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삼대악산 (2010)

삼대악산 - 06 설악산

좀좀이 2011. 11. 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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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천불동 계곡. 천불동 계곡을 걸으며 뭔가 불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조금 올라간다 싶으면 올라온 만큼 다시 내려갔어요. 다시 올라간다 싶으면 또 올라간 만큼 내려갔어요. 산을 올라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올라간다는 것인데 올라간 만큼 계속 내려가니 고도는 얼마 높아지지 않은 거 같았어요.


예전에는 정말 힘들었다고 하는데 계단을 잘 만들어 놓아서 산책로 같았어요. 거기에 적당히 걷다 쉬고 다시 걷다 쉬고 쉬면서 계속 소시지와 초콜릿을 뜯어 먹었어요. 등산을 하는 건지 계곡에 놀러와 계속 먹고 뒹굴거리는지 분간이 안 되는 산행이었어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말 그대로 천국이었어요. 소시지와 초콜릿은 잔뜩 남아있어서 먹어도 먹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어요. 날은 시원하고 공기는 상쾌했어요. 진짜 산행이라고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쉬고 놀고 먹었어요. 계속 처묵처묵 먹어대며 놀았어요. 그래도 나름 산길을 걷는 거라 땀이 나기 시작했고, 앉아서 참외를 먹기로 했어요.



여기에서 진짜 무협지 찍어도 되겠다.”


정말 무협지를 찍어도 될 풍경들. 이런 곳에는 무시무시한 도적 집단이 웅크리고 있는 장소에요. 들어오는 길은 오직 하나, 등산로. 여기만 딱 틀어막고 자기들끼리 이상한 독약을 만들고 사람들을 납치하고 하면 딱 좋을 장소였어요. 참외를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계속 경치를 감상했어요. 지금까지 본 풍경들 가지고도 충분히 무협지 한 편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비선대에서는 경공을 연습하고 계곡에서 정신수련을 하고 지금 쉬고 있는 이곳 도적들과 대결을 하러 오는 거에요. 자연스럽게 나오는 스토리. 참외를 먹고 있는데 다람쥐가 주변으로 다가왔어요. 사람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자꾸 참외를 바라보는 거 같아서 참외를 조금 뜯어서 다람쥐에게 던져주었어요.


설마 먹겠어.”


그런데 진짜 먹었어요. 참외 조각을 던져주자 놀란 듯 도망치나 싶더니 참외 조각을 주워서 갉아먹기 시작했어요.


가자.”


또 걷기 시작했어요. 놀고 쉬고 먹으면서 가도 등산 표지판에 나온 시간보다 일찍 가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큰 걱정이 없었어요. 비경은 계속 이어졌어요.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 보자마자 그냥 풍덩 뛰어들고 싶었어요. 옷은 걸으면 땀에 젖고 쉬면 금방 말랐어요. 날이 크게 덥지 않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서 확실히 쾌적한 날씨 속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었어요. 행복한 산행은 이어졌어요. 딱 하나 빼구요.



낙석주의.


공포의 낙석. 돌이 떨어졌던 흔적을 찾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고, 더 무서웠던 것은 왠지 돌이 떨어질 것 같이 생긴 곳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생각보다 많이 보이는 낙석의 공포.


돌 떨어지면 우리 둘 다 끝장이네?”

조금 멀리 떨어져서 걸을까? 낙석 발생하면 한 명은 살아야지.”


산을 많이 다닌 것이 아니라 이런 낙석의 위험은 사실상 처음이었어요. 더욱이 딱 봐도 왠지 낙석이 잘 발생하게 생겼어요. 게다가 이 산에서 낙석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어요. 보통 ‘~하면 큰 일 난다!’라고 겁을 주면 쉽게 겁먹지는 않아요. 그리고 지레짐작으로 이렇게 되어서 나쁜 일이 일어날 거야라고 겁을 먹는 것 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다지 무섭지 않아요. 하지만 딱 실제 사례를 보여주고 경고를 하면 이야기가 달라요. 이것은 공갈이 아니에요. 운 나쁘게 당했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실제 일어난 일이므로 어느 정도 조심해야할 필요가 있어요. 설악산에서의 낙석 공포는 처음 것도, 두 번째 것도 아니었어요. 정확히 세 번째 것이었어요. 천불동 계곡 다리가 낙석으로 무너진 사진을 낙석 사고 발생 전과 발생 후 사진을 비교해주며 경고하는 표지판이 있었어요. 그렇게 증거를 들이대며 조심하라고 경고해서 더욱 무서웠던 것이었어요.


, 저거 봐!”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들어버린 풍경이 나타났어요.


저거는 여기가 너무 험해서 못 치웠나?”


낙석 경고 표지판에 나왔던 무너진 다리. 사진으로만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거라 믿었어요.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어요. 무너진 다리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놓았어요. 무너진 다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 둘 다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낙석 진짜 무서운데?”



돌멩이나 바위가 떨어질까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걸었어요. 이렇게 철로 통로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절대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길을 걷자



천당폭포!


드디어 천불동 계곡의 끝 천당폭포에 도착했어요. 오전 1040.


- 천당폭포는 천불동 계곡의 마지막 폭포로 예전에는 아주 험준하여 일반 관광객은 도저히 접근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안전시설을 설치하여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속세에서 온갖 고난을 겪다가 이곳에 이르면 마치 천당에 온 것 같다고하여 천당폭포라 한다 -


표지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어요. 주변은 정말 인간이 걸을 길이 없었어요. 여기까지 솔직히 매우 쉽게 왔어요. 하나도 지치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푹 쉬면서 많이 먹어가며 온 것도 있지만 일단 길을 다 정비해 놓았어요. 힘든 것이라면 계단을 올라가는 정도였어요. 그 외에는 힘들 것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철로 된 통로를 걷는 거에요. 그러나 그게 없었다면여기까지 오기 위해 암벽을 타야 했어요. 그냥 어떻게 될 수준이 아니었어요. 잡을 것도 마땅치 않고 경사도 심했어요. 더욱이 바닥은 반들반들해 보이는 바위.


진짜 여기 이렇게 해놓지 않았으면 못 왔겠다.”

이런 데는 이런 거 없으면 우리가 갈 곳이 아닌데?”


이름이 왜 천당폭포인지 이해가 되었어요. 이 길이 없었을 때 이 폭포를 본 사람들은 정말 천당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여기 이후부터는 등산로가 쉬워진다고 했어요. 도저히 인간이 올 수 없을 것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은 이 폭포를 보며 드디어 지옥 끝이다!’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고향에서 큼지막한 폭포를 보았던 우리에게 천당폭포는 정말 조그만 폭포였어요.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이 깊은 산 속에, 그것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험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 산 속에서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었어요.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계단도 끝인가 보다.”

그러게. 천당폭포도 나왔으니 이제부터는 그래도 계단 때문에 고생하지 않겠지.”

잠깐우리 귀면암 봤냐?”

귀면암?”


표지판에는 천당폭포 전에 귀면암이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귀면암을 보지 못했어요. 귀면암은 대체 어디 간 거지? 아마 보기는 보았을 거에요. 문제는 우리가 뭔지도 모르고 지나쳤다는 것. 귀면암이 무엇인지 확인하러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거리를 걸어와 버렸어요.


그리고 이 천당폭포는 계속 우리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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