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38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미르 테무르 묘소

좀좀이 2012. 11. 27.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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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는 도저히 못 걸어가겠다."


걸어올 때는 그래도 가는 길에 볼 것이 있다는 이유, 그리고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몰라서 걸어갔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 상황. 가는 길에 볼 것도 없었고, 얼마나 많이 걸어야하는지 알았어요.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해는 등에 얼음 덩어리라도 떨어졌는지 서쪽을 향해 전력질주중이었어요. 레기스탄 광장 따위야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었지만, 아미르 테무르 묘소는 이야기가 달랐어요. 사실 묘소라는 것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래도 멀리서 외관만 보았지, 직접 들어가보지는 않았거든요. 그리고 아미르 테무르 묘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아미르 테무르 동상.


우즈베키스탄에서 유명한 아미르 테무르 동상은 3개 있어요. 하나는 타슈켄트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공원에, 하나는 샤흐리사브즈 오크 사로이 앞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사마르칸트에 있어요. 타슈켄트와 샤흐리사브즈에 있는 동상 사진은 찍었지만,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동상은 올 때마다 보기만 했지, 사진을 찍지는 못했어요. 참고로 타슈켄트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동상은 말을 타고 있고, 샤흐리사브즈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동상은 서 있고,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동상은 앉아 있어요. 누워 있는 아미르 테무르 동상은 만들었을 리 없으니 사마르칸트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동상 사진만 찍으면 아미르 테무르 동상의 모든 자세를 사진으로 찍는 것.


울루그벡 천문대에서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는 약 4km 정도 되는 거리였어요. 이건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다리가 멀쩡하고 시간이 많다면 그냥 걸어가면서 레기스탄 광장 보고 마지막으로 아미르 테무르 동상 및 아미르 테무르 묘소를 보러 갈텐데 다리도 아프고 시간도 없었거든요. 이제 하나는 포기해야 했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레기스탄 광장을 포기해야지. 거기는 무려 세 번이나 갔어!


울루그벡 천문대에서 내려와 길을 건넜어요.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갈까 하다가 그냥 빨리 가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하고 길가에 서 있는 승용차로 갔어요.


"아미르 테무르 동상, 2천."

"4천."

"2천에 해주세요."


아저씨는 계속 4천이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현지인이 2천이라고 알려주었기 때문에 저는 아저씨께 2천에 가자고 계속 이야기했어요. 아저씨께서도 저를 태우고 싶은 마음은 있었는지 3천을 부르셨어요. 흥정이 잘 안 되자 다른 택시를 잡든가 버스를 타고 가려고 하는데 한 아가씨가 아저씨께 왔어요.


"시욥 보조르, 2천."


아저씨는 버스를 타거나 다른 택시를 잡아 가려고 하는 저를 불러 세웠어요.


"야, 타!"

"2천?"

"응, 2천."


한 아가씨가 시욥 보조르까지 2천을 부르자 아저씨께서는 가는 김에 저까지 태워서 차를 채워가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저에게도 타라고 하셨어요. 아가씨는 아가씨대로 2천을 낼테고, 저는 저대로 2천을 낼 것인데, 어차피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 가려면 시욥 바자르 근처를 반드시 거쳐야했기 때문에 아저씨 입장에서는 저를 태우면 가는 길에 4천을 버는 셈이었어요.


택시는 시욥 보조르로 갔어요. 낮에는 사람이 붐비는 시장이었는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사람들이 거의 없어졌어요. 그나마 보이는 사람들도 대부분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아까 시장을 둘러보아서 다행이야.'


만약 시장도 안 보았다면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았을 거에요. 어디를 가나 비슷한 우즈베키스탄의 시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시장 구경은 항상 재미있었거든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구요. 시욥 보조르도 사마르칸트 관광에서 나름 유명한 관광지.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를 가진 시장이었어요. 택시를 같이 탄 아가씨 덕분에 시욥 보조르가 문 닫는 장면까지 볼 수 있었어요.


시욥 보조르에서 아가씨가 내린 후, 아저씨 한 분이 또 타셨어요. 역시나 2천이었어요. 아저씨는 차에 타시자마자 타지크어로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셨어요. 둘은 타지크어로 대화를 나누다 제게 러시아어로 무언가 물어보셨어요. 정확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대충 제게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았다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어요.


"저 러시아어 몰라요. 우즈벡어 아세요?"


두 아저씨는 신기해하며 역시나 우즈벡어를 어디에서 얼마나 배웠는지, 그리고 제 직업에 대해 물어보셨어요. 제가 우즈벡어로 대답하자 우즈벡어 빨리 배웠다고 칭찬해주신 후, 다시 둘이 타지크어로 대화하시기 시작하셨어요. 당연히 몇몇 단어들 외에는 두 분의 대화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삼성이 한국 것이냐, 대우가 한국 것이냐를 제게 우즈벡어로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대답해드리자 다시 둘이서 타지크어로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아저씨가 2천숨을 내고 택시에서 내린 후, 조금 더 가서 저도 내렸어요. 울루그벡 천문대에서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 택시로 2천숨이면 잘 온 가격이었어요.


"이것을 드디어 사진찍네!"


이것이 무려 세 번째 가서야 사진찍은 사마르칸트의 아미르 테무르 동상이에요.



아미르 테무르


이건 레기스탄 광장보다 더 많이 보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못 찍었던 동상. 차로 지나가며 보기만 했지, 사진은 항상 못 찍었던 동상. 드디어 네가 나에게 사진을 찍도록 허락해 주는구나!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어요. 항상 '사마르칸트 가면 아미르 테무르 동상 사진 찍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레기스탄 광장 가는 길에 있는 것이다보니 레기스탄 광장보다 더 많이 지나쳤지만 단 한 번도 내려서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곳. 그것을 드디어 사진으로 찍었어요. 그동안 밀려 있던 숙제 중 하나가 끝난 셈이었어요.



아미르 테무르 동상 근처에는 분수가 가동되고 있는 잘 꾸며놓은 공원이 있었어요. 이 공원 너머 보이는 푸른 돔이 바로 아미르 테무르 묘소인 구리 아미르 Guri Amir. 구리 아미르 역시 타지크어에요. 타지크어로 гӯр는 '묘소, 무덤' 이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므로 구리 아미르는 '왕의 무덤'이라는 뜻이에요.


아미르 테무르 묘소


아미르 테무르 묘소로 가는 길에는 14세기 지어진 루코보드 묘소 Ruxobod maqbarasi 와 모스크도 있었어요.


사마르칸트 루코보드 묘소


"여기는 왜 관리인이 없지?"


분명히 입장료 받는 사람이 있어야 정상인데 입장료 받는 관리인이 보이지 않았어요. 돈을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있어야하는 것이 없으니 무언가 찜찜했어요. 어쨌든 사람이 없으니 돈을 낼 필요는 없고, 관리인이 퇴근한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관리인을 기다릴 수도 없었어요. 돈을 안 내고 들어간다고 크게 걱정할 것까지는 없었어요. 보고 있는데 관리인이 와서 돈을 내라고 하면 그때 돈을 내도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별 거 없네."



설명이 있으면 설명을 보면서 설명을 확인해볼텐데 설명도 없었어요. 석관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아미르 테무르의 스승과 그의 가족들, 또는 스승들을 여기에 뭍어놓은 것 아닌가 추측만 할 뿐이었어요.


나중에 여행을 마치고 설명을 따로 찾아서 알게 된 정보에 의하면 루코보드 묘소는 사마르칸트에 남아 있는 아미르 테무르 시대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유적 중 하나로써, 이 지역에서 유명하고 신비로운 다르비쉬 (이슬람 수피즘) 지도자 셰이크 부르하닛딘 사가르지 Sheikh Burhaniddin Sagarji 의 묘소 위에 지어진 건물이에요. 이 묘소에는 현재 사마르칸트 빌로야트 (우리나라 행정구역에서 '도'에 해당) 이스티한 Istyhan 투만 (우리나라 행정구역에서 '읍, 면, 동'에 해당) 인 사가르지 마을에서 태어난 부르하닛딘 사가르지와 그의 부인, 그리고 자식 10명이 묻혀 있대요. 부르하닛딘의 아내는 중국 공주였으며, 부르하닛딘도 중국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지만, 죽을 때 고향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겨 이곳에 묻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이 묘소에는 사도 무함마드의 머리카락이 담긴 상자가 묻혀 있다고 해요.


묘소를 보고 가는데 한 할아버지께서 제 쪽을 향해 걸어오시는 것이 보였어요.


'설마 관리인인가?'


자수해서 광명을 찾을 것인가, 시치미를 뗄 것인가? 순간 고민이 되었어요. 제가 안에 들어가서 보고 나오는 것을 보셨다면 일을 복잡하게 만들 필요 없이 자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 하지만 저를 못 보았다면 시치미를 떼고 어물쩍 넘어가도 되는 상황. 할아버지는 아미르 테무르 묘소 방향에서 걸어오고 계셨고, 저는 그쪽으로 들어가고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저를 못 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할아버지는 제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셨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며 태연히 아미르 테무르 묘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저거 보았니?"

"노."


미안해요, 할아버지.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저도 우즈벡어 모르는 외국인.


"저거 중요해. 꼭 보아야 해."

"노, 땡큐."


할아버지께서는 우즈벡어로 루코보드 묘소가 매우 중요하니 꼭 보아야한다고 이야기하셨어요. 저는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이해했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우즈벡어 모르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냥 무조건 '노, 땡큐'만 이야기할 뿐.


"원 미닛, 원 달러!"

"쏘리."


할아버지께서는 1분이면 충분하고 입장료는 불과 1달러라고 이야기하셨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할아버지께서는 영어가 짧으셔서 이 모든 이야기를 오직 '원 미닛, 원 달러!'라고 말씀하실 수 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영어가 짧기는 마찬가지인 저 역시 이 할아버지께 해드릴 수 있는 말이라고는 '노, 땡큐'와 '쏘리' 뿐. '할아버지, 어차피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 있어서 500숨도 안 하는 인간이에요. 몰래 보고 튀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생각을 하며 꼭 보고 가라고 하시는 관리인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아미르 테무르 묘소를 향해 갔어요.



여기는 지도상 '루코보드 모스크'라고 표시된 곳. 그러나 모스크의 느낌은 나지 않았어요. 참고로 이곳은 마드라사.



모스크는 그냥 휙 보고 지나치고, 미나렛만 사진을 찍었어요.




"저건 유태인의 흔적인가?"


우즈베키스탄에 원래 유태인들도 살았다고 해요. 소련 붕괴 후 많은 수가 이스라엘로 떠나면서 이제는 아주 소수만 남아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는 유태인들이 꽤 많이 살았다고 했어요. 이것 역시 다윗의 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왠지 유태인의 흔적이 아닌가 싶었어요.



루코보드 묘소 및 모스크에서 빠져나와 드디어 아미르 테무르 묘소 앞에 도착했어요.



이것이 바로 아미르 테무르 묘소. 왼쪽 뒷편에 작게 보이는 것은 오크 사로이 묘소 Oq saroy maqbarasi. 이것 역시 특별한 설명은 없었고, 지도에 그렇게 나와 있었어요.



아미르 테무르 묘소 앞에서 앉아 시간을 보내고 계신 아주머니들. 그리고 이 아주머니 뒤에 보이는 흙빛 돔이 바로 오크 사로이 묘소에요. 제가 아미르 테무르 묘소로 가자 아주머니들께서 제게 말을 걸으셨어요.


"너 어디에서 왔니?"

"우즈벡어 아세요?"

"우즈벡어 알아?"

"예. 저 타슈켄트에서 우즈벡어 공부하고 있어요."


아주머니들께서는 신기해하시며 자기들끼리 타지크어로 무언가 이야기하셨어요. 역시나 아까 택시 안에서처럼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아주머니들께 타슈켄트에서 우즈벡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라고 말씀드린 후,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Guri Amir


이것이 바로 14~15세기에 지어진 아미르 테무르 묘소. 입장료는 외국인 일반인은 5000숨, 우즈베키스탄 학생은 500숨이었어요. 입장권을 사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한 청년이 제게 표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표를 보여주었어요.


"이거 표 잘못되었네."

"아니야. 나 우즈베키스탄 학생이야."


주머니에서 학생증을 꺼내 청년에게 보여주었어요. 청년은 제 학생증을 펼쳐 읽어보더니 맞다고 하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이제 너만 보면 사마르칸트도 끝나는구나!


이것만 보면 이제 사마르칸트의 주요 관광지는 다 보았다고 할 수 있었어요. 물론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마드라사 2개를 못 들어가기는 했지만, 레기스탄 광장 자체는 보았고, 거기 있는 마드라사 하나는 보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사마르칸트를 다 보았다고 말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운도 따라주고 있었어요. 늦어서 이곳이 문을 닫는 것 아닌가 했는데 아직 문을 닫지 않았어요. 도도한 사마르칸트야, 이제 나 받아주는 거야? 하루 종일 도도한 사마르칸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리 아픈 것을 애써 참아가며 돌아다녔더니 거기에 마음이 흔들린 건가? 택시도 2천숨에 타고 오고, 루코보드 묘소도 공짜로 보고, 여기도 별 무리 없이 입장하고...생각해보니 아침에 오자마자 레기스탄 광장 탑에 올라간 것은 사마르칸트가 나한테 관심은 있었다는 표시인가?


마지막에 가서 드디어 여행이 풀리기 시작한다고 좋아하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미르 테무르 묘소 내부


여기도 안에 석관이 여러 개 있었어요. 이 석관 중 가운데 검은 석관이 바로 아미르 테무르의 석관.



아미르 테무르 석관은 두동강이 나 있었어요. 이렇게 된 이유와 관련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


1740년, 페르시아 장군 나디르 샤가 아미르 테무르 묘소의 석관을 훔쳐갔어요. 이때 석관이 두 동강이 났어요. 그리고 이 석관을 훔쳐간 후부터 나디르 샤에게 계속 불운이 찾아왔어요. 그것을 본 그의 조력자가 그에게 빨리 석관을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으라고 조언했고, 나디르 샤는 아미르 테무르 묘소 석관을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았어요.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는 꽤 잘 알려진 이야기로, 1941년 고고학자들이 아미르 테무르 묘소의 석관을 열고 아미르 테무르의 유골을 꺼내 조사를 했어요. 문제는 이 석관에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경고대로 일어난 일이 바로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이 이야기를 보면 아미르 테무르도 어지간히 욕심이 많았던 사람 같았어요. 자기는 여기 저기에서 보물 다 끌고 오고, 자기가 한 짓을 하러 온 사람에게는 반드시 저주를 내리겠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서요.


"정말 멋있잖아!"


'묘소가 별 거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그냥 유명한 거 가 보겠다는 생각으로 안에 들어간 것이었어요. 하지만 내부는 제 기대와 정반대였어요.


Samarqand


Uzbekistan


화려함에 깜짝 놀라 사진을 찍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까 표검사를 하던 청년도 들어와 있었어요.


"여기 탑 올라갈 수 있어?"

"아니, 없어."


이 묘소에 있는 탑은 올라갈 수 없다고 했어요. 대신 알려준다는 것이...


"여기 있는 탑은 못 가지만, 내일 아침 일찍 레기스탄 광장에 가. 거기 경찰 있거든. 경찰에게 돈 주면 탑에 올라갈 수 있어."


그건 이미 다녀왔어...경찰은 남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 사람들 모두 다 아는 사실이었어요. 부하라의 아르크, 그리고 사마르칸트의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탑 모두 경찰의 용돈벌이. 분명히 남들 몰래 용돈벌이로 관광객에게 돈 받고 들어가게 허락해주는 것인데 하도 많이 받아서인지 여기도 일반인들 전부 다 어떻게 올라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청년과 잡담을 하다가 다시 내부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O'zbekiston



사마르칸트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최고로 만족하고 많이 보았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많이, 자세히 보고 사진을 찍고 싶은 대로 찍었어요. 늦게 온 것 때문에 창으로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 내부가 어둡기는 했지만, 조명도 잘 되어 있고, 벽을 금으로 치장해 놓아서 별로 어둡거나 침침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다양한 색과 문양으로 화려하게 만든 것은 계속 보아왔지만, 이렇게 금으로 치장해 번쩍이고 아름다운 것은 몰타 발레타에 있는 대성당에서 본 이후 처음이었어요. 몰타 발레타에서 본 대성당과 다른 점이라면 여기는 벽 전체를 금으로 발라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는 것이었어요.


구경하고 싶은 만큼 구경하고 슬슬 밖으로 나와 오크 사로이 묘소로 갔어요.


사마르칸트 오크 사로이 묘소


여기는 특별한 설명도 없고, 유적 주변에 둘러쳐진 철창 문도 잠겨 있었어요. 이 유적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이 묘소 동쪽 벽 어디엔가 목이 잘린 시체가 묻혀 있다는 것 정도. 이 목이 없는 시체는 울루그벡을 살해한 - 즉 패륜을 저지른 죄로 참수당한 울루그벡의 아들 압둘라티프 Abdullatif 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오크 사로이 묘소는 아미르 테무르 묘소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금방 다녀왔어요. 이제 정말로 밤이 시작되려고 했고, 이쪽은 가로등 자체가 별로 보이지 않아 다시 아미르 테무르 묘소쪽으로 돌아나갔어요.


아미르 테무르 묘소 야경


어둠이 깔리자 아미르 테무르 묘소에 조명이 들어왔어요. 원래 건물 색깔을 살리지 못한 조명 색깔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을 보니 나름 괜찮아 보였어요. '입구를 청색 빛으로 하고 건물을 조금 더 연한 빛으로 비추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이 정도라도 조명 시설을 갖추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여행을 다니며 밤에 조명 시설을 이용해 밝게 비추어주는 곳은 거의 보지 못했거든요. 부하라의 라비 하우즈, 히바의 칼타 미노라 정도를 제외하면 밤이 되면 그냥 컴컴해서 멀리서 보면 대충 윤곽이나 보이는 정도였어요. 이 정도면 정말 감사해야할 수준.




아미르 테무르 묘소 바로 옆은 일반인들이 사는 마을이었어요. 안디잔에서처럼 이쪽도 돌아다녀볼까 했지만, 너무 어두웠어요. 가로등 자체가 얼마 없어서 섣불리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당연히 사진은 빛이 없으니 찍을 방법도 없었구요. 사진은 둘째치고 그냥 걸으려 해도 너무 어두워 다시 숙소가 있는 레기스탄 광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어요.



레기스탄 광장으로 가는 길에 분수가 있고, 그 옆에는 투박한 건물이 있었어요. 건물 생긴 것은 투박했지만, 그 벽에 그려진 이 벽화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왠지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의 딱딱하면서도 아름다운 디자인 같아 보이는 것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이상한 것은 벽화에서 여성들의 전통 의상이 카프카스 전통 의상과 매우 흡사했다는 것이었어요. 1966년 대지진 이후 소련 각지에서 투입된 노동자 3만 명이 건물을 복구하며 아파트에 자신들 문화를 보여주는 벽화로 아파트 벽면을 장식했다는 말이 있어요. 그것처럼 이 건물도 카프카스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짓고, 벽에 자신들 문화를 보여주는 벽화를 남긴 건가? 아니면 여기랑 카프카스 지역 전통 의상이 그렇게 차이가 없는 건가? 물론 후자 쪽에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우즈벡 여성들이 전통 의상을 입고 나온 모습을 보면 벽화와 비슷한 경우가 꽤 많았거든요. 어쨌든 이 벽화도 사마르칸트 올 때마다 꼬박꼬박 보았던 벽화였고, 항상 사진을 찍고 싶어했던 벽화였어요.



분수 근처는 바람 때문에 물바다였어요. 확실히 저녁이 되니 기온이 떨어졌고, 바람은 계속 불어서 쌀쌀했어요. 분수에서 노래도 나오고 바람에 휘청거리며 커튼을 만들어대는 물줄기도 볼 만 했어요. 그렇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물방울이 날아오고 가만히 서 있자니 추워서 조금 구경하다 레기스탄 광장으로 걸어갔어요.


"이거 뭐야!"


어머, 뭐긴 뭐겠니? 누가 너 받아준댔니?


도도한 사마르칸트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퍼졌어요. 



이것은 제가 올해 5월 사마르칸트에 처음 갔을 때 찍은 레기스탄 광장이에요.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저녁 7시 45분 즈음이었어요. 이때는 다른 곳을 가는 길에 잠깐 들른 것이었는데 시간이 늦어서 대충 사진찍고 광장을 조금 돌아다니다가 바로 목적지로 이동해야 했어요. 그때 레기스탄 광장은 이렇게 사람들이 붐비고 놀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여행의 마지막으로 레기스탄 광장의 야경을 보고 즐길 생각이었어요.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 야경


시간은 비슷했어요. 아니, 이번은 그때보다 조금 일찍 레기스탄 광장에 도착했어요. 오늘은 토요일. '토요일 밤'이라 하면 놀기 위한 밤. 일요일 밤처럼 다음날 학교에 가고, 일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고통스러운 밤이 아니라 '내일 푹 쉬어도 된다!'라는 생각에 즐겁게 놀 수 있는 밤이에요. 하지만 레기스탄 광장은 썰렁하기 그지없었어요. 사람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이렇게 썰렁한 레기스탄 광장의 야경은 내가 꿈꾸던 야경이 아니야! 내가 꿈꾸던 야경은 광장에 사람들이 나와 놀고 있는 그런 야경이란 말이야!


역시 사마르칸트를 만만하게 보는 것이 아니었어요. 이 사마르칸트는 나한테 대체 왜 이렇게 도도하게 구는 거지? 처음에 대충 레기스탄 광장만 보고 갔다고 삐진 건가, 아니면 그냥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는 건가? 여행을 아주 망치게 하는 것은 아닌데, 여행을 이상하게 꼬이게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짜증이 나서 사마르칸트 구경을 아예 때려치지는 못하도록 가끔 좋은 일도 툭 던져놓은 그런 상황이었어요. 즉, 도도한 사마르칸트는 적당히 저를 가지고 놀고 있었어요. 아예 여행을 망치지는 않도록 하면서 적당히 약을 올렸다가 기분을 풀어주었다가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레기스탄 광장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본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어요. 숙소로 돌아가서 혹시 차를 마실 수 있냐고 여쭈어보았어요. 그러자 주인 아저씨께서 당연히 된다고 하시며 바로 끓여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잠시 후, 주인 아저씨께서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오셨어요. 얼마냐고 여쭈어보자 차는 공짜라고 하셨어요.


차를 홀짝이며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사람도 없는 썰렁한 레기스탄 광장의 야경을 보기 위해 또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바람이 차가웠고, 해가 떨어져 기온은 계속 낮아지고 있어서 반팔 셔츠에 가을용 외투만 입고 돌아다니기에는 살짝 춥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람들이 광장에서 놀고 있다면 나가서 사람들 구경도 하고 야경도 보고 하겠지만, 사람도 없는 썰렁한 광장을 양쪽 다리의 통증을 참아가며 가서 보기 싫었어요.


차 한 주전자를 다 마시고 방으로 올라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일찍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내일은 드디어 타슈켄트로 돌아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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