도 급감했어요. 2004년 4월 1일에 통일호가 폐지되면서 함백역은 백산역 방향 무궁화호가 하루에 1회만 정차하는 역으로 전락했고, 2008년에는 여객영업이 모두 중단되었어요.

 

2006년 10월 31일에는 함백역 역사가 철거되었어요. 함백역 역사가 철거되자 지역 주민들이 격렬히 반발했고, 함백역의 문화재적 가치와 기록물 등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것에 대해 각계 각층의 비난이 빗발쳤어요. 2006년 11월 7일에 신동리 주민들은 주민회의를 통해 성금을 모아 역사를 복원하기로 했어요. 2007년에는 함백역 복원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어요. 전국적인 성금 모금 노력과 지방자치단체들의 협조를 통해서 2008년 6월 9일에 함백역 복원 기공식이 열렸고, 오늘날 함백역 역사가 복원되었어요.

 

 

함백역 역사 뒷편으로 가봤어요.

 

 

 

 

함백선 철로는 관리되고 있었어요. 함백역은 더 이상 사람이 기차를 탈 수 있는 기차역이 아니지만 함백선은 가끔 화물 열차가 지나가는 철도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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