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03 여행 시작

좀좀이 2012. 5. 19.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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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가 사실상 14일 나왔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어요. 솔직히 급해질 필요는 없었어요. 원래 계획은 12일에 가서 20일에 돌아오는 것이었어요. 즉 비자 만료일보다 5일 전에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올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워낙 여행 정보가 극악으로 부족해서 예정보다 5일 더 나온 비자를 보니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인터넷을 뒤져도 제대로 된 숙소 정보가 나오지 않았어요. 숙소 정보라고는 온통 욕 뿐이었어요. 론니플래닛도 마찬가지. 진짜 타지키스탄 여행 다니며 론니플래닛 욕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이거 쓴 놈은 산소가 아까워!"


타지키스탄 편 쓴 인간이 딱 한 번 타지키스탄을 갔다오고 자기가 간 루트만 써 놓고, 주워 들은 이야기로 채워 넣었어요.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론니플래닛 Georgia, Armenia & Azerbaijan 편에 비하면 Central Asia는 완전 폐급 쓰레기 수준이에요. 일단 책 자체가 그다지 두껍지 않은데 6개국이나 우겨 넣은 것 자체가 문제에요. 게다가 이거 쓴 놈들이 몇 번씩 가 보고 쓴 게 아니라 한 번 가 보거나, 가지도 않고 주워 들은 이야기로 써놓은 부분도 많아요. 그나마 우즈베키스탄은 나름 신경써서 썼는데 타지키스탄 편은 진짜 건성으로 써서 지도도 제대로 없어요. 타지키스탄 편 보면 이거 쓴 놈이 얼마나 타지키스탄 여행을 싫어했는지 딱 보여요. 교통편 정보도 엉망이에요. 어쩔 수 없이 론니플래닛에 의존하며 다니기는 했지만 정말 타지키스탄을 헤매게 만드는 책이에요. 하여간 정보가 없어서 참고하고 의존하며 다니기는 했지만 절대 이것만 믿고 가면 크게 낭패를 봐요.


하여간 급한 마음에 기차역으로 달려갔어요. 머리 속에는 '오늘 친구 갑과 사마르칸트로 넘어가고 을한테는 내일 넘어오라고 할까? 을이 아침 일찍 넘어와야 12시쯤 될테고, 우리는 일찍 일어나서 사마르칸트 구경하면 될 거 같은데'라는 생각 뿐이었어요.


기차역에 갔는데 다음날 표가 거의 다 떨어졌다고 했어요. 결정을 빨리 해야 했어요.


"갑아, 우리 오늘 사마르칸트 넘어갈까?"
"그냥 내일 가자. 오늘 너무 늦었잖아."
"지금 집에 가서 빨리 짐 싸서 나오면 되잖아."
"그냥 내일 을이랑 같이 가자."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이나 야간 이동은 기차 외에는 어려워요. 기차 야간 이동을 알아보았는데 저녁 7시 10분 출발이었어요. 우리가 기차역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 집에 갔다 오기에는 시간이 없었어요. 그러면 남은 것이라고는 올마조르 (Olmazor, 옛이름 Sobir Rahimov)역이나 이파드롬 (Ippodrom) 시장에서 버스나 합승택시, 마슈르트카 (합승 승합차)를 타고 가는 방법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나라는 도로 포장이 좋지 않아서 야간 이동은 잘 안 해요. 그래서 이것도 갔다가 되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다음날 - 5월 11일 금요일 아침 08시 05분 기차를 타고 사마르칸트에 가서 근처 펜지켄트 (Penjikent) 국경을 넘어 타지키스탄으로 들어가기로 했어요. 기차표는 일반석(2등석)이 22000숨. 돈이 뭉텅이로 훅 나갔어요. 저는 500숨짜리 뭉텅이를 쓰기 위해 500숨 짜리 지폐 44장을 냈어요.


을과는 타슈켄트역에서 아침 7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저와 가까운 곳에 사는 갑에게는 저희 집으로 찾아오라고 약속했어요.


집에 돌아와서 급히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짐을 쌌어요. 짐을 다 싼 후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인터넷을 뒤져 보았어요. 론니플래닛에는 두샨베 서점 정보도 없었어요. 인터넷을 한참 뒤져서 두샨베에 'Olami kitob'이라는 서점과 Книжный мир라는 서점이 있고, 이 서점들이 가장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다른 정보들도 뒤져 보았지만 특별히 나오는 정보가 없었어요.


"후기라고는 온통 욕 밖에 없는 파루항 호텔 들어가야 하나..."


일단 두샨베 숙소는 파루항 호텔과 포이타크트 호텔 (번역하면 수도 호텔) 두 곳 중 하나를 가기로 했어요. 파루항 호텔은 시설이 극악으로 열악하다고 하는데 가격이 저렴했고, 포이타크트 호텔은 그럭저럭 지낼만 하고 위치가 좋다고는 하지만 가격이 비쌌어요.


밤새 인터넷을 뒤지다 갑이 집에 찾아왔어요. 갑도 밤새 정보를 찾다가 잠을 3시간 밖에 못 잤다고 했어요. 저는 밤을 아예 새 버렸어요. 둘이서 출발한 것은 아침 7시 20분. 타슈켄트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아무래도 약속 시간을 넘어 기차 시간까지 늦을 것 같아 급히 택시를 타고 갔어요. 2천숨이면 갈 거리를 급해서 3천숨 불러서 갔어요.


기차역에 도착하니 7시 33분. 타슈켄트역 검문소에서 기차표와 여권을 제시하니 바로 통과되었어요. 우즈베키스탄은 테러에 매우 민감한 나라라서 기차역도 표 사는 곳 (Касса)은 타슈켄트역 왼쪽 끝에 있어요. 기차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단 검문소라고 하기에는 뭐한 게이트를 통과해야 하고, 기차역 입구에서 다시 보안검색을 받아야 해요.


타슈켄트역 내부는 매우 화려하고 예쁜데 사진촬영이 가능한지 안한지 잘 몰라서 일단 사진을 안 찍었어요. 지하철역 사진 촬영이 금지이기 때문에 아마 역 내부 사진 촬영도 안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역에 들어가자마자 보안 검색이 있어요. 짐을 엑스레이 투시기에 집어넣고 검색대를 통과해야 해요. 이 나라에서 검색대는 무조건, 그리고 절대 한 번에 통과해야 해요.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하면 엄청 피곤해져요. 옷을 하나하나 벗고 신발도 벗고 허리띠도 푸르고 해서 소리가 안 날 때까지 계속 검색대를 왔다 갔다 해야 해요. 그래서 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두 카메라 가방에 우겨넣고 여권이 들어 있는 목걸이 지갑을 손에 들고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어요.


"그거 뭐야?"
다행히 한 번에 통과는 했지만 경찰이 제 목걸이 지갑을 보고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어요. 여기에서 제일 현명한 대처는...


그냥 다 보여주기!


목걸이 지갑을 열어서 보여주었어요. 경찰은 제가 순순히 잘 보여주자 대충 휙 보고 가라고 했어요. 우즈벡에서 경찰이 전철이든 뭐든 간에 가방을 열어보라고 하거나 지갑을 보여달라고 하면 순순히 하는 게 좋아요. 괜히 불쾌해 하거나 뻘짓 할 필요가 없어요. 오히려 이랬다가는 정말로 피곤해지는 수가 있어요. 단, 경찰이 심심하던 차에 말이 통하는 것을 알 경우 잡고 계속 잡담하자고 드는 경우가 있어요.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자 이번에는 기차표와 여권 검사가 있었어요. 여권과 기차표를 건네주자 두 장으로 된 기차표에서 뒷 장에 도장을 찍고 여권과 표를 다시 돌려주었어요.


"여기서 차나 하나 뽑아갈까?"


기차역 내부에 자판기가 있는 것을 본 갑이 500ml 차를 한 통 뽑아서 가자고 했어요.


"이거 그냥 돈 넣으면 되나?"


분명 생긴 것은 자판기. 그런데 우즈베키스탄 와서 처음 본 자판기였어요. 한국이면 당연히 이렇게 멍청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돈뭉치가 왔다갔다 하는 동네. 론니플래닛에는 'ATM이 있으나 돈이 없는 경우가 있음'이라고 나오는 동네. 이런 동네에서 자판기를 보니 이걸 진짜 돈만 넣으면 되나 의문이 들었어요. 하필이면 가격이 1500숨이었어요. 1000숨이라면 그냥 넣었을텐데 1500숨이라 더욱 고민이 되었어요. 혹시 2천숨 넣으면 거스름돈 나올까? 그보다 500숨 짜리 지폐는 인식이나 할까? 1000숨과 500숨은 인식한다고 하기는 하는데 당연히 불신의 늪에 빠져버렸어요. 돈뭉치가 왔다갔다하는 세계에서 고작 지폐 한 두 장 집어넣고 그걸 인식하는 기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 일. 이해가 안 되시나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 달만 머물러보시면 알게 되요.


"뭐 해?"
경찰이 왔어요.
"이거."
손가락으로 자판기를 가르켰어요. 경찰이 어이없어하며 웃더니 우리에게 뭐를 뽑을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차 500ml 패트병 1개를 뽑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자 경찰이 우리에게서 1500숨을 받아 자판기에 집어넣고 번호를 눌러주었어요. 한국 자판기와 사용 방법이 똑같았어요. 정말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기차에 올라탔어요. 한쪽에 좌석 3개씩 있고 창가에 탁자가 있는 방이었는데 갑과 을은 양쪽 구석에, 그리고 저는 갑 맞은편 창가가 지정석이었어요. 지정석에 앉았는데 덩치 좋은 할아버지께서 제게 자리 좀 바꾸어달라고 하셨어요. 허리가 아파서 탁자에 기대어 가고 싶으시다고 하셨어요. 다른 방으로 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기차 안에서 자리를 바꾸는 거라 바꾸어 드렸어요.


"너희들 왜 옆 기차 안 타니?"
옆 기차는 아침 8시에 출발하는 Afrosiab 기차. 우리나라로 치면 새마을호에요. 가격은 비싸나 매우 빨리 가는 기차로,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까지 2시간 반 걸리는 기차에요.
"표가 없어서요."
저희도 아프로시압 기차를 타고 싶었어요. 그러나 표가 없어서 못 탔어요.


"너희들 어디 가니?"
"타지키스탄이요."
"거기 타지크인들 밖에 없는 곳인데 뭣하러 가?"


할아버지께서는 차라리 부하라나 히바를 가라고 하셨어요.


자리에 앉아 있는데 이번에는 두 아주머니가 방에 들어오셨어요. 그래서 갑과 을 사이에 들어가 앉았어요. 아주머니들 짐이 많아서 짐을 올려 드리는데 액정 TV도 들어서 올려 드렸어요. 다행히 TV가 무겁지 않아서 수월하게 올릴 수 있었어요.


기차는 놀랍게도 8시 5분 조금 넘어서 출발했어요. 기차가 출발하자 벽에 달린 삼성 액정 TV에서 비디오를 틀어주기 시작했어요.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표 검사를 하고 도장이 찍힌 표 뒷 장을 떼고 앞 장을 돌려주었어요. 표 검사가 끝나자 저는 밤을 샜기 때문에 졸려서 창 밖을 보다 TV를 보다 하다가 잠이 들었어요.


"일어나! 사마르칸트 다 왔어!"


어렴풋이 잠이 깨었을 때 친구들이 저를 깨웠어요. 사마르칸트에 다 왔으니 이제 내릴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카메라 가방과 가방을 메고 기차에서 내렸어요.


오전 12시, 드디어 사마르칸트에 도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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