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27 아제르바이잔 바쿠 테제 피르 모스크

좀좀이 2012. 9. 8. 20:46
728x90

호스텔에 돌아와보니 우리와 같이 놀던 터키 청년이 짐을 싸고 있었어요.


"오늘 가?"

"응. 버스로 조지아 가려구."

"지금?"

"아니, 이따 밤에."


터키 청년은 야간 버스 이동을 해서 조지아 트빌리시에 갈 거라고 했어요. 트빌리시 도착하면 새벽 2시라고 했어요.


"너 러시아어 알아?"

"아니."


이 녀석 정말 걱정되네.


이 터키 청년의 계획은 버스에서 내려 밤을 새고 공항으로 가는 것. 러시아 가는 비행기표가 그 시각에 밖에 없어서 그렇게 한다고 했어요. 오늘 바쿠를 구경하고 가느라 그 방법 밖에 없다고 했어요.


너 어제도 머물렀잖아?


야간 이동 자체가 걱정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야간 이동은 피곤해서 문제이지, 위험한 것은 아니니까요. 문제는 트빌리시 도착 시각. 이게 새벽 2시라고 했어요. 이건 피로는 둘째치고 위험한 선택. 이게 위험한 이유는 그 버스가


오르타짤라로 들어간다.


오르타짤라는 매우 애매한 곳에 있어요. 주변에 버스도 제대로 없어요. 지하철은 당연히 없구요. 교통이 참 안 좋고 여행자를 멍청한 호구로 여기는 택시기사가 바글대는 곳이 바로 오르타짤라. 게다가 이 버스 터미널이 좋은 버스 터미널도 아니에요. 작년에 갔던 것과 바뀌지 않았다면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우울한 곳이에요. 건물도 낡았고, 얼핏 보아서는 지금도 사용하는 건물인지 의심스러운 곳이 바로 오르타짤라였어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었어요. 터키 청년은 꼭두새벽에 있는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야 했어요. 이 터키 청년의 계획은 버스 터미널에서 밤을 새다가 첫 차를 타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타는 것.


전날 그렇게 버스로 들어가는 것은 절대 좋지 않다고 알려주었지만 굳이 자기가 그렇게 가겠다고 해서 그냥 놔두었어요.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이 터키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이제 버스 밖에 안 남았구요. 이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하나. 오르타짤라에서 교통 수단을 못 탄다면 오르타짤라에서 나가서 큰 길을 따라 무조건 오른쪽으로 쭉 가는 것. 그러면 이사니 역이 있어요. 이사니 역에만 가면 전철을 타고 공항에 갈 수 있어요. 터키 청년이 전철 첫 차를 타고 공항에 가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나마 현명한 방법은 적당한 시간에 나와 이사니 역까지 걸어가는 것.


터키 청년은 주인 아저씨께 버스 터미널에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주인 아저씨는 버스를 타고 가라고 했어요. 터키 청년은 전철로 가고 싶다고 했어요. 주인 아저씨께서는 전철로 가는 것은 매우 불편하지만, 버스로 가는 것은 매우 편하니 버스로 가라고 알려주었어요. 하지만 터키 청년은 절대 듣지 않았어요. 대충 포기하고 호스텔을 나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든가 하면 되는데 주인 아저씨를 잡고 계속 지하철로 어떻게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주인 아저씨가 화가 났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터키 청년이 백만 번 잘못한 것이었어요. 일단 버스로 가는 게 편하니 버스로 가라는 사람에게 물고 늘어지며 지하철로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 것 자체가 잘못이에요. 이것은 나중에 알게 된 것과 관계 없이 잘못된 태도. 더욱이 아제르바이잔어와 터키어는 많이 유사해서 터키 청년이 주인 아저씨를 잡고 늘어져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두 번째로, 이체리 셰헤르에서 바쿠 버스터미널까지 지하철로 가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지하철역으로는 버스 터미널 근처도 못 가요. 주인 아저씨는 터키 청년이 매우 무례하다고 화를 내었어요.


그러면서 이야기가 주인 아저씨의 과거 이야기로 흘러갔어요. 주인 아저씨는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참전 용사이자 상이 군인. 자기가 탄 차가 대전차 지뢰를 밟아서 아직도 몸에 파편이 박혀 있다고 자기 몸 속에 박혀 있는 파편을 만져보게 해 주셨어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전쟁 이야기를 해주며 한 가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주인 아저씨는 전선에서 단 한 번도 아르메니아인들과 전투를 치르지 않고 러시아인들과만 전투를 치르셨다는 것.


이게 별 거 아닌 거 같은데 사실 이 지역 역사를 알기 위해 꽤 중요한 정보였어요. 소련 붕괴 후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영유권 문제로 시작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처참하게 패배해요. 문제는 이게 전력이나 인구, 국력으로 보았을 때 절대 아르메니아에게 질 수가 없는 전쟁이었다는 것이에요. 이 지역 역사에서 이 문제를 피해갈 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게 이미 끝난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진행중인 '상황'이기 때문에 여행자들도 간략히 알아두는 것이 매우 좋아요. 그런데 질 수 없는 전쟁을 졌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보면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무능하거나, 아르메니아인들이 뛰어나거나, 또는 둘 다 맞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요. 아저씨 말에 의하면 자기는 아르메니아인은 구경도 못했고, 항상 러시아인들과 전투를 치루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자기들이 러시아랑 전투를 치루어서 이기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다고 했어요. 소련이 붕괴되고 좋은 무기와 많은 군용 물자를 다 가져갔기 때문에 보유하고 있던 장비 면에서 이미 러시아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했어요.


이 역사를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어를 아는 것보다 잘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물론 아제르바이잔어를 잘 아는 친구가 옆에서 주인 아저씨의 말을 설명해주기도 했구요. 하지만 터키 청년은 아무 것도 몰라서 눈만 껌뻑거리고, 주인 아저씨께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너 터키인 맞아? 어떻게 한국 애들보다도 모르냐?"


버스 터미널 문제에 이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이야기로 다시 짜증이 난 주인 아저씨. 처음에는 계속 말대꾸하고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던 터키 청년은 주눅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 주인 아저씨는 우즈벡어를 말할 줄은 몰랐지만 알아들으실 수는 있으셨어요. 소련 시절, 모스크바에서 군대 생활을 했는데 그때 우즈벡인들과도 같이 생활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즈벡어를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몇 년 전에는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타슈켄트에 다녀오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주인 아저씨께서 우즈벡어를 알아들으실 수 있다고 하셔서 진짜 우즈벡어로 이야기했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알아들으셨어요. 어려운 문법만 안 쓰면 매우 잘 알아들으셨어요. 드디어 자유롭게 말할 사람 한 명이 생겼어요.


저녁을 먹고 테제 피르 모스크 Təzə Pir Məscidi 에 가기로 했어요.




주사위 게임인 나르드를 즐기는 사람들. 우리나라의 쌍륙과 비슷해요. 이 놀이는 국가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르답니다. 이 주사위 게임에서 제일 좋은 것은 두 주사위 모두 6이 나오는 것. 그리고 이 놀이의 특징은 주사위를 구슬 던지듯 엄지 손가락으로 튕겨서 던져요.



저녁은 MUM (러시아어로는 ЦУМ) 근처에 있는 메르신 카페에 가서 탄투니를 먹었어요. 저녁을 먹었으니 이제 계획대로 테제 피르 모스크에 갈 일만 남았어요.



바쿠의 큰 길은 화려해요. 하지만 테제 피르 모스크는 큰 길에 없어요. 그래서 작은 길로 들어가자 아직 보수가 진행되지 않은 바쿠의 모습이 나타났어요. 큰 길에서 많이 안쪽으로 들어간 것도 아니었어요. 큰 길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런 풍경이 펼쳐졌어요.



몇 걸음 내딛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과거로 흘러가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열심히 개보수 및 신축중인 바쿠에서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곳.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풍경이 딱 맞닿아 있었어요.



왠지 조지아 트빌리시에 온 것 같았어요. 트빌리시에 이것과 비슷한 느낌의 골목이 많았거든요. 바쿠의 화려한 이미지와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 작년에 왔을 때는 가뜩이나 바쿠에 오래 머물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들처럼 제일 중요한 곳만 돌아보고 다른 곳으로 갔어요. 그래서 제 머리 속에는 이때까지도 바쿠의 화려한 모습이 강하게 박혀 있었어요. 트빌리시에서 걸었던 길이 이 느낌과 비슷해 트빌리시에 돌아간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여기도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



지도를 보며 테제 피르 모스크를 찾아갔어요. 길이 허름했지만 테제 피르 모스크를 찾아가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어요. 건물이 낡았다고 도로가 마구 꼬여 있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건물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건물들도 제 생각에는 보수해서 화려해진 건물들과 비슷한 시기에 지은 건물들이에요.


허름한 거리 속에서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 보였어요.



주변의 허름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 보자마자 저게 테제 피르 모스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허름한 건물 속에 있어서 더욱 눈에 띄었어요.



입구로 갔어요. 이렇게만 보면 이 동네는 무지 아름다운 동네. 그러나 뒤를 돌아보면 허름한 동네. 옛날 바쿠를 걷다 현대에 지어진 현대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모스크 입구를 통과했어요. 입구를 통과하는 데에는 아무 제약이 없었어요.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모스크 내부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조용히 둘러보기 좋았어요.


이 모스크는 개보수 및 증축을 한 모스크에요. 그 이유는 이 모스크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모스크이기 때문이에요. 역사적으로 특별한 사건이 있어서 중요하다기 보다는 소련 시절 몇 안 되는 모스크 기능을 했던 모스크이자, 소련 시절 카프카스 지역 이슬람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모스크이기 때문이에요. 공산주의에서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고 하며 없애야할 대상으로 보았어요. 그래서 공산 국가에서는 철저한 종교의 탄압이 이루어졌어요. 세계 최초의 공산 국가였던 소련 역시 마찬가지. 특히 스탈린은 종교를 아주 박멸하려고 했어요. 구소련 지역 역사에서 스탈린 없이 그들의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스탈린은 '민족' 자체를 모두 러시아인화하고, 모든 종교를 아주 뿌리뽑아버리려고 했던 인물. 당연히 이슬람은 철저한 탄압의 대상. 그나마 러시아 정교는 '러시아' 덕분에 비밀리에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가뜩이나 느슨한 율법을 따르던 구 소련 지역의 이슬람은 강력한 러시아화와 종교 탄압으로 그 모습이 많이 바뀌어요. 그 속에서 그나마 지역별로 이슬람의 중심지가 남아 있었는데, 카프카스 지역의 이슬람 중심지가 바로 테제 피르 모스크에요.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 중심지는 하스트 이맘 모스크이구요. 이런 의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국가에서 거대하게 개보수 및 증축한 것이죠.



모스크 건물은 옆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어요.



모스크에 들어가도 되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관리자를 데려왔어요. 관리자는 안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라고 했어요. 그래서 모스크 내부 사진은 찍지 못했어요. 또한 여자는 모스크 내부 출입 금지. 여자는 조그만 여자 기도실에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아제르바이잔의 모스크는 아무나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국가들의 모스크에 비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었어요. 참고로 여자 기도실은 파티마의 손이 걸려 있고, 그 안은 볼 게 아무 것도 없어요.


모스크 안으로 관리자와 들어가자 관리자가 모스크에 대해 아주 간단히 설명해 주었어요. 가장 먼저 한 것은 박수 치기. 박수를 치자 소리가 울렸어요. 관리자는 모스크 구조상 소리가 울려서 어디에서나 똑같이 들린다고 하며 아잔을 직접 암송해 주었어요.


나를 위한 아잔.


이것은 솔직히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단순히 박수를 한 번 치는 것으로도 충분했는데, 저를 위해 아잔을 암송해 주었어요. 아잔은 안에서 울리며 아름다운 소리가 되어 제게 되돌아왔어요. 무수히 많은 모스크 내부에 들어가 보았지만, 저를 위해 아잔을 외워주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안내자가 있다고 해도 대충 건물 설명이나 해주고 이슬람에 대해 설명해주고 끝나는 식이었어요. 하지만 이 안내자분은 제대로 된 아잔을 읊어주었어요.


내부를 설명을 들으며 둘러보고 나오는데 항상 궁금해했던 입구에 쌓여 있던 돌멩이가 보였어요.


"이 돌들 뭐에요?"


코란 경구가 새겨진 돌도 있고, 그냥 돌도 있었어요. 안내자는 이 돌이 예배시 절을 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어요. 바닥에 돌을 놓고, 절을 할 때 돌에 머리를 닿게 하는 것이었어요. 이것은 주로 시아파에서 절할 때 이렇게 해요. 이 절 역시 제게 보여주기 위해 한 것. 이 정도면 정말 사진 못 찍는 불만이 전혀 없어질 만 했어요. 모스크 사진 한 장 못 찍는 것과 저를 위해 아잔을 읊어주고, 절 하는 시범을 보여주는 쪽하고 어느 쪽을 선택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후자에요. 후자는 정말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요.


모스크 건물에서 나왔어요.



바로 이것이 테제 피르 모스크 정면.


"여기는 진짜 잘 왔지?"

"응."


모스크를 많이 보아서 모스크 가자고 하면 인상부터 쓰는 친구도 인정했어요. 여기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정말 가볼 만 한 곳이었어요. 정말 바쿠에서 숨겨진 좋은 장소였어요. 이곳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거든요. 시끄러운 바쿠 거리에서 옛날로 기어들어가 한적함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곳이었어요.


"이왕 온 김에 이맘 후세인 모스크도 볼까?"


친구가 테제 피르 모스크를 마음에 들어 하길래 살짝 꼬드겼어요.


"또?"

"야,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이맘 후세인 모스크도 보고 가자. 어차피 우리 바쿠에서 일정 넘치잖아. 너 나중에 이맘 후세인 모스크 보러 여기 또 올래?"


여기 또 올래?

여기 또 올래?

여기 또 올래?


친구의 심금을 울리는 말 한 마디. 걷는 것을 싫어하는 친구는 가뜩이나 친구가 싫어하는 모스크 구경하러 이쪽에 또 올 거냐고 물어보자 그냥 온 김에 가자고 동의했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 찾아가는 길은 테제 피르 모스크까지 가는 길보다 더 낡고 허름했어요. 시간을 더욱 뒤로 가는 기분이었어요. 게다가 오르막. 해는 뉘엇뉘엇 지고 있었어요.


'해 지면 사진 찍기 고약한데...'


삼각대는 들고 다녀보아야 불편하기만 해서 우즈베키스탄 올 때 아예 들고오지를 않았어요. 들고 온 거라고는 싸구려 접사용 플라스틱 삼각대. 그런데 그거마저도 귀찮아서 이번 여행올 때는 들고 오지 않았어요. 어두워지면 손떨림을 막을 방법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햇빛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이맘 후세인 모스크에 가야 하는데 우리가 가는 것보다 어둠이 우리에게 오는 속도가 더 빨랐어요.



드디어 모스크처럼 생긴 것이 보였어요.




튀지 않는 알록달록한 벽돌들의 조합. 왠지 아르메니아 건물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여기가 바로 이맘 후세인 모스크. 아까 테제 피르 모스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작고 허름한 모스크였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한쪽은 보수중. 내부는 정말 볼 것이 없었어요. 특이한 것은 이것이었어요.




'이거 교회를 개조한 것인가?'


분위기가 왠지 모스크보다는 교회에 가까워 보였어요. 단순히 알록달록한 벽돌이 아르메니아에서 보았던 것들과 비슷해서는 아니었어요. 이 창문...이 입구...



사진 몇 장 찍는데 어둠이 제 어깨를 움켜쥐었어요. 테제 피르 모스크는 정말 바쿠에서 숨겨진 좋은 곳이라고 말할 만 했지만, 이곳은 그냥 기분이 묘해지는 곳이었어요. 어쩌면 그냥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곳이었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에서 조금만 더 가면 화려한 바쿠가 나타나요. 하지만 이맘 후세인 모스크도 그렇고, 이맘 후세인 모스크 주변도 그렇고 이쪽은 너무나 허름해요. 뒤쪽은 고층 빌딩이 세워지고 있는데 이쪽은 보수가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것들이 섞여 있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냥 이상하고 묘한 느낌으로 제게 다가와 그대로 머물러 있었어요.


모스크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나무에서 오디를 따주셨어요. 우리가 아제르바이잔어로 고맙다고 인사하자 아저씨께서 신기해하시며 어디에서 왔냐고 하셨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고 했어요.


"일 때문에?"

"관광이요."

"여행 잘 해."


아저씨께서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어주셔서 기분이 좋아졌어요.


처음 바쿠에 올 때 비싼 물가와 더불어 안 좋은 정보를 접해서 걱정과 긴장을 했어요. 비록 작년에 와서 별 일 없이 잘 보고 갔지만, 이번에 오기 전까지 또 그 사이에 바쿠에서 있었던 동양인 차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게다가 유로비전까지 올해 개최해서 올해는 더 심해진 것 아닌가 걱정을 했어요. 가뜩이나 자존심 높은 사람들에게 정말로 대단한 국제적 행사가 벌어졌으니 이 사람들 코가 하늘을 찌를테고, 그러면 동양인 차별도 더 심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관광객으로 돌아다니는 동안 작년보다 나빠졌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어쩌면 친구와 둘이서 다녔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요. 사실 이 부분은 저 역시 인정해요. 둘이 다니면 아무래도 시비 거는 놈도 적어지기 때문에 그 나라가 얼마나 위험한지 파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이맘 후세인 모스크에서 조금 더 올라가자 거대한 동상이 나왔어요.



"이제 돌아가자."


이체리 셰헤르에서 꽤 많이 왔어요. 어차피 어두워서 사진을 더 이상 찍기도 어려웠고, 급하지도 않았어요.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바쿠 야경을 보러 걸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바쿠 야경을 다시 보는 것은 여행 가장 마지막에 다시 하고 싶었거든요.




이쪽에서 바쿠를 내려다보니 바쿠는 과거-건설중-완성 순으로 되어 있었어요. 해변 쪽은 완성이고 그 위쪽으로 올라갈 수록 시간은 점점 뒤로 흘러가는 모습이었어요. 우리가 돌아가는 길은 다시 시간을 빠르게 흐르게 하는 길.


이체리 셰헤르에 있는 호스텔 근처에 있는 슈퍼에 가서 물과 주스를 사고 호스텔로 돌아왔어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잘 보냈어요. 가장 큰 수확은 바로 테제 피르 모스크를 찾아낸 것. 이 정도면 반나절 빈둥대다 돌아다닌 것치고 성과가 매우 좋았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