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26 아르메니아 에츠미아진

좀좀이 2012. 6. 26.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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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방이 지하에 있어서 식당 가까운 것은 좋았지만, 대신 아침인지 밤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어요.


씻고 나와서 쟁반에 먹을 것을 담고 먹을 자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한 중년의 아저씨가 식당으로 들어오셨어요.


"저 분 터키인인가?"


작은 키, 둥글둥글한 두상...분명 터키인이었어요. 아르메니아에 아제르바이잔인이 들어올 리는 없으니까요. 다양한 터키인이 존재하지만, 딱 봐서 '터키인이다!'라고 할 만한 특징은 두상이에요. 머리가 둥글둥글해요. 아무리 보아도 확실히 터키인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터키인 들어올 수 있나?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사이가 매우 안 좋은 관계.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관계가 철천지 원수지간이라면 터키와 아르메니아는 원수 관계. 예레반에서 너무나 잘 보이는 아르메니아 민족의 영산 아라라트 산은 터키 것이에요. 스탈린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박멸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아라라트산을 터키에게 주어버렸다는 말도 있어요. 게다가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의 혈맹. 그래서 터키는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을 폐쇄해 버렸고, 덕분에 이 지역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동선이 정말 엉망진창이에요. 그나마 지금은 한국인은 조지아 무비자 방문이 가능해서 많이 나아졌지만요. 터키만 보려면 한 나라만 가야 해서 뭔가 아쉬운데 터키가 워낙 큰 나라라 터키만 보기는 그래요. 그리고 카프카스 지역은 세 나라나 있는데 바로 옆 동네가 터키에서도 가기 힘들고 잘 가지 않는 터키 동부라 세 나라만 가면 뭔가 아쉬워요. 예레반에 가보면 특히 그래요. 눈 앞에 아라라트산이 있는데 절대 갈 수 없어요. 이 동네의 복잡한 국가관계는 여행자들을 골치아프게 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터키인 아저씨가 혼자 앉아서 식사를 하려고 하시기에 아저씨쪽에 가서 인사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영어다!


카프카스 지역 여행하며 영어를 들으면 정말 한국에서 맥도날드 햄버거 먹는 것처럼 반갑게 느껴졌어요. 그만큼 관광객 입장에서는 언어 문제가 심각한 동네. 우리나라에서 코 찔찔 초등학생들도 아는 'how much is it'도 전혀 안 통하는 게 카프카스에요. 그래서 영어를 극도로 싫어하고 못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제발 영어로 대화하고 싶었어요. 진짜 멀쩡히 말 잘 할 줄 아는데 언어소통이 안 되어서 벙어리처럼 손짓 발짓하며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에 친구가 아닌 다른 사람과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쁨이었어요.


터키인 아저씨의 이름은 '케말'이었어요. 이스탄불 근처의 큰 도시에 사시고, 기술자라고 하셨어요. 그 분은 이제 막 도착했다고 하셨어요.


"같이 에츠미아진 가실래요?"


아저씨께서 오늘 특별한 일정이 없다고 하시자 같이 에츠미아진을 갔다 오자고 말씀드렸어요. 관광으로 예레반에 온 이상 한 번은 에츠미아진을 가야 해요. 세반 호수는 예레반에서 멀기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지만 에츠미아진은 예레반에서 가까워서 택시로도 금방 갈 수 있어요. 게다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시라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곳이기도 해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좋다고 하셨어요.


케말 아저씨와 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씻고 밖으로 나왔어요. 리셉션에 에츠미아진 가는 방법을 물어보자 미니 버스가 수시로 있고, 가격은 200디람이라고 알려주었어요. 그래서 리셉션에서 알려준 곳으로 갔어요.


리셉션에서 알려준 곳으로 갔는데 정작 많다는 에츠미아진 가는 마슈르트카는 보이지 않고 불법 택시만 잔뜩 있었어요. 마슈르트카를 타고 가려는데 불법 택시 기사들이 계속 택시에 타라고 했어요. 택시 기사들은 4명 모아서 가는데, 그럴 경우 한 사람당 300디람이라고 했어요.


"그냥 택시 타고 갈까요?"


한 사람당 300디람이면 한 사람당 900원. 이거면 터키에서 택시 타는 것보다도 훨씬 싼 가격이에요. 괜히 마슈르트카 올 때까지 기다리느니 300원 더 내고 택시 타고 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우리는 세 명. 한 명만 더 타면 택시는 출발인데 택시에 이미 한 명이 타고 있었어요. 그래서 바로 출발.


확실히 택시로 가니 마슈르트카로 가는 것보다 정신 건강이나 육체 건강이나 훨씬 좋았어요. 마슈르트카였으면 머리가 제 의지로부터 독립해 신나게 춤을 출텐데 승용차를 타고 가니 그 정도로 정신 못 차릴 정도로 흔들리는 것은 없었어요. 그리고 도로 상태 자체가 귬리 가는 것 보다는 나았구요.

드디어 에치미아진에 도착했어요. 택시기사는 우리가 관광객인 것을 알자 알아서 에치미아진 성당으로 데려다 주었어요.

 에치미아진은 아르메니아 정교의 중심지에요. 로마에 가면 바티칸에 가듯 예레반에 가면 에치미아진에 가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에요. 간단히 말해 바티칸 같은 곳이에요. 에츠미아진은 볼 곳이 한 곳에 다 모여있어요.

내부는 이래요. 들어가볼 수 있는 건물이 몇 개 있었고, 날도 뜨겁고 하루 종일 볼 생각으로 천천히 돌아다녔어요.

우리나라 서울 애오개 근처에 있는 정교회 성당과는 확실히 다른 내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와서 기도를 드리고 있었어요.


내부를 구경하고 밖에 나왔는데 이란인 한 무리가 성당 입구에 앉아 쉬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케말 아저씨께서 이란인들에게 먼저 말을 거셨어요. 이란인들은 반갑게 대답해 주었어요. 그 이란인들은 이란의 어떤 방송사에서 취재를 온 사람들이었고, 아르메니아 정교 대주교님 (가톨릭의 교황님 같은 직위)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했어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친구가 이란어가 너무 예쁘게 들려서 정말 공부해보고 싶다고 하자 이란인들이 매우 좋아하며 꼭 놀러오라고 했어요.


비자만 있으면 가지.


아르메니아 비자야 받는 게 별로 어렵지 않으므로 까짓거 다시 한 번 받으면 되는데 이란 비자는 받기 조금 어려워요. 결정적 문제가 초청장. 우리나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도 초청장이 있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으니 '초청장' 자체를 욕하지는 않겠지만 비자 받는 것보다 사실 초청장 받는 게 10배 어려워요. 과장이 아니라 비자 받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요. 비자 받는 것은 아주 쉬워요. 여권과 여권 사본, 사진 2장, 돈 들고 대사관 가면 되요. 대사관 가는 것이 귀찮아서 그렇지, 비자 받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문제는 초청장. 비자를 받기 위해 초청장을 요구하는 나라의 경우, 비자 획득 성공과 실패 여부는 거의 전부 초청장 획득을 했느냐 못했느냐에서 결정되요. 게다가 이것은 자기가 만들어 준비하는 서류도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초청장을 얻는다면 비자 획득이 쉽고, 그렇지 않다면 비자 획득은 거의 100% 실패에요. 예레반 주재 이란 대사관이 있는지는 저 역시 잘 몰라요. 그러나 이란인들이 관광으로 아르메니아에 엄청 많이 오고, 예레반에 Iran Information & Communication Center도 있어요. 게다가 아르메니아-이란 국경은 잘 열려 있어요. 마음만 먹으면야 이란에 갈 수 있지만 문제는 비자. 그 이전에 초청장. 그래서 이번에 이란은 제외했던 것이었어요. 그리고 지금도 이란에 언제 갈 수 있을지 몰라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꽤 높아 보이는 분이 사제 몇 명을 거느리고 오셨어요. 이란인들이 그분을 향해 급히 걸어갔어요. 그리고 인터뷰 시작.

사진 속 종교인이 바로 아르메니아 정교 대주교님이세요. 즉 교황님 같으신 분. 에츠미아진이야 항상 있는 것이니 언제 가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저 분은 아무 때나 간다고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란인들과 무슨 이야기를 하나 구경했어요. 옆에서 케말 아저씨께서 대주교님께서 러시아어로 인터뷰한다고 하시며 우리들에게 대주교님의 말씀을 이야기해주셨어요. 대주교님은 아르메니아 정교의 역사와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시다고 알려주셨어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인터뷰를 매우 재미있게 듣고 계셨지만, 우리들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어요. 당연했어요. 우리들은 러시아어를 모르니까요. '안녕하세요', '얼마에요'에서 벗어난 러시아어를 이해하는 것은 둘 다 불가능. 그래서 케말 아저씨께 우리는 다른 곳을 둘러보고 있겠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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