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여행기/식당, 카페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

좀좀이 2021. 12. 2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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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주 여행 갔을 때였어요. 경주 황리단길을 구경하면서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경주 여행은 다른 여행과 아주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어요.

 

여행기 안 쓸 거야.

 

경주 여행은 순도 100% 휴식을 위해 간 여행이었어요. 여행기 쓸 생각이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도 안 챙겨 갔어요. 여행기를 쓸 계획이었다면 출발할 때부터 사진도 찍고 기록도 남겼을 거에요. 하지만 경주 여행은 절대 여행기 안 쓰기로 다짐하고 간 여행이었어요. 여행기 밀린 것도 끝내야 했고, 여행기 쓰려고 하면 쉴 수 없었어요. 국내 여행 여행기는 딱히 쓰는 재미도 없구요.

 

예전에는 여행기 쓰는 것도 재미있고 여행기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여행 가면 누구나 좌충우돌 이야기가 펼쳐졌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낯선 곳에서 종이 지도 보며 돌아다녀야 하고 현지 정보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다양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낯선 곳에서 지도 잘못 보고 한 블록만 잘못 가도 그때부터 길 찾아 헤메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펼쳐져요. 식당도 대충 찍어서 들어가고 음식도 뭔지 모르고 막 시켜보니 식사가 밥 먹는 것 뿐만 아니라 배팅하는 느낌도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국내여행 한정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진짜 이런 곳도 리뷰가 있을까 싶은 곳조차 리뷰가 다 있어요. 오히려 정보가 너무 많아서 가짜 정보 골라서 버리는 게 일이에요. 국내 여행 다니면서 길 잃어버릴 일이 없어요. 스마트폰 지도 켜고 GPS 켜면 자기가 있는 위치가 아주 정확히 표시되요. 지도를 아예 볼 줄 몰라도 스마트폰 지도에 GPS 켜서 자기 위치 확인하며 가면 길 잃어버리고 싶어도 잃어버릴 수 없어요.

 

말이 안 통하면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경주는 우리나라에요. 경주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과는 한국어 잘 못 해서 의사소통이 어려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경주 시민들은 모두 한국어 원어민들이에요. 저와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없었어요. 경상북도 경주 여행가는데 의사소통 문제를 걱정한다면 그게 정신 이상한 거죠.

 

여행기를 쓸 때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엄청 써야 해요. 국내 여행기는 손만 많이 가고 글 쓰는 재미도 없고 글 다 쓴 후 제가 봐도 별로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경주 여행 갈 때는 아예 작정하고 여행기 안 쓰기로 결심하고 갔어요.

 

경주 여행은 국내 여행이라서 아무 준비도 안 했어요. 물건이 부족하면 경주에서 마트 가서 구입하면 될 일이었어요. 여행 계획 하나도 없어도 경주 여행 정보라면 인터넷에 넘쳐났어요. 그래서 머리 다 비우고 그 어떤 욕심도 없이 경주 여행을 갔어요.

 

경주에서 황리단길 돌아다니는 중이었어요. 황리단길에서 카페 가서 잠시 커피 한 잔 마시며 쉬기로 했어요. 카페마다 사람들이 많았어요. 황리단길은 단순히 관광객들만 모이는 곳이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오는 번화가였어요. 서울에서 홍대 근처에 있는 연남동 비슷한 위치 같았어요.

 

"대충 아무 곳이나 마음드는 곳 들어가도 되겠는데?"

 

부담이 없었어요.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괜찮아 보였어요. 정말 걱정 많다면 인스타그램도 뒤져보고 기타 SNS도 뒤져보고 인터넷 블로그 글과 지도 리뷰까지 다 챙겨서 보며 고르겠지만 그러기 싫었어요. 즉흥적으로 들어가도 실망할 확률은 별로 없어 보였어요.

 

카페를 쭉 둘러보면서 황리단길을 구경했어요.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

 

오브스토리지 카페 메뉴를 쭉 보던 중이었어요. 오브스토리지 카페에는 '자몽 에스프레소'라는 음료가 있었어요.

 

"이거 무슨 맛 나지?"

 

자몽은 자몽, 커피는 커피. 둘을 섞어서 마셔볼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어렸을 적부터 과일과 커피는 같이 먹는 것이 아니라고 배웠어요. 그래서 시도 자체를 안 해봤어요. 더욱이 자몽은 흔히 먹을 수 있는 과일도 아닌데다 자몽은 맛이 매우 강해서 자몽 먹은 후에는 미각이 완전 엉망이 되요. 자몽 먹은 후 커피 마시면 커피 맛도 이상하게 느껴져요. 그래서 자몽은 가장 마지막에 먹는 디저트였어요. 제게 자몽이란 커피까지 다 마시고나서 완전히 음식 그만먹겠다는 마침표 같은 과일이었어요. 커피와 자몽을 같이 먹어볼 생각은 아예 해보지 못했어요.

 

"이거 맛 괜찮을까?"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 근성이 끓어올랐어요. 여행 왔으니 이런 걸 마셔봐야죠.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희안한 커피는 꼭 마셔봐야 했어요. 자몽과 커피 조합은 전혀 상상 안 되었어요. 어떤 기괴한 맛이 나올지 궁금했어요.

 

오브스토리지 카페 안으로 들어갔어요. 망설임 없이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를 주문했어요.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는 이렇게 생겼어요.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는 아래에 붉은 자몽청이 깔려 있었어요. 위에는 우유가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었어요. 우유 위에 커피가 부어져 있었고, 그 위에 거친 거품이 수북히 올라가 있었어요.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는 매우 예쁘게 생겼어요.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를 마시기 시작했어요.

 

자몽이 커피랑 원래 이렇게 잘 어울렸어?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 향을 맡았을 때 자몽 향이 그렇게 크게 나지는 않았어요. 향만 얼핏 맡아보면 평범한 커피였어요. 아래 깔려 있는 붉은 자몽청과 커피를 섞어서 한 모금 마셨어요. 그때 매우 깜짝 놀랐어요.

 

원래 자몽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커피 같아!

 

자몽향과 커피는 매우 잘 어울렸어요. 자몽향과 커피는 원래 하나였던 것 같았어요. 둘 사이의 경계가 없었어요. 자몽향도 느껴지고 커피향도 느껴지는데 둘이 만나는 지점은 완벽히 하나로 녹아서 자몽향에서 커피향으로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었어요. 자몽청을 추가로 넣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엔가 자몽향이 진하게 나는 커피 열매가 존재할 것 같았어요.

 

커피는 달콤하고 고소했어요. 산미가 강한 커피는 아니었어요. 매우 고소했어요. 자몽 특유의 쓴맛도 커피와 섞이자 원래 커피가 그렇게 혓바닥을 가볍게 툭 치는 것 같은 쓴맛이 있는 커피의 원래 있던 쓴맛처럼 느껴졌어요.

 

"이거 엄청 대단한데?"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는 상당히 신기하면서 맛있었어요. 자몽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환상적으로 마실 맛이었어요. 자몽과 커피의 조합이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일부러 자몽청 넣어서 만든 커피가 아니라 애초에 자몽향 나는 커피로 만든 라떼처럼 느껴졌어요. 여행 가서 신기한 음료가 있다고 들어가서 주문해본 음료가 결과가 매우 좋았어요. 다음에 경주에 다시 간다면 오브스토리지 자몽 에스프레소 라떼를 또 마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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