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37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울루그벡 천문대

좀좀이 2012. 11. 26.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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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시욥 박물관을 꼭 가야 하나?'


아프로시욥 박물관까지 어떻게 걸어왔어요. 시각을 확인해보니 이미 오후 4시 반을 넘었어요. 가려고 하면 갈 수는 있는데 섣불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저기를 가면 울루그벡 천문대가 문을 닫을 것 같았고, 다리도 아팠어요. 지금 이렇게 아픈 다리 끌면서 걸어가는 이유는 아프로시욥 박물관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울루그벡 천문대를 보러 가기 위한 것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아프로시욥 박물관이 유명한 이유는 오직 하나.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벽화가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거 꼭 보아야 해?'


솔직히 고구려 사신이 그려진 벽화 따위에 관심 없었어요. 고구려 사신이 그려졌든, 제주도 설문대 할망이 그려졌든 단지 그려져 있다는 것을 보러 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거든요. 이 그림의 의미라면 '먼 옛날, 고구려 사신도 실크로드 길을 타고 서쪽으로 갔다' 정도. 게다가 인터넷과 책을 통해 이 사신도는 질리도록 많이 보았어요. 사마르칸트 다녀온 사람은 반드시 꼭 가는 것처럼 되어 있는 코스인데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진을 찍어 실려 있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신기할 것 같지도 않았어요. 이미 이런 경험은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볼 때 경험해 보았어요. 단지 한국인이 많이 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갈 필요는 없었어요.


"안 가!"


가고 싶지 않은데 남들이 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갈 필요는 없었어요. 울루그벡 천문대도 이렇게 따지면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중요성이 달랐어요. 울루그벡 천문대는 우즈베키스탄 와서 우즈벡인들이 사마르칸트 설명할 때마다 꼭 나오는 곳이라 한 번 쯤 보고는 싶었어요. 대체 얼마나 위대한 곳인지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우즈벡인들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사마르칸트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쇼흐 진다보다도 더 먼저 소개되는 곳이니 어떻게 생긴 곳인지 보고 싶었어요.


한 다리만 아프면 질질 끌고 갈텐데, 두 다리 모두 아팠어요. 그래서 걸음걸이가 이상해지지 않고 매우 느려졌어요.



사마르칸트


"무슨 낙타냐?"


황량한 배경을 더 황량하게 보이게 하는 조형물이 있었어요.



"이거 우물도 가짜잖아!"


이건 대체 어디에서 웃어야 하나...


평범한 배경에 이런 조형물이 있었다면 '실크로드를 재미있게 표현했구나'라고 여겼을 거에요. 그런데 주변이 이랬어요.





웃자고 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이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기분과 비슷한 기분이었어요.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덤비자는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얼핏 보면 딱 속게 생겼어요. 낙타는 속지 않게 생겼지만, 우물은 나름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았거든요. 이건 오아시스인 줄 알고 달려갔는데 알고 보니 신기루여서 허탈해했던 옛날 대상들의 기분을 느껴보라고 만든 것일 거야.


차는 달리고, 그때마다 먼지가 날렸어요. 바람이 불었고, 그때마다 역시나 먼지가 날렸어요. 빨리 성큼성큼 걸어가고 싶은데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어요.



애들에게 썰매를 태워달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거 타고 내려가면 그만큼 걸어야하는 거리는 줄어들텐데...게다가 내가 지금 걸어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갈 수 있구...먼지는 계속 풀풀 날리고, 다리는 걸을 수록 더 아파왔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어요. 오늘 여기를 다 보기는 글렀구나. 제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치 않은 두 다리가 원망스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어요. 부하라는 애초에 워낙 큰 곳이었으니 그렇다고 쳐요. 히바는 제대로 된 정보와 지도 없이 누룰라보이 궁전과 디샨 칼아를 둘러본다고 헤맸으니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여기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어요. 11시경에 관광을 시작했으니 당일치기로 왔다 가는 사람들보다도 빨리 관광을 시작했어요.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가장 빨리 오는 열차인 아프로시욥호를 타고 온다 해도 11시 넘어서 타슈켄트 도착하거든요. 그런데 다리가 아파서 어기적 어기적 걸어다니다보니 이동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실제로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거리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드디어 호자 도니요르 묘소 Xo'ja Doniyor maqbarasi 입구까지 왔어요. 앞만 보고 가다가 하마터면 여기를 지나칠 뻔 했어요. 다행히 개천이 흐르고 있고, 큰 길 옆으로 내리막길이 있어서 왼쪽 내리막길을 쳐다보며 걸어가다 왠지 뭔가 있어보이는 것이 보여서 걸어가본 것이 호자 도니요르 묘소였어요. 분명 울루그벡 천문대가 가깝다고 했는데 울루그벡 천문대는 고사하고 호자 도니요르 묘소도 나타나지 않아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가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별 생각없이 갔다면 틀림없이 지나쳤을 거에요.



지나칠 뻔한 이유는 입구에서 다시 조금 더 걸어들어가야 묘소 정문이 나오거든요. 이게 직선으로 된 길이 아니라 구부러진 냇가를 따라 걸어가야하는 길이라 큰길에서는 여기가 호자 도니요르 묘소가 있는 곳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어요.


냇가를 따라 계속 걸어가자 드디어 묘소 정문이 나왔어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어요. 또 주머니에서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었고, 몇백숨 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정말 오늘 제일 바쁜 것은 당연히 사진기이지만, 사진기 다음으로 바쁜 것은 우즈베키스탄 학생증. 이거 안 가져왔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거에요. '쓸 데 없는 거, 혹시 모르니 챙겨나 가 보자'라고 들고온 학생증이 사마르칸트에서는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었어요.


안에 들어가자마자 조그만 벽돌 건물이 있었어요.



안에 들어가보니 약수터였어요.



'이거 마셔도 별 탈 없겠지?'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면서 수돗물을 마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그 이유는 석회 때문. 커피포트에 생수를 붓고 물을 끓이다보면 커피포트 안에 석회질이 끼었어요. 돈 주고 사서 마시는 생수가 이 정도인데 수돗물은 더 상태가 안 좋죠. 그래서 그냥 물을 마신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나 이번에는 가볍게 한 모금 마셨어요. 입안을 도배한 먼지도 조금 씻어내고 싶었고, 물을 마시고 싶었거든요. 물을 마시고 그릇에 저도 돈을 놓고 나왔어요.



저는 입을 헹구기 위해 물을 가볍게 한 모금 입에 넣고 입과 입술 사이로 물을 돌린 후 삼킨 후 다시 한 모금 마시는 정도로 끝내었는데, 우즈벡인들은 패트병을 여러 개 들고 와서 여기에서 물을 길어가고 있었어요.



약수터를 뒤로 하고 호자 도니요르 묘소를 향해 올라갔어요.



호자 도니요르 묘소 바로 옆에는 오래된 건물터가 있었어요. 호자 도니요르 묘소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너무 커서 사진을 찍지 않고, 신발을 벗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녕하세요."

"응. 어서 오거라."

"여기에서 사진 찍어도 되나요?"

"응. 물론. 찍고 싶은 만큼 찍어."


그래서 호자 도니요르 묘소를 한 바퀴 돌았어요.


Xo'ja Doniyor maqbarasi


St. Daniel mausoleum


"이건 왜 이렇게 커?"


묘소를 크게 짓는 일이야 흔한 일이므로 그다지 놀라울 것은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이 무덤 자체가 크다는 것. 제 아무리 위대하고 신성한 사람의 묘소라 해도 석관과 무덤 자체는 크지 않아요. 그런데 여기는 석관 자체가 매우 컸어요.


호자 도니요르 묘소 (우즈베크어 Xo'ja doniyor maqbarasi, 영어 St. Daniel mausoleum)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서 성자로 추앙하는 도니요르가 매장된 묘소에요. 성서에 의하면 기원전 6세기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고 해요. 원래는 이란에 있는 '수사'라는 곳에 묘소가 있었는데, 티무르 제국때 유골이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로 옮겨왔고, 여기에 새로 묘소를 만들어 매장했대요. 그 이유는 호자 도니요르의 유골을 가지고 있는 자는 성공하고 행복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아미르 테무르 제국 당시에 호자 도니요르 묘소가 있었고, 모스크도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19세기 투르키스탄이 러시아 제국에 복속된 후, 러시아 기업가 미로슈니첸코 Miroshnichenko 가 1900년에 시압강 근처에 만든 것. 이 석관의 길이는 약 20m인데, 이렇게 크게 지은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어요. 첫 번째로는 호자 도니요르의 유골 중 팔 뼈가 신기하게도 해가 지날수록 계속 자라난다는 설이고, 두 번째는 호자 도니요르가 원래 20여 미터나 되는 거인이라 거기에 맞게 묘를 지은 것이에요. 그리고 이 묘소 아래 있는 약수 역시 매우 성스러운 것이어서 마시면 마음과 육체의 질병이 낫는다는 믿음이 있어요.





호자 도니요르 묘소에서 나와 다시 울루그벡 천문대로 갔어요. 택시를 타고 갈까 고민했지만 차가 안 보여서 그냥 걸어갔어요. 이 역시 매우 운 좋은 선택이었어요. 호자 도니요르 묘소에서 울루그벡 천문대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거든요.



"저기만 올라가면 끝이구나."


여기도 웨딩 촬영하는 사람들이 몇 무리 있었어요.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결혼 트렌드는 결혼하기 전에 '러브 스토리'를 만드는 것. 한 달 간 여기 저기 다니면서 결혼할 커플이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촬영해 '러브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 이 나라 최근 결혼 문화에요. 우즈베크인들이 대충 좋은 곳 돌아다니며 사진 몇 장 찍고 결혼식을 끝내는 일은 없어요. 간혹 그렇게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아니에요. 옛날보다 많이 짧아지기는 했지만, 이 나라에서 결혼식은 거대한 행사이자 축제로, 최소 4시간 동안 진행되요. 이 '러브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웨딩 드레스를 입고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하고 웨딩 드레스가 아닌 멋지고 예쁜 옷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하기도 해요.


미로조 울루그벡


이분이 바로 미르조 울루그벡. 과학 발전을 주장하다 신학 발전을 주장하는 무리들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났고, 이분이 권력에서 밀려나면서 울루그벡 천문대도 버려졌다고 해요.


여기도 역시나 입장료를 내야 했어요. 외국인은 8000숨, 우즈베키스탄 학생은 600숨이었어요. 먼저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어요.


우즈베키스탄


박물관부터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맞은편 천문대가 왜 천문대인지 알기 위해서였어요. 그 이상의 큰 의미는 없는 곳이었어요. 사실 어쩌면 맞은편 유적이 왜 천문대인지 알기 위해 들어간다는 것이 '박물관 본연의 업무'이니 본연의 업무는 매우 잘 수행하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었어요.



이곳이 바로 천문대 입구.


울루그벡 천문대


이렇게 생겼어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천문대'하면 상상하는 모습은 이런 모습일 거에요.




하지만 여기는 이런 식으로 이용했다고 해요.



기존에 알고 있던 '천문대'와 달라서 박물관을 먼저 보고 보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어요. 천문대를 보고 나왔을 때의 시각은 2012년 9월 29일 오후 5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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