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우즈베키스탄 여행 후기 (에필로그)

좀좀이 2012. 11. 30.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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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서 세운 목표가 몇 개 있었어요.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그 목표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우즈베키스탄 여행이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1년 머무르는데 당연히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처음 우즈베키스탄 올 때 저의 생각이었어요. 이것 자체에 대해서는 여기 온 이후,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갈망하지 않아서였는지, 마음먹고 하겠다는 생각이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우즈베키스탄 주변 국가들 모두 한국에서 가기 힘들다는 현실 때문에 그랬을 거에요. 그래서 여행을 할 수 있는 때가 되자 우즈베키스탄을 먼저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를 먼저 여행했어요. 제일 먼저 여행한 곳은 타지키스탄. 그리고 타지키스탄 여행에서 돌아와 바로 여행준비에 들어간 곳이 투르크메니스탄와 아제르바이잔이었어요.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모두 우리나라에서 가기는 매우 힘든 나라들. 그래서 오직 관심은 여기에 맞추어져 있었지,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하겠다는 것에는 특별한 생각이 없었어요. 사실 이 두 번의 여행을 계획하며 우즈베키스탄을 나누어볼 생각은 있었어요. 타지키스탄을 갈 때에는 사마르칸트를, 투르크메니스탄에 갈 때에는 부하라를 보고 넘어갈 계획이었어요.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로 모두 무산되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이 여행을 가기 전에 제대로 가서 구경한 도시라고는 샤흐리사브즈 밖에 없었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돌아온 후, 여행을 하기 매우 어려운 한여름이 되었어요. 이때는 도저히 어디 갈 수 있는 더위가 아니었어요. 당장 대낮에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 오는 것도 너무 더워서 가기 싫었고, 밤에는 에어컨으로 25도까지 실내 온도를 낮춘 후 에어컨을 끄면 불과 30분 만에 35도까지 올라가는 더위가 지속되었어요. 에어컨을 켜 놓지 않은 방은 낮밤 구분없이 항상 35도를 넘어갔기 때문에 이 시기에 여행을 다닐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게다가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데 굳이 한여름에 여행을 다닐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구요.


그러다 결국 9월이 찾아왔어요. 더 이상 이 여행을 미룰 수가 없었어요. 더 미룬다면 이제 겨울. 여름은 그래도 더운 것 빼고는 여행할 만 하지만, 겨울에 중앙아시아를 여행한다는 것은 최악의 선택. 이미 2월에 중앙아시아의 겨울이 어떤 모습인지 너무나 많이 보았어요. 올해는 가뜩이나 이상기후여서 3월까지 겨울이었어요. 무려 두 달간 중앙아시아의 겨울을 본 후 확실히 깨닫게 된 것은 겨울에 중앙아시아를 돌아다니면 볼 것도, 먹을 것도, 즐길 것도 없다는 것. 현지에 살고 있는데 그런 최악의 여행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위가 많이 사그러들어 여행하기 좋아진 9월 중순에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떠났어요. 일정도 괜찮게 짰다고 생각했고, 현지어인 우즈베크어를 할 줄 아는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산 지 반 년이 넘었기 때문에 현지 사정도 대충은 안다고 자신만만했어요. 하지만 그 자신만만함이 결국 화를 불렀어요. 정말 너무나도 쉬운 여행이었어요. 지금껏 제가 다녀본 여행 중 이렇게나 일정을 널널하게 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계획 자체만으로는 너무나 아름답고 그렇게 쉬울 수가 없는 여행. 그러나 지나친 자신만만함이 화를 불러서 오히려 가장 힘들게 다닌 여행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까지 어딘가 외국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준비는 하고 나갔어요. 커다랗고 거창한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 떠나기 2주일 전부터는 최대한 잘 먹고, 최대한 많이 걸어다니려고 노력했어요. 여행을 나가면 자기가 아는 피로 외에 자기도 모르는 피로도 같이 쌓이기 마련이니까요. 단지 이 자신이 모르는 피로가 한계치에 도달하거나 다른 문제와 반응하여 뻥 터져버리든가, 터져버리지 않든가의 문제일 뿐. 그러나 이번에는 여행을 시작할 때까지 거의 동네 마실 다녀오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 결과가 설사와 다리 통증으로 인한 강행군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은 '자만하지 말 것'이었어요. 아무리 쉽든 어렵든 여행은 여행. 아무리 잘 알고 쉬운 여행이라 해도 자만하는 순간 난이도가 확 뛰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사실상 올해 마지막 여행을 이렇게 끝냈다는 것이에요. 그 이유는 이제 다른 나라 여행을 다녀올 충분한 돈도 없을 뿐더러, 계절이 겨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다른 나라 다녀오기 어려워졌거든요. 구 소련 국가들은 겨울 여행을 하기에 매우 안 좋고, 그렇다고 우즈베키스탄에서 다른 나라로 비행기 타고 가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구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떠나며 이것이 올해 마지막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하고 올해 사실상 마지막 여행을 아름답게 끝내고 싶었는데 이렇게 끝나서 참 아쉬워요.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추억을 만들기는 했지만, 몸이 아팠던 것만은 즐거운 추억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더욱 아쉬운 것은 여행을 마치고나서 여행기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당시 알아두었으면 매우 좋았던 정보들을 많이 찾아냈다는 것이에요. 이 정보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숙제.



여행기 완결의 순간


이 여행기는 올해 작성하는 마지막 여행기일 거라 믿어요. 그래서 지금 묘한 기분을 느끼며 에필로그를 작성하고 있답니다.


이 여행기의 제목인 '해야 했던 숙제'는 제가 제 자신에게 부여한 숙제 두 개를 의미해요. 첫 번째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던 우즈베키스탄 여행. 그리고 두 번째는 바로 이 우즈베키스탄 여행으로 인해 발생한 '해야 했던 숙제' 여행기 쓰기. 아마 여행기를 처음부터 보신 분이시라면, 그리고 제 블로그를 종종 들리셨던 분이시라면 제가 이 숙제를 끝내기 위해 이번 해 얼마나 여행기 작성에 미쳐 살았는지 아실 거에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시작된 저의 밀린 여행기 쓰기는 우즈베키스탄 오면서 잠시 휴식기를 가지다가 타지키스탄 여행을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되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떠나기 바로 전날, 그간 겨우 밀린 여행기를 다 마쳤을 정도였으니까요.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고 단지 혼자 자신에게 부여한 숙제를 반드시 끝내보겠다는 일념과 근성으로 밀고 나갔던 5개월.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 여행기를 다 쓴 후, 더 이상 여행기를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본격적으로 이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여행에서 돌아온 다다음날인 10월 2일부터였지만, 부분 부분 여행을 다니며 조금씩 써 놓았어요. 컴퓨터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에 써놓는 것이다 보니 많이 써놓지는 못했지만 극히 일부는 여행을 다니는 중에 작성했어요. 문제는 이렇게 여행기를 조금이라도 작성을 해 놓으면 그날은 정말 여행 기록을 남기기 싫어진다는 것. 그래서 히바부터는 제대로 된 기록이 없었어요. 이것은 앞으로 고민해보아야할 문제.


이번에는 지난 번과 조금 다른 방법으로 글을 작성해 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여행기를 다 써서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지난 번 여행기 '두 개의 장벽'을 쓸 때 썼던 방법을 조금 더 발전시킨 방법을 만들어 보았어요. 일단 이번에는 각 1화마다 최소 에피스도 1개를 집어넣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글을 썼어요. 집어넣어야 할 사진이 워낙 많아서 며칠 되지 않는 일정이 40화에 육박하게 되었거든요. 인터넷 사정을 고려하면 사진을 30여 개 넣는 것까지가 제일 좋았어요. 그 이상 넣으면 제가 제 글을 열어보기 어려워지거든요. 40화로 완결을 짓기로 계획한 후, 사진을 적당히 분류했어요.


그리고 1화 1에피소드를 원칙으로 하기 위해 각 화마다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쓰기 위해 사진을 몇 번씩 되돌려보며 기억을 살려내었어요. 자잘한 이야기가 많이 몰려있어서 별로 크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화도 있었지만, 자잘한 이야기조차 별로 없는 화도 있었거든요. 이렇게 이야깃거리를 찾아낸 후, 사진이 필요없는 이야깃거리는 따로 정리를 했어요. 그리고 이 사진이 필요없는 이야기는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없을 때 핸드폰을 이용해 글을 작성했어요. 에피소드 하나를 완성하면 이미 분류되어 있던 폴더에 집어넣고, 집에서는 웬만해서는 시간 순서대로 글을 썼어요. 이렇게 해서 여행기 작성할 시간을 최대한 늘렸어요. 길에서는 사진 분류가 다 끝난 것이 아니다보니 사진을 골라가며 글을 쓰기 아무래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집에서는 시간 순서대로 사진을 분류하며 글을 쓰고, 밖에서 시간이 날 때에는 사진이 필요 없는 에피소드를 쓰는 식으로 글을 작성했어요. 그리고 집에서 글을 쓰다가 이미 작성한 에피소드를 집어넣을 때가 되면 적당히 부드럽게 연결되도록 손질을 해서 집어넣고 뒷부분을 다시 이어썼어요. 집에서 웬만해서는 시간 순서대로 쓰려고 노력한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쓸 말이 별로 없거나 감상이 별로 없는 부분이 마지막에 우루루 남아서 마지막에 정말 때려치고 싶어지는 경험을 몇 번 해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집에서 여행기를 작성할 때 정말 '그 부분은 오늘 꼭 써야겠다!'는 강렬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부분 외에는 이런 이유로 인해 순서대로 쓰려고 노력했어요.


단, 집에서 시간 순서대로 글을 쓰려고 하기는 했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남아 있던 마지막 하루 - 사마르칸트에서 타슈켄트로 돌아오는 날은 여행기 작성 초기에 다 썼어요. 워낙 기억도 감정도 생생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매우 빠르고 쉽게 쓸 수 있었어요.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 작성한 글은 38화가 되었어요.


여행기를 다 쓰고 나니 올해 목표한 것 중 하나를 끝내었다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어요. 몇 달간 끌어오던 숙제를 결국은 다 해치웠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이렇게 몇 달간 여행기를 쓰며, 여행기 한 개를 완성할 때마다 여행기를 쓰기 위한 소소한 기술을 하나씩 획득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제게는 스스로 터득한 기술이었어요. 물론 이렇게 기술을 하나씩 획득해가며 마지막으로 쓴 이 '해야 했던 숙제'가 지금까지 써 온 여행기 가운데 가장 쓰기 어려웠지만요. 지금껏 여행기를 쓰며 만났던 문제들이 이 '해야 했던 숙제'에서는 모두 총동원되어서 등장했어요. 게다가 몇 달간 쉬지 않고 여행기를 써 왔기 때문에 그만큼 피로도 많이 누적되어 있었구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5화는 써야지'라는 의욕이 솟아올랐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무슨 말을 써야 할 지 갈피도 못 잡기 일쑤였어요.


밀린 여행기 모두 끝난 순간


그리고 지금,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현지 시각 2012년 11월 4일 2시 15분. 이 에필로그도 다 작성했어요. 여행기를 완결지은 후 에필로그만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작성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느긋하게 조금씩 쓰다 말다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화면 시각이 오전 6시 15분으로 나오는 이유는 제 노트북 시계는 한국 시각으로 맞추어놓았기 때문이에요.


올해 숙제가 드디어 끝났네요. 아마 올해는 또 여행을 갈 일이 없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여기 생활을 슬슬 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넣기 위해 노력해야할 때가 찾아와 버렸구요.


여행기 작성의 결과물


그 동안 저의 우즈베키스탄 여행기인 '해야 했던 숙제'를 읽어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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