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10 아제르바이잔 바쿠

좀좀이 2012. 5. 29.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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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르반샤 궁전


'궁전'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화려할 거라고 상상했어요.


최소한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돌마바흐체 궁전보다 조금 더 수수한 정도 아닐까? 아니야. 이 나라는 지금 돈이 많아서 여기 저기 다 뜯어고치고 있는데 더 아름다울 수도 있어.


솔직히 쇤부른 궁전이나 스페인 왕궁까지 기대는 하지 않았어요. 그 정도는 무리고, 돌마바흐체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돌마바흐체도 화려하다고 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별로였거든요. 그냥 샹들리에만 엄청 매달려 있을 뿐, 화려하다고 하기엔 확실히 부족했어요.


역시 기대를 하는 게 아니었어.


일단 입장료는 국제 학생증이 있을 경우 60개픽. 그리고 카메라가 있을 경우 2마나트에요.


햇볕은 쏟아지고 날은 더웠어요. 그리고 궁전 안은



화려하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지.


친구가 계속 덥다고 했어요. 궁전에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더니 화장실을 다녀온 후에는 쉬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그늘을 찾아 들어갔어요.

잠시 쉬다 다시 나왔어요.

궁전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내부에는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전시된 것이 별로 없는 전시실이 있었어요.


구석에 방치된 옛날 아제리어가 새겨진 돌들.

내부에는 묘소도 있어요. 정확히 무슨 묘소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묘소 역시 그다지 눈길을 끌지는 못했어요. 그냥 평범.



궁전 내부를 둘러보는데 친구가 계속 빨리 호텔 가서 쉬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이야기하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에는 거의 어린 아이가 보채는 정도까지 계속 '빨리 돌아가자'를 반복해 대었어요.


이 녀석, 상태 안 좋구나!


친구가 궁전 관람은 대충 하고 빨리 호텔에 가서 쉬고 싶다고 해서 친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어요. 아무리 이게 돌마바흐체보다 볼 게 없다고 해도 그렇게 대충대충 휙휙 걸어다니며 볼 것조차 없는 지경은 아니었거든요.


친구는 눈이 풀려 있었어요.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어요. 평소에는 땀을 거의 안 흘리는 친구였는데, 이때는 정말 비 오듯 땀을 쏟아내고 있었어요. 온몸의 모든 구멍에서 땀이 난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였어요.


더위 먹었구나.


친구가 더위를 먹은 게 확실했어요. 저 역시 예비군 훈련 갔다가 더위를 먹은 적이 있어서 증세를 알거든요. 일단 어지럽고 땀이 엄청나게 많이 나요. 그리고 토할 것 같고 설사를 해요. 이 증세 모두 친구에게 일어나고 있었어요.


"빨리 가자."


대충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치료 시작.


일단 에어컨을 끄고 커튼을 쳐서 선선한 그늘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식당에서 소금을 가져왔어요.


"야, 이거 먹어."
"싫어!"
"먹으라구!"


기온차가 컸기 때문에 소금을 많이 먹으라고 했는데 친구는 그때까지 평소대로 싱겁게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그 결과 염분 부족으로 더위를 먹어버렸어요. 다행히 정말 위험한 열사병이 아니라 일사병. 치료 방법은 소금 한 줌 먹이고 선선한 그늘에서 한 숨 재우는 것. 그 외의 좋은 방법은 사실상 없어요. 하지만 안 먹겠다고 우겨서 화를 버럭 냈어요. 그렇게 소금 많이 먹으라니까 안 먹어서 네가 이 지경이 된 거 아니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문제 생겼으니 더 이상 고집부리지 마! 화를 버럭 내자 친구가 마지못해 소금을 한 숟갈 먹고 물을 500ml 쉬지 않고 마셨어요.


"어우...짜!"
"그럼 소금이 짜지, 달콤하냐?"


친구에게 소금을 먹이고 재웠어요. 친구가 잠들 때까지 옆에서 부채질로 선선한 바람을 만들어 주었어요. 친구가 잠들자 저 역시 잠시 호텔에서 눈을 붙였어요.


자고 있는데 친구가 깨웠어요. 창밖을 보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몸은 어때?"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
"나가서 바람이나 쐴까?"
"그러자."


해가 졌고 날도 선선해졌으니 바람이나 쐬러 밖을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호잘리 학살 추모비에요. 호잘리 학살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치역 때문에 발생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중 아르메니아와 러시아 군대가 일으킨 학살.


전철을 타고 사힐 역으로 갔어요. 이쪽으로 간 이유는 바쿠의 야경을 보기 위해서였어요.

역시 석유로 돈이 많은 나라라 거리는 휘황찬란. 그리고 낮에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밤에 다 나와서 놀고 있었어요. 낮 2시는 새벽 2시처럼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해가 떨어지자 사람들이 북적거렸어요.





역시 돈이 많고 석유도 많은 나라라 조명을 엄청나게 화려하게 해 놓았어요. 바쿠는 밤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 맞았어요. 낮에 본 바쿠가 그냥 새로 나온 명품이라면 밤에 본 바쿠는 새로 나온 최고급 명품.


다행히 친구의 상태가 소금 먹고 잔 후 많이 좋아졌어요. 게다가 밤에 사람도 많고 경찰도 많아서 돌아다닐 만 했어요. 여행중 웬만해서는 절대 밤에 돌아다니지 않아요. 유럽이나 아랍이나 밤거리는 정말 위험하거든요. 하지만 이 도시는 밤도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기분 좋게 돌아다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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