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5 우즈베키스탄 우르겐치

좀좀이 2012. 11. 1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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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에게 여권과 기차표를 보여주고 검문소를 통과했어요. 이제 진짜 부하라 여행은 끝이 났어요.


"아...하루만 더 있었으면..."



Bukhara


포기하면 편한데 포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포기를 하지 않을 상황도 아니었어요. 지금 여기에서 뛰쳐나간다면 남은 기차표 전부 취소해야 했어요. 이것은 더 큰 일. 선택지는 기차를 타고 히바로 가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이것은 선택이고 말고가 없는 문제였어요. 여행 계획에서 3일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방법이 없었어요. 부하라발 우르겐치행 기차는 일주일에 딱 한 대 - 수요일 밤에만 있었으니까요. 히바 일정을 줄이고 부하라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기는 했어요. 기차표가 남아 있을 지 모르기는 했지만 목요일 밤에 우르겐치발 부하라행 기차가 있었거든요. 이 기차 역시 일주일에 딱 한 대.


'들어가야지.'


히바 일정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어요. 부하라야 타슈켄트 사는 사람 입장에서 주말에 밤기차를 타고 와서 보고 다시 밤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방법이라도 있었어요. 그러나 히바는 그런 방법이 아예 없었어요. 히바는 정말로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타슈켄트에서 18시간 기차를 탈 각오를 하고 가야 하는 곳. 사마르칸트, 부하라는 이번에 다 못 보더라도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만들 수 있었지만, 히바는 아니었어요. 히바는 일반적으로 편도 92달러 짜리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 히바 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번에 다 보아야 했어요. 게다가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을 길게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다녀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매우 좋았다고 한 도시였어요.


"들어가자. 나중에 다시 오든가 해야지."


기차역 입구에서 수하물 검사를 받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는 희안하게 매표소가 기차역 안에 있네?"


우즈베키스탄 기차역은 일반적으로 매표소와 기차역이 분리되어 있어요. 기차역은 철저히 통제하는 구역이기 때문에 들어가기 매우 까다로워요. 그래서 매표소와 기차를 타는 기차역은 분리되어 있고, 기차를 타는 기차역은 기차표가 없으면 아예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희안하게 매표소가 기차역 안에 있어서 기차표 사러 가기 위해서도 보안 검색을 받아야 했어요.


'혹시 이래서 부하라 시내에 기차표 파는 사무실이 있었던 건가?'


매표소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기차표에 도장을 찍어주는 곳이 있었어요. 여기에서 도장을 받고 밖으로 나갔어요.


기차역에서 저와 같이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딱 보아도 관광객들.


'진짜 심심한 밤이 되겠구나. 잠이나 푹 자야겠다.'


현지인들과 같은 방을 타야 같이 대화도 하며 놀고, 정보도 얻을 수 있는데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기차 자체가 올해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특별히 관광철에만 운행하는 기차였어요. 제가 만난 현지인들 모두 부하라에서 우르겐치 (히바) 가는 기차가 있냐고 놀랐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현지인들은 이 기차가 있다는 것 자체를 잘 몰랐어요. 여행자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를 안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단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싫었어요. 가뜩이나 영어를 많이 잊어버린데다 우즈베키스탄까지 와서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20분 정도 기다리자 기차가 들어왔어요. 제가 타야할 객차로 가는데 역무원이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무슨 일인가 하고 역무원에게 갔더니 따라오라고 했어요. 역무원이 데려간 곳은 1등칸.


"너 여기에서 잘래? 여기는 TV도 있고 매우 좋은 방이야."

"아니요. 그냥 제 자리에서 잘래요."


TV가 있다고 해도 밤에 TV를 틀어놓고 갈 것도 아니었고, 며칠 동안 야간 이동할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하룻밤 기차에서 잠을 자는 것. 굳이 좋은 방에서 잘 필요가 없었어요. 누워서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하고 있었거든요. 정말 며칠간 기차에 갇혀 있어야 한다면 차이가 크게 느껴지겠지만 제가 누워 있을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타기로 한 칸에 갔어요. 누가 들어오나 기다렸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정말로 혼자 타고 가는 기차. 불은 다른 때보다 더욱 침침했어요. 원래 제가 잘 칸은 2층이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혼자 멍하니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어요. 오늘밤은 정말 조용히 혼자 보내겠구나. 혹시 다른 역에서 사람이 탈 건가? 일단 1층 좌석을 들고 그 아래에 짐을 집어넣었어요.


기차가 출발했어요. 직원이 돌아다니며 표를 검사하고 도장이 찍힌 부분을 떼어갔어요. 문을 닫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분'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분'은 이불과 침대보, 베갯보를 주는 직원. 이것을 받아야 잠자리를 만들고 드러누워 자는 것이었거든요.


'오늘은 왜 안 주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었어요. 이 사람이 돌아다니면 밖에서 인기척이 날 텐데 인기척이 아예 없었어요.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다보았어요.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모든 탑승객이 빨리 잠을 청하려고 하는 듯 했어요. 문을 닫은 후 자리에 드러누웠어요. 줄 거라면 주고, 안 줄 거라면 안 주겠지.


밤 10시 40분을 조금 넘긴 시각. 기차가 나보이 역에 도착했어요.


Navoiy


부하라에서 우르겐치 가는 기차 노선 대부분이 투르크메니스탄 영토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기차가 나보이까지 - 즉 사마르칸트 방향으로 거슬러갔다가 방향을 틀어 우르겐치까지 가는데, 이 방향을 돌리는 지점이 바로 나보이였어요. 나보이에서는 혹시 사람이 탈 건가 기다리고 있는데 역시나 사람이 타지 않았어요. 기차에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었어요. 나보이 이후에는 사람이 탈 구간이 없었어요. 이후부터는 별로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역. 게다가 관광객이라면 더더욱 가지 않는 지역이다보니 사실상 이제 탈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서 문을 잠그고 의자에 드러누웠어요.


"어...추워!"


2012년 9월 27일을 알려준 것은 갑작스러운 찬바람. 자다가 추워서 깨어났어요. 새벽이 되자 갑자기 찬바람이 윙윙 기차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어요. 2층에서 잘 때에는 찬바람이 기차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모르고 잘 잤어요. 오히려 타슈켄트에서 부하라 갈 때에는 전이나 이번이나 더워서 혼났어요. 부하라로 넘어올 때 1층에서 주무신 우즈벡인 아저씨께서 새벽에 조금 추웠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그냥 그 아저씨께서 더위를 잘 못 참으시는 거라 생각하고 넘겼는데 1층에서 잠을 자 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찬바람은 1층으로 슝슝 들어오고 있었어요.


'2층으로 기어올라갈까?'


그러나 귀찮았어요. 참고 자기에는 약간 추웠지만 그렇다고 잠을 청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몸을 새우처럼 움츠리고 가을 외투를 거꾸로 입었어요. 이러면 혹시나 모를 도난도 방지되고 이불을 덮는 효과도 있어서 일석이조. 그렇게 오들오들 떨며 잠을 청했어요.


아침 6시 반. 다시 일어났어요. 온몸이 찌뿌둥했어요.


'치사하게 이불도 안 주나...'


사실 기차에서 주는 이불은 별 소용이 없어보였어요. 침대보와 똑같은 얇은 천 하나 주는데 그게 이불이었어요. 하지만 그 얇은 천조각 하나의 소중함을 밤새 크게 느꼈어요. 역시 잠을 잘 때에는 그게 신문지이든 천조각이든 뭐든 간에 '덮고 자는 것'과 '안 덮고 자는 것'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온몸으로 배웠어요. 객실에서 카메라 가방만 챙겨 화장실로 갔어요. 세수를 하며 머리를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했어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모자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쓰지는 않았어요.


'오늘은 모자를 쓸까, 말까?'


모자를 쓴다면 굳이 머리에 물을 발라 대충 정리할 필요가 없었어요. 게다가 머리를 정리하려면 찬물을 잔뜩 머리카락에 바르고 다 누른 다음에 그대로 물을 말려야 하는데 밤새 추위를 느끼고 자서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이동할 때 모자만큼 걸리적거리는 것도 적었어요. 게다가 이 동네 마슈르트카가 대형 승합차일지 다마스일지도 모르는 상황. 다마스에다 뒷좌석에 타게 된다면 보나마나 모자 때문에 짜증 많이 나겠지? 이동하다가 모자를 떨어트리면 그것도 짜증나는 일일테고.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도둑맞지 않고 순전히 내가 실수로 잃어버린 것은 오직 모자 뿐. 버스에 놓고 내리고, 기차에 놓고 내리고, 모자 떨어졌는데 어디 갔는지 찾지 못하고...얌전히 모자를 잘 쓰고 다닐 수 있다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짜증을 더하는 행동이었어요.


머리에 차가운 물을 덕지덕지 바르며 단정한 머리를 만들었어요. 그래보았자 머리를 몽땅 꽉 눌러서 지저분하게 보이지만 않게 하는 것이었어요.


'유럽 여행 다닐 때에는 기차 화장실에서 머리 매일 감고 다녔는데...'


예전 7박 35일 유럽 여행하던 때가 생각났어요. 그때는 기차 화장실에서 머리를 열심히 감으며 돌아다녔어요. 35일 여행 중 오직 7일만 숙소에서 자고 그 외에는 전부 야간 이동을 했는데, 그 가운데 제가 머리를 안 감은 날은 오직 버스로 야간 이동을 했을 때였어요. 아니, 버스로 야간 이동하는데 휴게소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을 수 있다면 휴게소 화장실 세면대에서 머리를 감았어요. 지금은 수도꼭지가 물 나오는 곳을 눌러야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여서 머리를 감을 수는 없었어요. 만약 예전처럼 잠은 무조건 이동 수단에서 자겠다고 했다면 머리 감는 문제로 꽤나 고생했을 거였어요.



기차 밖은 사막이었어요.






"아직도 사막이잖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거나 사막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정말 인상적인 풍경이었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닌데다 사막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게 문제. 정말 지루한 풍경이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을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창밖의 사막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하며 주어진 풍경을 즐겼을 거에요. 하지만 제게 사막은 그저 잠이 오게 만드는 무미건조한 풍경.


"그냥 다시 잘까?"


의자에 드러누울까 하는 순간 머리가 아직 다 안 말랐다는 것이 떠올랐어요. 머리가 다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드러누우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엉망이 되요. 이러면 정말 모자를 뒤집어쓰지 않는 한 답이 없었어요. 그래서 별 수 없이 창밖을 계속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요.



"물이다!"


기차가 커다란 강 위를 지나갔어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큰 강에 속하는 강까지는 아니었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정말로 큰 강에 속하는 강이었어요. 다시 잠을 자고 싶게 만드는 사막 풍경만 이어지다가 갑자기 강이 나오자 그렇게 신기하고 좋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강을 건너자 드디어 사람이 살만한 땅이 나왔어요.




"이제 히바 가까워지나 보다."


지금 제가 기차로 가고 있는 곳은 우르겐치. 그러나 우르겐치는 여행자 입장에서 그다지 존재감이 없는 도시였어요. 단지 히바에 가기 위해 비행기, 또는 기차로 가는 도시에 불과했어요. 그리고 이것은 제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르겐치에 가고 있었지만, 우르겐치에 간다는 생각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어요. 우르겐치 간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니 당연히 우르겐치 간다는 말이 나올 리 없었어요. 히바든, 우르겐치든 좋았어요. 풍경을 보니 일단 이 기차가 제가 가야할 방향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점점 사람이 살만한 풍경이 나타나고 있었거든요.



이 정도면 우즈베키스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을 풍경.



여기도 역시나 목화밭이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사는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하는 말이 '목화 없는 동네는 없다'인데, 정말 그 말이 딱 들어맞았어요. 여기도 원래 목화를 할 수 있는 곳은 아닐 거에요. 아랄해로 가는 물을 끌어와서 목화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었을 거에요.



"저건 논인가?"


우즈베키스탄의 극서부 지역인 카라칼팍 자치공화국은 매우 건조하고 사막투성이일 것 같은 땅. 그러나 이 카라칼팍스탄 자치공화국에서 벼가 꽤 많이 생산되요. 이미 추수가 끝난 들판을 보니 왠지 논이 아닌가 싶었어요. 이런 풍경은 이제 너무나 친숙했고 정말 사람이 사는 땅의 풍경 같았어요.




시계를 보니 이제 슬슬 기차역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어요. 의자를 들고 아래에 있던 제 짐을 꺼내었어요.



무슨 공장 같은 것이 나타났고



공사중인 기차역이 나타났어요.


"이게 우르겐치역은 아니겠지."


아무리 보아도 이건 그냥 공사중인 역이었어요. 설마 여기에서 내리라고 할 거 같지는 않았어요. 아직 도착 예정 시간보다 10분 이상 남아 있었어요. 이것은 절대 우르겐치 기차역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문 너머로 사람들이 복도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우르겐치에요?"

"예. 우르겐치에요."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어요. 역에서 내린 사람은 거의 모두 관광객. 관광객들은 저마다 쇠구슬이 자석에 끌려가 달라붙는 것처럼 택시 기사에게 끌려갔어요. 여기에서 히바까지는 부하라역에서 부하라 시내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택시 기사와 얼마에 갈 지를 놓고 흥정을 했어요. 그래서 제 눈에 그들은 '택시 기사'라는 자석에 자연스럽게 끌려가 달라붙는 '쇠구슬'처럼 보였어요. 뿌리치고 말고가 없이 택시 기사가 다가오면 알아서 택시 기사에게 가서 흥정을 하고 있었어요.


제게도 택시 기사가 다가왔어요. 하지만 택시 필요없다고 하고 역에서 빠져나왔어요.


우르겐치역


역에서 빠져나와 오른쪽으로 가자 버스 정거장이 있었어요.


"히바 가요?"

"히바 가려면 데흐콘 보조르 Dehqon bozori 가서 갈아타야 해."

"히바까지 오래 걸려요?"

"금방 가."


그래서 19번 버스에 올라탔어요. 차장은 버스에 올라타라는 말을 'minmoq'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타슈켄트에서 minmoq 은 짐승 위에 올라타는 것이고, 이렇게 자동차 같은 교통 수단에 올라타는 것은 chiqmoq 을 써요. 타슈켄트 사람들은 '깡촌이나 가야 교통 수단에 탄다고 minmoq 이라는 말을 쓴다'고 했는데 여기 와서 직접 들으니 매우 신기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의 억양도 매우 이상했고, '예'를 'ha'라고 하지 않고 'howa'라고 했어요.


'이 사람들 투르크멘 사람들 아니야?'


억양도 'howa'도 투르크멘어와 비슷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투르크멘어와 너무 비슷했어요.


"투르크멘인 여기 많나요?"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에게 물어보았어요.


"여기 투르크멘인들 없어요. 왜요?"

"말이 투르크멘어와 많이 비슷하게 들려서요."

"호라즘 방언이 원래 그래요."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이 호라즘 방언이 원래 그렇다고 간단히 대답해 주었어요. 억양이 참 듣기는 좋았으나 따라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리고 무언가 확실히 표준 우즈베크어와는 차이가 있었어요. 그것을 딱 무엇이라고 집어내지는 못하겠지만, 분명히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 때문에 투르크멘어처럼 들렸어요.


버스에 탄 관광객은 오직 저 뿐이었어요. 아니, 기차에서 같이 나온 사람들 중 오직 저 혼자 버스에 올라탔어요. 그 외 버스를 탄 사람들은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 자체가 워낙 적어서 대충 누가 내렸는지 얼굴 정도는 다 보았는데 현지인들은 거의 없었거든요. 게다가 버스에 탄 사람들은 기차역 출구가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와서 탄 이 지역 사람들이었어요.


버스를 타고 데흐콘 보조르에서 내렸어요. 데흐콘 보조르까지 가는데 10분 조금 넘게 걸렸어요. 차장에게 마슈르트카는 어디에서 타냐고 물어보자 길 건너서 타라고 알려주었어요.


길을 건너가는데 중앙선 분리대 바로 옆에 차를 세워둔 사람들이 저를 불렀어요.


"히바?"

"예. 히바요."

"어서 와!"

"마슈르트카에요?"

"응, 마슈르트카!"



역시나 다마스였어요. 한 가지 행운이라면 아직 아무도 타지 않은 다마스라서 맨 앞자리에 탈 수 있었다는 것이었어요. 다마스 조수석에 가방을 던져놓고 주변 사진을 찍었어요.




"어서 타!"


기사 아저씨가 빨리 타라고 재촉했어요. 잠깐 주변 사진을 찍는 사이에 다마스 안이 거의 다 찼어요. 기사 아저씨는 이제 출발할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몇 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우르겐치 데흐콘 보조르에서 히바로 출발했어요.







도로 상태는 매우 괜찮았어요. 이 정도면 매우 준수한 편이었어요. 다마스는 시원하게 쭉 달렸어요.



'저거 완전 투르크멘인데?'


지역 홍보용 간판에서 가장 왼쪽의 남자 두 명이 쓴 모자를 보니 투르크멘인들이 쓰는 무지 큰 모자와 아주 비슷한 모습이었어요. 아까 버스에서 현지인들이 투르크멘인은 없다고 했지만, 여기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은 그다지 먼 땅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히바 칸국의 다슈오구스를 비롯한 일부 지역은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의 땅이구요. 현지인들이 투르크멘인은 없다고 했으니 투르크멘인을 만나지는 못하겠지만 왠지 투르크멘인들의 문화와 비슷한 문화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어요.


"너 어디에서 내려?"

"히바요."

"히바 어디?"

"오타 다르보자요."


히바


마슈르트카 운전기사는 저를 오타 다르보자에 내려주었어요. 그리고 만약 마슈르트카로 우르겐치에 가고 싶다면 다른 곳에서 내리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런데 어디에서 타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했어요.


'나중에 현지인들한테 물어보아야겠구나.'


운전기사가 어디에서 내리라고 했는데 마슈르트카가 떠난 후 정작 가장 중요한 '어디에서' 우르겐치행 마슈르트카를 타야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지만 오타 다르보자에서 우르겐치행 마슈르트카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정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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