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16 터키-조지아 (그루지야) 포소프 국경, 아칼쯔케

좀좀이 2012. 6. 4.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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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드르에서 카르스로 들어온 것 자체가 바투미로 가기 위해서는 잘못된 선택이기는 했지만, 조지아로 들어갈 방법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어요. 일단 급한 대로 방법을 알아보니 딱 한 가지 방법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포소프 Posof 국경


터키에서 바투미로 바로 가기 위해서는 사르피 Sarpi 국경을 넘어야 해요. 하지만 일단 조지아로 넘어가는 것이 목적이라면 아르다한 Ardahan 을 거쳐 포소프 Posof 국경을 넘어가는 방법도 있었어요.


바투미는 조지아에서 크고 유명한 도시. 그러므로 조지아에만 들어가면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다는 계산이 섰어요. 터키 카르스에서 굳이 바투미로 바로 들어가겠다고 든다면 무려 이틀을 또 날려야 했어요. 먼저 카르스에서 바로 트라브존까지 갈 방법이 없었으므로 카르스에서 1박을 해야 했고, 그 다음 트라브존까지 가야 했고, 거기서 다시 바투미를 들어가야 했어요. 하지만 만약 포소프 국경으로 조지아로 넘어간다면 다음날 어떻게든 바투미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다행히 아르다한으로 가는 차는 아직 막차가 남아 있었어요. 카르스에서 아르다한으로 가는 막차는 오후 3시 출발. 그래서 일단 아르다한에 가기로 했어요.


내가 저기를 못 가는구나!


카르스에서 유명한 볼거리는 딱 두 개 있어요. 하나는 아니 유적,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카르스 성이에요. 아니 유적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곳이에요. 카르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즉, 카르스 시내에서 유명한 곳은 오직 카르스 성밖에 없어요. 성이 높은 곳에 있고 크기 때문에 곳곳에서 보여요. 저 성만큼은 가고 싶었지만 보이기는 잘 보이는데 어떻게 가는지 길을 찾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이제 차를 타고 가야할 시간. 그냥 길만 따라가면 갈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그게 아니라 왠지 더 약이 올랐어요. 그래서 최대한 잡아당겨서 사진만 찍었어요.


"다행이다!"


만약 성에 갔다면 성 꼭대기까지 캐리어를 끌고 올라갔을 거에요. 친구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했어요. 저는 진심으로 아쉬웠지만 친구는 캐리어 끌고 성에 올라가는 참사는 피했다고 좋아했어요.


승합차를 타고 아르다한으로 가는 길. 우리는 가장 먼저 탔기 때문에 편하게 맨 앞 조수석에 타고 갔어요. 1시간이면 간다고 했는데 비가 내리고 도로 상태도 좋다고 할 수는 없어서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아르다한에 도착했어요.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단순히 날씨와 도로 상태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지난 '7박35일'에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서 알바니아 티라나까지 가는 과정처럼 차가 무슨 택시마냥 승객들 요구에 따라 여기 저기 다 들르다보니 더욱 오래 걸린 것이었어요.


"포소프행 버스는 어디서 타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아르다한 시내를 돌아다녔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기 경찰은 러시아 경찰이 아니야.


거리에 경찰 아저씨가 보이자 경찰 아저씨에게 달려갔어요. 현지인들도 모르겠다고 하고, 몇몇 사람들은 무슨 사무실에 가라고 했는데 거기 갔더니 없어서 절망하려고 하는 차에 경찰 아저씨가 보였어요. 설마 경찰이 이 동네 사정을 모르지는 않겠지. 길 물어보기 제일 좋은 사람은 사실 경찰이에요. 문제는 경찰은 여권을 제시하라고 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후진국에서는 경찰이 일반인 트집잡아 삥뜯을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그냥 일반인에게 물어보는 것인데 여기는 터키. 경찰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었어요. 여기는 러시아가 아니에요. 경찰이 금품갈취를 좋아한다고 악명 높은 러시아도 아니고, 그럴 위험이 충분한 구 소련 국가들도 아니에요.


경찰에게 포소프행 버스를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자 경찰이 잘 모르겠다고 하며 어디론가 연락을 취했어요. 그리고 길 가는 행인을 불러 물어보았어요. 행인도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요.


"아직 버스 안 갔대요. 빨리 가요."


경찰과 행인이 어디에서 버스를 알려주며 우리에게 빨리 달려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그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들이 알려준대로 급히 달려갔어요.


아르다한에서 포소프까지 가는 버스는 다행히 출발하지 않았어요.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때마침 주룩주룩 내리던 비도 멎었어요.

안녕, 터키. 안녕, 튀르크어권.


버스에 올라탔어요. 포소프 국경에 대해서는 한국에 있을 때 터키에서 조지아로 들어가는 루트를 찾는 과정에서 찾아보기는 했지만 인터넷에 정보가 없었어요. 그저 '국경이 있다' 정도. 가는 방법도 제대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서 여기가 진짜 갈 수 있는 국경인지 고민했는데 정말 다행이었어요. 그나마 터키 동부 일정 계획 세우는 과정에서 터키 동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쉽게 결정을 못 내려 여기 저기 루트를 알아본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었어요.


1시간이면 도착한다는 국경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저녁 6시 50분이었어요. 버스가 이 마을, 저 마을 다 들리며 갔기 때문에 꽤 늦어졌고, 포소프 국경은 정말 외진 곳에 있었어요. 험한 산길을 돌고 돌아 마지막 손님을 내려준 후, 다시 산 하나를 넘어서야 있었어요.


국경이라고 내려준 곳은 이게 국경인지 그냥 허름한 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국경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께서 7시면 국경이 닫기 때문에 빨리 들어가라고 하셨어요.


먼저 터키 출국 심사. 별 것 없었어요.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우리들을 매우 신기하게 쳐다보았어요. 충분히 이해가 되었어요. 이때가 2011년 7월 12일. 국경을 열어놓기만 했지 도로 포장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어요. 무언가 국경답게 제대로 지은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어요. 국경 사무실도 대충 급조해 만든 듯 허술한 콘크리트 건물 뿐이었어요.


그리고 조지아 입국 심사. 여행 시작한지 열흘도 안 되어서 벌써 두 번째 입국 심사였어요. 역시나 별 거 없었어요. 그냥 조지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하고 도장 쾅 찍어주었어요.


국경이라고 하기조차 민망할 지경으로 아무 것도 없기는 조지아쪽도 마찬가지였어요. 양쪽 다 이제야 건물을 지으려고 이것 저것 자재를 가져다놓고 공사가 약간 진행되고 있었어요. 국경이면 트럭이라도 많이 있어야 하는데 트럭조차 없었어요.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 동안 우리 외에 국경을 건너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우리 어쩌냐?"


조지아-아제르바이잔 국경을 넘었을 때에는 그래도 국경에 택시기사와 환전상, 트럭들이라도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정 안 되면 밤을 새고 아침에 차를 잡아서 바쿠에 간다고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여기는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국경 뿐만 아니라 국경 주변도 아무 것도 없었어요. 날은 슬슬 저물어가는데 아무리 멀리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언덕과 수풀 밖에 없었어요. 사람 자체가 안 보였어요. 국경에서 밤을 샌다고 해도 다음날 언제 차를 잡을지는 고사하고 언제 차를 볼지조차 의문이었어요. 차가 있어야 바가지라도 쓰죠. 정말 그냥 '열어만 놓은' 국경이었어요.


지도를 보니 '발레' Vale 라는 도시가 국경 근처에 있었어요. 여기에 가기만 하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문제는 차가 없다는 것. 길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짐을 끌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걸었는지 몰라요. 많이 걸은 것 같기도 하고 많이 걷지 않은 것 같기도 해요. 일단 캐리어를 끌고 어둠 속을 걸어갔기 때문에 잘 몰라요. 가로등도 하나도 없었거든요. 국경 근처에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니 믿겨지시나요? 터키쪽이나 조지아쪽이나 똑같았어요. 국경 안은 물론이고 국경 주위에조차 가로등이 없었어요. 그렇게 걷다가 주유소 하나를 발견했어요.


주유소에 들어가 친구가 터키어로 도움을 요청했어요. 다행히 주유소 사람들이 터키어를 약간 알았어요. 주유소 사람들은 자신들이 택시를 불러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 달라고 했어요. 그거 외에는 정말 그 어떤 방법이 없었거든요. 어디가 어디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는데 무작정 걸어서 발레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을 하나 제대로 있을까 의문이었어요. 국경에서 주유소까지 걸어오는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었어요. 당연히 걸어가는 동안 차는 한 대도 못 보았구요.


잠시 후. 승용차 한 대가 왔어요. 주유소 주인 부부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어디로 갈 거에요?"


주유소 주인 부부의 아들은 터키어를 유창하게 잘 했어요. 그는 우리들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바투미요."
"바투미? 거기는 안 되요. 120달러."


아들은 바투미는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만약 굳이 바투미를 가겠다고 한다면 자기는 위험하고 아주 나쁜 길을 밤새 운전해야 하기 때문에 120불은 받아야한다고 했어요.


"발레요."
"발레? 거기 아무 것도 없어요."


아들은 발레는 안 된다고 했어요. 자기가 발레 사는데 거기에는 숙소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어요. 아들이 제시한 곳은 아칼쯔케 Akhaltsikhe ახალციხე. 여기 가면 하룻밤에 20불에 잘 수 있는 좋은 호텔이 있다고 했어요. 주변에 놀이터도 있고 '경찰소'도 있다고 했어요. 아들은 계속 주변에 경찰서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간단히 요약하면 그 호텔이 좋은 이유는 주변에 '경찰서'가 있기 때문. 대체 경찰서가 주변에 있는 게 왜 좋은 호텔의 기준이 되는데? 아무튼 이해할 수는 없었어요. 아들은 아칼쯔케까지 가는 차비로 40달러를 달라고 했어요.


"이거 비싸지 않나?"


깎아달라고 했지만 아들은 절대 안 깎아주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때 주유소 아주머니께서 결정적인 말을 하셨어요.


"어쨌든 너희는 택시를 타고 가야하잖아."


예. 정답이십니다. 아주 그냥 100만점 드리고 싶네요.


낮이었다면 오기로라도 걸어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깜깜한 밤. 상대방이 '되었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라고 가 버리면 우리로써는 그 어떤 방법도 없었어요. 사람이라고는 주유소 주인 부부가 전부인 동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들 말대로 아칼쯔케에 가기로 했어요.


차를 타고 가는데 왜 이 아들이 그렇게 튕겼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정말 발레까지 마을이 하나도 없었어요. 아들은 종종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차에 태워서 아칼쯔케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어요. 아마 포소프를 통해 조지아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처럼 정말 난감한 상황에 빠졌을 거에요. 발레까지 가는 길이 평지도 아니고 산길을 돌아가는데다 발레까지 마을이 없었으니까요.


"저거 경찰서."


아들은 발레에 있는 경찰서 앞을 보여주며 경찰서라고 알려주었어요. 조지아 경찰서의 특징은 모두 리모델링해서 삐까번쩍한데 대통령이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경찰서 내부가 밖에서 훤히 다 보이도록 전면을 투명 유리창으로 바꾸어버린 것이었어요.


아들 말로는 발레 주민들이 경찰서를 '디스코'라고 부른다고 했어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발레에서 그나마 밤에 주민들의 놀거리라면 밤새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경찰서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산책하는 것. 그래서 한 번은 마을 할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어디 가냐고 해서 '디스코' 간다고 대답하자 자기도 같이 가보겠다고 하셨대요. 그런데 막상 간 곳이 경찰서 앞이라 화를 냈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정말 발레 시내에는 경찰서 말고는 환히 불이 켜진 곳이 하나도 없었어요.


발레에서 몇십 분 더 가자 아칼쯔케에 도착했어요. 아들은 '경찰서 옆 호텔'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어요. 아들의 말과는 달리 호텔비는 1박에 25달러. 아들은 내심 우리가 돈을 더 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우리는 딱 약속한 액수의 돈만 주었어요.


호텔 방은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벽 한쪽 전면이 투명 유리창이었고, 유리창 너머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동네 놀이터였다는 것. 다음날 아침 일찍 바투미행 마슈르트카가 있다고 했어요. 아들은 바투미행 마슈르트카는 첫차가 아침 8시 반, 두 번째 차가 11시라고 알려주었어요.


일단 방을 잡은 후 밖에 나왔어요.

놀이터 근처에 교회가 있었어요. 놀이터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교회 근처에도 사람들이 조금 있었어요. 아칼쯔케는 '새로운 성'이라는 뜻으로 론니플래닛에도 간단히 소개되는 도시에요. 이 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훤하게 불을 켜놓은 경찰서 불빛 때문에 놀이터가 매우 밝아서 밤에 노릭 좋다는 것 정도였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고 아침 8시에 마슈르트카를 타러 갔어요.

우리가 타고 갈 마슈르트카. 조지아어 문자를 읽고 쓸 줄 알았기 때문에 마슈르트카를 찾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았어요. 마슈르트카는 8시에 출발한다고 했어요.


"잠깐 주변 돌아다닐까?"
"너 혼자 다녀와. 시간 많이 남지도 않았잖아."


친구가 돌아다니기 싫다고 해서 혼자 후딱 주변만 돌아보고 사진만 찍고 오기로 했어요. 이왕 아칼쯔케에 왔는데 전날 밤에 도착해 찍은 사진이라고는 성당 사진 한 장 밖에 없었거든요.

이것이 마슈르트카 정거장과 그 주변. 아칼쯔케에서 경찰서만 찾으면 마슈르트카 정거장은 금방 찾을 수 있어요.

사진 속 새로 지은 건물이 경찰서에요. 밤에는 불을 환하게 켜서 주변이 엄청 밝답니다.

마슈르트카 주변에 있는 기념물.

이것이 아칼쯔케에서 그나마 볼만한 것인 아칼쯔케 성이에요. 딱 봐도 알 수 있지만 관광을 위해 그다지 개발해 놓지 않았어요.


8시 반 조금 넘어서 드디어 마슈르트카가 출발했어요. 포소프 국경을 넘는 것은 이 지역 여행 중 정말 최고의 난관이었지만 어떻게 잘 넘어갔다는 생각에 왠지 기분이 좋았어요. 아르메니아에서 그곳에 가기 전까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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