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군이 나를 깨웠다. 너무 피곤해서 다시 자려는데, H군이 말했다.
"이제 거의 다 완."(이제 거의 다 왔어)
"어디?"(어디인데?)
"단양."
"풍기 도착함 깨워. 나 넘 피곤행 눈 좀 붙여사켜."(풍기 도착하면 깨워. 나 너무 피곤해서 눈 좀 붙여야겠다)
얼마 후, H군이 나를 다시 깨웠다.
"어디?"
"풍기."
창밖을 보았다. 풍기역이 보였다. 부리나케 짐을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에서 나와 검표원에게 기념으로 표를 가지겠다고 말한 후, 표를 들고 역 밖으로 나왔다.
풍기역 앞에서 H군은 속이 조금 좋지 않다며 화장실에 갔고, 그 사이에 나는 느긋하게 풍기역 앞에서 담배를 한 대 태운 후, 풍기역 사진을 찍었다. 풍기역은 그냥 평범했다. 특별한 것은 전혀 없는 역이었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 때문에 지도 사진을 촬영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풍기는 경상북도였다.
풍기역 바로 앞이 바로 풍기인삼시장이었다. 청량리역에서 보았던 지도에는 풍기 인삼시장이 나와 있었는데, 막상 나와보니 이것은 평범한 작은 시골장터에 불과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내가 예상했던 인삼시장의 모습은 없었다. 그저 인삼을 파는 가게가 많았고, '인삼갈비탕'이라는 음식이 보였을 뿐이었다. 풍기인삼시장의 입구부터 한산하더니, 지도에 나온 지점에 가도 한산했다.
-풍기 인삼시장 입구
풍기에 와서 특별하다고 느낀 것은 인삼이 아니라 바로 '마늘'이었다. 마늘을 파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인삼가게가 몰려 있는 것이야 그다지 놀랄 이유가 없었다. 이미 경동시장을 질리도록 보아왔던 나에게 이 풍기 인삼시장은 오히려 초라하고 허탈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난 2003년, 1년간 48번 버스를 타고 학교에서 영등포까지 다녔기 때문에 (영등포에서 버스를 다시 갈아타고 집에 갔다) 경동시장의 약재 냄새와 그 밀집도는 눈에 익어 있었다. 그리고 H군과 몇 번 동대문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 규모로는 놀라기는 커녕 허탈함만 밀려올 뿐이었다. 이것이 지도에까지 나올 풍기 인삼시장이면 내 고향에 있는 동문시장은 제주 해산물시장이라고 관광지도에 나오겠다...
그러나 거리의 재래시장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마늘'이었다. 이렇게 마늘을 많이 파는 곳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H군이 천 원을 내고 이상한 빵 2개를 샀다. 맛? 끝내주게 맛있었다. 이런 빵이 왜 서울에는 없지? 서울에서 이것을 팔면 대박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 주먹만한 고로케를 만드는 빵을 반으로 갈라서 (즉 표면이 꺼끌꺼끌한 튀긴 빵) 그 속에 오이, 양배추, 케챂, 햄을 집어넣은 단순한 빵이었다. 미니 햄버거와 고로케의 절충안이라고 해야하나?
-마늘 파는 아주머니
재래시장에서 좋은 점은 바로 상인들과 구매자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사람들이 전문적인 상인이라기보다는 자기 밭에서 나온 것을 파는 상인들이다 보니 구매자와 상인들의 간격이 더욱 가까운 것 같았다.
-한적한 시장. 서울의 기준으로는 너무 한적하고 조용한 시장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북적인다.
시장 구경은 끝났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많이 남고 말았다. 예상 외의 상황이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