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늘 뭐 할 꺼?"
"나? 그냥 동네 좀 돌아보려구."
2019년 3월 3일 일요일. 복습의시간은 낮에 학원에 보강하러 나갔다 와야 했어요. 자기가 보강하러 학원 가 있는 동안 제가 무엇을 할 지 물어봤어요. 피곤하면 자기 방에서 자기 돌아올 때까지 잠 자고 있어도 된다고 했어요. 그러나 복습의시간 방에서 드러누워 오후 늦게까지 계속 잠을 잘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복습의시간 방에서 잠을 매우 잘 잤기 때문에 졸리지도 않았어요. 몸이 건강해진 기분이었어요.
"어디 돌아볼 건데?"
"유나이티드 아파트 재건축한다던데? 그래서 그쪽 한 번 돌아보고 하려구. 설마 여기 돌아다닐 곳 없겠냐."
"나갈 거면 빨리 준비해. 같이 나가게."
"알았다."
그때 복습의시간 어머니께서 아침밥을 먹으라고 하셨어요. 복습의시간과 부엌으로 갔어요. 복습의시간 어머니께서 잡채밥을 만들어 주셨어요.
"잘 먹겠습니다."
이게 얼마만에 먹는 아침밥이냐.
설날 이후 처음 먹는 아침밥이었어요. 설날 연휴때 부모님 계신 곳으로 내려갔을 때도 아침밥을 다 챙겨먹지 못했어요. 설날에 내려가서 2박 3일간 머무르다 올라왔어요. 그 중 마지막 날은 배탈이 나서 하루 종일 굶고 자다 올라왔어요. 제게 아침밥 챙겨먹는 것은 1년 중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사 같은 것이었어요. 복습의시간 어머니께 인사하고 잡채밥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거 맛있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입맛이 별로 없을 때인데도 맛있었어요. 복습의시간 어머니께서 만들어놓으신 잡채는 프라이팬 위에 많이 남아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그 프라이팬을 잡고 국수 그릇에 코 박고 면발 빨아들이듯 잡채를 싹 다 먹어버리고 싶었어요. 프라이팬 바닥 기름과 양념까지 혓바닥으로 싹싹 핥아먹고 싶었어요. 그렇지만 참았어요. 제게도 체면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무슨 거지가 뱃속에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집 와서 친구 어머니 앞에서 프라이팬에 코 박고 잡채 흡입해서는 안 되었어요. 무지 맛있었지만 욕구를 꾹 억눌렀어요. 저는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 사람이거든요.
"어서 준비해."
"응."
씻고 나와 나갈 준비를 했어요. 또 복습의시간에서 하룻밤 신세질 거라 카메라와 노트북만 챙기면 되었어요.
"나 학원 가 있는 동안 어디 있을 거?"
"너네 학원 근처에 스타벅스 없어?"
"조금 걸어가면 있어."
"그러면 거기에서 글이나 쓰고 있든가. 아니면 좀 돌아다니구. 다른 곳 가 있게 되면 카카오톡 보낼께."
복습의시간과 밖으로 나왔어요. 복습의시간 차에 올라탔어요. 복습의시간은 연북로에 저를 내려주었어요.
'스타벅스 가기 전에 유나이티드 아파트부터 가봐야지.'
제주도에서만 파는 스타벅스 음료를 마셔보는 것이 이번 제주도 여행의 미션. 그러나 이것 때문에 제주도 가보기로 한 건 아니야. 제주도에 한 번 가보기로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바로 유나이티드 아파트를 한 번 다시 봐보기 위해서야.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제주도 제주시 노형동 유나이티드 아파트가 재건축될 거라고 이야기했어요. 제원아파트도 재건축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알려주었구요. 그래서 그 두 곳을 보러 온 것이었어요. 그 두 곳은 제게 유년기의 추억이 있는 곳들이었거든요.
사실 유나이티드 아파트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제원아파트는 그래도 제원사거리를 중심으로 제원분식, 장군닭집이라도 있지만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진짜 아무 것도 없는 동네에요. 특이할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곳이에요. 사진 찍을 것도 없는 곳이구요. 유나이티드 아파트 옆으로 비 올 때만 흐르는 건천인 흘천이 있어요. 흘천 정도가 사진 찍을만하다고 할 수 있을 수도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제주도에 이런 건천은 많아요. 게다가 흘천 사진을 찍으려면 하류 쪽인 제주서중학교 쪽으로 가야 하구요. 육지의 하천처럼 흘천 바로 옆에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정말 사진 찍을 곳이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 그나마 만약 사진을 찍을 것 하나 찾으라고 한다면 흘천을 이야기하는 거지, 흘천도 사진 찍을 거리는 아니에요. 이런 곳이라 복습의시간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유나이티드 아파트 쪽 같이 가보자고 이야기하기 그랬어요. 저 혼자 갔다와야 할 곳이었어요.
'그래도 나름 바뀌었다고 해야 할 건가?'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연북로 쪽은 과수원, 숲, 밭이었어요. 그냥 시골이었어요. 아마 '연북로'라는 길 자체가 없었을 거에요. 연북로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진짜 중산간 지역이라 불러도 될 곳이었어요. 소나무, 삼나무가 있고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샛길이 조금 있고, 그나마 큰 길이라고 부를 게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길이었어요. 밤이 되면 정말 깜깜한 곳이었구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 이쪽 개발이 시작되었어요. 그 당시 제주도에서는 상당히 큰 택지 개발 공사였어요. 보통 '연동3차지구'라고 부르곤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3때 제 친구 하나가 연동3차지구에 있는 막 지어진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그해 여름, 연동3차지구 가로수에는 매미가 엄청나게 많이 매달려 있었어요. 한두 마리 수준이 아니라 나무마다 최소 열 마리, 많게는 수십 마리씩 매달려 있었어요. 희안하게 딱 그해 여름에만요.
연동3차지구 개발이 완료되면서 집에서 탐라도서관 가기 매우 편해졌어요. 그 전까지는 노형오거리를 지나 예전에 노형동사무소였던 노형꿈틀작은도서관까지 걸어간 후 샛길을 타고 탐라도서관 정문까지 걸어가야 했어요. 그런데 연동3차지구 개발이 완료되고 연북로에 크고 시원한 길이 생기면서 그 길을 타고 갈 수 있게 되었어요.
아주 예전 기억과 비교하면 여기가 달라진 곳 맞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고3이었을 때와 비교하면 그렇게 달라진 곳은 아니었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를 향해 걸어갔어요. 여기 길은 아주 익숙했어요. 지도를 봐야 할 이유가 아예 없는 곳이었어요. 연동3차지구 개발된 후 탐라도서관 갈 때 이용하던 길이었거든요.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하루방이 있었어요.
예전이었다면 이딴 건 절대 사진으로 안 찍었다. 이걸 사진 찍으라고 하면 이렇게 흔해 빠진 것을 왜 찍냐며 뭐라고 했을 거다.
흘천 위에 있는 다리 입구에는 장식으로 돌하루방이 서 있었어요. 이런 돌하르방은 제주도에서 흔해빠졌어요. 관덕정 돌하르방 정도나 되지 않으면 이런 건 왜 사진을 찍어야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제주도 살 때는 지겹게 보고 질리도록 봤던 돌하르방이었어요. 만약 서울로 대학교 가는 것에 실패해서 계속 제주도에서 살았다면 여전히 이런 것을 사진으로 찍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에요. 제주도를 떠난지 꽤 되니 육지 사람들이 이걸 왜 찍나 조금은 이해되었어요.
돌하르방 사진을 찍었어요. 이 돌하르방의 가치를 알아서 찍은 것은 아니었어요. 여전히 제게 이런 돌하루방은 흔해빠진 시시한 것에 불과했어요. 진짜 관덕정 돌하루방처럼 뭔가 의미도 마구 부여되고 상징적인 뭔가가 있어야 찍을까 말까 해요. 그래도 굳이 다리 입구에 장식으로 세워진 돌하루방을 사진으로 찍은 이유는 이것도 언젠가는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어요. 만약 이쪽이 재개발된다면 이 돌하르방도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흘천의 왼쪽은 노형동이고, 오른쪽은 연동이에요. 흘천은 노형동과 연동의 경계가 되는 건천이에요.
신광초등학교가 개교하고 신제주초등학교가 3층 건물 한 동을 완성하기 전까지 신제주 초등학교는 항상 학생들로 미어터지는 학교였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를 기준으로 어린이가 갈 수 있는 초등학교는 노형초등학교와 신제주초등학교 뿐이었어요. 이 중 신제주 초등학교는 그나마 원노형로로 시내버스가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갈 수 있었어요. 노형초등학교로 가는 버스는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흘천 바로 옆 노형동에 속하는 유나이티드 아파트, 국민연립주택에 살던 사람들은 자녀를 신제주초등학교로 진학시키고 싶어했어요. 여기는 그래도 버스 타고 갈 수 있는 학교였으니까요.
신제주국민학교는 학생들로 미어터졌어요. 신광국민학교가 없었을 때는 제원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도 다 받아야 했거든요. 오후반까지 운영해도 미어터졌어요. 그러다보니 주기적으로 아동들의 집 주소를 조사해 노형동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을 노형국민학교로 강제로 전학보내려고 했어요. 노형국민학교 가기 매우 불편한 흘천 옆쪽 연동과 노형동 경계에 살던 사람들은 당연히 불만이 많았어요.
이건 정말 옛날 이야기에요. 지금은 한라초등학교가 있거든요. 노형초등학교쪽으로 택지 개발이 이루어져서 그쪽으로도 사람이 많이 살구요.
유나이티드 아파트에 도착했어요.
'당연히 안에 들어가면 안 되겠지?'
다 큰 어른이 카메라 들고 엉뚱한 아파트 들어가면 좋아할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당연히 경계해요. 게다가 제주도는 옛날이나 치안이 좋았지, 요즘은 치안이 영 좋지 않은 곳으로 전락했어요. 그래서 밖에서 그냥 한 번 휙 둘러보고 동네를 계속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제주도 제주시 노형동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1984년 11월 준공된 아파트에요. 그래서 제 기억 속에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새로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아파트였어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이 동네에서 매우 특이한 아파트였어요. 거의 주기적으로 아이들 사이에서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호텔 짓다가 망해서 아파트로 바꾼 것이라는 말이 돌았어요.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런 소문이 있었어요.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아니라고 했지만요.
이런 소문이 돌 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지상 6층이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에요. 지하에는 상가와 주차장이 있구요. 옛날 아파트답게 4층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는 1,2,3,5,6,7층이에요.
유나이티드 아파트 1층으로 가면 호텔 로비처럼 생긴 조그만 공간에 관리실이 있었어요. 그것부터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호텔 짓다가 망해서 아파트로 바꾼 것'이라는 소문에 힘을 실어주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만 해도 관리실은 딱 작은 호텔 리셉션처럼 생겼어요. 호텔 리셉션처럼 생긴 관리실에 직원이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어요. 친구집 놀러가느라 유나이티드 아파트 가면 관리실에 청소 도구들이 굴러다리고 있었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구조적으로 매우 희안한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기역자 모양이거든요. 그래서 한쪽 복도는 복도로 햇볕이 직격으로 들어와서 눈도 못 뜨게 밝은데 한쪽 복도는 어두침침하기 그지 없었어요. 게다가 친구집 놀러가 보면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부엌 겸 마루가 있었고, 이 매우 좁은 공간 바로 한쪽에 조그만 방이 하나 있었어요. 부엌 겸 마루를 넘어가면 거실 겸 큰 방이 있었구요. 지금 생각해봐도 어렸을 적 친구집 놀러가서 본 유나이티드 아파트 내부 구조는 호텔 객실 구조와 매우 흡사한 모양이었어요. 게다가 작은 방은 창문이 없어서 불을 켜지 않으면 껌껌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여기에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제가 어렸을 적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어요. 지금이야 어지간한 건물에 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그 당시 제주도는 그렇지 않았어요. 제주도에 고층 건물 자체가 별로 없던 시절이기는 했지만요.
한때 이 근방에서 유나이티드 아파트가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친구집 놀러갔을 때 유나이티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면 한라산부터 먼 바다까지 아주 시원하게 잘 보였어요.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동네 그림지도 그려오라고 숙제를 내면 친구들과 유나이티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그림 지도를 그리기도 했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는 세대수가 많아서 아무리 반이 바뀌고 학교가 갈려도 거의 항상 여기에 사는 친구가 같은 반에 1명은 있었어요.
친구가 유나이티드 아파트 재건축될 거라는 말이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아파트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재건축 관련된 현수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 지하에 있는 상가로 내려가봤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 슈퍼마켓은 제가 유치원 가기도 전이었던 시절에는 물건을 정말 싸게 팔아서 멀리 화북에서까지 여기로 물건 사러 오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요. 이건 아마 유나이티드 아파트가 처음 생겼던 시절 이야기일 거에요. 제가 유치원 가기 훨씬 이전에요. 제가 어렸을 적 유나이티드 아파트 슈퍼마켓은 이 동네에서 조금 큰 가게 정도였고, 특별히 싼 건 없었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 상가는 인터넷 지도상에 유나이티드 아파트 종합시장이라고 나와요. 제가 갔을 때는 무슨 공사중 같았어요.
원노형로로 나왔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여기로 버스가 다녔어요.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버스가 다니지 않는 길이에요. 이 앞을 지나가던 버스는 '미림주택'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유나이티드 아파트를 기준으로 신제주 방향 종점 방향으로 원노형 정류장이 있었고, 신제주 종점 반대 방향으로는 정류장은 아니지만 탐라빌라 입구에 사람이 서 있으면 정차해서 사람들을 태워줬고, 그 다음 정류장이 미림주택이었어요. 미림주택 다음 정류장이 신제주국민학교였구요.
'그랜드 앞길로 해서 노형로타리로 가야지.'
국민연립주택이 있던 자리는 공사중이었어요. 그래서 그쪽은 볼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예전 태평양 건물이었던 건물로 갔어요.
여기는 언제부터인가 마트가 들어섰어요. 2층은 당구장이구요.
노연로로 나왔어요. 노형로타리 쪽으로 걷기 시작했어요.
그냥 웃었어요. 이쪽이 중국인 관광객들의 메카가 될 줄 아무도 몰랐을 거에요.
아주 예전에 이쪽에 보리밭이 있었어요. 지금은 당연히 그런 것 없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건물을 지어 올리는데 거기에 다 사람들이 들어찬다는 것이 신기했어요. 그만큼 제주시에 차는 미어터져가고 있구요.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노형로타리 근방까지 왔어요.
"이거 많이 올렸네?"
중국건축.
언제 이 땅을 개발하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요. 하여간 엄청 오래되었어요. 대체 얼마나 높은 건물을 지으려고 작정했는지 땅을 파고 파고 계속 파들어갔어요. 상당히 깊게 땅을 팠어요.
그리고 버려졌다.
땅은 엄청나게 깊게 팠는데 공사가 중단되었어요. 이유는 저도 잘 몰라요. 매우 넓은 면적에 땅을 엄청 깊게 파놨는데 공사가 중단되었어요. 공사장을 철판으로 막아놓기만 하고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렇게 몇 년을 땅만 파놓은 채 방치되어 있었어요. 아주 가끔 다시 공사가 진행되기는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잠깐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공사하는 시늉을 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기는 하거든요. 티스푼으로 땅을 파고 젓가락으로 모래알 집어서 지으려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그렇게 방치되다가 중국 기업이 여기에 건물을 올릴 거라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런 말을 들었어요. 이번에 와서 보니 꽤 많이 건물을 지어올렸어요. 당연히 중국 돈으로 짓고 있는 중국 건물이겠죠.
'진짜 제주도는 중국한테 점령당해가고 있구나.'
바오젠 거리 같은 곳은 관심 없었어요. 그런 거 하나 만들 수도 있겠죠. 그런 거 하나 생겼다고 해서 딱히 중국인들이 제주도를 점령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어요. 미개하고 열등한 한국 관광산업 수준에서 관광객 좀 유치해보겠다고 그런 짓 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아요.
그런데 이 공사현장을 보는 순간 확 와닿았어요. 왜 사람들이 제주도를 짱깨의 섬이라고 하는지 보여줄 때 이거 하나면 될 거 같았어요. 더 자세히 이것저것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이게 가장 상징적인 것이었어요. 솔직히 저도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주도를 짱깨의 섬이라고 하면 기분 안 좋아요. 하지만 솔직히 반박 불가에요. 제가 봐도 그랬으니까요. 그나마 사드 때문에 많이 정화된 거에요.
노형로타리로 갔어요.
다시 원노형로로 가기로 했어요.
큰 길을 따라 가다 원노형로로 들어갔어요.
난개발.
길 대체 어찌할 것이오. 차 대체 어찌할 것이오. 이거 답은 있어서 이렇게 짓고 있는 것이오?
동네가 바뀌어가는 건 좋아요. 그런데 이 공사현장을 보자마자 드는 생각은 대체 여기 입주 시작된 후에 교통난, 주차난 어떻게 할 거냐는 것이었어요. 원노형로는 길이 좁다고 버스도 없애버린 곳이에요. 물론 사람들이 버스를 안 타서 돈이 안 되어 없앤 것도 있겠지만요. 일단 당시 버스가 없어질 때 이 길은 소방도로라 좁고 원래 버스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고 버스를 없앴어요.
원노형 쪽도 길 좁아요. 연동3차지구 같은 곳이야 나중에 계획도시처럼 만든 곳이라 길이 넓지만 이쪽은 길이 좁은 곳이에요. 그런데 저렇게 또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어요. 솔직히 어제, 오늘 돌아다니며 본 것만으로도 뭐 이딴 거지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냐고 어이없어할 지경이었어요. 육지에서 사람들이 제주도로 살러 많이 오면서 육지에 있는 좋은 것들을 제주도에 가져올 줄 알았는데 어찌 된 것이 육지의 나쁜 점만 다 들고 온 것처럼 보였어요. 아니, 그랬다고 봐야했어요. 이게 발전하는 건지 그냥 더 나빠지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어요.
아름다운 주차 지옥이 펼쳐지고 있었어요.
아직 복습의시간과 만날 때까지 시간이 무지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발 가는 대로 걸었어요. 다 아는 길이고 익숙한 길이라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어야 했어요. 그러나 신기했어요. 이렇게 나빠질 수 있다는 게 굉장했어요. 어메이징 스펙타클이었어요.
제주우편집중국이 나왔어요. 제가 어렸을 적, 제주도 중앙우체국은 관덕정에 있는 우체국이었어요. 제주우편집중국이 생긴 후 관덕정 우체국은 일반 우체국이 되었어요. 제주 우편집중국은 몇 번 가본 적 있어요. 딱히 추억이 있는 곳은 아니었어요.
다시 돌아왔어요. 스타벅스로 갔어요.
"제주 한라봉 눈꽃 라떼 하나 주세요."
"그건 시즌 메뉴인데 판매 끝났어요."
"예? 그러면 이제 더 안 파나요?"
"예."
스타벅스 제주 지역 한정 음료가 시즌 메뉴와 상시 메뉴로 구분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제주 한정 음료니까 당연히 전부 항상 판매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 제 예상은 틀렸어요. 스타벅스 제주 지역 한정 음료 중 1년 내내 판매하는 상시 음료가 있었고, 그렇지 않은 시즌 음료가 따로 있었어요. 제주 한라봉 눈꽃 라떼는 2018년 겨울에 나온 시즌 음료였나봐요.
"그러면 제주 말차샷 라떼 한 잔 주세요."
제주 말차샷 라떼를 주문했어요.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잠시 후 제가 주문한 스타벅스 제주 말차샷 라떼가 나왔어요.
"제주도스러운 맛이네."
단맛이 적었어요. 서울에서 마셔본 말차라떼는 한결같이 단맛이 강한 편이었어요. 이것은 단맛이 약하고 쓴맛이 조금 강한 편이었어요. 떫은 듯한 느낌도 있었어요.
'이제 2개 끝냈다.'
앞으로 남은 스타벅스 제주 지역 한정 음료 중 상시 음료는 3종류 남아 있었어요.
'비 내리지 않겠지?'
하늘이 매우 흐렸던 2019년 3월 3일 오젼 11시. 일기예보에서는 비가 내릴 거라 했어요. 비가 내리지 않기를 바라며 음료를 마시며 글을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