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골마을 아랫쪽을 향해 걸어내려갔어요.
"다 내려왔다."
논골마을 입구로 돌아왔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7월 19일 13시 7분이었어요.
"널널하겠다."
KTX 기차를 타기 위해 묵호역으로 가야 했어요. 오후 2시 서울행 KTX 기차였어요. 기차 시각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 있었어요. 한 시간이면 어떻게 해도 묵호역까지 가고도 남는 시간이었어요.
"봐, 안 늦다니까."
친구가 시간 널널하다고 했어요. 저도 마음이 놓였어요. 시간에 쫓기지 않고 돌아다녀도 되었어요. 돌아다닌다고 해도 멀리 가거나 새로운 곳을 가지는 않을 거였어요. 기껏해야 어시장이나 한 번 더 보고 동쪽바다 중앙시장을 한 번 더 가서 그 안에서 조금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정도가 될 거였어요. 더 갈 곳도 없었고, 더 갈 수도 없었어요. 그저 너무 땀이 많이 나지 않도록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며 갈 뿐이었어요. 이렇게 슬슬 걸어가도 묵호역까지 1시간 안에는 무조건 도착할 거였어요.
"너 어제 대게빵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응."
친구가 제게 전날 대게빵 먹고 싶어하지 않았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그렇다고 했어요.
"대게빵 한 마리씩 먹고 가?"
"오, 좋지!"
친구가 대게빵을 먹지 않겠냐고 했어요. 당연히 대환영이었어요. 친구와 대게빵 파는 가게로 갔어요. 대게빵 두 마리를 구입했어요.
대게빵을 다리부터 뜯어먹었어요.
"대게향 난다!"
대게빵은 붕어빵 비슷하게 밀가루 반죽 속에 팥앙금을 넣고 구운 빵이었어요. 그러나 붕어빵과는 확실히 달랐어요. 왜냐하면 대게빵에서는 꽃게랑 비슷한 냄새가 났어요. 고소한 꽃게랑 비슷한 냄새가 솔솔 나서 꽃게랑 과자와 붕어빵을 합쳐놓은 것 같았어요. 식감도 대게빵이 붕어빵에 비해 훨씬 바삭한 느낌이 있었어요. 삼척, 동해 왔다면 바다 보면서 한 번 사먹을만 했어요.
묵호 어시장으로 다시 갔어요. 바로 역으로 가도 할 게 없었기 때문에 어시장이나 한 번 더 보고 가기로 했어요.
여전히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았어요.
또 생선을 구경했어요.
"이거 곰치에요?"
"아니, 곰치는 이거!"
곰치다!
전날 맛있게 먹었던 곰치국. 무려 '싯가'라고 적힌 식당도 있는 값비싼 물고기 곰치. 곰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드디어 곰치를 봤어요. 사진 속 한가운데 붉은빛 도는 물고기가 곰치에요. 눈이 뭔가 좀 억울해보였어요. 식당 사진으로 봤을 때는 약간 징그러운 느낌도 있었어요. 시장 와서 곰치 실물을 보니 꽤 귀엽게 생겼어요. 꾹꾹 누르는 인형으로 만들면 나름 인기있게 생겼어요.
"이게 그 곰치구나."
곰치는 어시장에서 딱 한 마리 봤어요. 이게 그 곰치였어요. 곰치는 어시장에서도 흔히 보이지는 않았어요.
"곰치까지 봤네."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먹기만 하고 실물은 보지 못했던 곰치도 이제 실물을 봤어요. 동해시 여행에서 아쉬운 것이 없었어요. 아, 그건 아니에요. 망상해수욕장은 구경 못 갔어요. 망상 해수욕장 못 간 것은 아쉽지만 그거 하나 빼고는 너무 만족스러웠어요. 보고 싶은 거 다 봤고,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 당장 서울로 떠나도 나중에 동해 여행을 다시 떠올릴 때 못 보거나 못 가서 아쉬운 게 망상해수욕장 하나 빼고는 없었어요. 망상해수욕장은 지금 갈 방법이 아예 없으니 되었어요. 그러니 모든 걸 다 획득한 여행이었어요. 단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요.
묵호항을 따라 걸었어요.
"저기 토끼 있다."
친구가 카페 입구에 있는 토끼 조각을 가리켰어요.
"아, 저 토끼?"
"너 토끼 좋아하잖아. 사진 안 찍어?"
"찍어야지."
동해 토끼를 사진으로 찍고 또 걸었어요.
"우리 닭강정 사서 가자."
"닭강정? 어제 거기?"
"어."
친구가 닭강정을 하나 사서 가자고 했어요.
"닭강정 어디에서 먹게?"
"기차 안에서."
"야, 그건 무리야."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었다고 해도 아직 기차 안에서 음식 펼쳐놓고 먹을 분위기까지는 아니었어요. 친구는 기차 안에서 닭강정을 먹자고 했지만 기차 안에서 닭강정 꺼내서 먹으면 눈치 엄청 보일 거였어요. 역무원이 뭐라고 지적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어요.
"아니면 나 집에 하나 들고 가면 되지."
"너 저녁에 친구 만난다고 했잖아."
기차 안에서 닭강정 먹는 것은 무리라고 하자 친구는 그러면 닭강정을 사서 집으로 들고 가겠다고 했어요. 친구는 다른 사람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어요. 친구가 약속을 잡는 바람에 일정을 하루 더 늘려서 속초를 가지 못하고 바로 서울로 돌아가야 했어요. 그런데 무슨 닭강정을 사서 서울로 돌아가요.
친구는 닭강정에 홀려 있었어요. 전날 동쪽바다 중앙시장에서 닭강정 못 산 게 한이 맺힌 모양이었어요. 이대로 그냥 가면 친구가 삐지고 두고 두고 한이 되어서 뭐라고 할 거 같았어요.
"일단 시장 가보자."
친구와 동쪽바다 중앙시장에 가보자고 했어요. 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동쪽바다 중앙시장으로 갔어요. 시장 안에서 전날 봤던 닭강정집을 찾아갔어요. 바로 찾지 못하고 시장 안에서 조금 헤메다 시장 상인분께 물어서 찾아갔어요.
전날 닭강정을 구입하려다 일정이 애매하고 시간도 애매해서 구입 못 했던 닭강정집은 가마솥 옛강정이었어요. 가격을 봤어요. 문어, 코다리, 새우, 닭이 들어간 스페셜 모둠 강정 가격은 3만원이었어요. 코다리, 새우, 닭이 들어간 모둠강정 가격은 큰 것 가격이 25000원이고 작은 것 가격이 13000원이었어요. 닭새강정은 24000원, 코다리+닭강정은 24000원, 코다리 강정은 22000원, 순살닭강정은 22000원, 컵 닭강정은 1만원이었어요.
"코다리 들어간 걸로 먹을까?"
"아니, 닭강정."
저는 메뉴 중 코다리가 들어간 닭강정이 궁금했어요. 친구는 코다리 들어간 건 별로라고 하면서 순수한 닭강정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사장님께 닭강정 양을 물어봤어요. 아무리 봐도 닭강정은 포기해야 했어요.
아니다. 방법이 있다.
컵으로 사서 걸어가며 먹으면 된다.
방법이 떠올랐어요. 닭강정을 기차에서 먹는 것은 무조건 안 되고, 친구가 구입해서 서울로 들고 가는 것도 그렇게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묵호역까지 급하게 가지 않아도 되니까 컵 닭강정으로 구입해서 묵호역으로 걸어가면서 먹으면 되었어요. 컵 닭강정 하나 사서 둘이서 나눠먹으며 묵호역까지 걸어가면 묵호역 도착하기 전에 닭강정을 다 먹을 거였어요. 그러면 닭강정에 홀린 친구는 닭강정의 마수에서 자유로워질 거였어요.
"야, 컵으로 하나 사서 걸어가면서 먹자."
"큰 거 사서 기차에서..."
"기차 안에서는 안 된다니까."
친구를 달랬어요. 정말 닭강정이 미치도록 먹고 싶다면 지금 방법은 컵 닭강정으로 사서 묵호역까지 걸어가며 먹는 방법 뿐이었어요. 친구도 납득했어요.
"어떤 걸로 사지? 코다리 들어간 거?"
"아니, 닭고기만."
친구는 닭고기만 들어간 닭강정을 먹고 싶다고 했어요. 저는 코다리 닭강정을 먹어보고 싶었지만 닭강정에 홀린 친구를 닭강정의 마수에서 구출해내기 위해 친구 말대로 순수한 닭고기로 된 닭강정을 컵으로 구입하기로 했어요.
컵 닭강정을 하나 구입했어요. 닭강정을 먹기 시작했어요. 친구는 하나 먹자마자 얼굴이 밝아졌어요.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아서 물을 마시고 기뻐하는 표정이었어요. 막 밝아지거나 활짝 웃는 것은 아니었지만 닭강정을 먹었다는 사실 자체에 크게 만족하는 표정이었어요.
"이거 완전 옛날 맛이네."
닭강정은 완전 옛날 양념치킨 맛이었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먹었던 케찹과 고추장, 물엿을 섞어서 만든 소스에 버무린 맛이었어요. 페리카나, 멕시카나, 이서방 양념치킨 같은 치킨집이 대표적인 치킨집이었던 시절, 또는 그보다 조금 전에 먹던 맛이었어요. 상당히 예전에 먹었던 양념치킨 맛이었어요. 유년기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맛이었어요.
아주 고전적인 양념치킨맛 닭강정을 먹었어요. 친구의 이번 동해 여행 만족도도 극도로 높아졌어요. 땡볕을 맞으며 닭강정 냠냠 먹으면서 묵호역을 향해 걸어갔어요. 묵호역을 한 번도 안 가봤지만 묵호역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어요. 지도를 안 봐도 되었어요. 전날 묵호역 근처를 지나갈 때 묵호역 건물은 못 봤지만 안내 방송을 들었어요. 기차역 안내 방송이 잘 들릴 정도였으니 엄청 가까이에 기차역이 있을 거였어요. 철길 아래로 통하는 굴다리를 지나서 철로 따라 걸어가면 묵호역이 나올 거였어요.
친구에게 묵호역 어디 있는지 아니까 마음 놓고 닭강정 먹으라고 했어요. 굴다리 나올 때 왼쪽으로 틀어서 가면 묵호역 나온다고 했어요. 친구와 마음놓고 닭강정을 먹으며 걸어갔어요. 닭강정을 다 먹었을 때 묵호역에 도착했어요. 정확히 계산대로 되었어요.
묵호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기차역에 기차역 스탬프 있지?'
전국 기차역에는 기차역 방문 도장이 있어요.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에요. 한국철도 100주년 기념 스탬프는 철도청에서 1999년에 한국철도 개통 100주년을 맞아 전국 100개역에 각 역이 소재한 도시의 랜드마크, 특산물, 자연경관, 동식물, 전통 문물 등의 특징을 살린 스탬프를 제작해서 비치한 것이 시초에요. 이후 꾸준히 수가 늘어나서 지금은 300개가 넘어요.
그렇다. 기념 도장을 받자.
마침 무료로 배포하는 동해시 엽서가 몇 장 있었어요. 엽서에 기념 도장으로 찍어가며 모으면 되었어요.
"여기 혹시 묵호역 스탬프 있나요?"
"예, 여기 있어요."
역무원분께서 매우 친절하게 묵호역 스탬프를 찾아주셨어요. 묵호역 스탬프는 역 안에 비치되어 있었어요.
엽서에 묵호역 스탬프를 꽉 찍었어요.
묵호역은 KTX 기차역이지만 매우 조그마한 역이었어요. 대합실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어요.
"아, 음료수!"
친구와 닭강정 먹으며 오다가 기차 안에서 마실 음료수 사오는 것을 깜빡했어요. 묵호역 안에는 음료수 판매하는 곳이 없었어요. 자판기가 하나 있기는 한데 카드 결제는 안 될 거 같았어요. 묵호역 근처 편의점은 묵호역에서 사거리로 나가서 횡단보도를 건너가야 했어요. 멀지는 않았지만 기차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가볍게 건널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신호등 초록불 신호 받아서 건너가야 하는 큰 길이었어요. 달려갔다 와도 아주 빠듯했어요.
"음료수 사올걸!"
기차역 양옆에는 편의점이 없었어요. 낭패였어요. 묵호역 오기 전에 기차에서 마실 음료수를 반드시 사와야 했어요. 묵호역은 처음 와본 곳이라 이럴 줄 몰랐어요.
기차 탈 시간이 되었어요. 묵호역 플랫폼으로 나갔어요.
멀리 묵호등대와 논골마을이 살짝 보였어요.
"엄청 아쉽네."
"그러니까."
"너 약속만 아니면 여기에서 속초로 가면 되는데..."
"약속 취소하면 걔 엄청 삐져."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북평오일장에서 제가 먼저 하루 더 놀다 가자고 해야 했어요. 그랬으면 친구가 다른 사람과 이날 저녁에 약속을 안 잡았을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날도 비가 올 거라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행 더 하자고 할 수가 없었어요. 일기예보가 참 미웠어요.
멀리 2022 동해 산불로 타버린 산을 바라봤어요.
풀이 자라나고 있었어요. 생명은 다시 태어났고, 이야기는 계속 되고 있었어요.
2022년 7월 19일 오후 2시 7분, 서울로 가는 KTX 열차가 들어왔어요.
기차에 탔어요. 친구와 저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았어요. 같이 앉는 좌석이 없었어요.
"정동진에서 사람들 다 타나?"
"그러게? 사람 별로 없는데?"
기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널널했어요.
잠시 후, 정동진 바닷가가 보였어요.
2022년 7월 19일 오후 2시 29분. 정동진역에 도착했어요.
정동진역에서도 사람들이 별로 안 탔어요.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빈 자리는 계속 있었어요. 친구가 기차표를 예약할 때 같이 앉아서 갈 수 있는 자리가 아예 없었어요. 그러나 서울 청량리역 도착할 때까지 기차에는 빈 좌석이 여럿 있었어요.
2022년 7월 19일 오후 4시 19분, 기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했어요.
"여기에서 조금 더 놀 곳 없나?"
친구도 내심 아쉬워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청량리 근처에서는 놀 곳이 없었어요. 친구와 헤어졌어요.
청량리역 도장도 기념 엽서에 찍었어요.
청량리역 도장을 받고 나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의정부역으로 왔어요.
"의정부역 도장도 받아야지."
지금까지 의정부역을 몇 차례나 갔는데 의정부역 도장을 받을 생각을 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몇 차례가 뭐에요. 서울 갈 때마다 가는 곳이 의정부역이고, 의정부에서 거의 10년을 살았는데요. 그렇게 무수히 많이 간 의정부역이었지만 지금까지 의정부역 도장을 한 번도 안 받아봤어요.
의정부역 역무실에 갔어요.
"의정부역 스탬프 있나요?"
"잠시만요."
역무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했어요. 조금 기다리자 의정부역 스탬프를 들고 왔어요. 엽서에 의정부역 스탬프도 찍었어요.
의정부역에서 나왔어요. 오후 5시 26분이었어요.
'즐거운 여행이었어.'
매우 즐거운 여행이었어요. 매우 즐거운 여름이었어요. 맑은 하늘이 더욱 예뻐 보였어요. 당연히 너무 예쁜 하늘이었어요. 이 이후부터 8월 내내 의정부는 비가 주구장창 쏟아졌거든요. 이때 여행가지 않았다면 정말 우울하다 못해 암울한 8월이 될 뻔 했어요.
"동해 또 가고 싶다!"
돌아오자마자 동해시 여행을 또 가고 싶어졌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어요. 망상해수욕장 하나 보려고 동해를 당장 또 갈 생각은 없었어요. 나중에 겨울이 오면 그때 또 가고 싶어질 거에요. 그때는 명태가 주렁주렁 매달린 황태 덕장도 볼 거고, 도치알탕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제라도 가봤으니 되었어."
너무 기뻤어요. 우리나라에 속초 말고 산, 바다 모두 있고 볼 것 많은데 자가용 승용차 없이 대중교통만을 이용하며 돌아다니는 재미있는 배낭여행 스타일로 다닐 수 있는 좋은 도시가 또 있다는 사실에 기뻤어요.
내년 여름 동해시에는 관광객이 얼마나 많아질지 벌써 궁금해졌어요. 제가 갔을 때는 정말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나 내년 여름에는 사람들이 동해시로 다시 여행을 많이 갈 거에요. 그러면 활기찬 동해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에요.
이렇게 2022년 7월 동해시 여행을 마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