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하바라에서 확실히 벗어났어요.
ここは夢の国 ほら
여기는 꿈의 나라, 자,
誰もが魔法にかかっちゃう
모두가 마법에 걸려버려
新しい何が見つけに
새로운 뭔가를 찾기 위해
逢いにきてね~約束よ
만나러 와~ 약속해~
아냐. 이제 노래는 끝났어. 그리고 비도 끝났어. 다시 돌아온 평범한 일본 세계. 우산을 접었어요.
"뭐야? 이거 왜 한국 우산보다 훨씬 후졌어?"
아침에 1000엔이나 주고 구입한 우산. 우산을 접었어요. 우산 천에 잡혀 있는 선에 맞춰 예쁘게 접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처음에 접혀 있어서 잡혀 있던 선에 맞춰서 예쁘게 접히지 않았어요. 게다가 이 우산은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접히는 방식이었어요. 접히기만 하고 우산대가 안으로 쏙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 상태에서 버튼을 누르면 먹통이었어요. 한국에서 몇천원 주고 구입한 우산은 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원단에 처음 잡혀 있는 선대로 접으면 깔끔하게 접혀요. 이건 가격도 저렴하지 않은 것이 원단에 잡혀 있는 선대로 접히지 않았어요. 매우 미운 모양이 되었어요.
'다음에는 우산 절대 안 까먹고 챙겨야지.'
아무리 노력해도 한계가 있었어요. 결국 밉게 접어서 우산을 들고 숙소를 향해 길을 걸어갔어요. 우산 안 챙기고 와서 천 엔 주고 우산 산 것도 속이 쓰린데 그나마도 한국에서 더 싼 값에 주고 산 우산보다 질이 훨씬 못하니 속이 2배로 쓰렸어요.
'왜 한국에는 메이드 카페가 발달하지 않았지?'
우리나라는 '메이드 카페'라는 곳이 없어요. 정말 이 잡듯 뒤져보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곳은 없어요. 일본에서 메이드 카페가 생긴 것은 2001년 3월 CURE MAID CAFE가 오픈한 것이 시초라고 해요. 지금은 유행이 많이 사그라들었다고 하구요. 그래도 아키하바라에는 메이드 카페가 여기저기 있었어요. 일본의 메이드 카페는 이제 우후죽순 중구난방 단계를 거쳐 기업화 단계까지 갔다고 해요.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은 몇 년 후 한국에 널리 퍼지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의 10년후 미래가 현재의 일본 모습이라고들 많이 말하구요. 메이드 카페가 일본에 생긴 게 2001년이라고 하니 여기에서 10년 후면 2011년. 그러나 한국에서는 메이드 카페가 몇 곳 존재했다고 하나 널리 퍼지지 못했어요. 솔직히 이런 쪽으로 관심많은 사람들 아니면 있었는지조차 모를 거에요. 저도 한국에 메이드 카페가 있었는지 긴가민가 하다가 인터넷 찾아보니 있었다고 나와서 우리나라에도 메이드 카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왜 한국에서는 메이드 카페가 널리 퍼지지 못했을까?
두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었어요.
먼저 첫 번째. 한국에서는 애초에 이런 문화가 발달할 기초가 매우 취약했다.
'왜 메이드에 대한 환상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하면 이런 가설을 세워볼 수 있어요. 일본은 2000년대에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었어요. 잃어버린 10년 소리 나오고 있었어요. 사람들의 지갑은 닫혔고, 대학생들은 취직하기 어려웠다고 해요. 일본 현지에서 살아보지 않았지만 이 시기가 청년들에게는 참 울적한 분위기였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심지어 드라마, 애니메이션에서조차 취직난이 등장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 당시 일본 여성들의 콧대는 세계 제일이었던 시기였기도 해요.
일본에서 연애를 포기한 남자들인 초식남, 절식남 소리가 나온 때가 이 즈음으로 기억해요. 연애할 능력도 없고, 버블 경제 시대에 맞춰진 일본 여성들의 눈높이는 판타지 수준이라 많은 일본 남성들이 아예 연애를 포기해버렸대요. 그리고 이렇게 연애를 포기한 일본 남성들에게 붙은 표현이 바로 초식남, 나중에는 절식남이에요. 이건 한국 사회에도 꽤 많이 알려진 내용이에요.
이러한 맥락으로 본다면 메이드 카페는 연애를 포기한 일본 남성들이 잠시나마 환상을 가져보고 싶다는 소박한 욕구의 산물이라 볼 수 있을 거에요. 여기에 특유의 오타쿠 문화 같은 것이 더해졌을 거구요.
이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에서 메이드 카페가 왜 발달하지 못했는지 사회적인 부분으로 설명이 가능해요. 일단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다녀와야 해요. 2년간 남자들끼리만 지내다 보면 어떻게든 '진짜 여자'와 연애를 즐기고 싶은 욕구가 안 생길 수가 없어요. 여군 말고 '진짜 사회 속 여자'요. 전역후 복학해 보면 같이 수업 듣는 여학생들은 2학번에서 3학번 아래 여학생들. 남녀 사이에 나이 차이가 어느 정도 있다보니 가상의 연애보다는 현실적인 연애에 보다 신경쓰고 갈망하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요.
여기에 아무리 한국 사회가 취직난이라 하지만 수많은 청년들이 연애를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까지 심각해진 적은 없어요. 밑도 끝도 없이 내년을 봐도, 내후년을 봐도 끔찍하게 암담하다는 생각이 들던 때는 없다는 거에요. 이런 아무리 미래에 미래에 더 먼 미래까지 상상해봐도 끝없이 암담한 상황은 한국에서 이제야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분위기에요.
게다가 한국에서는 자체적으로 남자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2D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적도 없어요. 그래서 뿌리내리기 더욱 어려웠을 거라고 봐요. 한국에서 사람들이 알고 있는 '메이드 캐릭터'라고 하면 99.99%는 일본 2D 여성캐릭터일 거에요. 서양 소설에 메이드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소설에는 사진, 그림이 없잖아요.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캐릭터 용품 판매하는 가게를 가면 확인할 수 있어요. 한국이 만든 2D 여성 캐릭터에 대한 피규어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있어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있다 해도 어디 구석에 처박혀 있을 거고,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고 있을 거에요. 리니지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리니지 캐릭터 피규어 샀다는 사람은 여태 못 봤어요.
일단 이렇게 가설 하나가 나왔어요.
두 번째. 한국은 특유의 빠른 인터넷 속도와 저렴한 인터넷 요금을 통해 인터넷 방송이 발전했다.
2001년에서 10년 후면 2011년. 한국 사회에서 2011년 즈음 눈여겨볼 현상으로는 아프리카TV가 있어요. 아프리카TV 플랫폼을 이용해 여러 BJ들이 인터넷 방송을 하기 시작했고, 2007년 11월 8일에는 별풍선 제도가 등장했어요. 이때부터 아프리카TV에서 인터넷 라이브 방송하며 돈 버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것 때문에 별풍선 구걸한다고 비하하는 단어도 생겼어요.
인터넷 방송 중 성공한 경우는 매우 다양해요. 이 중 메이드 카페가 왜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했는지와 관련지어서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얼굴 예쁘고 애교 많고 시청자들 비위 잘 맞춰주는 BJ들이 돈을 꽤 잘 벌었다는 점이에요. 이런 방송을 보면 무언가 거창하고 특별한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BJ들이 시청자와 적당히 놀아주는 형식이에요.
최근에는 아프리카TV와 더불어 유튜브 중에도 이런 방송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유튜브 중 먹방도 실상 이런 계열이구요. 먹방까지 포함한다면 이런 방송은 셀 수 없이 무지 많아요. 인터넷 방송이라고 하는 것들 보면 거창한 주제를 갖고 자기 의견을 토로하는 게 아니라 채팅창 보며 거기에 대답해주고 이야기하고 떠드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좋게 말하면 '소통하는 방송'이고, 그냥 말하면 잡담하며 떠들며 노는 공간이죠.
이런 방송은 메이드 카페와 유사한 부분이 있어요. 만약 메이드 카페를 사이버 공간으로 옮긴다면 이런 식이 될 거에요. 완벽히 그대로 옮긴다면 현재 한국에서 널리 퍼져 있는 인터넷 라이브 방송보다는 꽤 많이 엄격하겠죠. 그러나 메이드 카페가 인터넷 방송으로 옮겨온다면 우리나라 인터넷 방송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날 거 같지는 않아요. 이상한 놈들은 적당히 강제 추방하면서 분위기 관리하고 잡담하고 놀겠죠. 어느 정도 컨셉을 잡기는 하겠네요. 아마 뭔가 확실한 컨셉을 잡은 인터넷 라이브 방송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에서는 왜 메이드 카페가 활성화되지 못했는지를 곰곰히 생각하며 걸었어요. 어느덧 일본 도쿄 우에노 아메야요코초 시장까지 왔어요.
첫 번째 가설인 한국에서는 애초에 이런 문화가 발달할 기초가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었다는 가설과 두 번째 가설인 한국은 특유의 빠른 인터넷 속도와 저렴한 인터넷 요금을 통해 인터넷 방송이 발전했다는 가설. 둘을 다 섞어서 '종합적으로 그랬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둘은 미래 예측에서 상당히 크게 다른 양상을 보여요. 어느 쪽이 더욱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따라 미래 예측은 전혀 달라지게 되요.
먼저 첫 번째 가설인 한국에서는 애초에 이런 문화가 발달할 기초가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었다는 가설이 맞다면, 앞으로 한국 사회에 메이드 카페가 갑자기 붐을 일으킬 수도 있어요. 현재 한국 청년층 취직 상황이 상당히 암울한데다, 한국 경제 상황도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매우 많이 등장하고 있거든요. 정말로 통계상으로 신생아 출생수도 감소하고 있고, 연애를 포기하는 청춘들이 증가하고 있어요. 일본에서 초식남, 절식남 단어가 등장할 때와 비슷해져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만약 첫 번째 가설이 맞다면 뭔가 기폭제가 될 것 하나만 있다면 한국에 메이드 카페가 쫙 퍼질 수 있어요. 레이싱 모델, 아이돌 연습생 등 인재풀은 충분히 갖춰져 있거든요. 단지 메이드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기만 없을 뿐이에요. 드라마든 뭐든 간에 청년들 마음에 메이드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을 제대로 된 것이 하나만 나온다면 메이드 카페가 갑자기 붐을 이뤄 쫙 퍼질 수도 있어요.
반면 두 번째 가설인 한국은 특유의 빠른 인터넷 속도와 저렴한 인터넷 요금을 통해 인터넷 방송이 발전했다는 가설이 맞다면, 오히려 한국이 이 부분만큼은 일본을 앞서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어요. 이러면 역으로 일본에서 앞으로 한국의 인터넷 라이브 방송 같은 컨텐츠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발전할 수도 있어요.
물론 탕평책적인 의견도 존재할 수 있어요. 일본은 메이드 카페 직원들이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적극 활용하고, 한국은 반대로 인기 있는 인터넷 라이브 방송 BJ들이 모여서 메이드 카페를 만드는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어요. 이 경우는 한국과 일본이 각자 강점이 있었고, 서로의 장점이 섞여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죠.
행인은 별로 보이지 않았어요. 가게들은 벽면에 간판이 빽빽히 붙어 있었고, 문에는 깃발이 매달린 장대가 걸려 있었어요. 여백이란 전혀 없는 외관이었어요.
"이건 뭐지?"
무슨 커뮤니티 카페라고 되어 있었어요.
여백이라고는 하나도 안 보이는 가게.
벽면을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있었어요.
공기가 매우 습했어요. 엄청나게 찐득거렸어요. 비가 와서 시원해지기는 커녕 더위는 그대로고 찐득거리는 느낌만 더 심해졌어요.
아메야요코초 입구가 나왔어요.
아...진짜 쉬고 싶어.
다리도 아프고 발도 아프고 공기는 찐득거려서 피로를 가중시키고 있었어요.
바닥에 주저앉고 싶어.
그럴 수 없었어요. 비 내려서 땅이 다 젖어버렸거든요. 어디 잠깐이라도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하늘에서 내린 비는 쉬지 말고 부지런히 걸으라고 강요하고 있었어요.
めいどりーみん めいどりーみん
메이도리밍 메이도리밍
夢の国で遊びましょ
꿈의 나라에서 놀아요
たっぷりの愛をこめて
사랑을 듬뿍 담아서
お給仕笑顔で頑張っちゃう
집사는 웃는 얼굴로 최선을 다해버려
めいどりーみん めいどりーみん
메이도리밍 메이도리밍
いつもここで待ってるよ
항상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아냐. 이건 노래로 될 일이 아니야.
신나는 노래는 끝났어. 아주 예전에.
3.4km 거리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발바닥이 얼얼했고 무릎이 아팠어요. 게다가 땀에 절어서 찐득거리는 것은 이제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어요. 아주 잠깐이라도 에어컨 바람 쐬면서 땀이라도 어떻게 식히면 다시 살아날 거 같은데 그런 공간이 전혀 안 보였어요. 힘을 내기 위해 아까 아키하바라에서 들었던 どりーみんパスポート 노래를 들어봤지만 소용 없었어요. 그 정도로 될 일이 아니었어요.
아무리 노래를 흥얼거려도 소용없었어요. 흥얼거리던 노래는 이제 늘어날 대로 늘어난 테이프처럼 소리가 축 늘어졌고, 결국 끊어져버린 테이프처럼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입에서는 노래 대신 힘들어 죽겠다는 신음 소리가 나오고 있었어요.
'아, 몰라. 지하철 타고 돌아가자.'
PASMO 카드는 다음날 일정부터 사용할 예정이었어요. 그러나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었어요. 둘 다 힘들어서 조금씩 점점 더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거든요. 이제 2019년 8월 27일 밤 9시 53분. 다음날 일정을 생각하면 어서 숙소로 돌아가서 무조건 쉬어야 했어요. 지금 이 상태라면 다음날 일정에 지장이 있어도 이상할 거 같지 않았어요. 다음날 일정은 많이 걷는 것은 없었지만 대신 지하철을 타고 왔다갔다해야 하는 일정이었거든요.
횡단보도를 건너 우에노역으로 갔어요.
들어가자마자 튀어나온 한 마디.
"아, 더럽게 덥네!"
바깥보다 역 안이 훨씬 더 덥고 찐득거렸어요. 덥다고 한증막 사우나 안으로 뛰어들어간 기분. 머리 속에 딱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어요.
낭패.
지하철역이니까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이라도 틀어놨을 줄 알았어요. 그딴 건 없었어요. 오히려 바깥보다 훨씬 더 습하고 더웠어요.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어요.
지하철 노선도를 보는 순간, 좌절했어요.
내가 왜 뭐에 홀려서 미쳤다고 여기를 들어왔지?
그제서야 떠올랐어요. 아키하바라에서 전철 타고 아사쿠사역 가는 것도 답 없지만, 우에노역에서 전철 타고 아사쿠사역 가는 것도 그거 못지 않았어요. 왜 이날 일정 시작이 우에노역까지 걸어가는 것이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어차피 숙소에서 아사쿠사역까지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전혀 없었어요. 머리가 멍해졌어요. 들어와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어요.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라도 있었다면 그 바람 쐬러 들어왔다고 위안 삼았을 거에요. 하지만 여기는 오히려 바깥보다 더 후덥지근했어요.
우에노역은 상당히 규모가 있는 역답게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런 잔인한 놈들.'
털투성이 공룡에게 잡아먹힌 팬더인가, 털투성이 옷을 뒤집어쓴 팬더인가. 이 찜통 더위 우에노역 속에서는 어느 쪽이든 매우 나쁜 해석. 그래, 내가 저 팬더보다는 덜 덥겠다. 여기에서 위안을 삼자.
"아...망할..."
멎었던 비가 다시 또 퍼붓기 시작했어요.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이라면 이제부터는 아까 아침에 걸었던 길이기 때문에 길 찾고 말고 할 것 없이 빨리 숙소를 향해 걸어가면 된다는 점이었어요. 그거 하나가 위안이 되었어요.
신사 하나가 나왔어요.
사진을 대충 찍고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힘들어. 뭔가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해.
힘들다는 생각에서 주의를 돌려야 했어요. 우산 쓰고 가려니 더 피곤했거든요. 이럴 때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힘들다는 느낌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무엇을 생각하며 걸을까 고민했어요.
아, 맞다. 혹시 한국 아이돌 산업의 미래는 그렇게 바뀌는 거 아니야?
일본이라고 해서 실력파 아이돌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일본에 한국 K-Pop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 그리고 많은 일본 아이돌이 한국 아이돌 연습생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것도 어디까지나 사실. 그렇지만 이는 무턱대고 일본 아이돌 실력이 한국 아이돌 실력보다 형편없고, 일본인들은 그런 쪽에 재능 없는 거라고 확대해서는 안 되요. 한국 시장에서는 퍼포먼스와 실력을 중시하고, 일본 시장에서는 서사를 중요시하는 게 양국 아이돌 산업에서의 큰 차이에요.
위 두 영상을 보면 일본 아이돌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물론 Perfume은 자신들은 아이돌이라고 주장하지만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아이돌로 분류하는 게 맞는지 아티스트로 분류하는 것이 맞는지 의견이 분분한 여성 그룹이기는 하지만요. 일본은 왜 춤과 노래 실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이돌들에게도 열광하는지는 미스테리에요. 그에 대해 가장 유력한 설명이 일본인들은 아이돌 실력보다는 아이돌의 성장과정을 소비한다는 것이구요.
어쩌면 그 외의 다른 이유가 또 있을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아이돌 가수가 전직하는 것이 쉽지 않거든요. 한국 시장에서는 뭐든 간에 실력이 없으면 가차없어요. 그래서 그나마 연기쪽으로 전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이것도 일단 노래와 댄스 실력으로 인기를 어느 정도 획득한 다음에나 가능해요. 그리고 그렇게 전직했다고 해서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구요. 이건 한국에서 기획사가 예능에 꽂아주는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이거 외에 아이돌 가수가 다른 쪽으로 전직하는 경우는 참 드물어요. 그에 비해 일본은 아이돌이 꼭 가수로 일단 성공해야 하는 것까지는 아니다보니 아이돌의 노래와 댄스 실력에 무심해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에요.
이런 건 둘째치고, 문득 떠오른 생각은 한국 아이돌 산업의 미래에 대한 예측이었어요.
만약 아까 메이드 카페가 한국에서 널리 퍼지지 못한 이유에 대한 두 번째 가설인 한국은 특유의 빠른 인터넷 속도와 저렴한 인터넷 요금을 통해 인터넷 방송이 발전했다는 가설을 조금 더 연장하면 한국의 아이돌 산업 미래는 어떻게 변할지 예측 가능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유튜버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소리가 계속 들려오는 상황. 심지어는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꼬마가 유튜브로 96억을 벌었다는 뉴스까지 나왔어요. 물론 그 꼬마가 혼자 컨텐츠 기획하고 동영상 찍고 동영상 편집해 업로드해서 돈 번 것은 아니죠. 어디까지나 그 부모가 그렇게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서 유튜브를 키워서 돈을 번 거죠. 그 아이는 그 컨텐츠의 주인공 배우 같은 존재에 불과하구요.
일본 아이돌들의 홍보 방법을 보면 아이돌들이 직접 팬들과의 만남을 많이 가져요. 이런 만남을 판매하기도 하구요. 악수회, 하이터치회 등등으로요.
만약 기획사들이 연습생들을 유튜버로 데뷔시킨다면?
한국에서 기획사들은 아이돌 연습생을 많이 뽑아요. 그리고 기획사 자금을 투입해 훈련시켜요. 이렇게 키운 아이돌 연습생 중 제대로 데뷔하는 아이돌 연습생은 정말 드물고, 그 중에서 성공하는 아이돌은 더욱 드물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돌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하지만, 무슨 그룹이 나왔는지 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잘 뜨면 그제서야 길거리에서, 방송에서, 카페에서 노래 듣고 '쟤네들 누구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극성팬들이야 팬덤 결성해서 자기들끼리 치고박고 하기도 한다고 하지만, 이런 것은 일반인들에게 너무나도 먼 세계 이야기구요.
지금까지 연예기획사들은 아이돌 연습생 중 선발하고 선발해서 데뷔시키는 구조에요. 연습생 때는 실상 무조건 투자하는 방식이구요. 연습생 각각에게 투자하는 것으로 한 명씩 나눠서 보면 매우 리스크 큰 투자라고 할 수 있어요. 복권 터지듯 어쩌다 하나씩 터지는 거니까요. 아무리 연예기획사에서 푸시해주고 예능에 음악방송에 라디오방송에 열심히 꽂아주고 행사 열심히 보내줘도 안 뜨는 아이돌도 꽤 있을 거에요.
그런데 만약 연예기획사들이 연습생들을 유튜버로 데뷔시킨다면 리스크를 아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거에요.
연예기획사들이 동영상 촬영, 편집 장비와 인력 갖추고 연습생들을 유튜버로 데뷔시켜서 유튜브에서 활동하게 하는 거에요. 아이돌 연습생이 유튜브에서 활동하며 수익을 낸다면 계약에 따라 수익을 일정 비율로 분배하구요. 이러면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는 연습생 각각에게 투자하는 자금을 상당히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거에요. 정확히는 투자 비용은 그대로이지만 유튜브 수익을 통해 연습생 시절부터 투자금 회수가 가능해지는 거죠. 연습생에게도 노예 계약만 아니라면 연습생 시절부터 수입이 더 생기니 나쁠 거 없구요.
여기에 연습생이 인터넷 라이브 방송 같은 것을 하면서 논란이 발생했다고 하면 바로 퇴출시켜버리는 방법이 있어요. 이러면 정작 기껏 데뷔시키고 한창 푸시하고 있는데 과거 논란, 인성 문제로 고꾸라져버리는 연예기획사 입장에서 '대참사'급인 문제는 피할 수 있을 거에요.
또한 데뷔조 선정 과정에서 유튜브 팬 수를 고려해 이를 나름대로의 점수로 만들어 반영시킬 수도 있어요. 이미 팬이 어느 정도 확보된 연습생들을 데뷔시키면 처음부터 팬덤을 구성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 자금을 크게 절약할 수 있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인기를 획득한 상태에서 데뷔시키는 것이니까요. 유튜브에서의 인기와 실력을 적당히 반영하면 데뷔시킬 때 실패 확률을 보다 크게 낮출 수 있을 거에요.
연예인들도 유튜브로 계속 넘어오고 있는 상황. 아마 이 현상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연예기획사들이 회사 차원에서 자사 연습생들을 유튜버로 데뷔시키는 것일 거에요. 그리고 이때가 되면 일반인 유튜버들은 그냥 끝장났다고 봐야겠죠. 취미로, 소소한 재미로 유튜브에 동영상 올리는 정도라면 그때가 되어도 별 상관 없겠지만, 직업으로 또는 일획천금을 노리고 유튜브에 달려드는 것은 저런 현상이 발생하면 그냥 끝났다고 봐야할 거에요. 작정하고 '연예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사람과 일반인의 차이 자체가 큰데 회사 차원에서 나선다면 장비와 자금력, 전문인력 동원 능력에 인지도까지 싸그리 밀려버리니까요.
빗줄기가 많이 약해졌어요. 우산을 안 써도 될 정도가 되었어요. 그리고 드디어 육교까지 도착했어요. 육교를 건너면 그때부터는 숙소까지 직진이었어요. 이제 숙소까지 거의 다 왔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사진이 지금 잘 찍히는 거야, 안 찍히는 거야?'
카메라에는 이제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빨간색 배터리 모양이 떴어요. 셔터스피드는 1초. 1초에서 캐논 SX70 HS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흔들려서 못 볼 수준으로 찍을지 손떨림 방지 기술이 발동해서 봐줄 만하게 찍힐지는 미지수. 캐논 SX70 HS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괜찮게 찍을 때도 있고 망칠 때도 있는 확률 게임이 발생하는 셔터스피드 1초였어요.
일단 계속 사진을 찍었어요. 몇 장 찍으면 한 장은 건지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카메라를 꺼서 가방 속에 집어넣었어요. 이제 진짜로 체력 고갈이었어요. 대신 희망이 생겼어요. 숙소가 멀지 않았거든요. 그냥 말로만 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확실히 멀지 않았어요.
파출소 앞을 지나갈 때였어요.
"어? 이거 뭐야?"
적군파, 요도호 납치범 현상수배!
적군파라면 일본의 악명 높은 신좌파 도시 게릴라 테러조직. 이들이 일으킨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요도호 사건. 요도호 사건은 1970년 4월에 적군파 테러리스트 9명이 일본항공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행을 요구한 사건이에요.
요도호 사건이 1970년 4월이니 이제 50년 전 일이 되어가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파출소 벽에는 적군파, 요도호 납치범 현상수배 포스터가 붙어 있었어요.
길거리에는 사람이 없었어요. 가끔 차만 지나갈 뿐이었어요.
편의점이 나왔어요. 이제 밤 11시까지 10분 정도 남았어요. 숙소 1층에 있는 라운지 이용도 도착하면 끝나 있을 거였어요.
'뭐라도 마시고 가자.'
"너 이거 숙소 들고 가게?"
"아니. 여기서 다 먹으려고."
"진짜?"
친구가 깜짝 놀랐어요. 친구에게 힘든 티 최대한 안 내려고 하고 있었지만 저도 이때 꽤 힘들었어요. 땀을 엄청나게 흘렸는데 모스버거에서 나와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신 것이 아무 것도 없었어요. 힘든데다 목까지 말라서 더욱 힘든 상태. 게다가 끈적이는 몸을 일단 조금이라도 식히고 다시 걷고 싶었어요. 호로요이 귤맛부터 마셨어요. 시원하게 들이킨 다음 바로 말차를 들이켰어요. 아주 시원하게 뱃속으로 잘 넘어갔어요. 그제서야 몸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몸의 열도 조금 식었어요. 이제 아이스크림을 떠먹었어요.
몸의 열기가 충분히 식었어요. 갈증도 해소되었어요. 자리에서 일어나 편의점 밖으로 나왔어요.
"여기 필리핀 식당도 있네?"
네팔 식당에 이은 필리핀 식당. スナック イーグル 라는 곳이었어요.
꿉꿉한 공기와 습기 속을 떠다니는 목욕탕 냄새. 그 속을 걷다 보니 기모노를 빌려주는 가게가 나왔어요.
기모노 빌리는 가격은 2980엔부터 19800엔까지라고 적혀 있었어요.
"드디어 숙소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쓰러지고 싶었어요. 그러나 꾹 참고 바로 찬물로 샤워했어요. 발과 다리가 무리했어요. 이럴 때는 찬물로 씻어서 열기를 식혀줘야 회복이 빠르거든요. 운동선수들이 운동경기 후 냉찜질을 해주는 것과 똑같아요. 얼음팩으로 냉찜질할 상황은 안 되니 샤워기로 찬물을 틀어 다리와 발의 열기를 식혀주는 것이에요. 이렇게 해준 것과 안 해준 것의 차이는 다음날 아침에 두 눈을 뜨고 잠기운이 가셨을 때 느낄 수 있어요. 찬물로 냉찜질 비스무리하게 하는 시늉이라도 한 것이 안 한 것보다 훨씬 덜 아프거든요.
샤워를 하고 나와 친구가 공항에서 들고 나온 일본 도쿄 관광안내 소책자를 집어들었어요. 전날밤에는 이거 볼 정신도 없었어요. 이제야 그게 어떻게 생긴 것인지 한 번 보고 싶어졌어요.
'보나마나 무슨 전단지 같은 거겠지. 이렇게 얇은 거에 뭘 기대해.'
매우 얇았어요. 대충 반으로 접어서 외투 안주머니에 구겨넣어도 될 정도였어요. 누가 봐도 이것 하나만 갖고 여행다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외관이었어요. 보통 가이드북 두께는 기본 1cm는 그냥 가볍게 넘어가니까요. 이건 과연 정보가 뭐 제대로 담겨 있을까 싶게 생겼어요. 사실 그래서 하네다 공항에서 나올 때 이걸 보고도 안 집어들고 왔어요.
표지를 펼쳤어요.
일본 도쿄 전도가 나왔어요.
"아, 이거 나도 집어올걸!"
한쪽에는 지도가 있었고, 다른쪽에는 주요 볼거리가 소개되어 있었어요. 질이 꽤 괜찮았어요.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어요. 도쿄를 여러 번 와본 사람이라면 이게 전혀 불필요할 거에요. 그러나 도쿄를 처음 오는 사람이라면 매우 요긴한 관광 자료였어요. 지역별로 제일 중요하게 봐야할 것을 잘 골라서 소개해놨거든요. 도쿄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요긴한 소책자였어요.
후회막급. 이거 하나 구하려고 하네다 공항까지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대충 아사쿠사, 신주쿠, 긴자 같은 몇 곳만 소개한 곳이 아니었어요. 이 책에 소개된 지역은 권역별로 보면 신주쿠, 시부야/하라주쿠/오모테산도, 아사쿠사, 스미다/료고쿠, 우에노, 아키하바라/오차노미즈, 긴자, 마루노우치, 니혼바시, 롯폰기/아카사카, 이케부쿠로, 오다이바/아리아케/아오미, 시오도메/시바/다케시바, 시나가와, 오타, 시바마타, 기타타마, 미나미타마, 니시타마, 도쿄 섬 지역, 도쿄 근교 관광명소로 분류되어 있었어요. 여기에 공원/정원, 동물원/식물원, 어뮤즈먼트파크, 미술관/박물관이 따로 또 소개되어 있었어요.
한국에서 서울, 경기도, 인천광역시를 합친 수도권급인 도쿄도를 다시 여러 구역으로 나눠서 각각 소개해주는 책자였어요. 어지간한 일본 가이드북보다 이게 훨씬 더 나았어요. 핵심 요약 정리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거든요. 만약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게 있었다면 여행 계획을 상당히 알차게 잘 짤 수 있었을 거에요. 제가 아예 손놓고 있지는 않았을 거에요. 여행 계획 세울 때 참고하기 매우 좋게 되어 있었어요.
'이게 있었어야 했어.'
아니, 이게 있어야 해. 나중에 여행기 쓸 때도 이건 요긴하게 잘 써먹을 수 있어!
어찌 된 것이 한국에서 판매중인 비싼 도쿄 가이드북보다 심플하고 무려 공짜인 일본에서 만든 도쿄 가이드북 소책자가 훨씬 더 나았어요. 이건 정말로 엄청나게 탐났어요. 일단 매일 밤 친구 것을 보며 세부 계획을 짜보기로 했어요. 그리고 나중에 귀국할 때 하네다 공항 가서 이것을 하나 집어와야겠다고 결심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