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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이자가 오늘 들어올 건가, 내일 들어올 건가?"


난생 처음 채권 이자를 받는 날이었어요. 처음 받는 것이라 이자가 정확히 당일에 들어오는지 익일에 들어오는지 몰랐어요. 한국투자증권 어플로 장내채권을 매수했으니 한국투자증권 어플을 보면 알 수 있을 거였어요.


오후 2시 44분. 한국투자증권에서 문자메세지가 왔어요.


대한항공 사채 이자 입금


[사채이자 지급안내]

고객님, 금일은 보유한 채권의 이자지급일 입니다.


순간 몇 초간 정신이 멍해졌어요. 정신이 멍해진 이유는 바로 '사채 이자'라는 말 때문이었어요. 영화, 드라마, 뉴스에서나 보던 '사채'. 제 인생과 단 하나도 관련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채'라는 단어가 이제는 저와 연관있는 단어가 되었어요. 단순히 연관있는 정도가 아니라 제가 채권자 - 바로 빚쟁이였어요.


저는 대한항공 채권 중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를 2020년 10월 27일에 10주 매수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과세기준가격 - 과표가 낮아서 83원을 받았어요. 다음에는 과표구분이 82라서 세금 10원을 징수당하고 72원을 받을 거에요.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2020년 11월 사채 이자 입금


"채권 한 번 해볼까?"


주식 거래 몇 번 해보고 깨달았어요. 저는 주식 트레이딩에 소질이 아예 없었어요. 게다가 주식은 주가가 자꾸 변하기 때문에 상당히 신경쓰였어요. 미국처럼 배당금이라도 분기별로 지급하면 그래도 시세 변동에 둔감해요. 배당금으로 원금 일부 회수했다고 퉁쳐버리면 되니까요. 그렇지만 한국 주식은 거의 정부 연배당이에요. 1년에 딱 한 번 - 그것도 12월에 배당락일이 다 몰려 있어요. 그러다보니 이건 오르면 무조건 일단 익절해야만 했어요. 물리면 답없구요.


갑자기 채권에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동안 채권은 항상 정말 멀고도 먼 존재라고만 여겼어요. 그러나 주식 투자를 시작하면서 경제 뉴스를 보기 시작하자 '채권'이라는 단어가 매우 익숙해졌어요. 채권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10월 초였어요. 제1금융권 은행 자유적금을 가입하려다 깜짝 놀랐어요.


"무슨 금리가 1%도 안 돼?"


제1금융권 정기예금 및 적금 이자는 온갖 지저분한 옵션을 다 붙여야 1%를 넘길 수 있었어요. 제1금융권 정기예금이나 적금 이자를 1% 넘기기 위해서는 얼마 이상 카드 사용 금액 달성이라거나 자동 이체 실적이 있거나 기타 뭐에 가입하거나 해야 했어요.


'이제는 진짜 채권도 손대야하는 시대구나.'


은행이자로는 돈을 아예 모을 수 없었어요. 1%도 아니고 0.x%니까요. 이건 정기예금이나 적금 가입해봤자 이자로 은행 수수료도 안 나오게 생겼어요. 이대로는 진짜 답이 없었어요. 금리가 주식에 몰빵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주식은 원금을 절대 보장해주지 않으니까요. 그나마 조금 안전한 상품이라면 증시 전체 주가 지수 추종 패시브 ETF가 있어요. 이건 한국 경제가 완전히 나락가지만 않으면 가입하자마자 조금 지나면 돈 받기 시작하는 연금보험처럼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도 시세가 많이 변하기 때문에 원금 보장은 당연히 안 되요. 제 아무리 증시 전체 주가 지수 추종 패시브 ETF에 투자한다 해도 매도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주식보다 조금 덜 위험하지 원금 손실보는 상태에서 매도해야 할 수 있었어요. 이것도 정기예금, 적금 대신 활용할 건 아니었어요.


결심했어요. 채권을 매수하기로 했어요. 채권 거래에 대해 알아봤어요.


채권은 10주에 1만원이 기준가에요.

장내채권은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어요.

이표채는 때 되면 쿠폰금리에 따라 이자를 따박따박 받을 수 있어요.

확정금리 이표채는 가장 단순한 형태에요.


오직 이거 4개만 아는 상태에서 한국투자증권 어플에 접속해 장내채권 매매에 도전해봤어요. 채권 종류는 얼마 없었어요. 그 중 대한항공 채권이 보였어요.


'10주에 1만원이 기준가랬지? 9960원쯤 넣으면 될 건가?'


대한항공 채권을 9960원에 10주 매수주문 넣었어요.


"이거 적응 하나도 안 되네?"


주식, ETF 매매하다가 채권 매매로 넘어오니 적응이 하나도 안 되었어요. 일단 호가창 제시 가격은 10주 기준이었어요. 그러나 실제 주문은 1주도 가능했어요. 채권은 액면가 1000원 단위가 기준이거든요. 주식 호가창 제시 가격이 1주 기준인 것과 달랐어요. 1주 단위로 주문하려면 호가창 제시 가격을 10으로 나눠야 했고, 호가창 제시 가격을 정확히 매수하려면 반대로 10주를 주문해야 했어요. 예를 들어서 대한항공 90-1 호가창에 10,000 매도 주문이 있어서 그것을 1만원어치 매수하고 싶다면 주문수량을 10주 입력해야 해요. 주식 매매하던 것 생각해서 10,000원에 1주 매수 입력하면 1,000원어치 체결되요.


호가가 아예 없는 채권이 대부분이었고, 호가가 있는 채권도 매수호가와 매도호가 간격이 아프리카 소말리아부터 미국까지의 거리만큼 넓었어요. 움직임도 없었어요. 그냥 멎어 있었어요. 이게 제대로 돌아가는 장인지조차 의문스러웠어요. 무슨 폭삭 망해버린 암호화폐 거래소 호가창 보는 것 같았어요.


당연히 체결 안 되었어요. 제가 봐도 체결 안 되는 게 정상이었어요. 호가창이 움직이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호가가 뭐 들어오든가 나가든가 하는 거라도 있어야죠. 아침에 본 호가창은 장 종료될 때까지 그대로였고, 체결 건수는 없었어요.


"뭔 채권이야."


그래서 채권 매수를 포기했어요. 1만원보다 비싼 채권은 어떻게 그런 가격이 형성될 수 있는지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어요. 1만원보다 웃돈 주고 채권 사는 짓만큼은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한동안 채권을 잊고 있었어요. 장내채권 거래는 아예 거들떠도 안 봤어요. 호가창이 변하는 게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하죠. 한국투자증권 뱅키스 어플에서는 어떤 채권에 호가가 있는지 볼 수 없었어요. 장내 채권 목록을 보면 채권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 중에서 일단 호가가 있는 채권을 찾아내는 것이 일인데 한국투자증권 뱅키스 어플에서는 하나하나 일일이 다 들어가서 확인해야 했어요. 거래가 하나라도 있으면 체결가가 있기 때문에 가격이 있다고 나오지만 그런 건 정말 소수였고 대부분이 채권 가격이 0원으로 나오고 있었어요.


채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KOSPI200 ETF 단타 매매만 게임 즐기듯 하며 원금을 회수했어요. 당장 진입가 32320원인 한화자산운용 ARIRANG 200 ETF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했거든요. 물려도 적당히 물려야지, 진입가 32320원이면 동네 멍멍이, 야옹이도 매수 안 할 가격이었어요. 그래서 원금 회수를 해서 어떻게든 잔여원금을 줄여서 손익분기점을 최대한 아래로 끌어내려야 했어요.


2020년 10월 27일이었어요. 이날은 분기배당을 실시하는 KOSPI200 지수 추종 ETF인 삼성 KODEX200, 미래에셋 TIGER200, KB KBSTAR200, 농협 HANARO200, 한화 ARIRANG200, 교보 파워200 의 분배락 전전날이었어요. 다음날에는 안전하게 분기 배당을 받기 위해 분기배당을 실시하는 KOSPI200 지수 추종 ETF 단타 매매를 안 할 계획이었어요.


'뭐 없나?'


그때 문득 채권이 떠올랐어요. 장내채권 매매창에 들어가봤어요. 대한항공 채권이 많이 있었어요. 그 중에 대한항공 90-1 채권이 보였어요. 채권 체결 가격이 1만원보다 아래였어요. 대한항공 90-1 채권 거래창에 들어가서 매수호가 9960원에 10주 매수 주문을 넣었어요.


"체결되었다!"


대한항공 채권 매수


제 인생 최초로 제가 무려 '채권자'라는 지위를 획득한 순간이었어요.


2020년 10월 27일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거래창은 이렇게 끝났어요.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거래


채권은 10주에 1만원이 기준이고 만기때까지 버티면 만기 원금 상환으로 1만원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적당히 9960원에 주문을 넣어봤는데 체결되었어요. 채권에 대해 뭘 알고 거래한 것이 아니라 1만원 미만이면 만기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수익이라는 것만 알고 호가를 제시했어요. 그게 체결되었어요.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는 표면이자율이 3.3%에요. 이자 지급은 확정금리 이표채에요. 채권 종류는 일반사채에요.


대한항공90-1 채권은 채권 종류 중 일반사채이고, 발행일은 2019년 11월 6일, 만기 상환일은 2021년 11월 5일이에요. 이자 지급 주기는 3개월이에요. 신용등급은 BBB+ 에요.


'이거 수익 얼마나 되지?'


일단 1만원보다 아래에서 매수했으니 만기까지 버티면 40원 이득이었어요. 정확히 제 예상 수익이 얼마인지 궁금해졌어요. 한국투자은행 뱅키스 어플에서 장내채권 투자체험 기능을 이용해 계산해봤어요.


대한항공90-1 사채 투자 수익


"어? 총 투자수익률 4.1%? 이거 완전 횡재한 거 아니야?"


2020년 10월 27일에 매수해서 2021년 11월 5일 만기 상환일이면 얼추 1년이에요. 1년에 이율 4.1%였어요. 그것도 세후 4.1%요.


당장 11월 6일이 되면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투자 수익으로 사채 이자를 입금받을 거였어요.


대한항공이 망하겠어?


아시아나 항공이 망한다 하더라도 대한항공은 절대 못 망해요. 여기는 망할 수가 없어요. 대한항공이 망하면 우리나라 항공 물류 전체가 망했다는 소리니까요. 우리나라는 북한 때문에 사실상 섬나라나 다름없는데 항공물류가 망하면 나라가 멀쩡하겠어요? 대한항공이 망할 지경이면 우리나라 자체가 이미 망했다고 봐야 할 거에요. 항공물류는 단순히 승객과 승객 수하물만 운송하는 것이 아니라 항공화물도 운송해요. 항공화물조차 제대로 운송할 것이 없어서 대한항공이 나자빠지면 우리나라 경제 상황이 어떻겠어요.


게다가 제가 대한항공90-1 채권 원금을 제대로 상환받지 못할 지경이면 저보다 먼저 이미 망한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우글우글해요. 바로 대한항공 주식 보유자들이요. 제가 원금 상환을 제대로 못 받을 지경이라면 대한항공 주식은 이미 작살나 있을 거에요. 채권은 빚문서라서 무조건 갚아야하거든요. 유상증자를 하든 전환사채를 발행하든 별 짓을 다 해서라도 채권 만기 상환은 지켜야 해요. 그러니까 저는 이 채권을 날려도 매우 후순위로 날려요. 제 앞에 있는 주식 투자자 등등이 다 날린 후에 제가 날려요.


그러나 대한항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망할 일이 없어보였어요. 대한항공이 망하기 전에 다른 항공사들이 먼저 망할 거고, 그러면 대한항공은 젖과 꿀이 흐르고 돈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제주-김포 노선 독점해서 돈 쓸어담아요. 이건 제가 제주도 사람이라서 무지 무지 잘 알아요.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투자 수익


수익률 보고 깜짝 놀란 후였어요.


잠깐만, 나 이제 대한항공 채권자잖아.


그러면 대한항공은 나한테 공식적으로 10,000원 빚졌다는 거네?


그렇다면 대한항공 직원들은 열심히 일해서 때 되면 나한테 이자 줘야 하고 내년 11월 5일에는 만기 상환으로 원금 10,000원과 이자 갚아야한다는 거잖아?


기분이 엄청 이상해졌어요. 저게 틀린 말이 아니에요. 저는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10주를 보유하고 있어요. 제가 아무리 대한항공90-1 회사채 10주를 9,960원에 매수했다고 해도 공식적으로는 대한항공은 제게 갚아야할 빚이 무려 10,000원이나 있어요. 무려 10,000원 씩이나요! 10,000만원이 아니라 10,000만원이요.


대한항공 직원들 중 나한테 1년 동안 1만원 빌려달라고 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도 3개월마다 이자 꼬박꼬박 지불해가면서?


현실에서는 절대 안 일어날 일이에요. 아무리 요즘 항공사가 어려워서 순환 무급 휴직하는 보직들도 있다고 하지만 심지어 무급 휴직중인 사람들 중에서도 저한테 1년 동안 3개월마다 이자 꼬박꼬박 지불할테니 1만원만 꿔달라고 할 사람은 없을 거에요.


그런데 그 거대한, 그 우리나라 최고의 항공사 대한항공이 회사 차원에서 제게 돈을 빌려갔어요요. 그것도 무슨 10,000,000만원도 아니고 단돈 1만원을요. 내년 11월 5일까지 2월, 5월, 8월, 11월에 이자 꼬박꼬박 지급하는 조건으로요. 저는 졸지에 완벽한 대한항공 채권자가 되었어요. 기가 차겠지만 이것이 사실이에요. 저는 대한항공90-1 채권을 10주 보유하고 있으니까요.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매수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채권자이니 대한항공 뉴스에 신경써야 했어요. 그러나 세세한 것 하나하나 다 신경쓸 것까지는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내 채권 만기상환도 못 할 만큼 재정적으로 엄청난 타격이 오는 일이 있냐는 것 뿐이었어요. 나머지는 알 바 아니었어요.


제가 대한항공 주주였다면 당연히 온갖 뉴스 다 찾아서 꼼꼼히 봤을 거에요. 물론 제가 봤을 때 제가 그렇지 않을 확률이 약 90%라 보기는 하지만요. 만약 제가 대한항공 주식을 매수한다면 그건 트레이딩이고 나발이고 다 집어치우고 푹푹 묵혀놓을 생각으로 매수하는 거였을 거고, 뉴스 따위는 신경도 안 썼을 확률이 95%에요. 대한항공 주식을 매수한다면 언젠가는 이 상황 속 세상에서 일부분이라도 정상화되어서 비행기 탑승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는 것 믿고 투자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마나 채권은 아니었어요. 이건 내가 빌려준 돈 못 갚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지만 체크하면 되었어요. 뉴스를 꼼꼼히 체크할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채권 만기 상황도 제대로 못 할 거면 그 전에 주식은 아주 개작살나서 뉴스고 커뮤니티고 아주 발칵 뒤집혀 있을 거였거든요. 대한항공은 단순히 대기업에 불과한 회사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회사이다보니 무슨 소리가 안 들리면 오히려 그게 희소식이었어요.


2020년 11월 5일, 어제였어요. 대한항공이 2020년 3분기 영업이익이 76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고 발표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여객 사업은 부진했지만 화물 사업으로 다행히 영업이익 흑자였대요. 대한항공 채권은 안전하다는 신호였어요.


2020년 11월 6일 - 오늘 드디어 대한항공 채권 대한항공90-1 회사채 확정금리 이표채 일반사채 2020년 11월 사채 이자가 입금되었어요. 한국투자증권에서 보내온 문자메세지에 '사채 이자'라고 되어 있어서 9960원으로 졸지에 사채꾼이 된 건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어요. 그런데 사채꾼이라 해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채권이란 것이 원래 그런 거니까요.


대한항공은 별 문제 없겠죠. 아니, 없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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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좀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익명

    비밀댓글입니다

    2020.11.08 14:34 [ ADDR : EDIT/ DEL : REPLY ]
    • 9960원으로 졸지에 대한항공 채권자 되었어요. 채권 매수 안 했으면 제가 대한항공 채권자 될 일이 죽을 때까지 아마 영원히 없을 건데요 ㅋㅋ;;

      2020.11.08 20:14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