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미분류

튀르키예어 동사 iyor 현재시제(진행상) 접사의 yor가 모음조화 안 하는 이유와 iyor 의 어원

좀좀이 2025. 3. 6.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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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 언어를 공부할 때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이 있어요. 바로 모음조화에요. 페르시아어의 영향으로 모음조화가 사라진 우즈베크어를 제외하면 그 외 튀르크 언어들은 모음조화를 반드시 익혀야 해요.

 

튀르키예어에서 모음조화는 꽤 엄격하게 지켜져요. 단어도 고유어들은 대체로 모음조화를 지키고 있는 형태에요. 특히 접사를 붙일 때는 모음조화가 상당히 엄격하게 적용되는 편이에요. 튀르키예어 뿐만 아니라 우즈베크어를 제외한 거의 모든 튀르크 언어들에서 기초 레벨에서는 모음조화가 숙달되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한국어에도 모음조화가 있기 때문에 아주 쌩뚱맞은 개념이 아니라 대체로 쉽게 익히기는 하지만, 숙달 안 되면 처음에 고생해요.

 

제가 튀르키예어를 처음 공부할 때였어요. 이때 매우 이상한 것이 있었어요.

 

현재 접사 iyor는 왜 모음조화를 완벽히 안 해?

 

접사에서는 모음조화가 특히 엄격한 편인데 iyor는 이상하게 모음조화를 완벽히 하지 않았어요. iyor는 모음조화를 하기는 해요. 그런데 전부 하는 것이 아니라 iyor에서 앞에 있는 i 모음만 모음조화해요. 그래서 iyor는 어간과 결합할 때 ıyor, iyor, uyor, üyor - 이렇게 네 가지 형태로 변해요. 뒤에 있는 yor 부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모음조화하지 않아요.

 

iyor의 yor도 모음조화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잖아요. 하려면 다 하든가, 왜 iyor에서 앞의 i는 하고 뒤의 yor는 안 해요. 할 거면 뒤의 yor도 해서 ıyor, uyor, iyör, üyör라고 하든가요. 그래서 가끔 튀르키예어를 공부한 사람과 대화할 때 iyor의 yor 부분 모음조화는 어디에 흘리고 온 거냐고 농담을 하곤 했어요. 맞추려면 다 맞추든가, 왜 뒷부분은 안 맞춰요.

 

그냥 외워서 쓰면 되는 거니까 딱히 궁금해할 것까지는 아니었어요. 아마 튀르키예어를 공부하고 있거나 공부해본 사람들 거의 모두가 왜 iyor에서 뒷부분 yor는 모음조화를 안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 거에요. 거기에 딱히 의문 안 가져도 튀르키예어를 학습하고 마하고 번역하는 데에 아무 문제 없기도 하니까요.

 

저도 처음에는 그냥 그런 줄 알았어요. 하지만 튀르크 언어들을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이 문제는 웃어넘어갈 문제가 아니었고, 더욱 이상한 문제가 되었어요. 나중에는 웃어넘어갈 수 없는 문제가 되었구요.

 

튀르크 어족은 다시 몇 개 어파로 구분되요. 이 중에서 화자가 많고 세력이 큰 어파는 세 종류 있어요. 튀르키예어, 아제르바이잔어, 투르크멘어가 속하는 남서튀르크어파 (오구즈어파), 카자흐어, 키르기즈어, 타타르어가 속한 북서튀르크어파 (킵착어파),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가 속한 남동튀르크어파 (차가타이어파)가 있어요. 이 세 어파는 크게 보면 다시 동부어파 (킵착어파+차가타이어파)와 서부어파 (오구즈어파)로 나뉘어요.

 

이렇게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과 서부 튀크르 언어 계열로 나눌 수 있는 이유는 둘 차이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에요. 한편 킵착어파와 차가타이어파는 꽤 가깝고 비슷하 편이구요.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과 서부 튀르크 언어 계열은 차이가 크고 특별한 공부가 없다면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져요.

 

여기에서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과 서부 튀르크 언어 계열의 차이는 아주 기초적이고 간단한 부분부터 차이가 커요. 대표적으로 이 글 제목에도 있는 현재시제 (진행상) 접사부터 완전히 달라요. 튀르키예어는 iyor이지만, 우즈베크어는 a에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접사 뒤에 붙는 인칭접사 형태 자체가 아예 달라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시제 표현 자체가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과 서부 튀르크 언어 계열은 이것저것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데, 시제 표현도 둘 사이에는 꽤 차이가 있어요.

 

이 차이가 어느 정도냐 하면,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은 매우 비슷해요. 형태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요. 하지만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과 서부 튀르크 언어 계열 사이에서는 '왜? 어째서?'라는 의문이 많이 나와요.

 

튀르크 언어들을 여러 개 공부해보면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튀르크 민족의 역사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언어만 공부해도 튀르크 민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갔음을 알 수 있어요.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에 속하는 튀르크 언어들에 원형이 많이 남아 있거든요. 서부 튀르크 언어 계열에 속하는 언어를 공부하다가 의문이 생겼는데 설명이 안 되는 것이 나왔다면 먼저 더 동쪽의 튀르크 언어를 찾아보면 되요. 그래도 설명이 안 된다면 그때는 이란어를 찾아보면 되요. 이러면 거의 다 해결되요.

 

튀르키예어, 아제르바이잔어를 공부하다 설명이 안 되는 문법, 일관성이 없는 것 같은 문법이 나왔다며 십중팔구는 둘 중 하나에요. 튀르크 민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변형된 문법이거나, 그렇게조차 설명 안 된다면 매우 높은 확률로 이란어에서 온 문법이에요. 특히 아예 생뚱맞고 전혀 교착어인 튀르크 언어 같지 않은 문법이라면 거의 백이면 백 이란어 문법 뒤져보면 나와요. 그래서 튀르크 언어들 학습할 때 이란어를 공부하지 않더라도 이란어 문법책을 곁에 놓으면 몇 번은 써먹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왜 튀르키예어 진행상 접사 iyor에서 i만 모음조화하고 yor는 모음조화하지 않는가?

 

이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서는 역시 동쪽을 바라봐야 해요. 단서는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에 속하는 우즈베크어, 위구르어, 카자흐어, 키르기스어에 있거든요.

 

 

먼저 이 글에서 참고한 자료는 다음과 같아요.

 

(논문)

YORI- (…> YÜRÜ-) EYLEMİ NEREDEN GELİYOR?

(서적)

Azərbaycan dilində feli - Buludxan Xəlilov

(논문)

TÜRKMEN VE TÜRKİYE TÜRKÇESİ AĞIZ GRUPLARININ BİR BELİRLEYİCİSİ OLARAK ŞİMDİKİ ZAMAN EKİ - Hüseyin YILDIRIM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오구즈 튀르크어에서 진행상 접사 (3시제에서는 현재시제 접사)인 튀르키예어 iyor, 아제르바이잔 ir, 투르크멘어 ýar 모두 원래는 동사였어요. 동사였는데 접사화되었고, 접사화되는 과정에서 음운변화 및 축약이 이뤄지며 오늘날 현재시제(진행상) 접사가 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튀르키예어 iyor에서 뒷부분 yor는 모음조화하지 않는 것이에요. 과거 동사였던 때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보면 되요.

 

 

먼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착어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인 접사화 현상을 알아야 해요.

 

교착어는 접사를 기계적으로 추가해서 의미를 구체화하고 완성해가는 언어에요. 하지만 모든 것을 접사로 해결하지는 않아요. 의미를 보충하거나 더할 때 당연히 다른 단어를 통해 표현하기도 해요. 아예 혼자서는 의미가 불완전해서 다른 단어와 결합해서 의미가 구체화되는 단어들도 있구요. 한국어의 의존 명사, 보조동사를 떠올리면 되요.

 

그런데 이렇게 대체로 홀로 사용되지 않고 다른 단어와 결합해서 의미가 구체화되는 단어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언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것이 접사인지 하나의 단어인지 혼동되기 시작해요. 특히 교착어는 개개의 접사가 매우 명확한 뜻을 갖고 있고, 어간과 접사의 경계를 모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명확히 인식해요. 교착어에서 단어와 접사의 차이라면 단어는 홀로 쓰일 수 있고, 접사는 홀로 못 쓰이는 활용 면에서의 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단어와 합쳐져야만 의미가 명확해지는 단어들은 접사와의 혼동이 발생하기 쉬운 편이에요.

 

원래 교착어의 접사들은 단일 의미에요. 하지만 명확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의 여부로 본다면 단어와 접사의 차이가 별로 없어요. 게다가 개별 단어로 인식하지만 독립적으로는 의미가 불명확해서 사용하지 못 하고 다른 단어와 함께 사용해야 의미가 명확해지는 단어들과 접사를 비교해보면 혼동이 와요.

 

이렇게 다른 단어와 같이 써야 의미가 명확해지는 단어들이 접사와 혼동되기 시작하면 교착어에서는 접사화시키는 현상이 나타나요.

 

한국어에서 지금 현재에도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에요. 대표적인 예로는 의존명사를 붙여써야 할지, 띄어서 써야 할지에 대한 혼동이에요. 단순히 띄어쓰기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정도의 차이이지 접사와의 혼동이 발생한 거라 볼 수도 있어요. 접사가 아니라면 띄어써야 하는데 이를 헷갈려 하는 거니까요.

 

또한 2000년대 들어서 한국어에서 두드러지게 목격되는 현상 중 하나가 보조동사 '지다'의 남발이에요. 보조동사 '지다'는 피동의 의미로 사용되요. 과거에는 보조동사 '지다'를 남발한 글을 번역체라고 상당히 비난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영어 학습의 중요성이 2000년대 들어서 급격히 높아지면서 보조동사 '지다'의 사용이 매우 크게 늘어났어요. 영어 공부 때문에 수동태 문장을 해석해야 하는데 이때는 보조동사 '지다'를 사용하는 방법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거든요. 원래 한국어 어법에 맞게 수동태를 능동태로 고쳐서 쓰라고 하면 수동태가 와닿지를 않고, 보조동사 '지다'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이기도 해요. 그 이전에 당장 이해를 위해 직역하는 건데 직역도 안 된 상황에서 뭘 능동태로 고치고 있어요. 이렇게 보조동사 '(어)지다'가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자 보조동사 '(어)지다'가 일종의 수동 접사처럼 되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 목격되고 있어요.

 

한편, 이렇게 원래 단어가 의미적으로 불명확하고 다른 단어와 같이 써야 의미가 명확해지는 단어가 아니라 정말로 단어의 의미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발음의 변화 및 축약으로 인해 접사처럼 되어버리고, 이로 인해 혼동이 발생해 접사화시켜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중요한 건 교착어에서는 언중이 특정 어휘나 표현이 접사와 헷갈리면 접사화하는 특징이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접사들은 단일모음이 아니라 여러 모음으로 구성된 형태를 보이기도 해요.

 

접사화가 이뤄지면 이때부터 언중은 이를 단일접사로 인식해요. 이때부터는 어원을 따지고 형태소를 구분하는 짓이 사실상 무의미해져요. 단일접사로 기능하니까요.

 

 

튀르크 언어 사용시 조심해야 하는 동사 4개는 바로 '서다, 눕다, 앉다, (걸어)가다' 동사에요.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 튀르크 언어들을 보면 위 4개 동사는 매우 독특한 동사들이에요.

 

1. '~고 있다'와 '~어 있다' 형태가 있다

 

서다, 눕다, 앉다, (걸어)가다 (우즈베크어 - 서다 turmoq, 눕다 yotmoq, 앉다 o'tirmoq, (걸어)가다 yurmoq) - 이 네 동사는 '~고 있다' (서고 있다, 눕고 있다, 앉고 있다, (걸어)가고 있다) 형태 외에 '~어 있다' 형태 (서 있다, 누워 있다, 앉아 있다, 가 있다) 가 따로 있어요. 만약 현재형으로 쓰면 이때는 '~어 있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고 있다'라는 의미가 되요.

 

예를 들어서 우즈베크어로 yotaman은 '눕고 있다' - 눕는 동작을 하고 있는 중으로 아직 다 눕지 않았어요. '누워 있다'라고 말하려면 'yotibman'이라는 형태를 사용해야 해요. '눕고 있다'와 '누워 있다'의 차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거에요. 이해한 그대로 맞아요.

 

이런 특징은 우즈베크어 뿐만 아니라 여러 튀르크 언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요. 아제르바이잔어 역시 이들 단어는 '~어 있다'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현재임에도 miş를 사용해서 표현해야 해요. 아제르바이잔어에서는 이 네 동사에 dayanmaq(서다, 멈추다), geyinmək(입다), uzanmaq(눕다), söykənmək(기대다), tutmaq(잡다)이 추가되요.

 

2. 원래 의미와 달리 현재 진행을 나타내느 보조동사로 사용된다

 

서다, 눕다, 앉다, (걸어)가다 동사는 튀르크 언어에서 현재 진행을 의미하는 보조동사로 사용되고 있어요. 그래서 몇몇 튀르크 언어에서는 이들 동사 4개가 보조동사로 활용되는 형태를 아예 현재진행시제로 분류하기도 해요.

 

동부 튀르크 언어 계열에 속하는 튀르크 언어들에서는 이 형태를 잘 사용하고, 심지어 하나의 '현재진행시제'로 분류하기도 해요. 하지만 서부 튀르크 계열 언어들에서는 이런 활용을 하는 모습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렇지만 서부 튀르크 계열 언어라 해서 완전히 사라진 건 또 아니에요. 그래서 해석할 때 분명히 이들 동사를 사용했는데 원 의미인 '서다, 눕다, 앉다, (걸어)가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해석이 이상해지는 일이 생길 때가 있어요.

 

튀르키예어에도 이와 관련된 문법이 있어요. 동사 어간에 -adurmak 형태를 접미시키는 형태가 있어요. 이때 durmak은 정지가 아니라 계속 진행의 의미에요.

 

Sen çocuğa bakadur

- 너는 아이를 계속 찾아라. (찾는 것을 계속 해라)

 

만약 durmak을 사전에 나와 있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아이를 찾는 것을 그만두라는 말이 되는데, 실제로는 정반대로 계속 찾으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상당히 조심해야 해요.

 

이래서 튀르크 언어를 학습하고 사용할 때 서다, 눕다, 앉다, (걸어)가다 - 이 동사들은 항상 신경써야 해요. 원래 동사 의미가 아니라 진행의 의미로 사용된 보조동사일 수 있거든요. 특히 동부 튀르크 계열 언어라면 더욱 상당히 많이 신경써야 하고, 서부 튀르크 계열 언어라면 뭔가 이상하다 싶을 때 이들 동사들이 계속, 진행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을 떠올려야 해요.

 

 

이제 서부 튀르크 언어 계열에 속하는 오구즈어파의 언어들인 튀르키예어, 아제르바이잔어, 투르크멘어의 현재시제 (진행상) 접사들의 어원이에요.

 

먼저 튀르키예어와 투르크멘어에요. 튀르키예어 진행상 접사 iyor와 투르크멘어 진행상 접사 ýar 의 어원은 원래 yürümek 이었어요. yürümek 동사는 '(걸어)가다'라는 의미에요. 이 동사가 음운 변화 및 축약을 거치며 오늘날 튀르키예어 진행상 접사 iyor와 투르크멘어 진행상 접사 ýar가 되었어요.

 

튀르키예어의 iyor 접사에 대해 Gürer Gülsevin은 yürümek 의 변형인 yorı 에서 파생된 접사인 iyor 형태가 13세기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주장했어요. 동부사+yorı동사 형태로 표현하던 진행상이 접사화 과정을 통해 iyor 접사로 굳어져서 널리 퍼진 건 16세기 이후라고 보고 있어요. 그리고 이때부터 사용 영역이 확대되어서 아나톨리아 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고 해요. 그 결과 오늘날 튀르키예어에서 진행상 접사는 iyor가 되었구요.

 

즉, iyor에서 뒷부분 yor가 과거 동사어간이었는데 그 형태가 완전히 사라지거나 완벽히 모음조화 규칙을 적용받는 접사로 형태가 변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iyor에서 앞부분 i만 모음조화하고 뒷부분 yor는 모음조화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요.

 

이렇게 (걸어)가다 동사를 보조동사로 사용해서 진행의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은 현대 카자흐어에서 현재진행시제로 사용되고 있어요. 카자흐어 현재진행시제는 과거 부동사(-ып) + [жатыр, жүр, отыр, түр 중 하나]+인칭접사 형태에요. 예를 들어서 카자흐어에서 Сағынып жүрмін 이라고 하면 '나는 그리워서 간다'가 아니라 '나는 그리워하고 있다'라는 의미에요.

 

투르크멘어의 진행상 접사 ýar 에 대해서는 튀르키예어와 마찬가지로 변화했다는 주장이 일반적이지만, durmak (서다)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어요. 참고로 투르크멘어는 방언 차이가 상당히 크고, 문법 정형화 과정에서 테케 방언을 중심으로 여러 방언을 섞는 방식으로 정형화했어요.

 

투르크멘어에서는 여전히 현재진행을 표현하기 위해 ib otyr, ib dur, ib yatyr, ib ýör 형태를 사용하고 있어요.

 

아제르바이잔어에서는 두 가지 주장이 존재해요. 하나는 튀르키예어와 마찬가지로 아제르바이잔어 진행상 접사인 ir 접사가 yürümek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주장이에요. 또 다른 하나는 durmaq (서다)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주장이에요.

 

아제르바이잔어 진행상 접사인 ir 접사가 durmaq 접사에서 유래했을 거라는 주장에 따르면, 과거 현재진행을 표현하던 방법은 a turur 였어요. 차가타이어에서는 a/e turur 형태를 사용했고, 이후 이 형태는 adur, edür 형태로 바뀌었어요.

 

또한 아제르바이잔어도 14~18세기에는 a durur, e durur (A동부사 durur 형태)를 사용했어요. 이 형태가 우즈베크어에서는 adi 형태로, 아제르바이잔어에서는 ur 형태로 바뀌었다는 주장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과거 gələ turur (그는 오고 있다) 는 한 쪽에서는 gələdu, 다른 한 쪽에서는 gəlur 가 되었어요. 그리고 후자 - gəlur 의 ur 형태가 오늘날 아제르바이잔어 현재시제 접사 (진행상 접사) ir 로 변화했을 거라는 주장이에요.

 

여기에서 한 가지 더 궁금한 점.

그러면 다른 튀르크 언어에 비슷한 현상 없나요?

 

차가타이어파에 속하는 우즈베크어와 위구르어에는 비슷한 현상이 있어요. 여기도 똑같이 현재진행에서 동사가 접사화된 현상이 존재해요. 우즈베크어의 yap 접사와 위구르어 iwati 접사가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을 겪어서 동사가 접사로 변한 사례에요. 재미있는 점은 우즈베크어 yap, 위구르어 iwati 접사는 기원이 되는 동사가 '눕다' 동사라는 점이에요. 우즈베크어의 yap 접사는 ib yotib으로 대체할 수 있고, 위구르어 iwati 접사는 ib yat로 대체할 수 있어요. 대체할 수 있는 형태를 보면 일관되게 눕다 동사가 나와요. 그러니 이건 쉽게 '눕다' 동사에서 유래했다고 알 수 있어요.

 

튀르키예어의 iyor에서 앞부분 i만 모음조화하고 뒷부분 yor는 모음조화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이유 없이 안 하는 것은 아니에요. 원래는 동사였는데 접사화되었고, 그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튀르키예어 뿐만 아니라 온전히 모음조화하는 아제르바이잔어의 현재시제 접사 (진행상 접사) ir 와 투르크멘어의 현재시제 접사 (진행상 접사 ýar) 또한 원래 계속, 진행의 의미로 사용되던 보조동사가 접사화되어 오늘날에는 완전히 접사로 굳어진 접사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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