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28 베트남 하노이 유교 문화 유적 문묘 Văn Miếu

좀좀이 2021. 6. 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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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서 친구에게 줄 선물을 정리했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곧 결혼할 거라고 했어요.

 

'축의금이라도 줘야 하나?'

 

지금껏 결혼식 축의금을 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주변에서 장례식이 있으면 찾아가서 조의금을 내고 온 적은 몇 번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 친구, 동기 결혼식은 가본 일도 없고 있어도 안 갔어요. 축의금을 내지도 않았어요. 장례식은 갈 수 있으면 반드시 찾아가지만 결혼식은 제 가족 결혼식 아닌 이상 안 갔어요. 그 원칙은 항상 지켜오고 있었어요.

 

세상에 장례식은 오직 한 번이에요.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했다고 하나 죽은 사람을 되살려낼 방법은 없어요. 모든 사람에게 장례식이란 인생에서 단 한 번 있는 일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친구의 가족이 사망해서 장례식에 가야 한다면 갈 수 있는 한 갔어요. 정 안 되면 조의금이라도 보내주었어요. 하지만 결혼은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는 일이 깨진 지 오래에요. 주변을 봐도, 들리는 소리나 인터넷을 봐도 결혼하기는 어렵지만 이혼은 쉽고 재혼하는 사람도 많아요. 인생에 한 번 뿐이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도와주는 게 맞겠지만 이제 결혼은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는 보장이 없었어요. 심지어 무슨 유행따라 이혼하는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남들 결혼식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 만날 베트남인 친구는 그냥 친구가 아니었어요. 저한테는 베트남어 선생님이었어요. 베트남어를 몇 마디라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 친구 덕분이었어요. 이 친구한테 베트남어를 배웠어요. 베트남 와서 베트남어 몇 마디라도 하면서 돌아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혼자 베트남어 공부할 때 이 친구가 채팅으로 엄청나게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었어요. 제 베트남어 스승이었어요.

 

'이건 얼마라도 주는 게 맞겠지.'

 

그냥 친구였다면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하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거에요. 그렇지만 이 친구는 친구이자 제게 베트남어를 알려준 선생님 같은 존재였어요. 제대로 잘 알려준 과외 선생님 같은 것은 아니고 제가 베트남어 물어보면 알려주고 제가 보고 있는 지문 있으면 읽어서 녹음해서 보내주는 정도였지만 그게 어디에요. 과거 혼자 외국어 공부할 때 엄청나게 헤메고 고생했던 거에 비하면 정말 매우 도움되었어요. 뭐든 상관없이 누군가 제게 무언가 알려주고 가르쳐주었고 그것을 제가 받아들였다면 그게 제게는 선생님이고 스승이에요. 저는 그 사람의 제자구요. 반대로 백날 천날 저한테 알려주고 가르쳐줘봐야 제가 안 받아들인다면 선생이고 교수고 제 기준에서는 스승이 아니에요. 당연히 저는 그 사람의 제자가 아니구요.

 

훼에서 구입한 카드에 편지를 썼어요. 간단히 결혼 축하하고 이 카드 속에 끼워진 돈은 결혼 축의금이라고 썼어요. 이 친구가 과연 '축의금'이라는 말을 알 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자기가 사전 찾아보며 해석하겠죠. 정말 '축의금'이라는 말 뜻을 못 찾는다면 나중에 제게 물어볼 거구요. 하지만 '결혼 축하해요' 라는 말이 있으니 설령 '축의금'이 뭔 말인지 몰라도 눈치껏 카드 속에 끼워넣은 미국 달러 지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거에요. 미국 달러를 카드 사이에 끼워넣고 카드를 봉투에 집어넣었어요. 카드는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이 담긴 비닐 봉지에 같이 집어넣었어요.

 

"슬슬 나가봐야겠다."

 

베트남인 친구와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되었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만날 위치를 보내주었어요. 숙소에서 호안끼엠 호수 정확히 대각선 맞은편 쪽이었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자신의 다른 친구 한 명도 같이 데리고 온다고 했어요.

 

'그래, 차라리 그게 낫지.'

 

베트남인 친구는 여자였어요. 그래서 대학 동기인 친구를 데려오는 모양이었어요. 분명히 베트남인 친구는 오토바이를 타고 올 거였어요. 베트남인 친구만 오면 다니기 엄청 불편할 거였어요. 저와 베트남인 친구가 같이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그것도 나름 참 서로에게 뻘쭘할 거였어요. 그럴 바에는 베트남인 친구가 다른 친구 한 명을 데려오는 것이 저도 편했어요. 더욱이 이 베트남인 친구는 여자인데다 결혼이 코앞이었어요.

 

'이럴 거면 진작에 다른 친구 데려온다고 알려주든가.'

 

한국에서 들고 온 선물을 나눴어요. 베트남인 친구가 데리고 나올 친구는 남자였어요. 한국에서 베트남 오기 전에 진작에 알려줬다면 저를 보러 같이 올 친구의 친구 선물도 뭔가 따로 들고 왔을 거였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여자라서 선물로 주려고 복숭아 핸드크림만 몇 개 사왔어요. 그나마 이게 다행이었어요. 몇 개 들고 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두어 개 정도 베트남인 남자에게 주면 될 거였어요. 자기가 쓰든 자기 여자친구에게 주든 어머니나 누이에게 주든 알아서 하겠죠. 그리 어울리는 선물은 아니었지만 선물로 단품이 아니라 복숭아 핸드크림을 몇 개 들고 온 게 다행이었어요.

 

호안끼엠 호수로 갔어요. 약속 장소로 갔어요.

 

"좀좀이님이세요?"

 

난생 처음 보는 베트남인 여자가 제게 활짝 웃으며 인사했어요.

 

어?

너 누구야?

 

사진으로 봤던 베트남인 친구와 전혀 다른 베트남인 여자가 저를 불렀어요. 자신의 졸업 사진이라고 보여줬던 모습과 완전히 달랐어요. 과거에 사진으로 봤을 때는 완전한 남방계 얼굴이었어요. 그런데 실제 보니 북방계 얼굴에 가까웠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자신의 대학교 동기라면서 같이 온 베트남인 남자를 소개했어요. 서로 인사했어요.

 

"이 친구 한국어 알아요?"

"아니요."

"아..."

"영어는 조금 할 줄 알아요."

 

베트남인 친구가 데려온 베트남인 남자와 서로 물어봤어요.

 

"Can you speak english?"

"Yes."

"Can you speak english?"

"Yes."

 

저와 베트남인 남자는 서로의 눈빛으로 이야기했어요.

 

우리는 말이 전혀 안 통해.

쟤 없으면 우리는 대화 하나도 안 될 거야.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생존 베트남어 수준인데 베트남인 남자와 대화가 제대로 될 리 없었어요. 베트남인 남자에게 '얼마에요', '어디 가나요' 이런 거 이야기할 리가 없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초면이라 할 말이 진짜 없는데 언어의 장벽까지 가로막고 있었어요. 베트남인 남자가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더욱 중요한 점은 저는 베트남인의 영어 발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고, 베트남인 남자는 본인 스스로 말하지 않아도 한국인의 영어 발음을 경험해봤을 리가 없었어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베트남인 친구가 물어봤어요.

 

"가방 사야 해요. 가방 고장났어요. 가방 사는 것 도와줄 수 있어요?"

 

아침에 호안끼엠 호수에서 지나가던 베트남인이 긴급 수선해준 가방끈을 보여줬어요.

 

"그러면 점심 먹고 시장 가요."

"그래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서로 베트남어로 대화했어요. 못 알아들었어요. 그러나 눈치껏 어디 가서 점심 먹을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 몇몇 단어는 알아들었어요. 아마 무슨 식당 지금 가도 괜찮을지 이야기하는 모양이었어요. 둘이 이야기하더니 가자고 했어요. 베트남인 남자와 오토바이를 탔어요. 베트남인 남자 뒤에 앉아서 말없이 오토바이 타고 갔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오토바이를 주차시켰어요. 돼지고기를 숯불로 굽는 냄새가 진동했어요. 여기저기에서 고기 굽는 숯불 연기가 뿌옇게 피어오르고 있었어요.

 

'고기?'

 

베트남식 숯불구이? 냄새는 엄청 맛있는 냄새였어요. 구운 고기, 그것도 숯불로 구운 고기라면 아주 대환영이에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저를 식당으로 데려갔어요. 아까 둘이 이야기한 것은 점심시간인데 거기 가서 과연 밥 먹을 수 있겠냐고 이야기한 것 같았어요. 식당 입구는 화재 발생 수준으로 엄청난 고기 굽는 숯불 연기가 자욱했어요. 식당 안에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어요. 빈 자리가 아예 없었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식당 종업원과 뭔가 이야기했어요. 1층에서 조금 기다렸어요. 조금 기다리자 종업원이 2층으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2층에 딱 한 테이블 비어 있었어요. 방금 막 다른 손님들이 먹고 나가서 빈 자리였어요. 종업원이 거기 앉으라고 했어요.

 

"여기 분 짜 맛집이에요."

"분 짜? 분 짜가 뭐에요?"

"고기를 국수와 같이 먹어요...어떻게 설명하지?"

 

베트남 올 때 베트남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알아오지 않았어요. 분 짜 Bún Chả 라는 음식은 이때 처음 알았어요. 분 짜가 나오기 전에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에게 한국에서 들고 온 선물을 주었어요.

 

조금 기다리자 분짜가 나왔어요. 구운 고기가 든 국물과 쌀국수 면발 중 분 Bún 사리가 올라가 있는 접시가 나왔어요. 분 사리를 가위로 자른 후 젓가락으로 집어서 구운 고기가 들어 있는 국물에 푹 찍어먹는 음식이었어요. 냉면 맛과 매우 비슷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 한국에서 팔면 엄청나게 잘 팔릴 것 같았어요.

 

'이러니 한국에서 베트남 음식이 엄청 유명하지.'

 

베트남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 중 한국인 입에 안 맞는 것도 있어요.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수와 라임이 있어요. 한국인 중에는 사람에 따라 고수와 라임을 정말 못 먹는 사람이 꽤 있어요. 저도 고수는 잘 먹지만 라임은 진짜 못 먹어요. 그런데 이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었어요. 베트남에서도 라임과 고수는 취향에 따라 넣어서 먹게 해줬어요. 길거리 쌀국수 가게를 보면 라임즙과 고수를 넣어서 먹는 사람도 있고 안 넣고 그냥 먹는 사람도 있었어요. 베트남인들 사이에서도 음식에 라임즙과 고수를 넣는 것은 취향껏 선택하는 부분 같았어요. 라임즙과 고수만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아주 좋아할 맛이었어요. 한국인들이 거부감 느낄 이상한 맛의 조합은 없으면서 독특한 맛이라 별미로 즐겨먹기 좋은 맛이었어요.

 

분 짜를 먹은 후 식당에서 나왔어요. 이제 제 가방 문제를 해결할 차례였어요.

 

"동쑤안 시장으로 가요."

 

베트남인 남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탔어요. 역시 조용히 갔어요. 동쑤언 시장으로 갔어요.

 

 

베트남 하노이 동쑤언 시장 Chợ Đồng Xuân 은 하노이에서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해요. 여기 이름은 들어봤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를 따라 동쑤언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동쑤언 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시장 내부는 시장 외부보다는 한산한 편이었어요.

 

 

 

 

이제 제일 중요한 가방을 구입할 차례. 시장 안을 돌아다니며 가방 가게를 찾았어요. 옆으로 메고 다니는 노트북 가방 같은 것이어야 했어요. 실제 노트북 컴퓨터를 넣고 다니기 때문에 방수와 충격흡수가 매우 중요했어요. 여기에 기존에 옆으로 메고 다니던 노트북 가방은 노트북 하나 넣으면 가방이 꽉 찼어요. 기존에 사용하던 가방보다 조금 더 큰 가방을 찾았어요.

 

마음에 드는 가방을 찾았어요. 이제부터 베트남인 친구가 활약할 차례였어요. 이 친구가 어떻게 흥정하는지 직접 보고 익힐 계획이었어요. 베트남은 흥정 문화에요. 흥정을 잘 해야 해요. 훼에서 만난 베트남인 친구는 제가 베트남 여행 오기 전에 시장에 가면 보통 50% 정도 깎는다고 생각하고 흥정하지만 저는 외국인이라 70% 정도로 깎으면 잘 깎는 거라고 알려줬어요.

 

'뭐야? 가격 하나도 못 깎잖아!'

 

가게 주인이 가방 정가를 부른 건지 요지부동이었어요. 분명히 훼에서 만난 베트남인 친구도 그렇고 지금 같이 다니고 있는 베트남인 친구도 그렇고 흥정하면 깎을 수 있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가게 주인은 절대 안 깎아줬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격은 요지부동이었어요.

 

'그냥 저 가격에 사자.'

 

아무리 봐도 가격을 못 깎을 거 같았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어요. 저한테 선물 받은 것도 있고 현지인의 흥정 실력을 보여준다고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매달리는 것 같았어요. 가게 주인은 아주 단호했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베트남어로 열심히 흥정을 걸어보고 협상하려 해도 가게 주인은 베트남어로 뭐라고 열심히 이야기하며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여기에서 흥정에 계속 매달려봐야 답은 안 나올 거였어요. 그렇다고 미룰 수도 없었어요. 가방 문제는 당장 급했어요. 아침에 응급조치 받은 가방이 언제까지 계속 잘 버텨줄지 의문이었어요. 당장은 아주 튼튼했어요. 그러나 정말 재수없게 하필 공항 같은 곳에서 끈이 다시 떨어져버리면 진짜 골치아파질 거였어요. 응급조치가 매우 튼튼하게 잘 되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대신 가방에 짐을 제대로 넣을 수 없었어요.

 

"괜찮아요. 그냥 저 가격에 살께요."

"아니에요. 이거 분명히 깎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

 

그렇게 쉽게 깎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면 진작에 깎았을 거에요. 어쩌면 한참 더 버텼다면 가격을 깎았을 수도 있어요. 30분에서 한 시간 물고 늘어지면 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대신 그러면 상처 뿐인 영광이죠. 저한테 시간이 그렇게 엄청나게 남아돌지는 않았어요.

 

 

가방을 사고 동쑤언 시장에서 나왔어요.

 

"가고 싶은 곳 있어요?"

"글쎄요..."

 

베트남인 친구와 호치민 묘소? 그건 아니었어요. 일주사? 그것도 별로였어요.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었어요.

 

2014년 12월 23일. 이 당시만 해도 한국인들이 베트남 여행 간다고 하면 호치민을 중심으로 베트남 남부 여행을 많이 갔어요. 이 당시 대표적인 베트남 여행지는 나짱, 무이네, 호치민이었어요. 하노이로 여행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하노이는 고사하고 베트남 중부 관광도시 다낭으로 여행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다낭은 베트남 전쟁 때문에 어떻게 알려지기라도 했지, 베트남 북부는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안중에서 벗어나 있었어요. 오죽하면 하노이는 정말 볼 것 없는 도시라는 말이 많았고, 하노이 여행 정보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그나마 베트남 가이드북 보고 하노이 가서 보기로 한 것들이 있었어요. 호치민 묘소, 일주사 같은 것이었어요. 이건 다음날 다 둘러볼 예정이었어요. 이런 곳을 지금 당장 베트남인 친구와 갈 필요는 없었어요.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베트남어로 이야기했어요.

 

"반 미에우 갔어요?"

"예? 그게 어디에요?"

"하노이에 있어요."

"오늘 막 하노이 왔어요."

"그러면 반 미에우 가요."

 

제게 오토바이에 올라타라고 했어요. 베트남인 남자 오토바이 뒷좌석에 탔어요.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어요. 베트남인 남자가 제게 말을 걸었어요. 영어로 더듬더듬 말을 걸었고, 저도 영어로 더듬더듬 대답했어요. 그러나 정확히 세 마디 만에 대화가 끊겼어요. 서로가 서로의 영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헬멧을 쓰고 있었고, 거리는 차와 오토바이 때문에 시끄러워서 소리가 잘 들리지도 않았어요. 둘이 사이좋게 대화를 포기했어요.

 

2014년 12월 23일 오후 2시 30분, 어딘가에 도착했어요. '반 미에우'라고 했어요.

 

 

"아, 문묘!"

 

베트남인 친구가 저를 데리고 간 곳은 베트남 하노이 문묘였어요. 문묘는 한자로 文廟에요. 베트남어로는 Văn Miếu '반 미에우'라고 해요. 베트남도 엄연한 한자 문화권이에요. 그렇지만 베트남어로 한자 읽는 방법과 한국어로 한자 읽는 방법은 소리가 완전히 달라요. 당장 文을 한국에서는 '문'이라고 읽고 베트남에서는 '반'이라고 읽어요. 적당히 다르면 여러 번 듣고 보고 하면서 감을 잡겠지만 한국식 한자 읽기와 베트남식 한자 읽기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특히 이건 전혀 감도 못 잡을 차이였어요.

 

'문'과 '반'에서 같은 발음이라고는 받침의 n발음 뿐이에요. 베트남의 한자 이름은 越南 월남이에요. '월'과 '비엣'도 엄청 멀게 느껴지는 발음이에요. 아무리 음성학적 지식이 있어서 w와 v 발음은 같은 계열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건 머리로 아는 거고 실전에서는 바로 계산되지 않아요. 그래도 월과 비엣은 진짜 나은 편이에요. 한국식 한자 읽기에서 ㄹ받침이 베트남어에서 t로 간다는 것, 한국식 한자 읽기에서 w 발음이 베트남어에서 v로 간다는 것을 알면 이건 그래도 유추해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문'과 '반'의 발음 차이는 까마득히 멀어요. w와 v 발음이 언어에 따라 서로 왔다갔다 하는 경우야 흔하지만 m과 v 발음이 서로 왔다갔다하는 경우는 제가 공부해본 언어들 중에서는 못 봤어요. u모음과 a모음이 왔다갔다하는 경우도 못 봤구요.

 

문묘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도 한자 많네.'

 

베트남 문묘 안에는 한자가 많이 있었어요.

 

 

베트남 하노이 문묘는 공자를 모신 사당이에요. 베트남도 엄연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해당해요. 한자문화권이자 유교문화권이에요.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속해요.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최남단이 베트남이에요.

 

베트남인 친구는 제게 한국어로 문묘에 대해 설명해주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문묘에 대해 한국어로 설명해주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고급 한국어를 알아야 했어요. 아쉽게도 베트남인 친구의 한국어 실력은 일상회화를 말하는 수준이었어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지만 유교, 과거 같은 단어를 어떻게 알겠어요. 대부분의 어학 교재는 전통문화, 역사 관련 단어가 최상급, 초고급에 자리잡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런 단어는 사실 일상생활에서 전혀 쓸모없는 단어들이거든요. 외국인에 따라 '도지사', '시장', '군수'라는 단어는 중요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도지사, 시장, 군수 단어를 잘 알아야하는 외국인이라 해도 현감, 사또까지 알 필요는 없어요.

 

영어로 설명해주려 해도 답이 없었어요. 영어 공부할 때 셰익스피어는 배워도 무슨 사또, 이방 이런 건 안 배워요. 과거시험 장원급제, 암행어사 출도 이런 걸 영어로 설명해보려고 해보세요. 우리도 죽어나요.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외국인한테 행정고시 수석과 9급 공무원 시험 수석의 차이를 영어로 설명하려고 하면 할 말 엄청 길어지는데 현재도 아니고 어디 조선시대 과거시험 이야기해보려고 해보세요. 똑같은 문제였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열심히 어떻게든 설명해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어요. 과거에 여기에서 기도도 지내고 공부도 가르치던 대학교라고만 말했어요.

 

"이건 중국 글자인데...못 읽어요."

 

베트남인 친구는 한자 앞에서 중국 글자라고 하며 못 읽는다고 말했어요. 어려운 한자도 아니었어요. 매우 쉬운 한자였어요.

 

'베트남인들은 한자 아예 모르는구나.'

 

후에에서 만난 친구도 한자를 아예 못 읽었어요. 하노이에서 만난 친구도 한자를 아예 못 읽었어요. 둘 다 대학교 다니는 베트남인이었어요. 정규 과목 중 한자 관련된 것은 아예 없는 모양이었어요. 한국인 기준으로 보면 너무 기초적인 한자라 초등학교 저학년생도 읽을 한자인데 아예 무슨 한자인지 모르고 중국 글자라고만 했어요. 훼에서 친구와 만나서 왕궁을 돌아다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나 제가 읽고 설명해줬어요.

 

"중국어도 아세요?"

"아니요. 한국에서는 저 글자 배워요."

 

베트남인 친구가 제 대답을 어떻게 이해했을지 궁금했어요. 한국인들은 모두 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운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베트남도 12간지가 있었어요.

 

 

베트남 하노이 문묘 안을 돌아다녔어요.

 

 

 

문묘 대성전 안으로 들어갔어요.

 

 

대성전으로 들어가자 한자로 적혀 있는 현판이 보였어요.

 

 

萬世師表

 

'만세사표? 저거 무슨 말이지?'

 

한자는 읽을 수 있었어요. 만세사표. 하지만 저도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나중에 師表가 무슨 말인지 찾아보니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이 높아, 세상(世上) 사람의 모범(模範)이 될 만한 사람'이라고 나왔어요. 萬世師表 만세사표 뜻은 영원히 모범이 되는 인물이었어요.

 

 

대성전에는 공자가 모셔져 있었어요.

 

 

 

 

'사진으로 보던 중국 문화유산이랑 왜 이렇게 비슷하지?'

 

베트남 하노이 문묘는 베트남 훼에서 봤던 유적들보다 사진으로만 봐왔던 중국 문화유산들과 훨씬 더 매우 엄청나게 비슷했어요. 인천 차이나타운 가서 봤던 도교 사원과 많이 닮았어요.

 

'원래 베트남이 이런 곳이었나?'

 

아무리 베트남이 유교문화권에 한자문화권이고 동북아시아 문화권이라고 학원 원생들에게 가르쳐왔지만 매우 당황스러웠어요. 훼에서도 적응이 전혀 안 되었는데 문묘를 둘러보자 적응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당황스러웠어요. 제가 베트남 여행 가기 전에 상상하던 베트남 모습과 완전히 달랐어요. 베트남 여행 오기 전까지 베트남 이미지는 물소가 뛰어놀고 날씬한 몸매에 머리가 뾰족한 불상이 여기 저기 있는 동남아시아 이미지와 거의 똑같았어요. 이런 이미지에 아오자이 입고 돌아다니는 베트남 여자들이 있는 곳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실제 베트남은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어요. 돌아다니면 돌아다닐 수록 머리 속에서 상상하던 베트남 이미지와 실제 베트남 모습과의 간극은 걷잡을 수 없이 더 커졌어요.

 

 

금속으로 만든 북이 보였어요. 베트남 여행 오기 전에 읽으려고 구입했다가 몇 페이지 읽지 못한 동남아시아 역사 서적에서 본 것이 떠올랐어요.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화적 특징 중 하나가 금속으로 만든 북이라고 했어요. 금속 북은 문묘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제가 상상하던 동남아시아 이미지와 맞아떨어지는 문화유산이었어요.

 

 

대형 향로에서는 향이 타고 있었어요.

 

 

베트남 하노이는 수상 인형극이 유명해요. 수상 인형극에서 사용되는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베트남 문묘를 쭉 둘러보고 다시 밖을 향해 걸어갔어요.

 

과거 베트남이 원래 이런 문화경관이었나?

 

베트남인 친구에게 내색하지 않았지만 머리 속은 온통 베트남 과거 문화가 원래 이런 모습이었는지 궁금했어요. 중국 문화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어요. 지금까지 봐온 것만 놓고 보면 누가 뭐래도 베트남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이었어요. 중국 문화유산 사진이라고 봐왔던 것과 엄청나게 비슷했어요. 그동안 동남아시아라고 봐왔던 사진들과 베트남 유적들은 거리가 매우 멀었어요.

 

베트남 과거 유적은 한국 과거 유적과 엄청나게 이질적일 거라 상상하며 베트남에 여행왔어요. 이질적이기는 했어요. 한국인 기준으로 보면 중국풍 유적이었어요. 중국 유적과 베트남 유적 차이를 정확히 알고 본다면 많은 차이점을 찾아내고 이런 것이 베트남 고유의 과거 유적 특징이라고 이야기했을 거에요. 하지만 베트남 유적이 중국 문화 영향을 상당히 강하게 받았다는 점은 제 추측 및 예상과 완벽히 반대되는 사실이었어요.

 

이 충격은 엄청나게 강했어요. 여행을 계속 하다 보면 충격이 줄어들 줄 알았어요. 그러나 문묘를 둘러보면서 충격이 더 강해졌어요.

 

짜장면이라고 해서 당연히 달고 짭짤할 거라 예상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시고 매운 맛만 가득한 음식을 먹었을 때의 충격.

 

이 정도였어요. 짜장면이라고 해서 당연히 평소 먹던 짜장면과 비슷하게 달고 짭짤한 맛일 거라 예상하고 한 입 먹었는데 전혀 엉뚱한 시고 매운맛만 가득한 음식을 먹었을 때 느낄 충격. 그렇게 엄청나게 강한 충격이었어요. 예상과 조금 다른 수준이 아니라 완벽히 정반대로 달랐어요.

 

충격이 더욱 컸던 이유는 한자를 모르는 베트남인들의 모습 때문이었어요. 이 정도로 중국 문화를 상당히 강하게 받았다면 기초 한자 10개 정도는 알 법도 해요. 하지만 한자를 아예 몰랐어요. 못 배운 사람들도 아니고 대학교 다니는 나름 엘리트인 친구들이 한자를 단 한 글자도 못 읽고 중국 글자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제가 한자를 읽자 '한자'를 아는 것이 아니라 '중국어'를 안다고 생각했어요.

 

 

 

 

문묘에서 나왔어요. 베트남인 친구가 코코넛 젤리를 먹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러자고 했어요.

 

 

이 음식 이름은 Thạch dừa 였어요. 맛은 은근히 달착지근했어요. 코코넛 워터를 가공해 만든 젤리였어요. 코코넛 젤리만 먹어도 되고, 벽면에 붙어 있는 코코넛 과육을 같이 파먹어도 되요. 식감이 매우 좋았어요.

 

코코넛 젤리까지 먹자 베트남인 친구와 베트남인 남자가 저를 다시 호안끼엠 호수로 데려다주었어요. 이제 헤어질 시간이었어요. 작별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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