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8 우즈베키스탄 히바 토슈 호블리 궁전

좀좀이 2012. 11. 1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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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에는 아침 일찍 우르겐치로 넘어가 우르겐치를 조금 둘러보고 갈까 생각중이었기 때문에 일단 주변에 있는 것은 빨리 보고 끝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바로 동문 Polvon darvoza 으로 나가지 않고 토슈 호블리 궁전 Tosh hovli saroyi 부터 보고 가기로 결정했어요.



마드라사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에서 왼쪽으로 가면 토슈 호블리 궁전이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었어요.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에서 토슈 호블리 궁전 가는 길에는 기념품 좌판이 많이 있었어요. 그리고 한쪽에서는 무언가 금속을 계속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기념품 가게 뒤쪽에서는 직접 손으로 기념품을 만들고 있었어요. 여기 저기서 물건을 만드는 소리, 관광객들의 북적이는 소리로 조용하지는 않은 거리였어요. 성수기가 거의 끝날 즈음에 와서 사람도 적당히 있고 관광지 분위기도 적당히 나는 시기라 생각했는데 이 길만은 아직도 성수기인 것 같았어요.


직접 만든 기념품들을 팔고 있어서 몇 개 사고 싶었지만 가격이 생각보다 많이 비쌌어요. 수공예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비싼 것은 아니었으나 섣불리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 그래서 몇 번 흥정을 시도해보다 가격이 생각보다는 높아서 그만두었어요. 흥정을 하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뒤돌아서는데 가게 주인이 알아서 더 깎아주었어요. 하지만 구입하지는 않았어요.


쿠틀룩 무로드 이녹 마드라사 바로 옆에는 1688-1834년에 지어진 호자 셰베르디보이 마드라사 Xo'ja Sheberdiboy madrasasi 가 있었어요. 금속을 두드려대는 소리는 이 건물 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여기 안쪽 보수 공사 하나?'


소리가 나는 곳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어요. 안쪽은 대장간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응, 어서 와."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었어요. 이 길에서 금속 두드리는 소리가 났던 원인은 바로 이곳이 구리 제품을 만드는 대장간이었기 때문이었어요. 대장간을 가볍게 둘러보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개인 관광객은 거의 없고 대부분 단체 관광객이었어요. 그래서 단체 관광객이 거리로 나오면 사람이 북적이고, 단체 관광객이 어디론가 들어가면 사람이 거의 없는 썰렁한 거리가 되었어요. 단체 관광객이 있고 없고에 따라 거리의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변하는 것도 꽤 재미있게 보였어요. 단체 관광객과 엇박자로만 다니면 쾌적하게 다닐 수 있었어요. 단체 관광객과 겹치지만 않으면 되는데, 부하라는 워낙 커서 단체 관광객 돌아다녀야 티도 안 났고, 히바는 좁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것이라 단체 관광객 한 팀만 나와도 거리가 꽉 찬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도 단체 관광객이 돌아다녀서 좋은 점이라면 가게와 유적, 박물관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



1832년 지어진 Olloqulixon Karvon saroyi 앞에서 단체 관광객이 사라진 한적한 거리에서 흰 모스크를 한 장 찍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1832~38년에 지어진 토슈 호블리 궁전 Tosh Hovli saroyi 에 들어갔어요. 토슈 호블리 궁전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돌 정원 궁전'. 이곳은 방이 162개 있는 궁전으로 하렘이었던 곳이었어요. 이 궁전은 올로쿨리 칸이 지은 궁전이었어요. '하렘'이라고 하면 서양인들의 환상에서 시작된 이상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지만, 원래 하렘은 그냥 왕의 생활 궁전 정도 되는 곳. 여자들이 모여 사는 곳은 맞는데 퇴폐적인 곳이 아니라 그냥 생활하는 곳이며, 외부에 보여주지 않는 곳으로, 이것은 문화적 차이에 불과해요. 우리가 손님이 왔을 때 집 구경하러 온 사람이 아닌 한 부부 침실까지 다 보여주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 생각하시면 되요.


이 궁전을 지은 올로쿨리 칸은 이 궁전을 짓던 첫 번째 건축가를 2년 안에 궁전을 완공시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형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 건물은 ㄷ자 구조로, 정문에서 왼쪽은 정실 4명이 지내던 공간, 오른쪽은 후궁 및 관리인, 시종들이 지내던 공간이었어요.


토슈 호블리 궁전


안으로 들어가자 화려한 공간이 펼쳐졌어요. 그래서 천천히 둘러보려는데 뒤에서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우루루 들어왔어요. 서양인 단체 관광객 한 팀도 모자라서 인도에서 온 듯한 사람들까지 들어왔어요.


'저기 올라가 있어야지.'



신기하게 관광객들은 2층으로는 올라오지 않고 1층에서만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이쪽이 바로 정실 부인 4명이 살던 방들이에요. 제가 서 있던 곳은 후궁과 궁녀, 시종 및 관리인들이 살던 부분. 관광객들이 대충 줄어들 때까지 2층에서 적당히 쉬며 구경하다 단체 관광객들이 나가기 시작하자 아래로 내려와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Tosh Hovli saroyi


이것이 칸의 정실 부인 4명이 살던 곳.


하렘


이쪽이 후궁, 궁녀, 시종, 관리인들이 살던 곳. 두 구역의 차이가 꽤 컸어요. 같은 높이인데 정실 부인들은 통째로 하나씩 주고, 후궁, 궁녀, 시종, 관리인들에게는 2층으로 나누어서 그 안에서 북적이며 살게 해 놓았어요.


내부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들어가 보았어요.







내부에 전시실도 있었어요.



"마네킹이라도 좀 세워놓지."


옛날 히바 직업의 모습을 이렇게 전시해 놓았어요. 여러 가지 직업과 그 작업장을 간단히 전시해 놓은 곳이었어요. 문제는 이것만 보아서는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어요. 사진 속 옷 만드는 작업장처럼 쉽게 그려볼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려보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어요. 마네킹 한두 개만 이 전시실 안에 있었다면 훨씬 이해도 쉽고 재미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이곳 전시실에는 오직 도구만 있어서 큰 흥미를 끌지 못했어요. 이런 민속과 관련된 것에는 최소한 마네킹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어요. 전시된 것을 보며 전시된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엉뚱한 우즈베키스탄에서 마네킹이 얼마나 비싼지에 관심이 더 가게 만든 전시실이었어요.



토슈 호블리 궁전 마당에 있는 우물에서는 아직도 물이 나오고 있었어요. 이 궁전을 관리하시는 아주머니께서 바닥에 물을 뿌리기 위해 우물에서 물을 길으셨어요. 아주머니께서는 우물에서 길은 물을 토슈 호블리 궁전 입구에 뿌리셨어요.


토슈 호블리 궁전에서 나와 동문 Polvon Darvoza 로 갔어요.




동문에 온 이유는 히바 구경 동선이 서문 Ota Darvoza 에서 동문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어서 구경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된다는 것 때문이었어요. 동문 앞에는 시장이 있었어요. 이 동문 앞이 예전에는 노예 시장이었던 곳. 히바 칸국은 열심히 주변 지나가는 사람을 털어먹으며 살았는데, 재물은 털어서 자기가 가지고, 사람은 노예로 팔았어요. 당시 가장 인기가 좋았던 노예는 러시아인 노예. 힘이 좋아서 인기가 꽤 있었다고 해요. 물론 이 노예 사냥을 구실로 19세기에 러시아가 히바 칸국을 점령해버리구요. 19세기에 러시아의 보호령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자치국의 형태는 유지했고, 아예 러시아에 흡수되어 버린 것은 1920년 소련에 의해서였어요.


"온 김에 우르겐치 가는 차나 물어볼까?"



동문 옆에는 다른 지역으로 가는 다마스가 서 있었어요. 아까 어디에서 우르겐치 가는 다마스를 탈 수 있는지 자세히 듣지는 못했지만 여기 와 보니 왠지 이 주변 어디에선가 우르겐치 가는 다마스를 탈 수 있을 거 같았어요.


"안녕하세요. 말씀 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물론이요."


지나가던 아저씨께 인사를 드리고 질문 좀 여쭈어보아도 되냐고 물어보았어요. 아저씨께서는 당연히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여기에서 우르겐치 가는 다마스 어디에 있나요?"

"그거? 여기서 쭉 가면 있어."



아저씨께서는 동문으로 나와서 왼쪽으로 꺾어서 끝까지 쭉 걸어가면 거기에 우르겐치 가는 다마스가 많이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이로써 내일 우르겐치 가는 것 역시 쉽게 해결되었어요. 아까 탑에 올라갔다와서 다리가 얼얼한 것과 부하라에서 설사에 시달렸다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매우 쉽고 순조롭게 풀려나갔어요. 확실히 말이 통하니 거의 우리나라 여행하는 정도 수준 정도의 난이도였어요. 이 나라 여행시 유의사항인 택시는 이용을 안 하고, 환전은 평소에도 하던 거라 평소처럼 타슈켄트에서 다 하고 오니 그렇게 어려울 것이 없었어요. 히바에서 우르겐치까지 택시로 얼마 큰 돈은 안 내겠지만, 4인분을 내고 혼자 타는 것도, 다른 사람들 기다리는 것도 제게는 못마땅한 선택이었구요.


성 외곽으로 북문 Bog'cha darvoza 까지 갈까 하다가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서 성벽을 따라 북문으로 가기로 했어요.





그렇게 많이 걸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금새 북문까지 왔어요. 동문 Polvon darvoza 에서 북문 Bog'cha darvoza 으로 가는 길에는 볼 게 거의 없었거든요. 그냥 성벽이 어떻게 생겼는지 바로 옆에서 감상하며 사람 사는 곳을 쭉 따라 걸어가는 길이었어요.


bog'cha darvoza


서문 Ota darvoza 과 동문 Polvon darvoza 에 비해 정말 수수하게 생긴 북문 Bog'cha darvoza. 여기 오니 히바가 단순한 유적지 및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 사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아이들은 하교 시간이라 집에 가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아침 일찍 학교 가서 이제 집에 가는데, 저는 오후반이라서 정오에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외국 여행 다닐 때에는 참 부지런해져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부터 돌아다니는데, 여행 일정도 널널하고 우즈베키스탄 안이다보니 저의 원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 일정을 보내고 있었어요. 여행을 다니며 다시 부지런한 아침형 인간이 될 줄 알았는데 이번 여행은 꼭 그렇지도 않았어요. 일어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하는 상황들이 많았지만, 일어나서 점심 즈음까지 쉬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결국 활동의 시작은 점심때.


북문 Bog'cha darvoza 의 특징은 이쪽이 히바 외성인 디샨 칼아로 가는 길이라는 것 외에 성벽에 올라가 동문이나 서문쪽으로 걸어볼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khiva


히바


정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산한 곳. 경치는 그럭 저럭 괜찮은 편이었어요.



사진 가운데 멀리 보이는 것이 동문 Polvon darvoza, 오른쪽 가장 높은 탑이 이슬롬 호자 미노라, 그 옆에 보이는 조금 낮은 탑이 주마 미노라.


"빨리 디샨 칼아 보고 오크 샤이흐 보보 보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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